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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가장 가까이 만나는 방법, 시 필사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별 헤는 밤 중 中 

시를 읽는 것은 쉽다. 적어도 시를 새로 쓰는 것보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대론 부족해. 시를 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 눈에 들어온 펜과 종이. 필사 한번 해 볼까?

 

시 필사 준비

필사, 즉 시를 베끼어 쓰는데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펜과 종이, 그리고 필사할 시만 있다면 충분하다. 요즘 시대에 준비물이 이렇게 간단한 취미가 시 필사 말고도 또 있을까? 

<시 필사에 적합한 필기구와 종이 추천>
방에 굴러다니는 종이와 펜을 사용해도 좋다. 하지만 필사하고자 하는 시의 성격에 따라, 혹은 취향에 따라 다양한 필기구와 종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필사의 매력! 필사를 제대로 시작하고 싶다면 적합한 준비물을 새로 구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필기구를 고르는 것은 필사 준비 과정에서 꽤나 중요한 단계이다. 예쁘게 쓰는 것이 필사의 목표는 아니지만, 필사는 쓰는 행위 자체가 주가 되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아무 펜이나 상관없이 쓰는 것 자체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필자는 손으로 무언가를 적는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기에 들뜬 마음으로 문구점에 가서 필사에 적합할 만한 펜을 잔뜩 골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아날로그로의 회귀 : 연필
3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직접 깎아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다. 그렇지만 연필은 아날로그한 감성을 무엇보다도 잘 안겨줄 수 있는 가장 친근한 필기구이다. 잡는 강약과 깎아 놓은 정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단점은 필사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종이가 지저분해지기 쉽고, 필사해 놓은 것이 바래지기 쉽다는 점이다. 

부드러움의 대명사 : 제트스트림 볼펜 0.7
볼펜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부드러운 필기감을 중시하는 편이라면 제트스트림 0.7을 추천한다. 가격이 천 원 후반대로 비싸다는 점과 볼펜 똥이 자주 생기는 것이 단점이지만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과 오래 써도 편안한 필기감은 제트스트림을 따라올 필기구가 없을 것이다.

눈물이 많지만 저렴한 가격 : 모나미 수성펜
300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의 수성펜이다. 수성펜 중에서 심이 얇은 편이고, 쓸 때 사각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단점은 오래 쥐고 있으면 손이 아파지고, 힘을 잘못 주면 눈물 자국이 난다는 점이다. 

나도 한 번 캘리그라피 도전!:붓펜
붓펜은 1,500원으로 가는, 중간, 굵은 사이즈가 있다. 모두 사용해 본 결과, 가는 심이 필사에는 제일 적합했다. 붓펜은 쓸 때 힘을 조금만 다르게 주어도 글씨체가 확연히 달라진다. 붓펜으로 필사하면 자칫 글씨가 뭉개지기 쉬워 주의를 요하지만, 붓의 모양이 글씨에 그대로 나타나는) 독특한 매력은 어느 필기구도 따라올 수 없다.

한결같은 굵기의 고급진 펜 :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은 학우라면 이 펜을 자주 접했을 것이다. 가격은 2,000원 선으로 방수 기능이 있어 물에도 번지지 않고, 심의 굵기가 0.1부터 1.0까지 매우 다양하여 선택의 폭이 넓다. 필자는 굵은 심과 부드러운 필기감을 중시하여 1.0을 선택했다. 펜을 잡는 방법과 들이는 힘에 상관없이 일정한 굵기로 글씨가 써지는 것이 특징이다. 단점은 잘 말리지 않고 노트를 덮으면 반대 페이지에 잉크가 묻어나니 주의하자. 손의 강약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이에게 이 펜을 추천한다.


필기구를 골랐다면 이제 종이를 고를 순서이다. 필기구도 중요하지만, 같은 필사를 어디에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종이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종이는 그 크기와 종류가 다양하여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정하면 된다. 다만 색종이 정도의 두께인 얇은 종이나 색지들은 필사 시 뒷면이 적나라하게 비치므로 피하는 게 좋겠다. 선이 있는 종이라면 정돈된 느낌이 나고 쓸 때 기울어지지 않아서 좋을 것이다. 하지만 틀에 가두어지는 듯한 느낌이 싫으면 선이 없는 노트를 사도록 하자. 
 필사할 때 사용할 조금은 특별한 종이 몇 가지를 추천한다.
 
정돈된 느낌의 A4 크기 원고지 (400자)
 크기가 꽤 넉넉해서 산문시도 무리 없을 것만 같다. 칸의 크기가 작은 편이라 답답한 느낌도 들지만, 단정한 느낌이 좋다면 선택하도록 하자. 가격은 20장 묶음에 1,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원고지에 필사를 하다 보면 조금 더 예뻐진 글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에게 보냅니다. 무늬가 있는 편지지
 15x21(cm) 정도로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이다. 무늬는 취향껏 심플한 편지지를 골라도 좋고, 귀여운 것을 골라도 좋다. 아무래도 필사의 감성을 살리려면 단순하면서 우아한 무늬가 조금 새겨진 것이 좋겠다. 가격은 천 원 후반대 정도로 무난한 편이다. 좋은 시 한 수 써서 특별한 일이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보낼 수도 있으니 실용성도 있다.

보다 전문적이고 싶다면, 캘리그라피 전용 종이 (수채화지/카드지)
손바닥 사이즈(크기)부터, 정말 메모지 정도의 크기인 것도 있으며, A4크기의 절반인 것도 있는 등 다양한 편이다. 근처 문구점에서는 두 종류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쉼표 잦음 삭제) 하나는 수채화지이고, 다른 하나는 카드지이다. 둘 다 두께는 살짝 얇은 도화지 느낌으로 비슷하지만 질감이 정말 다르다. 수채화지의 질감은 종이 상자 느낌으로, 버석거리며 잉크를 잘 흡수하는 편이다. 펜을 힘주어 누르면 자국이 잘 남기도 하다. 반면 카드지는 얇게 코팅이 되어 있고, 질감은 A4 용지와 비슷하게 깔끔하지만 코팅 때문에 연필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재질이 조금 미끄러운 편이기도 하다. 둘 다 가격은 A4사이즈 절반 크기가 25매 들어있는 것이 4,000원 선으로, 조금 가격대가 있다. 하지만 필사에 전문적인 느낌을 주고 싶다면 취향껏 골라서 사용해보자.

<시 고르기>
이제 필사할 시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서점에서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가 있는 시집을 골라도 좋고,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사도 좋다. 윤동주, 한용운 등 유명 시인들의 시집 중에서는 필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필사시집도 있다. 다양한 시를 접하며 필사를 시작하고 싶다면 필사시집을 사는 것을 추천한다.
서점에 가는 것이 번거롭다면 인터넷에서 시를 찾아 적어도 좋다. 또한 시뿐만 아니라 소설, 혹은 가사가 예쁜 노래도 필사의 대상이 되므로 평소 좋아하던 글이 있었다면 자유롭게 선택해보자. 이 글에서는 우선 시 위주로 필사해보겠다.
필자는 평소 좋아하는 시인인 윤동주의 필사시집과, 표지가 예쁜 헤르만 헤세의 시집, 좋아하는 시가 담긴 박준 시인의 시집을 골랐다. 가사가 시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도 한 곡 필사하기로 결정했다.

 

필사, 해 보았다.

필사를 위한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이젠 직접 해 볼 차례다. 종이들을 늘어놓고 책상 앞에 각을 잡고 앉아 펜을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펜을 잡으려니 떨리기도 했다. 손바닥이 종이에 너무 닿지 않게 유의하며 차분히 한 글자 한 글자씩 써내려갔다.

윤동주 <자화상>

첫 시는 윤동주의 ‘자화상’으로 정했다. 필사집을 펴서 무슨 펜을 사용할지 고민하다가, 깔끔한 젤펜을 골라 필사를 시작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시 옆에 마련된 한쪽의 공간에 시를 적어 내렸다. 필사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시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내 글씨로 재구성한 ‘자화상’은 인쇄된 시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좋았다. 

박준 <마음 한 철>

TV에서 몇 번 보았던 시인, 박준 시인의 시이다. 박준 시인의 인터뷰를 보고 소소하고 솔직한 어투에 호감을 가지고 시를 찾아보다가 마음에 들어 필사하게 되었다. 그립감이 부드러운 제트스트림 볼펜으로 원고지에 필사를 했다. 원고지에 필사를 하니 글씨가 조금 갇힌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완성된 필사본에 깔끔한 느낌이 나서 좋았다.

박준 <옷보다 못이 많았다>

제목의 라임이 마음에 들어 고르게 된 시이다. 피그먼트 라이너로 캘리그라피용 수채화지 위에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시를 필사할 때 시집에 나온 그대로 촘촘한 행간을 유지할지, 그렇지 않고 넓게 적을지 고민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헤르만 헤세 <흰 장미>

헤르만 헤세에 관해 아는 것은 소설 ‘데미안’이 전부인데, 서점에서 시집을 발견하곤 아름다운 외관과 세련된 어조에 홀려 사 버렸다. 필사를 하며 생전 처음 보는 시에 이렇게까지 빠질 수 있음을 느꼈다. 펜은 캘리그라피 느낌을 조금 내 보려고 붓펜을 사용했다. 무늬가 예쁜 편지지 위에 부드럽게 흰 장미를 필사했다. 붓펜만의 부드러운 곡선과 제각각인 글씨 굵기의 매력에 매료되어서 여러 번 쓰다 보니 금세 잉크 한 통을 비워버렸다. 필사해 놓은 것을 보니 편지지와 시의 분위기가 잘 어우러져 마음에 쏙 들었다. 

엠씨더맥스 <사랑의 시>

좋아하는 가수인 엠씨더맥스의 노래이다. 마음에 쏙 드는 멜로디는 아니지만 사랑을 하며 겪는 자조적이고 슬픈 감정이 잘 전해지는 가사라 필사하게 되었다. 수성펜을 쥐고 A4 크기의 스프링 노트에 필사를 해보았다. 중간중간 펜이 눈물을 흘려 종이가 지저분해질 위험에 처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치직거리는 거친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펜 외관이 플라스틱이라 그런지 오래 잡으면 손이 조금 아팠다. 노래 가사나 긴 서사시를 필사할 때는 손이 아프지 않도록 그립 부분이 편한 펜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필사의 매력  

 시 필사의 매력에는 대표적으로, 준비가 쉽다는 점이 있다. 요즘 취미 중에 문구점과 서점만 들러도 되는 취미는 흔치 않다. 글씨를 못 써도 된다. 물론 예쁘게 필사하면 기분도 더 좋겠지만, 글씨가 모나다고 해서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필사할 글귀를 고르고, 오늘은 어떤 펜을 사용할지 고르다 보면 즐거움마저 느끼게 된다. 혹여 필사를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근처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수업이나 아카데미 목록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종종 캘리그라피를 겸한 필사 수업이 진행되곤 하니까.
 필사의 또 다른 매력은 좋아하는 문장들을 쉽게 외울 수 있다는 점이다. 필사를 취미로 둔 이들은 필사를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독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눈으로 읽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사는 시를 눈으로만 읽었을 때와 다르게 문장을 빨리 외울 수도 있다. 수첩보다 휴대폰을 자주 쓰는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멋진 문장들을 수기로 쓰며 외우는 행위는 정말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필사를 하다 보면 문장력과 집중력이 늘어난다. 저명한 작가들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필사를 취미로 두었다고 한다. 남의 글, 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들의 집합체인 시를 필사하다 보면 절로 문장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집중력은 또 어떤가. 책상 앞에 차분히 앉아 필사를 하다보면 어느새 고요해진 주위와 진정된 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 필사에서 구체적으로 하는 활동은 시를 옮겨 적는 것이 전부이다. 필사를 준비하며 느끼는 감정부터 필사할 시를 고르고, 노트를 펴 시를 보며 글씨를 옮겨 적는 것, 그 후의 기분까지도 필사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오늘 밤에도 나는,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소리를 들으며 시를 필사하려 한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필사 한 번 시작해보지 않겠는가?
 

임유빈  kss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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