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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세계여행

“여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붓을 조금만 잘못 놀려도 내가 오물을 칠한 것 같다니까요.” 모네는 남프랑스 여행 중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장소는 화가에게 영감을 주고, 때로는 그 자체로 그림의 소재가 된다. 명화 속 마을은 어떻게 그림의 한 장면이 되었을까? 그림으로 들어가 화가들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아를, 고흐에게 행복을 선물하다>

가장 먼저 둘러볼 도시는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마을 프랑스 아를. 아를은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부드럽고 매혹적이다.’ 라고 묘사할 만큼 다채로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 낮에는 고즈넉한 풍경이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면, 석양이 질 무렵에는 으슥한 골목길임에도 어두움을 은은하게 밝히는 가로등 불빛 덕분에 운치 있는 모습으로 바뀐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도시답게 외곽 경계선에 읍성을 쌓아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아를은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대와 중세유럽의 문명이 한데 어우러졌기 때문에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신비로운 기분을 더할 수 있다.

아를의 프로방스 마을은 고흐의 영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곳에서 개인의 감성을 강렬한 색채와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표현한 그의 독자적 양식을 확고하게 할 수 있었다. ‘밤의 카페테라스’, ‘해바라기’ 등의 명작들을 포함한 약 200여 점의 작품이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아를’에서 탄생한 것이다.

*임파스토 기법: ‘반죽이 된’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말로 그 어원이 암시하듯 유화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기법을 일컫는다. 붓이나 팔레트 나이프, 또는 손가락을 사용해 색을 칠하거나, 직접 튜브에서 물감을 짜 바르는 방식으로, 붓 자국 등을 그대로 남겨 표면과 질감에 다양한 변화를 두드러지게 줄 수 있다.
 
 

고흐는 카페테라스를 그리던 무렵엔 밤중에 작업하기를 즐겨 밤중의 카페 내부모습을 담은 ‘아를의 밤의 카페’를 완성하고 며칠 후 그 카페의 외관을 품은 아름다운 밤이 묘사된 ‘카페테라스’를 그렸다. ‘카페테라스’의 배경이 된 아를의 포룸 광장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는 다양한 색들로 칠해져 개성 넘치는 집들이 즐비하다.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들이기에 고흐는 이곳을 더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아를에서 고흐는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 자신이 ‘카페테라스’를 그리면서 이토록 즐거운 적은 없었으며, 밤하늘의 별을 찍어 넣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가 아를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인 이 그림은 실제로 그가 카페테라스를 볼 수 있는 야외에 이젤을 설치하고 그린 것이다. 별이 빛나는 푸른 하늘 아래에서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고흐는 자신이 감정적으로 강하게 애착을 느꼈던 풍경이나 자신과 관계있는 인물, 대상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곤 했다.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보는 그대로가 아닌 강렬하고 즉흥적인 색을 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밤 풍경을 표현할 때 흔히 쓰이는 검은색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노란색이 강렬하게 두드러진다. 파리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낀 고흐가 아를에서 따뜻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에도 황금빛이 도는 온기 있는 분위기로 표현했을 것으로 보인다.

‘밤의 카페테라스’에는 꽤 재밌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미술 연구가 재러드 백스터에 의하면, 고흐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이 그림에 은밀하게 담아냈다는 것이다. 흰 옷 차림에 긴 머리를 한 사람은 예수를, 검은 옷이나 모자를 쓰고 테이블에 앉거나 주변에 서 있는 열두 명은 열두 제자를 상징하며 카페에서 걸어나가는 한 명은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고흐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을 작품에서 천국을 나타내는 색상으로, 카페를 밝히는 노란 전등을 ‘후광’으로 생각하고 본다면 카페테라스에 숨겨진 최후의 만찬이 떠오를 것이다. 정말 최후의 만찬을 그림 속에 집어넣었는지는 고흐만이 알고 있을 테지만.

 

<이삭 레비탄, 러시아의 보물을 찾아내다>

러시아에는 독특한 화가내들이 존재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러시아 영하 40도의 얼어붙을 듯한 추위가 그들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극한의 기상 상황에서도 광활한 러시아의 대자연을 담아내기 위해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팔레트와 붓을 들고 곳곳을 돌아다니는 ‘이동파(移動派) 화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삭 일리치 레비탄( Isaac Ilyich Levitan)도 그들 중 하나였는데 그는 주로 계절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풍경화를 그려냈다. 아를에서 이미 지나갔던 고흐의 그림자를 찾아다녔다면, 이번에는 이삭의 생을 곁에 두고 같이 발걸음을 옮겨본다.

다수의 유명 화가들이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듯 이삭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틈날 때마다 붓을 잡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값비싼 밝은색의 물감을 살 수가 없었던 그는 어두운색 계열의 물감이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풍경을 묘사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환경에 맞서 싸워 그림을 그렸다. 그의 화가생활 초창기에 탄생한 ‘소콜니키의 가을날’이 이를 대변해주듯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결국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러시아에 있는 여러 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볼가 강이다.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이 강은 수많은 러시아 화가들이 빼놓지 않고 그린 주제였는데 화가 생활의 중간지점에 서 있던 이삭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볼가 강으로부터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이삭이 그린 볼가 강과 관련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각각 볼가 강의 다른 모습들이 표현됨을 볼 수 있다. ‘볼가 강에서’의 볼가 강은 일렁이는 물결 하나 없이 깨끗한 표면과 그 자리에 고정되어있는 듯 정박하여 있는 배들로 인해 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차가움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강의 모습이다. 그와 반대로 ‘잔잔한 볼가강’ 에서는 물결의 동적인 느낌과 그 위를 떠다니는 배, 석양이 지는 듯한 묘사와 색채를 통해 생기 넘치는 강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작품엔 천재성에 관록이 더해졌고 러시아의 제국 예술 아카데미에 선출되는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작품에 생기가 더해져 갈수록 그의 건강은 나빠져만 갔다.

크림 지방에서 지내던 1899년, 이삭은 지금껏 자신이 느끼고 표현했던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와 호수, 갈대, 마을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요소들을 집약한 자신의 ‘완전체’ 풍경화를 그리려 했지만 이듬해 지병으로 숨지고 'The Lake Russ'는 결국 미완성인 채로 남게 된다.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러시아의 자연을 자신의 캔버스 안에 모두 담아낼 최후의 작품을 마무리 짓지 못할 운명을 예감해서였을까. ‘우리 주위를 둘러싼 이 아름다움의 광대무변함을 느끼고 또 그 속에 담겨있는 신비를 볼 수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느낌을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는가’ 라고 생전에 그는 말했지만, 이삭은 이미 러시아의 웅장함과 화려함 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선사한 러시아의 솔직한 모습을 담은 그림들은 러시아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비록 그는 완성된 그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러시아의 대자연을 사랑한 이삭의 마음은 아직 그의 캔버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리커란, 소흥성을 화폭 위에 되살려내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장소를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화가는 비단 서양화가들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화가 리커란(李可染)은 수묵을 통한 표현 가능성의 극대화를 모색하고, 서양화풍의 영향을 받아 세밀함과 현장감에 집중한 산수화의 거장이었다.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풍경화들은 마치 *라이브포토를 연상시킨다.

*라이브포토는 사진을 찍는 순간 몇 초의 움직임을 촬영하여 사진이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되는 카메라 효과다.

소흥성은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魯迅)의 고향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소흥은 둑에 앉아 느리게 흐르는 강물을 벗 삼아 황주를 음미하며 시의 음률을 구성하는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도시이다. 그림에 묘사된 강물은 실제로 2500여 년간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며 소흥성의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강물을 품에 안고 살아온 마을답게 소흥에는 다리가 무려 10,000여 개가 있어 다리의 마을이라고 불린다. 또한, 고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소흥의 유적들과 어울려 고대 수상의 도시로도 불리며 수많은 다리가 마을들을 정교하게 연결해주고 있다. 강과 마을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수향(水鄕)에 걸맞은 모습을 뽐낸다. 소흥의 상징과도 같은 아치형 석교 다리 밑에서 나룻배들과 물고기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현재 소흥이 관광지로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다. 이 사실 자체로도 충분히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명소임은 틀림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리커란의 수묵화 작품들을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는 ‘현장감’이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연마한 필법을 사용하여 기존 수묵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밀함을 자랑하는데, 1962년에 그린 ‘수향소흥성’은 소흥성 시가지를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게 그린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흥의 강, 흰 벽의 가택들과 석교, 그 밑을 지나는 사공들과 길거리의 사람들까지. 넓은 도시의 모습을 그려냈음에도 그는 빈틈이 전혀 없이 한 장에 모든 것을 담아냈다. 이 그림은 세밀함이 돋보이는 동시에 원근감을 무시하고 있어 사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이지 않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강을 따라 나열된 흰색 집들과 적당하게 모여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 다니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보통 먹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은 어두운 느낌을 주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곳곳을 흰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오히려 밝은 느낌을 준다.

 

 

화가의 의식과 목소리가 물감과 함께 캔버스 위의 풍경화에 칠해졌다. 그래서 사진기의 발명 전까지 풍경화는 그림 속 장소를 직접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다.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라. 어느새 작품의 풍경 속을 거닐며 화가 앞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현섭  hskim_3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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