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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에 치이다

차를 많이 마시면 살이 안 찐다, 커피보다 녹차가 몸에 좋다 등등. 차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커피처럼 즐겨 마시진 않는다. 그런데 카페에 가면 꼭 차 종류만 주문하는 친구가 있다. 무슨 맛으로 먹는 거지? 어려운 차 이름을 익숙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니 마셔보고 싶긴 하다. 나도 한 번 시켜볼까.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주세요!”

 

씁쓸함과 달콤함 사이: 캐모마일 애플티를 만나다

결국 이름에 홀려 주문하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카페 라떼나 모카로 잠든 머리를 깨웠을 아침. 오늘은 조금 더 건강하고 날씬하게 시작한 느낌이라 좋았다. ‘잉글리시 블랙퍼스트’가 내 눈앞에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티백 하나가 덜렁 걸쳐져 있을 뿐인 컵, 커피에 비해 비린 향, 그리고 밍밍하면서도 씁쓸한 맛. 도대체 이걸 왜 돈 주고 마시는 거지? 설탕을 넣어보았지만 내 입맛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3000원을 넘게 투자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는 친구의 손으로 넘어갔다. 시무룩해진 나에게 차 덕후인 친구는 처음엔 다 그렇다며(!) 다음에는 과일, 허브차를 주문하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 다시 도전해보자.

시간이 지나 다시 카페를 찾았다. 지난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메뉴를 검색하고 온 나. 고심 끝에 ‘캐모마일 애플티’를 주문했다. 다시 나온 투명한 액체에 조금 긴장했지만 입가에 가져온 순간 올라오는 상큼달달한 냄새에 맘이 녹는다. 게다가 마셔보니 달다! 텁텁함도 없다. 오히려 입 안이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마침내 차 입문의 첫 동반자를 만났다. 바로 마트에 달려가 캐모마일 티백을 사고, 평소엔 관심도 없던 과일조림 가게에 들어가 사과청도 구입했다. 만들기도 쉬우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허브+과일차를 만들 때 Tip.

1. 허브차 티백을 먼저 넣어 5-10분 우린 후 과일청을 넣는다. 반대로 넣으면 허브가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향과 맛도 훨씬 덜하니 꼭 순서를 지킬 것.

2. 캐모마일은 대부분의 과일청과 어울린다. 오렌지청과 사과청이 최고!

3. 라벤더, 페퍼민트처럼 향이나 맛이 강한 허브차는 함부로 섞어먹지 말자. 벌칙이 된다.

달달한 과일차는 너무 좋았지만 청이 담긴 유리병을 반쯤 비우자 정확히 2kg가 쪘다. 역시 살찌는 건 맛있어…. 슬픔을 뒤로하고 허브티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로 했다. 카페에 갈 때마다 새로운 허브차를 주문해보고, 인터넷에서 유명한 몇몇 제품들도 직접 사봤다. 덕분에 과일차를 대체할 허니부쉬 카라멜을 발견! 이름 그대로 단맛이 강한 허브티다. 이렇게 단 데 끝맛도 깔끔하고 칼로리도 낮다니 사기야. 처음 만난 캐모마일을 제치고 내 마음 속 1위에 등극했다. 상쾌하고 시원한 페퍼민트도 우리 집 부엌 한 칸을 차지하게 되었다. 양치하고 씹던 자일리톨 껌을 밀어내고 말이다. 양치한 후 아이스 페퍼민트티는 진리다. 화장품 향이 너무 강한 라벤다와는 아직 내외 중이다.

 

홍차에 빠지면 답도 없다: 차이라떼와 향차

허브와 과일 덕에 차에 빠지게 된 나. 이제는 다른 차도 마셔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겼다. 뭘 먼저 마셔볼까. 녹차? 한방차? 홍차? 전통 한방차가 끌렸지만, 만드는 법을 검색하고 좌절. 파는 곳이 별로 없어서 또 좌절했다. 녹차와 홍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홍차를 골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홍차에는 설탕을 넣어먹을 수 있으니까.(단맛, 그것은 인생….) 홍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혹시 내 입맛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기대하며 다시 마셔봤다. 그러나 역시 내 미각, 아주 지조 있다. 저번보다 향은 확실히 좋아진 것 같은데 맛이 영 아니다.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얼그레이?

홍차에는 스트레이트, 블랜드, 향차가 있다. 블랙퍼스트는 여러 나라의 차를 혼합한 ‘블랜드’의 일종, 얼그레이는 향을 추가한 ‘향차’ 중 하나다. 블랜드는 찻잎이 섞여 스트레이트나 향차보다 씁쓸함과 향이 강한 편. 초심자에게는 부드러운 향차가 좋다. 하지만 우유를 섞은 밀크티나 스팀밀크를 넣은 라떼로 먹을 떼는 블랜드 종류도 괜찮다. 스트레이트, 블랜드에 익숙해지면 그냥 물에만 타서 아침에 계란이나 슾햄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레몬 슬라이스를 넣는 것도 추천!

하지만 아직 홍차를 포기하고 싶진 않아. 뭔가 방법이 없을까 싶어 카페 메뉴판을 열심히 훑어본다. NON COFFE란에 ‘차이라떼’라는 이름이 보인다. 차이? 동양 차 종류인가? 동양 차도 라떼로 만드나?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홍차에 스팀밀크를 섞은 음료였다. 이것은 운명임에 틀림없다. 차이라떼 한 잔 주세요! 따뜻한 컵을 받아든 나는 두 번째 사랑에 빠졌다. 잊고 있었던 스팀밀크의 맛과 계피향의 하모니…. 무엇보다 우유를 만난 홍차의 맛에 반해버렸다. 허브티와는 다른 몽실몽실함과 포근한 향이 기분을 사르르 녹여준다. 차이라떼를 시작으로 홍차의 세계에 퐁당 빠졌다. 스트레이트나 블랜드에 레몬만 넣어서 먹는 데에도 맛을 들였다. 진정한 모닝티랄까? 홍차는 향도 은은하고 맛도 진하지 않아서 조용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데 제격이다. 레몬을 넣어먹으니 비타민도 섭취할 수 있어 일석이조. 이제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 트럼펫 알람으로 강제 기상하는 기분이 든다.

홍차에서 내 맘 속 1위를 차지한 것은 찻잎에 향료를 더한 ‘향차’, 그 중에서도 얼그레이다. 그냥 먹으면 부드럽고 우유를 넣으면 부드럽고 생크림까지 넣으면 부드럽다. 그냥 부드럽다! 열매나 꽃을 함께 발효시켜서 달콤한 향이 난다. 얼그레이 레시피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우유를 섞은 밀크티다. 진하게 먹고 싶을 때는 티백과 우유를 같이 끓여버린다. 거기에 생크림과 설탕을 넣고 저으면 홍차죽, 더 끓이면 홍차잼이 된다. 홍차죽과 잼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힐링 푸드! 우울한 날에는 잔뜩 푹푹 퍼먹는다. 중요한 건 아무 컵이나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냥 물에 우려낸 상태라면 작은 머그나 예쁜 찻잔 세트가 원칙. 유리컵까진 괜찮다. 하지만 우유가 들어갔다면 무조건 머그컵에 따라 마신다. 형태도 중요하다. 완벽한 원통형이면서 손잡이가 두꺼워야 한다. 그리고 밝은 색일 것! 다른 곳에 담겨있으면 이상하게 화가 난다. 커다랗고 하얀 머그에 베이지색 밀크티가 담겨 있는 게 제일 보기 좋더라.

홍차덕후를 꿈꾼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TIP.

만일 향차를 사랑한다면 러시아의 제품을 추천한다. 유럽, 러시아 모두 향차를 즐기지만 러시아 제품이 유럽보다 훨씬 저렴하다. 품질도 좋고 첨가된 향의 종류도 다양하다. ‘딸기크림향 홍차’가 있을 정도.

 

차(茶)덕의 끝판, 동양 차에 도전하다: 녹차와 다도

사실 차에 빠지기 전에도 녹차는 꽤 자주 마셨다. (커피가 주스가 없는 경우에 한하긴 했지만.) 과일, 허브차나 홍차보다 녹차는 훨씬 구하기도 쉽고 친숙하니까. 하지만 정통 녹차에 도전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홍차에 비해 종류도 너무 많고 심오하다. 차의 모양부터 채집 시기, 산지까지…. 도저히 입문할 용기가 나지 않아 항상 티백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10대 명차라 하는 서호용정(西湖龍井)이 내 손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부모님에게 온 선물이지만. 어쨌든 이런 좋은 녹차를 얻게 되다니! 당장 시음해봐야지.

일단 포장을 뜯어봤다. 서호용정. 너란 녀석……감동이야. 황제에게 바쳐지던 차라더니 향부터 어마무시하다. 쌉싸름한 풀 냄새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꽃향기가 났다. 모양도 반듯하고 윤기가 난다. 그런데 막상 우려내 보니 좀 별로다. 왜지? 인터넷에 서호용정 후기를 뒤져보니 역시나, 내 잘못이었다. 찻잎 녹차의 맛을 100% 우려내려면 다도를 해야 했던 것이다. 다도라고 하면 뭔가 고급문화생활 같아서 부담스러운데.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기엔 서호용정의 향기가 너무 아깝다. 용기를 내서 검색해보니 2-3만 원이면 쓸 만한 다기세트를 구할 수 있었다. 열띤 서핑 끝에 마음에 쏙 드는 2인 세트를 구입했다.

다기 세트가 도착하기 전, 한 번 정도 다도를 연습해보기로 했다. 알아보니 티 클래스라는 수업도 있고, 각종 문화원에서도 다도체험을 하고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다녀야 하는 것이기에 패스. 우선은 학교 근처 찻집을 찾아 대강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선택한 곳은 정문에서 가까운 ‘두레원’이었다. 가게에 들어서니 예쁜 찻잔과 향긋하고 포근한 향이 나를 사로잡는다. 차를 주문하고 사장님께 이것저것 질문하며 감을 잡았다. 찻집에서 배운 가장 일반적인 다도의 순서는 이렇다. 먼저 뜨거운 물을 부어 찻잔을 예열한다. 잎을 원하는 분량만큼 다관(주전자)에 덜고, 70~85도의 물을 부어 2분 정도 우린다. 시간이 되면 찻잔에 담긴 예열 물을 버리고 차를 따라 마신다. 배운 대로 서호용정을 몇 번 우려내 봤다. 일주일 정도 하자 꽤 그럴싸하다. 용기가 생겨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도 구입했다. 5만 원 내외의 가격대에서 가장 유명한 종류로 골랐다. 센차(煎茶)와 하동 녹차로 최종 결정!

1. 서호용정: 중국 10대 명차에 들어가는 좋은 녹차다. 색, 모양이 아름답고 향도 좋아 황제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부드러운 맛과 넘김이 일품.

2. 센차: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음용되는 녹차다. 찻잎의 색과 향이 진한 편. 씁쓸한 맛이 강해 다과와 함께 즐기기 좋다.

3. 하동 녹차: 하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녹차로, 우리나라 3대 녹차 중 하나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착해서 좋다. 향이 강하지 않고 우러난 차의 색이 투명하여 청량한 느낌을 준다. 맛은 조금 씁쓸한 편.

녹차는 종류에 따라 각각 따라 향과 맛이 조금씩 다른데, 그 미묘한 차이를 점점 확연히 알게 되는 게 재미있다. 또 하나의 재미는 나만의 녹차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티백과 달리 잎으로 우린 녹차는 꽃차와 블랜딩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이나 대만의 녹차는 씁쓸함이 적고 부드러워서 작약, 국화 등의 꽃과 잘 어울린다. 구름이 낀 우중충한 날, 날씨가 너무 춥거나 감기 기운이 있는 날엔 꼭 이 레시피를 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의 경우는 녹차 자체의 향과 맛이 강해서 그냥 마시는 걸 좋아한다. 중국 차에 비해 좀 떫다. 하지만 얼음을 넣어 먹기엔 최고라는 거! 진하게 우려낸 차를 얼음 잔에 부어 마시면 이보다 더 좋은 청량음료가 없다.

처음에는 어려워 보였던 다도에도 차츰 익숙해졌다. 차를 마시는 자세나 마음가짐에 따라서 차의 향과 맛이 조금씩 달라져 신기하다. 그리고 한 잔을 마시는 시간, 그 시간이 오롯이 내 것이라는 점도 다도의 특별한 매력인 것 같다. 특히 예쁜 다기를 정성껏 닦고 찻잎을 담그면 포근한 이불에 폭 파묻히는 것처럼 행복하다.

다도, 어렵지 않아요!

STEP1. 차 우리기: 찻잎은 1인 기준1~2g(2~3g) 하면 된다. 이 양으로 2번(3~5) 우려 마실 수 있다. 찻잎의 양은 물론, 물의 온도나 우리는 시간에 따라 차 맛이 달라지는 것도 다도의 재미. 다만 녹차의 경우 물 온도가 85도가 넘거나, 우리는 시간이 2분 이상이면 씁쓸한 맛이 강해지고 향이 약해지니 주의하자.

STEP2. 예절 익히기: 그릇을 준비하고, 다시 씻어서 넣어두기까지 모두 다도의 과정이다. 앞에서 설명한 방법대로 차를 잘 우려냈다면, 이제 잘 마시면 된다. 가장 기본적인 차 예절은 다음과 같다. 피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해보면 오히려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릇과 도구는 항상 두 손으로 잡는다. 특히 찻잔을 잡을 때는 왼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도록 한다. (음양설에서 ‘음’에 속하는 땅을 등지고 ‘양’인 하늘을 향한다는 의미를 따른 것이다.) 오른손으로 잔을 감싸고, 왼손은 잔의 밑을 받친다. 이때 손가락을 벌리거나 구부리지 말고, 손끝에 약간 힘을 주는 느낌으로 가지런히 둔다.

차를 마실 때는 색, 향, 맛 순서대로 즐긴다. 찻잔을 들어 올리다가 가슴, 혹은 배 앞에서 잠시 멈춘다. 고개를 약간 숙여서 차의 빛깔을 감상한다. 이때 손은 몸에서 주먹 한 개정도 떨어진 거리에 둔다. 어깨에 힘을 빼고 두 팔은 자연스럽게 벌린다. 다시 천천히 들어서 향을 감상하고, 잔을 기울여 맛을 본다. 이때 고개를 너무 앞으로 빼거나 뒤로 젖히지 않도록 주의한다. 또, 함께 차를 마시는 상대가 있다면 되도록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말 것. 잔을 내려놓을 때도 손님이 먼저 내려놓도록 한다.(더 높은 사람의 잔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 원칙이다.)

요즘에는 색다른 방식의 다도법에도 관심이 간다. 중국식 다도는 유리잔에 차를 바로 우려내고 인사법도 다르다던데 어떨지 궁금한걸. 미뤄두었던 티 클래스를 다녀볼까나.

 

과일과 허브차, 홍차, 허브차까지…. 어느새 차 덕후라고 해도 될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도 만나보지 못한 차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동양차의 가지 수와 매력은 정말 종잡을 수 없을 정도다.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다른 차들도 어서 만나보고 싶다. 다음엔 다이어트에 좋다는 보이차를 마셔볼까? 진정한 차 덕후가 되는 날 까지 열심히 정진해야지!

강민정  kmj0603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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