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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여기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 놓여있다. 아름다운 색감의 조합과 독특한 패턴. 언뜻 보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자. 수천 마리 나비들의 날개가 접착제로 붙어있다. 놀라 고개를 돌려 거울 벽 쪽으로 다가가면 약들이 놓여있는 선반을 만난다. 약을 바라보는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쳐 뒤를 돌았을 때 보이는 죽은 소의 머리와 그를 에워싼 구더기들은 화룡점정을 이룬다. 이 기괴한 작품들의 작가는 바로 현대미술의 선구자 데미안 허스트. 그는 어떻게 이러한 작품들을 만들게 된 것일까?


데미안 허스트, 그는 누구인가?

현세기 가장 값비싼 작가로 불리는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 그는 영국 브리스틀 출생으로 리즈에서 성장하며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을 앞두고 골드스미스 동료 학생들과 함께 ‘프리즈(FREEZE)’ 전시회를 기획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한 프리즈 전시의 작품들을 모두 매수한 미술품 컬렉터 찰스 사치와의 인연으로 ‘사치 컬렉션’의 일원이 되어 본격적인 후원을 받게 된다. 1992년 ‘영국의 유명한 작가들(YBAs : YOUNG BRITISH ARTISTS)’ 전시회에서 선보인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흔히 ‘방부제 상어’를 통해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결국 터너상을 수상한다. *터너상(Turner Prize) : 영국 현대 미술의 대표 기관인 테이트 브리튼이 1984년에 제정한 상. 한 해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나 미술활동을 보여준 50세 미만의 영국 미술가에게 수여되는 대표적인 현대미술상이다.
     1965년생 54세의 나이지만, 여전히 ‘악동’ 혹은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이 그의 수식어다. 그의 파격적인 행보 때문이기도 하지만 항상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에서 비롯된 별명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는 죽음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꾸준한 작업을 하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 그가 작업한 ‘죽음’을 살펴보자.

 

포름알데히드 속에 갇힌 상어, 삶에 갇힌 우리 

데미안 허스트의 죽음에 관한 여러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죽은 동물들을 전시하는 개념미술 작품들이다. 그는 그의 첫 개인전에서 온전한 형태의 타이거 상어 사체를 활용하여 만든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1991)을 선보였다. 이후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어 '일부는 미쳤고, 일부는 달아났다'(1994)에서 선보인 <양떼로부터 떨어져서>(1994, 양)와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1993, 소와 송아지)는 1995년 그가 터너상을 수상하는데 기여한다. *개념미술 : 종래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적 제작태도.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방부제와 죽은 동물을 활용한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방부제 속에서 헤엄치는 죽은 상어는 그 기괴함으로 대중들의 극단적인 반응과 함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는 그가 죽은 상어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찰함을 극찬한다. 부피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상어는 살아있는 동안 가라앉지 않기 위해 계속 헤엄을 친다. 허스트는 상어의 뱃속에 모터를 장착해 상어가 살아있을 때처럼 지느러미 운동을 하며 방부제에서 계속 헤엄칠 수 있게 하였다. 죽은 상어의 운동을 통해 그는 작품의 제목이 말해주듯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음을 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방부제에 담겨 부패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지느러미 운동을 하는 상어를 살아있는 상어와 구분 지을 수 있을까? 그저 ‘삶’에 갇혀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 소와 송아지가 물리적으로 멀어진 '분리'가 아니다. 소와 송아지는 각각 세로로 해부되었다.

죽은 상어를 이용하는 예술은 자극적이며 또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에는 동물들의 사체가 예술의 소재로 빈번하게 사용된다. 영혼이 없는 사체를 예술적인 표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자유이므로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론도 있지만, 그가 ‘사랑의 안과 밖(In and Out of Love)’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비 9,000마리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의 비판에 데미안 허스트는 나비 전문가를 고용해 나비가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마련했다며 반박했지만 죽은 나비들을 예술을 위한 희생의 대상으로 봐야 할지, 동물 학대의 대상으로 봐야 할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죽음. 하지만 예술은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편안함만을 추구했는지 모른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내면세계를 은폐하고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는 예술의 모순을 넘어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진 데미안 허스트는 순식간에 현대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왜곡된 상상력과 전기톱만 있으면, 놀랍게도 A등급 미술에서 E등급 미술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허스트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극단적인 평가를 불러오며 예술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아주 자극적이고 잔인하면서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죽음이라는 비인지적인 세계까지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허스트는 죽음을 주제로 방부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16세기와 17세기 사이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바니타스(Vanitas) 회화이다.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허무’, ‘공허’, ‘무상’을 뜻한다. 바니타스 회화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주제로 인생의 허상함을 나타냈다. 주로 정물화가 많고, 해골이 등장하여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주기도 한다.

<천 년> 우축의 흰 상자 안에서 나온 파리들은 두 공간 사이를 가로막는 아크릴판의 작은 구멍을 뚫고 소의 머리에 접근한다.

데미안 허스트가 바니타스 회화의 주제인 ‘인생무상’에 깊게 영향을 받아 탄생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천 년>(1989)이다. 이 작품은 구더기가 파리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개로 나눠진 유리 상자에 각각 피 흘리는 소의 머리와 파리가 있고 그사이는 관으로 연결되어있다. 죽은 소의 머리에 접근하는 파리들은 소가 있는 칸에 설치된 전기장치에 감전되어 죽는다. 소의 머리에는 죽은 파리의 사체가 쌓여 다시 구더기가 생겨나는 과정이 반복된다. 죽은 소의 머리가 썩어가는 과정과 계속해서 죽는 파리, 바로 죽음과 무상함의 이미지이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 역시 메멘토 모리를 상기시킨다. 그는 바니타스 회화에 등장한 해골을 오브제로 사용하여, 네덜란드 소년의 두개골에 다이아몬드 8,601개를 박았다. 동물의 사체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인간의 모습을 활용해 죽음을 표현한 것이다. 메멘토 모리로 대표되는 해골의 이미지와 현대의 사치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욕망과 죽음, 즉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현한 이 작품은 1억 5백만 달러(한화 약 1,100억)에 팔려 현존 예술가의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오브제를 넘어서, 예술가를 넘어서

오브제를 넘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항상 ‘죽은 것’들이 필요했을까? 아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동물 사체와 해골 오브제를 사용한 작품 이외에,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여전히 죽음이라는 주제가 녹아있는 회화와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가장 대표적으로 그는 ‘사랑의 안과 밖’(1991) 전시에서 살아있는 나비들을 설치 미술에 활용하였다. 한쪽에 화분과 애벌레가 놓여있고, 다른 한쪽에는 설탕과 아교가 칠해진 캔버스가 놓여있는 이 공간에서는 시간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캔버스에 달라붙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갓 태어난 나비와 죽어가는 나비들을 관찰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약장>

또한 허스트는 약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그에게 약이란 신과 같은 존재이다.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을 믿어 왔고, 이제 그 자리가 질병과 고통을 없애주는 ‘약’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너무나 쉽게 믿는 것이 바로 약인 것이다. 하지만 약은 잠시 인간의 삶을 연장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죽음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삶과 죽음 사이에 약이 있는 것이다.
     ‘약국(Pharmacy)’(1992) 전시는 알약을 활용한 데미안 허스트의 다양한 회화와 설치미술을 보여준다. <약장 (Medicine Cabinets)>(1988) 시리즈는 말 그대로 다양한 약들이 놓여있는 약장을 흰 벽면에 전시한 작품이다. 사실 약장의 약들은 모두 비어있지만,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약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는 또한 약장에 수많은 가짜 알약을 배열하는 <알약 캐비닛(Pill Cabinets)>(1999) 시리즈를 선보였다. 알약이 배열된 약장은 거울로 만들어져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을 비춘다. 작품을 관람하다가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될 때, 사람들은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과 약에 대한 맹신, 그리고 약이 갖는 모순과 한계 등을 생각하게 된다. 약장과 알약 캐비닛. 허스트는 삶에 대해 갈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오브제가 약인 것을 이용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알약을 활용한 회화 시리즈인 <스팟 페인팅 (Spot Paintings)>(1986-2011)에 숨어있는 대단한 반전 또한 흥미롭다. 아름다운 색감의 원들이 배열되어 있는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관객들은 곧바로 ‘약’을 떠올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아름다운 색채들의 배열에 만족하고 만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회화 작품 제목들은 알고 보면 인체에 치명적인 약들의 이름이다. 허스트는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른 체 그 색감과 모양으로 호감과 신뢰를 보내는 사람들의 단순한 심리를 간결한 점들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예술가를 넘어서
“예술은 삶에 관한 것이고, 미술계는 돈이고, 돈과 스타성은 삶의 작은 일면일 뿐이다. 미술은 명성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명성이 예술의 일부이며,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예술에서 아주 근본적인,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대중성과 상업성을 중시한 허스트는 상업미술의 선구자 앤디 워홀처럼 예술가라는 이름을 넘어서 자신을 파는 것에도 적극적이었다. 또한 그는 “미술관은 죽은 작가들의 공간”이라고 주장하며 예술가는 단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사람이라는 틀에서 벗어났다. *앤디 워홀 :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팝의 교황', '팝의 디바'로 불린다. 그는 1964년 뉴욕에 창고형 작업실을 열어 그 공간을 ‘팩토리’라고 불렀다. 작품을 생산하는 팩토리에서 워홀의 역할은 결정권자였을 뿐 실제 작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워홀의 지시에 따라 주어진 일을 반복하는 예술 노동자였다. 마를린 먼로, 케네디의 죽음 등을 작품으로 표현한 워홀을 시작으로 일상은 예술이 되었고 팩토리를 통해 예술은 제품처럼 대량생산의 시대를 풍미했다.
     그의 미술관 밖에서의 활동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국 밴드 ‘블러’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것이다. 1989년 여름,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파티에서 구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인디밴드가 연주를 시작하자 누군가 "너희가 비틀스 이후로 현존하는 최고의 그룹이야!"라고 외쳤다. 그것이 데미안 허스트와 블러의 첫 만남이었다. 블러와 예술적으로 서로 교류하면서 지속적인 친분을 이어가던 데미안 허스트는 1995년에 발매한 블러의 새 앨범 ‘The Great Escape’의 수록곡인 <Country House>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다. 그가 감독한 영상답게 곳곳에 해골이 배치되어있는 이 뮤직비디오는 1996년도 브릿 어워드 베스트 뮤직비디오 부문에 오르게 된다. *브릿 어워드(BRIT Awards) : 영국 음반산업협회에서 음반 분야의 탁월한 업적에 대해 수여하는 상. 음악 분야에서는 영국 최고의 상으로 꼽힌다.
     음악계는 데미안 허스트와 블러의 만남을 예술과 상업의 만남이라고 평가한다. 90년대 후반 영국에서는 미국의 팝음악에 대적할 ‘영국의 팝’을 지향한 새로운 밴드 사운드인 ‘브릿팝’ 열풍이 일었다. 비슷한 시기에 전통적인 예술가의 태도를 비판하는 ‘브릿아트’도 등장했다. 브릿팝과 브릿아트는 모두 ‘상업적 성공’을 지향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상업적인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브릿팝의 대표인 블러와 브릿아트의 주역인 데미안 허스트가 만나 그 꽃을 피우게 되었고, 허스트가 제작한 뮤직비디오가 그 증거물인 것이다. 당시 브릿팝과 브릿아트를 대표하는 두 거인의 결합을 두고 영국의 언론은 “과거 영국에서 이토록 예술과 상업이 뒤섞인 적이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초기 작품을 다시 사들이고 높은 가격에 되팔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모습을 통해 능숙한 사업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뉴욕 타임스는 “허스트는 예술가가 아니라 데미안 허스트 예술 작품의 매니저가 된 것일까? 자기 작품의 가격을 그처럼 기발하게 끌어올린 예술가는 지금껏 없었다.”라고 그를 평가했다.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는 뉴욕 타임스의 평가처럼, 허스트가 진정한 예술가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 분분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작품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 것처럼 그는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걷고 있고, 또 그것을 솔직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에 정면으로 돌파하라고 배웠습니다. 죽음이 그중 하나입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서 살아가려는 사회는 어리석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꽃이 영원히 피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허스트의 말을 기억하며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처음에는 무섭고 기괴하게만 느껴졌던 작품들에서 죽음을 열정적으로 묘사하는 허스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는 삶을 넘어 죽음으로, 하나의 예술 영역을 넘어 다른 예술 영역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히며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지연  letsplay57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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