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조에는 인상주의, 모더니즘, 입체주의, 표현주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근대 이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조는 바로 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리얼리즘이다.

1. 리얼리즘과 그 시작

리얼리즘은 라틴어 rēs(사물)에 어원을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의 개념은 중세 철학에서 처음 등장한다. 플라톤 이래 일반 개념 및 관념적 실재를 인정하는 학설에 대한 호칭으로 일컬어지는 철학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근대에 들어서자 예술에서 리얼리즘이 예술사조로써 사용되기 시작했다. 예술에서 리얼리즘은 현상 세계의 모사를 의미한다. 여기서 현상 세계의 모사를 통해 리얼리즘은 당시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며 그에 따라 사회에 드러난 문제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을 담는다.

예술에서의 리얼리즘은 앞서 말했듯이 근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자세하게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시민과 하층민들이 계속된 핍박과 억압을 견디지 못해 프랑스 대혁명(시민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의 젊은 예술가들은 이상주의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예술에서 벗어나 사회 실상과 현실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사회를 사실적으로 탐구하고 표현하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 리얼리즘의 부흥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예술에서 리얼리즘이 등장함과 동시에 부흥하고 주목받던 시기였다. 이러한 리얼리즘의 부흥을 이끌던 예술가들 2명이 있었는데 바로 도미에와 쿠르베이다. 도미에는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당시 사회를 철저하게 파헤치면서 사회 비판을 날카롭게 하던 회화 작가이다. 당시 신문은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도구였는데 도미에는 당시 프랑스 왕권을 갖고 있던 필립 왕국에게 비판과 풍자를 쏟아 부었다. 굉장히 많은 작품 중 그의 비판과 풍자를 가장 많이 드러내는 작품은 단연 <트랑스노냉 거리>라고 할 수 있다. <트랑스노냉 거리>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루이 필립이 자신에게 반항하고 시위를 행하는 시민들은 학살한 트랑스노냉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위의 작품이 <트랑스노냉 거리>이다. <트랑스노냉 거리>는 비판, 풍자 이외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석판화라는 것이다. 당시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석판화의 기술을 습득하여 작품으로 구현해낼 만큼 도미에가 예술가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에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피를 흘리며 누워있고 남자의 밑에는 아기가 죽은 채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남자의 아버지로 보이는 자가, 왼쪽에는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죽어있다. 이는 모두 트랑스노냉 학살이 일어났을 때 실제로 죽음을 맞은 여러 노동자 가정의 모습을 도미에가 표현해낸 것이다. 도미에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학살 사건을 일으킨 필립 왕국에게는 비판의 시선을 보내고 희생당한 노동자, 시민들에게는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도미에에 이은 작가는 바로 쿠르베이다. 쿠르베는 도미에만큼이나 풍자적이진 않았지만 비판성이 뛰어났으며 동시에 ‘사실주의’라는 그 자체를 보여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이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그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한 말 중 이러한 신념을 드러내는 말이 있는데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힌 인간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천사 따위는 그리지 않는다.’이다. 즉, 자신이 보지 못한 일은 절대로 표현하지 없으며 자신이 보고 정확히 파악한 것만을 작품으로 드러낸다는 말이다. 쿠르베의 많은 리얼리즘 작품 중 <돌을 깨는 사람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위의 작품이 <돌을 깨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실되어 현재는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돌을 깨는 사람들>은 기존의 낭만주의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은 볼 수 없다.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당시의 민중들로 일반적이고 평범한 모습뿐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민중들일 뿐이다. 하지만 쿠르베는 이들을 작품의 전면에 드러내면서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사실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리얼리즘의 특징인 비판을 매우 잘 드러내고 있다.

도미에와 쿠르베의 작품 모두 지금에 와서 리얼리즘의 정수라고도 불릴 정도의 명작으로 평가받지만 그 때 당시의 평론가들에게는 엄청난 혹평을 받았었다.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것만을 뽑아 이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예술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리얼리즘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평가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사회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비판하며 풍자하고자 하였다.

3. 리얼리즘의 쇠퇴와 재조명

언제까지나 예술의 중심을 유지할 거라 생각했던 리얼리즘은 얼마 지나지 않은 19세기 후반 쇠퇴하기 시작했다. 리얼리즘의 이러한 쇠퇴의 배경에는 그 당시 대두되고 있던 반계몽주의와 관련이 있다. 반계몽주의는 허무적이고 비관적인 세계관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사상으로 당시 시대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사회를 계몽하겠다는 계몽주의와 대치되는 사상이다. 그리하여 사실적 묘사를 하는 회화, 문학들은 점차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반계몽주의뿐 아니라 당시의 경제적 상황은 리얼리즘 쇠퇴의 한 몫을 더 했다. 경제적 불평등은 점차 심해져갔고 그에 따라 빈부격차 역시 커져갔다. 빈곤층은 하루하루 생활하기도 버거운 날을 버텼으나 부유한 자들은 문화, 교육, 경제적 특권을 갖고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갔다. 이러한 격차는 리얼리즘을 이끌어갔던 민중들 간의 공감을 앗아갔고 이로 인해 리얼리즘은 기반을 잃었다. 20세기 들어와서도 리얼리즘은 계속해서 추락해갔는데 정신분석학, 심리학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다. 인간의 의식과 그 심리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들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현실에 대한 묘사, 리얼리즘은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렇게 리얼리즘의 위세는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1980년~1990년대 들어 리얼리즘은 오히려 동양권 예술계에서 부활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인 쩡판쯔, 장샤오강 등의 작품들이 서양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문화계에서는 ‘개인’과 ‘가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는 그 전까지 사회주의라는 명목 하에 국가라는 집단에 개인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인민’이라는 명칭으로 개인을 억압해왔던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냉소적 사실주의는 바로 이런 문화계의 영향을 받았다.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방향을 개인으로 바꾸면서, 그 전의 사회주의적인 예술과는 다른 내용의 예술들이 등장했다.

쩡판쯔는 <마스크 시리즈> 작품을 그리며 이러한 내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위의 작품이 <마스크 시리즈>이다.

이 작품에서 마스크는 모두 같은 모습을 이는 개성이 없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 쩡판쯔는 인민들의 몰개성적인 세태를 비판,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을 이렇게 만든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이다. 장샤오강은 <대혈연(big family)> 시리즈로 냉소적 사실주의를 표현해냈다.

위의 작품은 대혈연(big family) 시리즈의 <혈연-대가족>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빛바랜 사진 속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 속 그들은 역시 짱펀쯔의 작품처럼 획일적이고, 매우 우울한 분위기를 띈다. 이러한 그림 속에서는 가족 간의 사랑이나 애정은 전혀 보이지 않고, 살아가기 힘든 인민의 모습만이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역시 사회주의를 비판, 풍자하는 것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민중미술이라 불리는 리얼리즘적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군사정부의 억압으로 인해 사회 비판, 풍자를 하기 힘든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민중미술 작가들은 군사정부의 억압 속에서도 1980년대 당시 산업화로 인한 비인간화, 부조리한 현실, 도시와 농촌 간의 계속되는 격차 등을 계속해서 비판, 풍자하였다.

위의 작품은 황재형의 <군상>이다. 당시 탄광에서 일 하던 광부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매일 힘들게 일하며 돈을 벌어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위의 작품은 신학철의 <마지막 농군>이다. 제목처럼 농사를 짓고는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 도시로 모두 떠나 농촌에 남아있는 농부가 없는 것을 보여준다. 신학철은 특히나 그만의 극사실주의와 콜라주 기법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독창적으로 그려냈다.

20년이 지난 2010년대에 들어서야 민중미술을 주목하고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에 있다. 2016년, 1980년대, 1990년대까지의 리얼리즘 미술을 보여주는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Ⅱ-리얼리즘의 복권' 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는 1980~90년대의 리얼리즘 작품을 대중들에게 알림으로써 리얼리즘을 수면 위로 올리고자 했다. 위에 있는 작가를 포함한 리얼리즘의 대가들로 불리는 ‘권순철, 신학철, 민정기, 임옥상, 고영훈, 황재형, 이종구, 오치균’ 8인이 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러한 전시를 열고 계속해서 민중미술에 대한 주목을 하고 있으나 아직은 시장에서 단색화 열풍만큼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중미술이 무시 받던 예전에 비해 인식이 좋아졌고 그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계속하여 예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게 한 때 예술계의 중심이었던 리얼리즘. 약 한 세기 동안이나 그 힘을 잃고 수면 아래에 머물렀지만 최근 들어 빛을 보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이기에 언제보다도 힘든 지금 시대에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살기 어려운 현실에 대중들이 점차 목소리가 커지고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며 리얼리즘은 원동력을 다시금 얻었다. 지금보다는 앞으로의 리얼리즘을 더욱 더 기대하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임창열  cy11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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