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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休)학: 휴식에 대한 고찰

대학교에 들어와서 매년 다이어리를 쓴다. 젊은 날의 기록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그때 느낀 감정들을 기록하기 위해 예쁜 다이어리를 장만해왔다. 하지만 이 다이어리는 ‘일기장’이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스케줄러’로 변하곤 한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을 쌓아두고는 해결하지도 못한 채 그다음 날의 일정을 잡는다. 해결하지 못한 일들은 쌓여 부담감이 되고 결국 해내지 못한 나는 후회한다. 그리고 입버릇 같은 ‘휴학해버릴까?’

 

‘너는 왜 이렇게 바빠?’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바쁜 사람, 그러니까 열심히 사는 언니, 누나로 통한다. 온갖 학회, 스터디, 동아리, 과제, 시험, 프로젝트, 아르바이트로 고통받는 내 인생. 일을 벌일 때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다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 확신에 차 있다. 나 스스로가 내가 원하는 모습이길 바라면서. 
  하지만 이것은 욕심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럴듯한 말로 나의 욕심을 포장한다. 이 욕심이 어디서 자꾸 기어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남과 비교해서든 나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든 나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강요한다. 나는 이 욕심을 이기지 못해서, 혹은 당장은 급하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고 나를 믿으며 스케줄을 욱여넣는다. 나는 항상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

 

나는 정확히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정신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주변에서는 걱정 어린 소리를 해준다. 그럴 때마다 걱정 붙들어 매라는 둥, 나를 못 믿겠냐는 둥, 믿음직한 나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남에게 비치는 허구의 나, 환상 속의 나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책임진 결과가 아니라 오로지 ‘말’로만 말이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한다. 정말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 모든 걸 책임질 수 있을까? 
  왜 내가 맡아서 한다고 했을까? 과제 마감하면 동아리 회의도 참석해야 하는데... 라는 후회와 걱정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미 나는 내게 쥐어진 일들을 해내야 해서 오늘도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눈을 떠 다음 일정을 위해 집을 나선다. 과연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내가 원해서 한다는 이유보다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크게 와 닿는다. 입버릇처럼 ‘해야 하니깐 하는 거지’라고 어쩔 수 없는 듯이 말하지만 내가 선택해 욱여넣은 모든 ‘일’들이기에 감당해 내려 발버둥 친다. 그렇게 나는 학기를 버틴다. 
  ‘버틴다.’ 몇 달 전 <청춘시대>라는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20대 여학생들이 셰어하우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이 드라마 중 ‘윤진명‘이라는 인물에 관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식물인간인 동생을 둔 윤진명은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며 집에 돈을 보태준다. 그런 그녀에게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료는 ’진명 씨에게 사는 건 버티는 것‘이냐는 질문을 하여온다. 물론 내가 드라마 속 캐릭터만큼 힘들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버틴다는 말에 뒤통수를 살짝 맞은 것 같았다. 사는 것이 왜 나에겐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학교에 다니는 것이 버티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모른다. 왜 나는 버틴다는 이 말에 동요했을까?

 

내가 쉬지 않고 달려가는 이유
  모든 일을 벌여놓고 수습하기에 급급한 내 모습을 볼 때면 ‘나태함’으로 똘똘 뭉친 나를 ‘열심’이라는 거짓말로 포장해놓은 것 같아 추해 보인다. 그리고 추한 나 자신에게 왜 그랬어? 라고 물어본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이 내가 왜 일을 벌이는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다 하고 살겠다는 욕심, 스펙에서 내 존재가치를 찾는 뒤틀린 자기증명, 사회가 부여하는 부담감,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섞여 있다. 
  아마 나에게는 콤플렉스 같은 무언가가 이유일 것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다 왔다. 서울에 많은 일정이 아직 서울에 많은 일정이 남아있기에 긴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해서 마지막 날 밤에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가족 간의 트러블 등등 기다렸다는 듯 이야깃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딸래미는 전혀 걱정이 안 돼’, ‘잘할 수 있을 거야’로 대화는 마무리된다. 나를 믿어주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오빠와 동생. 나는 믿을 수 있는 딸이고 자랑스러운 누나이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 믿음이 나를 더 나아가고 싶게 만든다. 나는 더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멈추면 안 될 것만 같고 또 이렇게 나아가는 생활이 벌써 익숙해져 버린 탓에 멈추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제 잠깐 쉬어가도. 멈춰도 괜찮지 않을까?
  본가에서 지내는 나흘 중 사흘은 손님을 맞이하며 지냈고 나머지 하루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는 탓에 마무리 지어야 하는 디자인이나 마감 기사는 잠을 줄여가며 진행했다. 과제 중 하나는 에코백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생각을 짜내도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아서 손님들과 가족들이 바다에 놀러 가 있을 때 혼자라도 마무리 지어서 제출해야 했다. 시간 내에 넘겨줘야 한다는 부담감에서인지 잠을 못 자서인지 학기 중에도 보지 못했던 코피가 노트북 위도 떨어졌다. 아차, 싶기도 했지만 ‘걱정시키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에 얼른 닦았다.
  나는 내 생각을 주변에 말해주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도 좋아한다. 여러 친구에게 휴식이 왜 필요한 것인지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인간이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생산적일 때가 노는 시간이라고 한다. 건축학과 친구여서 동질감이 느껴졌는지 모르지만 딱 알맞은 비유를 들었다. 철야 작업과 마찬가지로 무조건 작업시간이 길다고 과제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것 또한 무작정 열심히 하면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풀리던 수학 문제가 잠깐의 휴식이나 점심시간 이후에 번뜩이는 해답으로 갑자기 풀리는 것처럼  모두에게 그렇듯 내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욕심을 내려놓을 용기
   나는 열심히 달려왔다. 일학년부터 이수학점을 꽉꽉 채워서 듣고 내가 선택해서 들어온 학과에 맞는 수업에는 충실히 임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주어진 환경을 넘어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하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그것이 내게 좋을 것 같아 여러 가지 시도한 것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딱 거기까지의 열정. 방향은 잃고 ‘뭐든 해보면 좋겠지’라는 생각에 열심히 달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정확히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알고 정하면 좋겠는데,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는 상태. 그냥 휴학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가지고 싶지만, 그조차 용기가 없어서 섣불리 말을 건네지 못한다. 확실한 목적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 혹여 시간 낭비하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뒤처지진 않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친한 친구 다섯에게 물어봐도 답은 나와 비슷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남들은 이미 생각하고 자기 분야를 넓혀가지만 나만 계속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내가 한가로이 낭만적인 기분에 젖어있을 때 스펙 한 줄이라도 더 되는 자격증이나 대외활동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그러던 중 문득 드는 생각. 목적지를 모른 채 그저 걷기만 하면서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안일한 생각을 하진 않았나? 내가 많은 스펙을 쌓더라도 결국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많은 경험을 하면 좋겠거니 하고 벌여놓은 일들이 내가 목적지를 찾을 에너지와 여유를 갉아먹는 것이면 어떡하지? 이제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쉬어가는 법을 잊은 나에게 욕심을 내려놓는 것은 나의 일부분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할 용기가 아닐까?

 

방향을 찾아 멈춰 서는 것
  휴학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 자신이 휴학이라는 지점을 거치지 않고도 졸업이라는 일시적 목적지까지 완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결심하니 휴학하게 된다면 무언가 내 계획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아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애초에 언니도 휴학을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통학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지치고 원하던 학과가 아닌 곳에서 공부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계속 잘 버티다가 자신이 믿고 있었던 학점까지 떨어지자 너무 힘이 들어 휴학을 결정했다고 한다. 순전히 쉬고 싶어서 휴학한 후,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은 ‘이제 어디로 여행가게?’ 였다. 언니는 여행계획이나 공부계획처럼 무계획적 휴학을 선택했다.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는 의미에서였다. 여유로운 시간 동안 가족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책도 다양하게 읽었다. 물 흘러가듯 흘러간 시간 동안 '한 것 없다'라고 하지만 그 이후에 내 관심사를 알고 공부하는 것과 이전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동안 나는 아무 계획 없는 휴학이 시간 낭비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방향을 언니는 찾은 것 같았다. 정처 없이 걸어가는 것을 멈추고 목적지를 찾아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에게도 용기는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희미한 방향조차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지금의 모습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에 더 자신이 자신다워진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이 휴학이라는 말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휴식의 가치는 다르고 누군가가 그를 판단할 수는 없다. 바쁘게 살고 싶다면 휴학하지 않아도 되고 별다른 이유 없이 휴학을 선택해도 그 휴식은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 또 누군가는 계획 없는 휴식이 진짜 휴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휴식’이란 내가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혹여 이유를 단정 짓지 못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기대가 아닌 ‘내‘가 바라보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 희미한 방향이라도 알아가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지금 지쳐버린 당신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이지 않을까?

정유림  simsimhada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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