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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간절한 외침, 단색의 물결로 돌아오다

2014년 여름. 조용하던 단색화 작가들 작업실에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작업을 의뢰하는 경매회사들, 화랑 그리고 해외미술 애호가들이 작업실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작가들은 오래전 작업실 한쪽에 쌓아 두었던 단색화 작업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불씨가 붙은 단색화. 도대체 단색화가 무엇이길래, 갑자기 세계의 이목을 끄는 걸까?

 

눈을 속이는 것들

<청다색> 윤형근 단색화,1975

<무제> 도널드 저드 미니멀리즘,1980

두 작품은 각각 단색화와 미니멀리즘 작품이다. 혹시 단색화를 처음 접한다면 조금은 의아할 수 있다. 비슷한 스타일의 두 작품. 하나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조각인가? 그거 말고는 뭐가 다른 걸까? 당장 눈으로 보기에 미니멀리즘과 단색화 작품들은 주로 한가지, 혹은 적은 색감을 사용한다. 출발선상 또한 비슷하다. 1950년대 이후 서구 미술의 흐름은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재료 자체의 물성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니멀리즘과 단색화는 모두 이 흐름에 이어 등장한다. 표현 방식에서는 둘 모두 단순하고 일정한 구조를 반복한 작업이 많았다. 가령, 미니멀리즘 작품들이 일정한 그리드나 수평, 수직 구조로 화면을 이룬다면, 단색화 작업 역시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수직 구조로 화면을 채운 사례가 있다. 그 때문에 겉모습만으로 둘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미니멀리즘

1960년대 태동하여 불필요한 것들을 배제하고 대상의 본질을 찾고자 한 운동이다. 미술, 패션, 건축 등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퍼지며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유사한 점이 많은 두 장르는, 사실 엄연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단색화 작가들이 작업을 시작한 초기,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어떻게 다른지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작가들은 그런 질문에 정중히 ‘엄연히 다른 내용이기에 비교를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그들이 말한 엄연히 다른 내용은 무엇일까? 

미니멀리즘은 출발 이후 점차 단색화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니멀리스트들은 화폭에서 이미지를 지우고 캔버스를 하나의 사물로 만들고자 하였다. 조각 작품이 아닌, 그냥 일상 공간과 구분이 되지 않는 진짜 사물을 만들고 싶어했다. 예술이기를 포기한 그들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최초의 아이디어였다. 따라서 아이디어를 낸 이후 실제 작품 제작은 공장이나 조수에게 맡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대목에서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단색화는작가들이 직접 금욕적인 수행(제작기법)을 통해 작업을 이루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미니멀리스트들에게는 구상 이후의 단계는 큰 의미가 없었다.

 

단색화는 무엇인가?

1960년대 서양에서는 물감의 질감이나 색 자체에 집중한 ‘추상 회화’가 유행했다. 이 유행은 질감마저 덜어내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 결과는 색면만이 남은 ‘색면추상 회화’로 이어졌다. 이 흐름이 한국에 들어오며 처음으로 한국 화단에 추상 회화가 등장했다. 한편1960년대 이후 한국은 정치적으로 혼란하던 시기였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빠르게 근대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군사 독재가 진행되고 있었다. 혼란한 상황 가운데 미술계에는 민중 미술과 단색화가 태동한다.민중 미술이 정치 구호를 외치며 직접적인 민주화 참여를 했다면, 단색화는 독재 정권 아래 탄압받던 예술가의 한을 담아냈다. 작가들은 우리 민족을 대변할 수 있는 색으로 주로 백색의 단색조 작품을 선보였다. 거기에 작가의 수행정신이 깃든 고된 행위의 반복을 더해 화폭에 삶의 한을 녹여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단색화는 이전 서양에 없던 행보를 보인다. 이전의 한국 추상회화가 단순히 서양의 흐름이 유입된 것에 불과했다면, 단색화는 예술가에게 내재된 삶의, 시대의 상처를 승화한 독자적인 예술이다.

이후 단색화는197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의 모노크롬(단색으로 그린 그림)으로 불리다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단색화(Dansaekhwa)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입지를 다지던 단색화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한국의 단색화전’이후 세계적으로 재평가를 받으며2014년에 들어 그 명성이 급부상했다. 최근 단색화 작품들이 경매의 큰 비중을 차지하며 나날이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세간을 이토록 열광하게 하는걸까? 유행의 중심에는, 포기하지 않고 작업을 고집해온 사람들이 있었다.

광주 비엔날레

1995년, 광복 50주년과 ‘미술의 해’를 기념하며 창설된 2년에 한번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제이다.


 

단색화의 고유한 특징, 촉각성과 정신성

미술 시장에 단색화의 본격적인 진출을 이끌었던 선두에는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등의 여러 작가가 있다. 그 중 박서보는 가장 먼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압도적인 경매 성과를 보여 오늘날 단색화 평론의 틀을 제공한 데 역할이 크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박서보의 작업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려 한다.
 

<묘법No_031219> 박서보, 2003 
 

박서보는 단색화 태동 초기부터 활동했던 대가이다. 그 역사가 깊어서일까. 그의 작업에서는 단색화의 특징들이 분명히 드러나며 그 첫번째가 '촉각'이다. 묘법 시리즈는 멀리서 보기에는 단색조의 밋밋한 평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 보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선이 있고 그것들이 작업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비로소 선들이 모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굴곡임을 알게 된다. 캔버스의 형태로 벽에 걸려있지만, 사실 그의 작업은 대부분 한지를 주로 활용한다. 한지를 불려 캔버스에 펴 바른 후, 본격적으로 골을 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골을 내는 과정은, 흡사 전통공예 장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박서보는 작업을 준비하는 아이디어 스케치 과정부터 매우 꼼꼼히 준비한다. 설계도면처럼 보이는 스케치와 작업을 준비하는 그의 자세에서 작업 전반에 들어가는 고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유사한 특징을 정상화의 작업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정상화는 캔버스 바탕에 고령토층을 형성하고, 그 위로 물감이 쌓이게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물감층을 뜯어내고 메우기를 되풀이하는 그의 작업은 공간적으로 요철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물감을 일일이 쌓는 패턴화 된 과정을 거치며, 작품의 크기, 색채, 형태, 패턴 그리고 형식 등의 고민이 제작의 전 과정에 고루 들어간다.
 

<무제 08-02-13> 정상화, 2008
 

단색화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두번째 특징은 ‘정신성’이다. 박서보는 실제로 예술은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며, 꾸준한 내면 탐구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탄한 이론적 근거가 없는 아이디어는, 잠깐의 눈요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매우 계획적이고 매뉴얼화 되어있다. 묘법의 시작은 한지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고집스럽게 고른 종이를 오랜 시간 불리면 빳빳했던 한지도 부드럽고 연해진다. 원하는 정도의 종이를 얻은 후에야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그의 작업은 내적 표현을 한 작업 중에는 보기 드문 매뉴얼화된 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무위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작업의 시작부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여 평면적이고 일률적인 화면을 계획한다. 하지만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처음의 계획과 아주 동일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실제 작업을 시작한 후에 떠오르는 직관이나 흐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작업은 한지에 연필을 댄 순간 연필이 흘러간 방향으로 모든 작업이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은 기계적인 과정을 거치지만, 자연적이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한 그의 자세가 담겨 일률적이지만, 깊은 정신성을 느끼게 해준다.
 

 <귀 77-O> 정창섭, 1977

<닥86921> 정창섭, 1986 
 

한지가 단색화의 두 특징을 잘 담아냈기 때문일까? 단색화가 본격화되며 여러 작가가한지 작업을 진행했고, 한동안 한지회화가 유행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 중 한지 신드롬을 주도했던 정창섭은, 유채로 채색하면서도 한지 특유의 번짐을 부각하여 수묵의 효과를 꾀하였다. 이후에는 아예 채색 없이 한지 자체의 구김을 살린 작업을 내놓는다. 은은하고 고고했던 한지의 질감은 빠르게 호응을 얻었다. 한지를 고집한 것에 대해서 작가는‘캔버스에 이미지를 디스플레이 하는 것이 아닌, 한지라는 재료 자체에 자아를 담는다’고 표현했다. 한지는 우리 민족의 정신성을 보일 수 있는 재료로, 오늘날 단색화의 내용과 잘 어우러지는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시장에서 만난 단색화의 현주소

작가들의 탐구적인 자세에 더해 단색화를 알리기 위한 한국 미술계의 오랜 노력에 세계가 응답했다. 2005~2007년 당시, 호황을 이어가던 미술 시장은 세계경제불황의 여파로 가라앉았었다. 그 탈출구를 모색하던 것이1950-80년대 사이의 작가와 사조를 조명하던 수요와 맞아떨어지면서 단색화에 처음 붐이 일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에 단색화를 검색해보면, 지금의 단색화를 놓고‘최종병기’라 칭하는 글들이 많다. 그만큼 단색화를 간절한 마음으로 내놓았고, 어렵게 잡은 지금의 기회를 아까워하는 것이다. ‘단순 유행으로 지나게 둘 수 없다.’‘단색화를 한국의 대표적인 장르로 온전히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의견이다. 그렇기에 어느 때 보다 더 객관적인 눈으로 단색화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혹시 간만의 봄바람에 취해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발굴하지 못한 단색화의 또 다른 단면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 갓 주목받은 이 회화가 세계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 아직은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된 의견은 단색화에 대한 담론과 이론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무위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유구한 정신’이라는 이론적 모토. 동양적인 컨셉으로 서양과 차이를 보일 수는 있지만 지나치게 관념적인 방향으로 흐를 조짐이 보인다.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더 구체적인 한국적 특성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사실 태동한 시기를 고려하면,준비기간은 충분히 길었다. 그에 비해 이론이 빈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단색화에 관한 평론은 많이 나왔지만, 그 내용이 대체로 단색화를 띄우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았던 한국 미술계는 업계의 존속을 위해 대표 장르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고, 그 주인공이 된 단색화는 평론가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부상했다. 제아무리 좋은 내용을 가진 작품도, 결국 주목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진 시대이다. 보완할 점도 많지만, 단색화가 본질적으로 이전 서양 역사에 없던 내용을 근간으로 함에 그 의의는 분명하다. 영광스럽게 기회를 잡은 지금. 더욱 풍성한 작가군과 평론들이 나올 때, 단색화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독보적인 장르로 세계무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단색화가 한바탕 꿈으로 스쳐 갈지, 아니면 스스로 한계를 넘어설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유구한 정신 속에서 탄생한 단색화. 쉽고 빠르게 돌아가는 오늘날의 세상 속에서도 그 신념을 잃지 않았고, 그 결과 세계의 이목을 끌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그 이목을 계속 붙잡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이, 한국 사람들이 우리의 예술로 인지하고 키워가야만 한다. 조선 시대 이후의 한국미술은 사라진 줄만 알았던 당신. 앞으로 단색화를 만난다면 이제는 낯선 눈 말고 조금 더 아끼고 관심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지.

 

 

주예린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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