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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에 '풍미'를 더하다

풍미 :

1. 음식의 고상한 맛.

2.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됨됨이.

 

음식을 먹을 때 한 번쯤은 따지게 되는 것, 그것은 바로 ‘풍미’! 음식에 깊이를 더하는 풍미는 달고 짠 것과 같은 구체적인 맛과 달리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다른 만큼 풍미를 품고 있는 식재료와 풍미를 내는 방법 역시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깊어지는 풍미부터, 궁합으로부터 존재감이 물씬 살아나는 풍미까지! 신비로운 풍미의 세계를 거닐어보자.

 

시간을 머금은 맛, 치즈

대표적인 숙성 식품, 치즈. 치즈 숙성은 보관하는 온도와 시간, 치즈의 재료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뉘는데, 이것에 따라 치즈의 풍미가 달라진다. 천차만별의 매력을 뽐내는 가지각색의 치즈들, 안 먹어볼 수 없겠지? 단연 향과 깊이로 유명한 몇 가지의 치즈의 풍미를 경험해보자.

 

너는 어떤 치즈니?

치즈의 종류는 몇 가지 요건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치즈 속 미생물의 생사에 따라 자연 치즈와 가공 치즈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자연 치즈의 숙성 여부에 따라 프레시 타입 치즈와 프레시 타입이 아닌 치즈로 나눌 수 있다. 또 프레시 타입이 아닌 치즈는 재료, 제조법에 따라 많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치즈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 그 수를 헤아릴 순 없지만, 몇 가지 유형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치즈를 먹어보고 치즈의 풍미에 퐁당 빠져보기로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거니는 듯한, 모차렐라 치즈

 

모차렐라 치즈의 새하얗고 말랑말랑한 외관을 보면, 마치 치즈가 ‘나 참 신선해’라는 선전포고를 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나 치즈에서 우유 향이 돌아 군침을 돌게 한다.

모차렐라 치즈는 은은한 우유 향과 맛이 코와 혀를 즐겁게 한다. 또 치즈를 쉬지 않고 먹어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짠맛이 덜하다. 식감 또한 쫄깃하고 탄력적이어서 오래도록 씹을 수 있다. 모차렐라를 입안에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담백한 맛이 서서히 녹아든다. 이것이 모차렐라의 가장 큰 풍미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

모차렐라가 신선하고 깔끔한 맛을 갖게 된 까닭은 숙성에 있다. 모차렐라는 치즈 생산 후 숙성 기간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프레시 타입의 치즈다. 그렇기에 모차렐라를 바로 가공해 시중에 유통한다. 짠맛이 덜한 소금물에 넣어 보관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분이 많고, 이는 쫄깃한 식감에 한몫한다.

 

프레시 타입 치즈는 치즈의 주재료인 원료유를 효소, 유산균, 열로 굳힌 후 수분을 배출하여 숙성 기간 없이 바로 먹는 치즈다.

 

맛이 향을 업어 치는, 브리 치즈와 카망베르 치즈

 

브리 치즈와 카망베르 치즈는 흰 곰팡이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치즈다. 두 치즈의 첫인상은 매우 비슷하다. 흰 곰팡이로 싸인 널찍한 원통형 치즈며, 색깔 또한 같다. 섞어놓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렇다면 맛과 향은 어떨까?

브리 치즈의 첫인상은 비릿한 맛이다. 이 비린 맛이 어디서 왔을꼬 하니, 정답은 흰 곰팡이에 있었다. 흰 곰팡이의 강한 비린내가 혀와 코를 감돌며 풍미를 띄었는데, 신기하게도 곰팡이가 입안에서 사라지자마자 향과 맛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브리 치즈의 풍미는 곰팡이와 치즈 속이 합쳐졌을 때 극대화된다. 치즈의 적당한 짠맛과 흰 곰팡이의 비린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약간의 산미를 내뿜기 때문이다. 질감 역시 쫄깃하니, 브리 치즈는 여러모로 다양한 풍미를 지닌 치즈다.

그럼 카망베르 치즈는 어떤 풍미를 품고 있을까. 카망베르 치즈는 앞서 먹었던 브리 치즈와 맛이 비슷했지만, 이를 씹을수록 다른 점이 나타난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흰 곰팡이의 맛이다. 브리 치즈의 곰팡이가 비린 맛을 띄어 치즈 전체적인 풍미에 관여한다면, 카망베르 치즈의 곰팡이는 담백한 맛이 돌아 전체적인 치즈 맛에 묻힌다. 즉, 카망베르 치즈는 곰팡이와 치즈 속 부분의 맛이 거의 비슷해 브리 치즈처럼 산미는 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본연의 치즈 맛을 방해하는 점이 없어 농후하나 깔끔한 맛이 난다. 또, 브리 치즈와 카망베르 치즈의 공통적인 특징은 맛이 향보다 진하다는 것이다. ‘맛이 향을 업어 친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겠다.

두 치즈의 맛이 향보다 진한 이유는 흰 곰팡이의 효소 분해 작용 덕분이다. 흰 곰팡이가 가지는 특유의 효소는 치즈의 농후하고 크리미한 맛을 잡아주며 풍미를 구성한다. 이는 치즈의 단백질이 곰팡이의 효소에 의해 분해되면서 나타나는 풍미며, 겉면부터 숙성이 시작되어 점점 속으로 숙성이 진행되기 때문에 오래 숙성할수록 맛의 풍미가 진해진다.

 

흰 곰팡이 타입의 치즈는 말 그대로 흰 곰팡이를 통해 풍미를 이루는 치즈다. 표면에 흰 곰팡이를 번식시켜 숙성하면 흰 곰팡이 타입의 치즈가 완성된다.

 

산미로 혀를 폭격한다, 페타 치즈

페타 치즈는 여타 치즈와 향 자체가 다르다. 고릿한 냄새가 나는 대부분의 치즈와는 달리 특유의 지린내가 고개를 내밀어 반긴다. 수분을 넣어 보관하는 치즈치곤 단단하며, 자를 때 잘 부서진다. 페타 치즈는 혀의 신경을 곤두세울 만큼 시큼한 맛이 난다. 신맛이 짠맛을 훔쳐 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대신 신맛이 서서히 꺼질 때쯤 고소함이 뿜어져 나온다. 페타 치즈의 풍미는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씹는 시간에 따른 맛의 변화가 잦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타 치즈의 매력은 치즈를 먹는 과정 그 자체일 것이다. 질감은 생각보다 부드럽진 않다. 입안에서 씹어도 잘 부서지기 때문에 거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페타 치즈의 산미, 최상의 고소함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비밀은 원료유에 있다. 페타 치즈는 우유로 만든 치즈가 아닌 양젖으로 만든 치즈다. (간혹 염소젖으로 만드는 페타 치즈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를 셰브르 타입의 치즈라고도 한다. 양젖으로 만들기 때문에 숙성되면서 우유보다 더 깊은 고소함을 내는 것이다.

 

‘셰브르(chèvre)’는 프랑스어로 ‘암 산양’을 의미한다. 즉, 셰브르 타입 치즈는 산양유로 만든 치즈다. 어떤 유산균을 통해 치즈를 만드는지에 따라 셰브르 타입의 치즈를 세분화할 순 있지만, 어쨌건 양젖유를 사용해 만드는 치즈는 모두 셰브르 타입 치즈에 분류한다.

 

치즈계 이란성 쌍둥이, 에담 치즈와 체더 치즈

 

체더 치즈와 에담 치즈는 비가열 압착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세미 하드 타입 치즈에 속한다. 그러나 두 치즈를 비교해볼 때, 각각에서 나타나는 풍미가 달라 흥미롭다.

체더 치즈의 첫인상은 약간의 산미다.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 산미지만 치즈 특유의 짠맛을 만나기 전 입맛을 돋우는 흥미로운 역할을 해준다. 치즈 자체에 기름이 상당하기에 맛의 파급력과 여운이 강하다. 입안 가득 체더 치즈의 향과 맛이 퍼지며, 이러한 풍미가 입안에 오래 남는 것이다. 식감은 딱딱한 편이라서 씹는 맛은 없다. 대신 단단하기에 입안에 두고 오래 녹여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서히 녹을 때, 기분 좋은 풍미가 입과 코를 가득 채우며 체더 치즈 스스로 풍미를 선전했다.

에담 치즈는 빨간색 왁스로 겉이 싸여 있는 특이한 생김새의 치즈다. 에담 치즈는 다른 치즈와 비교했을 때 치즈 특유의 고린내는 덜하다. 대신, 향보다 맛에서 많은 풍미가 느껴진다. 에담 치즈의 첫맛은 짜며, 뒤로 갈수록 쌉쌀한 맛이 난다. 또한, 치즈를 입에 넣고 씹을 때 느껴지는 고린내가 풍미를 발산해 혀를 자극한다. 우리나라 음식 중 청국장 향과 비슷한 맛이 살짝 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치즈 맛 베이스는 잃지 않으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에담 치즈의 가장 큰 매력은 산미다. 에담 치즈가 입에서 사라지기 직전엔 약간의 산미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약간의 신맛이 치즈의 짠맛과 쓴맛을 달래주어 맛의 균형을 잡는다. 치즈를 다 먹었을 때, 입에 남는 깔끔함은 에담 치즈만의 장점이자 풍미라고 단언할 수 있다. 즉, 에담 치즈는 맛의 밸런스가 뛰어난 치즈다.

 

비가열 압착 방식은 원료유의 가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응고·압착을 통해 치즈를 만드는 것이다. 비가열 압착 방식으로 만드는 치즈는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단단하다. 오래 숙성할수록 단단하고 향과 맛이 깊은 치즈를 만들 수 있으며, 단단한 정도를 기준으로 하드타입과 세미 하드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더하면 배가되는 맛, 발사믹 식초

 

‘향기가 좋다’라는 뜻의 발사믹은 단맛이 강한 포도즙을 나무통에 옮겨 담으며 오래 숙성시킨 식초이다. 포도를 이용해 만든 식초이니만큼 색은 검고 맛은 새콤한 것이 특징이다. 흔히 빵이나 샐러드에 곁들여 먹는 발사믹 식초. 하지만 흔한 조합 외에도 발사믹 식초와 어울리는 조합이 존재한다.

 

발사믹 식초‘만’ 먹어보았다

 

발사믹 식초와의 최강 조합을 찾기 위해 발사믹 식초를 숟가락으로 먹어보았다. 발사믹 식초의 기본 베이스가 포도인 만큼, 포도주를 먹었을 때의 쌉쌀한 맛이 먼저 들어왔다. 발사믹 식초의 포인트는 그때서부터 시작된다. 포도주의 맛이 서서히 입안을 감돌기 시작할 때쯤 식초의 시큼한 맛이 혀를 찔러 포도의 맛에 과몰입하지 않게 돕는다.

 

호밀빵 저리 가라, 바게트와 발사믹 식초

 

놀랍게도 발사믹 식초를 살짝 뿌린 바게트에서 호밀빵의 깊은 산미가 난다. 이는 단순히 빵에 신맛이 더해진 것이 아니라, 호밀빵에서 스멀스멀 나타나는 특유의 산미와 굉장히 비슷해서 놀랄 정도다. 더 놀라운 것은 입안에 빵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씹어도 발사믹 식초의 향과 맛이 오래도록 남는 점이다. 발사믹 식초를 곁들인 바게트를 먹고 있으니 문득 단맛이 강한 과일이 생각난다. 이를테면 복숭아, 무화과 등등. 시큼한 빵의 맛에 과일의 단맛이 더해지면 이보다 완벽한 간식이 따로 없을 것이다.

 

식초의 바른 용도, 닭가슴살과 발사믹 식초

발사믹 식초에 닭가슴살을 푹 담가 먹는 방법을 택했다. 닭가슴살은 직접 조리한 게 아닌 시중에서 판매하는 조미된 것이다. 맨 처음 느낀 것은 뛰어난 맛의 균형이다. 입에 들어오자마자 식초의 산미는 조미된 닭가슴살의 맛을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 고기 특유의 냄새를 잡아주어 깔끔한 육식을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결정적인 한 방으로 풍미를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감칠맛이다.

발사믹 식초를 곁들인 닭가슴살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기의 감칠맛이 살아난다. 즉, 발사믹 식초의 산미는 푹 꺼지고 고기의 맛과 향만 남아 진한 여운을 준다. 고기의 감칠맛을 방해하는 고기 잡내를 없애주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씹을수록 기분 좋은 맛이 입안 가득 맴돈다. 또한, 고기를 계속 씹게 만들어 부드러운 목 넘김까지 책임지니, 닭가슴살과 발사믹 식초의 조합은 가히 ‘식초의 바른 용도’라고 할 수 있겠다.

 

달짝지근한 반전, 바나나와 발사믹 식초

발사믹 식초를 흥건히 부어 먹은 바나나의 첫인상은 ‘이게 뭐지’였다. 바나나를 씹지 않고 입에 넣으면, 식초만 먹었을 때 나는 풍미와 대단히 흡사하다. 한편으로 당황하기도 한 것이, 바나나를 씹었을 때도 같은 맛과 향이 유지되어 다소 실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계속 씹으면 풍미가 반전된다. 식초의 맛과 향이 점점 날아가고 바나나 특유의 달짝지근한 풍미만 남는데, 바나나만 먹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은 단맛이 난다. 마치 발사믹 식초가 한발 물러서서 바나나가 뽐내는 풍미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발사믹 식초로 바나나 장아찌를 만들면 맛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식초의 깊은 맛이 바나나에 배어 바나나의 달짝지근한 맛을 끌어올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홈메이드 칵테일, 소주와 발사믹 식초

발사믹 식초는 소주의 알코올 향과 쌉쌀한 맛을 완벽히 제어해준다. 흡사 소주 베이스의 포도주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즉, 소주의 거친 맛을 줄여주기 때문에 술을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소주에 발사믹 식초를 떨어뜨리면 바로 섞이지 않고 식초가 바닥에 깔린다. 이때 소주와 식초를 섞어 마시면 앞서 말한 것처럼 부드러운 맛이 감돌아 칵테일을 먹는 느낌이 든다. 과일 향과 알코올 향이 적절하게 섞여 풍미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주와 식초를 섞지 않고 술을 마시면 끝 맛이 깔끔하다. 알코올이 먼저 입안을 채운 뒤 넘어갈 때쯤에 발사믹 식초가 중구난방의 알코올 맛, 향을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평소에 산미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딱히 안주가 필요 없을 정도니, 이 얼마나 간편한가.

 

먹을 것 자체에 들어있을 수도, 둘 이상의 먹을 것이 섞여 탄생할 수도 있는 풍미. 어쩌면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음식들에도 알려지지 않은 풍미가 존재할 수도 있다. 자신만의 풍미를 찾게 된다면 음식을 더 즐겁게 먹을 수 있을 테니, 온몸의 감각에 집중해보자. 풍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니까 말이다.

홍기수  rltn03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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