내가 통 속의 뇌라고?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토머스는,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1999년은 모의 현실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현재는 1999년이 아닌 2199년이며, 인공 지능 컴퓨터가 인간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매트릭스를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매트릭스>가 나온 1999년과 다르게, 이제는 가상 현실이 각종 분야에 접목되었고, 인공 지능 스피커가 민간에서도 쉽게 쓰이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혹시 매트릭스에 나온 모의 현실을 곧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미 모의 현실인 것은 아닐까?

1. 이 세상이 모의 현실이라면?

커다란 비커에 의문의 액체 속에 담긴 뇌. 그것과 연결된 전선을 따라가 보면 수상한 초록빛이 나는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다. 컴퓨터가 불빛을 번쩍이면, 뇌에 전자 자극이 가고 모의 현실이 탄생한다.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이 뇌는, 모의 현실 속에서 마음껏 걷고 뛰며 살아있음을 만끽한다. 그것이 현실이 아니란 것을 모른 채.

위는 사이언스 픽션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을 만한 장면이다. 멋지고 스릴 넘치는 현실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사실은 통 속에 담긴 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모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는 획기적이고 현대적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이에 대한 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논의는 존재에 대해 고민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에서부터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실성을 밝히기 위해 ‘속임수를 잘 쓰는 악마 이론’을 제안한다. 이 이론에서는 속임수를 잘 쓰는 악마가 사람들이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갖춘 악마라고 해도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할 수는 없기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고 데카르트는 추론한다.

하지만 이 이론에 따라 우리의 존재를 확신하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악마의 속임수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현실을 확신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미국의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은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다’라고 반박하며 ‘통 속의 뇌’라는 사고실험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나타나 우리의 뇌를 꺼내서 슈퍼컴퓨터와 연결하여 전기적 자극을 제공하고, 우리는 그저 통 속의 뇌에 불과하지만, 현실을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사고실험이다. 하지만 퍼트넘은 진짜 통 속의 뇌는 ‘자신이 통 속의 뇌인지 의심하여라’와 같은 전기 신호가 입력되지 않는 이상 그것에 대해 의심할 수 없기에, 우리는 통 속의 뇌가 아니며 현실세계에 살아가는 인간들이라고 말한다.

데카르트와 퍼트넘이 가져온 두 이론은 그것이 속임수를 잘 쓰는 악마이든, 사악한 과학자이든 우리의 현실을 의심하게 하는 무서운 이야기다. 퍼트넘은 이 무서운 이야기가 실현될 수 없다며 잠시 안도하게 해주었지만, 이런 퍼트넘의 생각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이 통 속의 뇌인지 의심하여라’ 는 전기 신호가 입력된 통 속의 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심을 멈출 수 없다. 정말 이 세상이 모의 현실일 뿐이라면, 우리는 이를 자각 할 필요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 자각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모의 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면 다른 세상에서도 가능할 지 모르니, 우리의 현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모의 현실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2. 모의 현실, 정말 가능할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아직 모의 현실이 실현 불가능하지만, 그와 유사한 가상 현실은 성공적인 결실을 맺으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 현실과 모의 현실은 그 목적과 쓰임이 다르다. 참여자가 가상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가상 현실과는 다르게, 모의 현실에서는 참여자가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모의 현실을 실현하려면 가상 현실보다 기술적으로 심리적으로 더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 참여자가 자신이 원래 속한 세계를 잊고, 새로운 세계를 현실이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1. 뇌, 신경, 컴퓨터 - 합체!

모의 현실을 구현하려면 먼저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많은 공상 과학 영화에서 뇌와 전선으로 연결된 컴퓨터가 등장하는 것도 그 이유다. 뇌와 컴퓨터의 연결 매개체가 되는 것은 바로 ‘뇌파’이다. 실제로 뇌파를 이용한 집중력 향상 게임을 위해 개발된 ‘뉴로플러스’를 보면 이해가 쉽다. 뉴로플러스는 두뇌 감지 헤드셋으로, 머리에 쓰면 여러 갈래로 돌출된 센서가 뇌파를 측정한다. 측정된 뇌파를 컴퓨터에 전송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뉴로플러스는 뇌에서 컴퓨터로 신호를 보내는 것에 성공했지만, 컴퓨터에서 뇌로 신호를 보내는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시각, 후각, 촉각과 같은 감각들은 전기적 신호로만 공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뇌와 신경과 컴퓨터,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뇌가 정보를 다루는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해야한다. 이를 위해 ‘뇌 지도’를 작성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뇌 지도는 뇌를 부위별로 나눠 부위 간의 연결이나 기능을 표시한 지도로, 뇌가 어떻게 신경과 연결되어 사람이 생각하게 만들고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지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100년 전부터 만들어졌음에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지도이지만, 이 지도가 완성되어 인간이 뇌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게 된다면 컴퓨터에서 뇌로 입체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 모의 현실 실현을 위해서는 참여자가 신생아라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가 아닌 이상, 현실을 인지하는 사람의 기억에 일정한 조정이 필요하다. 모의 현실에서는 참여자가 자신이 속한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세상을 현실이라 믿어야 하는데, 원래 속한 세상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면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을 컴퓨터 파일처럼 복사하고, 지우고, 로딩하는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 같지만, 이와 관련된 연구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영국 브리티시 텔레커뮤니케이션사에서는 ‘솔 캐쳐 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솔 캐처 칩’은 인간의 눈 뒤에 칩을 이식해서 그 사람이 경험한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이다. 칩에 저장된 정보는 타인에게 전송할 수 있으며, 이 정보와 유전적 기록을 결합하면 한 사람의 뇌를 재생하는 것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사는 말한다. 본사의 인공지능팀을 이끄는 크리스 윈터 박사는 2025년까지 이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도 30년 안에 알약 한 알로 외국어에 숙달하고, 세익스피어의 저서 전권을 뇌에 저장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들의 말처럼 한 사람의 기억과 경험이 업로드, 다운로드 된다면 모의 현실을 구현하는 데에 훨씬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2-2. 모의 현실 속 또 다른 사회

뇌와 컴퓨터 간의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실현되더라도, 모의 현실 세계 자체가 구축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배경이나 시점과 같은 자체 환경과 그에 접속한 수많은 참가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제해야 한다. 모의 현실 속 세계가 실제 현실처럼 느껴져야 하므로, 인간 사회를 관찰하여 데이터베이스로 쌓는 작업이 필요하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행동에 따라 발생하는 변수도 무궁무진할 것이기에, 이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빠른 연산이 가능한 컴퓨터와 전송 회선이다. 엄청난 데이터를 수용해야하고 수많은 변수에 따라 빠르게 해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같은 모의 현실을 구현할 정도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역시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또한 모의 현실에서도 게임에서의 NPC(Non-player character)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게임에서는 참가자가 이 상황이 ‘게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에 NPC가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일정한 답을 해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모의 현실에서는 참가자가 모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NPC가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NPC 제어 기술도 여전히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미래에는 결혼할 상대를 찾아주는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에 참여한 사람들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시스템이 정해주는 사람을 주어진 시간 동안 만나야 한다. 그런데 한 두 남녀가 시스템이 정해주는 사람이 자신들의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둘은 시스템을 어기고 함께 도주한다. 도주 끝에 도달한 곳에는 두 사람과 똑같은 외양을 한 수백, 수천 만의 커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실제 현실에서 연애 시뮬레이션을 위해 개발된 모의 현실 안의 사람들이었다. 곧 그들은 전산적인 기호로 변환되어 실제 현실에서 99.8%라는 숫자로 표시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의 한 화에서는 시뮬레이션 모의 현실을 다룬다. 현실에서는 그저 연애 시뮬레이션을 위해 개발된 모의 현실 속에서 두 주인공은 사랑을 느끼고 함께 도주하기까지 한다. 만든 사람들에게는 고작 전산적인 시뮬레이션일 뿐이지만, 드라마의 앞부분에서 본 주인공들은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또 결말에서 보여진 사람들이 연애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는 현실 또한 모의 현실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 세상이 모의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사실 아주 커다란 우주 전체를 뒤흔드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현실이 정말 모의 현실이라면, 모의 현실이 구현 가능하다는 것이고 우리도 연구를 계속해서 모의 현실을 탄생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우리가 긴 연구 끝에 구현한 모의 현실 안의 사람들이 또 다른 모의 현실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있는 세상이 결국 태초의 현실 속의 모의 현실 속의 모의 현실 속의… 모의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 의심은 끝없이 작아지는 점과 같아서 멈출 수도,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없다. 이런 고민은 미래에 우리가 모의 현실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왔을 때도 이어진다. 우리와 같이 모든 정신적인, 육체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갈 존재를 모의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에겐 ‘모의’일 뿐인, 가짜일 뿐인 그 모의 현실이 그 속을 살아가는 존재에게는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모의 현실이 가능해져도 우리가 정말 통 속의 뇌일까 아닐까는 확신할 수 없다. 놀라운 실험으로 우리가 통 속의 뇌라는 것이 밝혀진대도 우리가 진정한 현실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저 통 속의 뇌일 뿐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누군가의 계략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에 분노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혹시 이곳이 모의 현실은 아닐지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모의 현실이든 아니든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 발맞춰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미래에 우리가 모의 현실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속에 살아갈 사람들이 느낄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듯하다. 우리가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는 만큼 모의 현실 속의 누군가도 그럴 테니까.

이민지 leereum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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