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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광현

1.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디자인과 88학번 박광현입니다. 95년도에 졸업을 하고 지금은 영화를 하고 있습니다.

필모그래피
2002 묻지마 패밀리 中 내 나이키
2005 웰컴 투 동막골
2017 조작된 도시
2017 거미맨내용을 입력하세요.

 

2. 선배님의 대학 시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좋아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굉장히 열정적인 학생이었어요. 좋아하는 과목과 좋아하지 않는 과목에 대해 편차가 심했죠. 좋아하지 않는 과목은 출석도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영상과 같이 제가 좋아하는 과목은 아주 재밌어했어요. 그런 작업에서는 늘 즐거운 방법과 신기한 것들을 찾아 뛰어다녔더니, 팀 작업에서 본의 아니게 리더의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저와 주변 사람들이 봤던 제가 좀 달랐어요. 저 스스로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즐겼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저를 차분하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더라고요. 일하지 않을 때는 다운된 사람처럼 보이나 봐요. 제 내면에는 항상 뜨거운 게 있는데, 겉으로 봤을 때는 차분해 보이는 거죠. 저의 이 두 가지 모습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두 가지 모두 저인 것 같아요.

 

3. 학교에 다니실 때 영상 과목에 흥미가 많으셨다고 하셨는데, 재학 중 그와 관련된 추억이 있으신가요?


2학년 2학기 때 영상 디자인 수업에서 애니메이션을 다룬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영상을 기법적으로 예쁘게 만드는 것에 다들 심취해 있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런 것을 고민했던 것과는 달리, 저는 애니메이션 자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때 과제의 주제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1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 중에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아버지가 마구 때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당시 드래곤 볼에 빠져있던 저는 액션 영화가 떠올랐어요. 아버지가 괴물로 변해서 손에서 칼도 나오고 드래곤 볼처럼 날아서 치면 딸이 날아가서 떨어지고… 상상한 것을 대본으로 그려서 교수님께 보여 드렸더니 제가 장난치는 줄 알고 웃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탈락이 되었는데도 저는 다른 걸 하지 않고 그냥 그걸 만들었어요. 2D 애니메이션 업체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셀 애니메이션을 실제로 구현한 거죠. 그 작업을 영상제 때 상영했는데 모두가 뒤집어졌어요. 성냥팔이 소녀라는 이야기에서 상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상이 나와서 환호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셀 애니메이션 : 투명판과 같은 셀 위에 그린 여러 장의 그림을 카메라로 촬영하여 움직임을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한 형태이다.

 

4. 영화감독으로 일하시기 전에 광고 감독으로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영화를 시작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4학년 때부터 이미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전공이 디자인이다 보니 영화로 바로 가는 방법을 몰랐어요. 영화 연출부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저에게는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했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서도 연출을 공부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광고 회사의 프로듀서로 일하기로 했어요.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감독들을 만나면서 연출을 배울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일을 해보니 광고 감독들의 연출로 영화 연출을 공부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광고와 영화는 전혀 다른 세계였어요.


그래도 일을 하다 보니 광고에도 심취하게 되었어요. 어떤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해서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즐거웠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에서는 겪을 수 없는 체험들이었어요. 하지만 광고는 온전한 저의 작업이 아니고, 남의 것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좀 우울했어요.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영화사에서 저에게 단편 영화 프로젝트를 제안해서 제가 쓴 시나리오를 들고 갔어요. 그렇게 찍게 된 것이 <내 나이키>라는 단편 영화예요. 그것을 제작사, 영화계, 기자들까지 좋아해 줬고, 제가 바로 장편 영화로 데뷔할 수 있는 제안을 받게 된 거죠. 제가 꿈꾸던 것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그쪽으로 가기 위해 계속 준비했었기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어요. 계획적으로 ‘영화계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지’하는 것보다 제자리에서 영화에 대한 꿈을 갖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기에 기회가 제게로 온 것 같아요.

 

5.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 영화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감독님의 시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일반적으로는 시나리오를 쓰고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하는데, 저는 그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아요. 제 장르에는 판타지가 있거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이 많아서,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과 동시에 시각화를 함께 진행해요. 글로만 나왔을 때는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느낌을 콘셉트 디자인을 통해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병행하는 거죠. 이것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해요. 여러 스텝과 같이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구현해낼지 파트 별로 준비를 하는 과정이에요. 그 다음이 직접촬영을 하는 프로덕션 기간이에요. 촬영을 마치면 포스트 프로덕션을 하는데, 저는 이 기간이 좀 길어요. CG도 많고 음향에도 관심이 많아서 편집 작업을 오래 하는 편이기 때문이에요. 이것들을 다 마치고 나면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거죠.

 

6. 여태 만든 작품 중에 유독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영화를 많이 만든 편은 아니에요. 영화를 시작한 지는 십몇 년이 지났지만, SF영화를 준비하느라 긴 시간을 보내서 사실은 단편 두 개 장편 두 개밖에 못 했어요. 의미가 조금씩 달라서 부모님에게 어떤 자식이 제일 좋은지 물어보는 것과 똑같이 어려운 질문이에요. 그렇지만 꿈꾸던 영화를 하게 된 <웰컴 투 동막골>이 감독으로서 의미가 있는 영화인 건 맞아요.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것을 세상에 처음으로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넷 다 애착이 가죠.

 

7. 그 네 편의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비현실적이지만 묘한 끌림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등장하잖아요.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신이나, <조작된 도시>의 쌀 액션 신 같은 장면들이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가요?


관념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행복하다’와 같은 단어를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렵죠? 제 ‘주관적 세계’에서는 그런 관념에 대한 시각화를 담고 있어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장면들을 마법을 걸어서 넘기는 방식으로 연출하는 거죠.


<웰컴 투 동막골>을 만들 때, 남한군과 북한군이 총을 내려놓게 하는 방법이 뭘까 계속 회의를 했었어요. 남한과 북한이 오랫동안 대치하는 상황이 말로 해결되긴 힘들잖아요. 이런 대립의 순간에서 총을 내려놓게 하려니까 논리적으로는 해결이 안 될것 같아서 마법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총을 겨누고 수류탄이 까져서 곳간으로 굴러가는 최악의 상황에서, 곳간에 들어있던 옥수수가 팝콘으로 팍 피는 순간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기분이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가는 비약의 순간을 경험시켜요. 이 순간을 경험하면 아무도 ‘어? 총을 왜 내려놓지?’라고 시비를 걸지 않아요.


최근 작업한 <거미맨>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거미맨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는데, 거미맨 자신은 스스로 멋지다고 느끼는 것을 어떻게 시각화할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거미맨이 멋지게 싸우는 장면을 넣은 거예요. 이런 식으로 관념적인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과정이 저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표현 수단이에요. 이 표현 방법을 제가 ‘주관적 세계’라고 부르고 있죠.

 <웰컴 투 동막골>(2005)은 한국 전쟁이 일어난 상황을 모르는 동막골에 길을 잃은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들어오면서 발생한 일을 그린 장편 영화이다.
 <거미맨>(2017)은 JTBC 예능 전체관람가에서 제작된 저예산 단편 영화로, 못생긴 슈퍼히어로인 거미맨을 주인공으로 외모지상주의를 이야기한다.

 

8. 영화를 만드실 때, 감독님이 원하는 영화와 대중들이 원하는 영화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실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는 그 둘 사이의 타협점을 어떻게 찾고 계신가요?


저는 타협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타협한다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얘기에 맞춰준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대중은 한 명이 아니기에 맞춰준다고 해서 맞춰지지도 않아요. ‘대중이 이렇게 하면 좋아할 것이다’라는 것도 오만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타협점을 찾기보단, 그들에게 영화라는 선물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고민을 시작해요. 애인의 생일 선물을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평소 그 사람의 스타일이나 그 사람이 필요로 했던 것들을 떠올리겠죠. 생일 선물이라면 어느 정도 퀄리티도 있어야 하니, 가격도 있어야겠죠. 여기서 선물의 가격이 곧 제작비와 같은 거예요. 때로는 무조건 비싼 선물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으니, 제작비가 센 영화라고 해서 다 성공하지 않는 거죠. 이런 식으로 대중에 관한 연구와 함께,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가 포함되어야 할지, 제작비는 어느 정도가 좋을지, 저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 뭔지를 계속 고민하는 거죠. 저는 관객들이 제 친구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제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그들이 힘든 일들을 잠시 잊고 힐링하기를 바라요. 궁극적으로 영화를 본 다음에 좋은 감정이 남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이야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짜요.


어떤 경우에는 이럴 때도 있어요. 선물을 살 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개인적인 영화죠. 상대의 반응은 예측할 수 없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죠. 또 검색창에 ‘20대 여성이 좋아하는 선물은?’하고 검색해서 나오는 선물을 사는 경우도 있죠. 이건 흔히 대중영화라고 하는 것과 비슷해요. 이 정도의 사랑, 이 정도의 배우, 이 정도의 액션을 넣으면 실패할 확률은 별로 없는 영화인 거죠. 감독마다 목표치에 따라 영화는 만드는 방식이 달라요. 이런 식으로 저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선물을 주는 것에 비교해서 판단해요. 그리고 관객을 생각할 때면 ‘나는 선물을 어떻게 고르고 있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해요.

 

9. 영화감독 일을 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일은 무엇인가요? 또 뿌듯하거나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일을 하다 보면 저의 밑바닥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나는 이것밖에 해낼 수 없는가?’ 저의 한계가 느껴지는 순간이에요. 이런 창작의 고통에 부딪혔을 때 제일 힘들어요.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이런 고통을 마주하면 어떤 멘토가 나타나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만, 현실에는 그런 게 없어요. 오로지 홀로 싸워야 해요. 그럴 때 자학도 많이 하고 힘들게 싸우는 편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을 극복하는 순간에 오는 쾌감이 엄청나요. 그 쾌감 때문에 긴 고통을 겪어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것 같아요. 또 그런 극한의 순간들을 계속해서 경험하기 때문에 조금씩 강해지는 것 같아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지만, 결국은 그것 때문에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10. 선배님과 같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합니다.


영화감독을 꿈꿀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평상시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야 하는 것이에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결국 영화이거든요. 영화적 테크닉보다 그 사람의 자기 세계가 중요한 거죠. 감독은 자기 색깔이 분명한 사람이니까 같은 이야기도 본인이 이야기하면 어떻게 달라질까 고민해야 해요. 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이 사람이 이야기해주니까 다르게 느껴지네?’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자기만의 방식이 필요해요. 저에게는 관념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은 데에서부터 시작한 ‘주관적 세계’가 저만의 화법이거든요. 자기 화법을 만드는 것들이 뭐가 있는지, 자기만의 주제 의식은 뭔지 고민해보면서 자기 세계를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11. 마지막으로 홍익대학교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경제적으로 열악했고 환경도 지금보다 좋지 않았지만, 희망찬 시절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졸업만 하면 뭐든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제가 영화를 시작하려는 젊은 분들과 얘기를 해보면 피하는 게 많아지고 현실의 벽이 높아진 것 같아서 제가 ‘힘을 내라, 더 노력해라’라는 말은 못_하겠어요. 단, 만족하면서 사는 방법을 체득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놓고 살아가는 데에는 만족스러움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단적인 예로, 어떤 사람은 좋은 차를 사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그저 그런 차를 사도 정말 마음에 들어 하고 행복해하더라고요. 물질적인 기준을 떠나서 본인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하는 사람이 좋아서 날뛰면 사람들이 ‘쟤는 뭔데 저렇게 좋아하는 거야?’하고 궁금해해요. 젊음의 최고의 덕목은 ‘파이팅’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열정적인 태도로 살아가세요. 파이팅!

이민지, 이미림  leereum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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