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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회용, 너의 의미

 

일회성 관계의 의미

일회용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상품을 화려하게 감싸는 포장 상자부터 밥 한 끼 값 마스크팩까지. 뜯고 나면 쓰레기가 돼버리는데. 만 원을 훌쩍 넘는 입욕제도 욕조에 닿는 순간 신비로운 색만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사라져버릴 관계, 어차피 곧 안 보게 될 사람한테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는 건 낭비다. 나의 사람한테 쏟을 시간도, 나한테 들일 시간도 부족한 와중에 일회성 관계에 노력을 들인다니. 수없이 생기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자리. 교양수업, 동아리, 대외활동, 봉사. 모두 무료하게 지나갔다. 어차피 지나갈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하고 싶은 말도,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나를 봐주고 꾸준히 마음을 들여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일회성 관계 속에서 나의 사람들을 찾았다. 아니, 나를 찾아주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지.

애초에 일회용을 따로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일회용을 사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일회용 아이스크림 스푼을 몇 번씩 닦아서 쓰지만, 누군가는 한 번 입은 옷을 버린다. 나의 인간관계도 어딘가에선 일회성으로 출발을 했지만, 누군가의 계기로, 누군가의 노력으로 꾸준히 이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새로 시작될 누군가와의 관계를 일회성이라는 편견으로 끊어버리고 있었다. 내 방에는 반년 동안 재사용되고 있는 종이봉투가 하나 있다. 처음엔 선물이 담겨 있었고 그다음엔 샌드위치가, 색연필이, 천 조각들이 담겼다. 남들한텐 구겨진, 버릴 시기가 한참 지난 크라프트 봉투일 뿐이겠지만 나에겐 꽤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의미 있는 일회용 봉투였다. 나의 일회용 관계 속 어딘가엔 수많은 사람이, 소중한 선물들이 담겨 있음을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이미림

 

동전의 의미

5분 뒤면 도착한다고 기계음이 말해줬던 603번 버스는 꽤 오래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 버스가 오기까지의 시간이 정말 5분이 넘었던 것인지, 양손 가득 무언가들을 들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한 손에는 버스 카드를 다른 한 손에는 너덜너덜한 천원 지폐 한 장과 100원짜리 동전 네 개를 쥐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잘 찍히지 않는 카드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지폐를 쥐고 있던 손을 펴보았다. 어제 묻은 록타이트 자국들이 손바닥에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새끼손톱으로 긁어보니 하얀 가루들이 나왔다. 다 없어지지는 못했다. 동전과 지폐를 이렇게 계속 쥐고 있으면 차마 다 사라지지 않은 록타이트 자국처럼 빛바랜 동전 냄새가 손에 남아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사라지지만 잠시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들.

10년 뒤면 동전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도 발길 하지 않는 박물관 안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사실 그래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내 손에 쾌적하지 않은 냄새를 남길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전이 없다면. 늘 쓰던 카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버스에서 내려야 할 위기에서 구세주처럼 나타나, 버스의 동전 더미 속으로 찰랑, 떨어지는 동전이 없다면. 어떤 충격에도 강인하고 튼튼한 몸을 가졌고, 설사 오래되어 낡고 부식한다 하더라도 제 기능을 다 해내는 동전이 없다면. 만든 지 2년 만에 고장 나버린 카드와 다르게 ‘1997’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이 손 저 손을 거치는 위험한 모험을 하는 동전이 없다면.

동전은 믿음직스럽고 영원하다. 녹슬어 색이 변해버려도 동전이라는 이름을 잃지 않는다. 나의 손을 떠난다고 하여 그의 운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환영받지 못한다. 버스비를 위해 카드 대신 동전을 꺼내 든 것처럼, 종종 잔돈을 가지라는 말을 내뱉는 것처럼. 그래도 동전은 기다린다. 지갑 깊숙이 제 역할이 필요한 날이 올 거라 믿으며, 운명의 그 날에 비로소 반짝이고 찰랑이기 위하여.

이민지

 

겉껍데기의 의미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 얼굴이 일회용이라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하게 되는데, 결말의 방향은 정반대인 게 흥미롭다. 첫째는 ‘뷰티인사이드’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얼굴은 물론이고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사람들이 모두 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알아보고 어떻게 사랑하게 될까? 외모 가꾸기에 혈안이 된 지금 세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일 것이다. 조금씩 변하는 듯하다가도 단단해져 가는 미의 기준이라는 프레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치장하며 시간을 쏟거나 겉모습으로 섣불리 누군가를 판단하지도 않을 것 같고, 진정으로 상대방의 내면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될 것 같다. 겉모습이 그야말로 일회용 포장지 같은 겉껍데기에 불과해지는 세상을 상상한다.

둘째는 우리에게 얼굴이 없어서, 필요에 따라 가면 쓰듯 얼굴을 휙휙 바꿀 수 있게 되는 것. 얼굴 표정을 알맞게 짓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본심에서 우러나는 표정을 할 수 없을 때, 예를 들어 싫은 사람의 면전에서 억지로 웃는 대신 웃는 가면을 쓸 수 있으면 참 편리할 것 같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면 어떨까? 경극 하듯이 휙휙 표정을 바꾸는 사람들을 상상해보면 조금 기괴해진다. 안에 들어있는 진짜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가면의 얼굴을 믿지 못해서, 사람들 사이에는 일정한 원을 두고 거리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가면을 쓰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얼굴은 피부와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만드는 겉껍데기이다. 내가 짓고 있는 진짜 표정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얼 보고 서로 믿는 것일까.

김예지

 

잃어버린 호빵맨의 의미

일본에서 우연히 뽑기를 했다. 소중한 200엔을 넣고 뽑은 것은, 가슴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얼굴에 빛이 들어오는 기능을 탑재한 앙증맞은 호빵맨 열쇠고리였다. 뽑기 기계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호빵맨을 뽑고 싶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지 한 번에 뽑힌 호빵맨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나의 책가방 지퍼에 달린 호빵맨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평소에 물건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에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호빵맨 분실이 나에게 일상적인 경험이라는 것은 아니다. 촘촘한 여행 계획에서가 아니라 정말 우연한 상황에서 얻은 행복이었기 때문일까? 여행 후 찍은 사진들을 보아야 그때의 감정들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과는 달리, 호빵맨을 뽑은 것은 그 과정과 감정까지 너무도 생생히 기억에 남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호빵맨을 잃어버린 것은 여행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가끔 호빵맨이 더 이상 얼굴에서 빛을 내지 않아도, 어딘가 깨지고 더러워져도 내 가방에 그대로 걸려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일본 여행을 추억하며 불현듯 느끼는 이 씁쓸한 감정을 계속 재활용하며 느낄 필요도 없었을 텐데.

호빵맨을 잃어버린 날 쓴 일기를 일 년이 지나고 다시 열어보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상실을 ‘일회용 기억 보관함’에 넣고 일 년이 지난 시간이었다. 아직도 같이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과 있을때, 잃어버린 호빵맨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정말 귀여웠었는데. 맞아, 한국에 안 팔아서 더 아깝다. 호빵맨을 추억할 때마다 씁쓸함이 제일 먼저 따라왔기 때문일까? 아끼던 추억은 어느새 한번이면 족한, 회피하고 싶은 기억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호빵맨을 생각할 때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일본 여행도 함께 추억하는 나 자신을 보면, 호빵맨을 잃어버린 것이 나에게 정말 잊고 싶은 1회용 기억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호빵맨 덕분에 잊지 못할 일본여행을 계속 재활용하며 추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김지연

 

처음의 의미

일회성 기분은 한번 느끼면 다시는 느끼지 못할 기분이다. 나는 이것이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비일상적인 경험들이 줄지어 일어난다면 일상적인 경험이 될 것이고, 반대로 일상적인 경험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면 비일상적인 경험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처음과 끝이 있듯 처음의 기분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처음의 기분이 일회성 기분, 단 한 번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모두에게는 있었을 법한 처음. 그리고 나에겐 벌써 일상이 되어버린, 혹은 비일상적인 경험을 잊어버린 나의 처음을 기억해본다.

나에겐 블로그가 하나 있다. 1년 전 여름부터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누가 볼까 민망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어볼 생각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꼈다. ‘글쓰기’를 클릭하여 ‘카테고리’ 설정에 가면 기본 설정인 ‘게시판’ 밖에 없어서 나의 첫 글은 게시판에 올렸던 기억이 있다. 주제가 이상하면 어쩌지, 맞춤법은 다 맞게 들어갔나? 누가 내 블로그인 걸 알아버리면 정말 창피할거야, 이런저런 고민들 가운데 결국 ‘비공개’로 설정해버리고 첫 글을 올렸다. 단순한 시작이었고 평소에 하는 생각들을 끄적인 것뿐이지만 너무 뿌듯한 나머지 하루에 몇 번이고 들락날락거려서 의도치 않게 조회수가 높아졌다. 이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어색하거나 두렵거나 두근거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해져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이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일회성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다시는 느끼지 못할 두근거림과 두려움. 이미 익숙해져 버린 내 일상, 그 일부의 시작을 바로 지금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 사뭇 다른 느낌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유림

 

종이 카메라의 의미

아주 어릴 적 종이접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한창 카메라 접기에 빠져 있던 나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말을 걸었다. “우와, 너 카메라 접을 줄 아는구나. 나 하나만 접어주라.” 누군가 부탁을 한 것이 너무 설레었다. 그 누군가가 내심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였던 건 더욱 기쁜 일이었다. 그렇게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성의껏 접어주었던 10살 때의 종이카메라. 그날의 설렘은 한 번으로 남았어야만 했다.

딱 한 시간 만에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다 접은 카메라를 전해주기 위해 친구의 책상을 찾았을 때, 친구는 잠시 자리를 비웠었다. 친구의 책상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돌아서던 나는, 바람에 날려 그 카메라가 자꾸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문득, 마음속 우러나는 친절을 주체하지 못하고 직접 그 카메라를 책상 서랍에 넣어주었다. 떨어져서 굴러다니지 말라고. 그리고 친절을 주체하지 못한 대가는, 참혹하게 돌아왔다. 책상 서랍에 카메라를 넣는 나를 본 다른 친구가, 자리를 비웠던 친구에게 내가 책상을 뒤지는 것을 봤다고 말을 했다. 그 소문은 반에, 학년에 단 한 교시 만에 퍼져 나갔다. 없어진 물건도 없었지만, 해명하던 나의 말은 봄바람을 타고 점점 와전되었다.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도, 몇 차례 더 선심을 써 남에게 무언가를 해준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부탁. 그 설렘은 한 번으로 떨칠 수 없었다. 단순히 물건을 빌려주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그림을 그려주고, 친구가 좋아하는 구슬을 대신 사줬다. 물론 그때마다 받은 물건이 마음에 안 들거나 잠시라도 사라지면 모든 것은 내 탓이었다. 그렇게 사람 좋은 얼굴로 부탁하던 모두는, 선량한 마음만을 받아간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오해로 얼룩진 채 지내던 11살 가을.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그 날. 설렜던 마음이 카메라 한 번으로 그쳤다면 어땠을까.’ 한 번 정도였다면 괜찮았을 감정. 그 선을 지키지 못한 11살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불필요한 친절도, 해명도, 위로도 무엇도 하지 않겠다. 다시는 카메라를 접어주지도, 누구를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겠다. 순수한 설렘의 감정. 그런 건 어릴 때나 한 번쯤 겪는 일회용 경험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어릴 적 카메라를 접던 한 교시의 기억은 한번을 넘긴 죄로 하루, 한 해를 넘어 20년의 나를 집어삼켰다.

주예린

 

좋아하는 감정의 의미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나와 친한 사람 중 한 명에게 이성적 감정을 갖곤 했다. 내가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내 또래 나이이고, 나에게 늘 장난을 쳐주었다. 나에게 주는 애정 어린 관심이, 어린 마음에는 호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나에게 좋아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하다. 지루한 일상생활에 비일상적인 행복감이 불어넣어 주는 대상이 생겨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애정을 갖다 바칠 존재가 있다는 것 때문인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단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들에게 향한 내 마음은 일회적이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감정이 꼭 교제나 다른 무언가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조금 유치한 방법으로 마음을 전했다. 짓궂은 장난을 친다던가, 괴상한 별명을 부른다거나, 먹을 것을 준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때의 기억들을 곱씹어보면, 그때의 난 참 미숙하고 귀여웠구나 싶다. 내 감정이 어떠한 결과로 남은 적은 거의 없다. 아쉽기도 하지만, 난 그럼에도 또다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겠지. 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던 사람들, 내가 조금 다르게 노력했으면 그들과 난 달라졌을까?

임유빈

 

새벽의 의미

새벽은. 내가 깨어있는 매일매일의 새벽은. 어제와 오늘이 항상 다르다. 눈에 보이는 달의 모양, 별의 밝기, 어질러져 있는 이불의 위치. 새벽이 매번 변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또한 평소 모른 척하던 감정 기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의 감정도 수없이 변해간다는 지극히 당연한, 그리고 뻔한 사실이 새벽에는 나를 구속하고 지배한다. 고로 새벽은 반드시 일회용이어야만 하는 시간이다. 벽에 드리운 나의 컴컴한 실루엣을 보고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거나, 창문을 열고 새벽 공기를 마셔 주눅이 든 내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거나. 스스로 하는 동정과 자책이 뒤섞여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붕 뜨거나 밑바닥까지 가라앉는다. 마치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온갖 감정들은, 다음 새벽으로 끌고 갈수록 감당할 수 없는 해일로 변한다. 파도의 높낮이가 극히 분명해지므로, 감정의 오르내림이 점차 선명해지므로. 결국, 나는 나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새벽에 가지는 일시적인 감정을 다음 새벽에도 재활용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자. 매번 다른 새벽에 하는, 매번 다른 생각들은 한 번만으로 족한 것이다. 자, 당신은 매일 새벽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를 재활용할 텐가, 잠재울 텐가.

홍기수

 

이미링 외 7명  mllee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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