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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어김없이 시작된 학내 선거 시즌. 대부분의 선본에서 눈에 띈 공약은 바로 ‘성폭력에 관한 대처’였다. 학회장부터 총학생회까지 거의 모든 선본에서 이를 주요 공약으로 삼았으며, 학교 측에서도 규정집 개정을 통해 발 빠른 개선책을 내놓았다. 따라서 지난 2학기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여성혐오 그리고 성폭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에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내 여성혐오/성폭력 아카이빙’(이하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가 있다.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 – 개인의 고발, 집단의 반성

2016년 10월 중순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내 여성혐오/성폭력 아카이빙’(이하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익명의 미술대학 학우에 의해 생성됐다. 위 계정은 익명으로 수집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내 여성혐오 발언, 성희롱, 성폭행을 포함한 성폭력 사례를 트위터 계정(@hongikart_msgn)을 통해 약 2주간 공개적으로 업로드 하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설문을 통해 강제적 여장, 술 게임 문화같이 학과 내 폭력적인 전통에 대한 내용부터 동기, 선후배, 조교, 교수에 의한 성희롱 및 성폭행까지 100개가 넘는 다양한 사례가 제보되었다.

우선, 위 계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지난 하반기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트위터’의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오타쿠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 고발운동이 있다. 피해자들은 위 해시태그를 달고 오타쿠 문화 내에서 벌어졌던 성희롱, 성폭력을 고발했으며 이 해시태그는 ‘#문단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 ‘#예술계_내_성폭력’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업계 내 성폭력 고발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박범신 소설가, 일민미술관 함영준 큐레이터 등 많은 이들의 성폭력 사실이 고발, 공론화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당 업계와 관련 깊은 학부 내 성폭력 고발로 이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비롯해 미대, 음대 위주로 수업 도중 발생했거나 선후배, 교수 등으로부터 가해진 성폭력 사건에 대해 폭로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 계정이 생긴 것은 급작스러운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해당 계정은 트위터 해시태그를 통한 폭로 대신 익명으로 작성이 가능한 설문지를 통해 피해 사실을 제보 받았으며, 이를 최소한의 필터링 (실명 거론 등) 만을 거쳐 해당 계정에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그러나 해당 계정의 관리자가 ‘사실 적시 명예 훼손‘에 의한 고소 협박을 받은 것을 계기로 계정 자체는 2주 내에 폐쇄되었다. 하지만 이 고발운동이 남긴 파급력은 상당했다. SNS를 통해 많은 제보 내용의 사실 관계가 밝혀지고 사건이 각 학과 내에서 공론화 되었다. 언제 벌어졌던 사건이든 가해, 피해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으며, 가해자들의 공개적인 사과문이 SNS 계정 등을 통해 잇따라 게시되기도 했다. 일부 학과의 집행부(학생회)는 학과 내 폭력적 전통에 관한 사과문과 입장문을 발표하고 악습 폐지와 가해자 처벌과 관련해 토론회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2. ‘공론화’의 힘 – 연대로써 세상을 바꾸다.

‘#오타쿠_내_성폭력’에서 시작해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에서 눈 여겨봐야 할 특징은 피해자들이 ‘사건의 공론화’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공론화의 문제는, 더욱이 성폭력 문제는 내집단의 입방아(2차 가해)를 감당해내야 한다는 크나큰 문제가 뒤따르며 대부분의 경우 개인의 차원에서 법적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훨씬 간단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이 이를 선택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많은 피해자의 경우 개인 대 개인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해시태그 고발운동에서 상당수의 피해자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업계, 가해자와의 위계 등을 이유로 당시에 피해를 고발하지 못했음을 밝혔다. 고발자, 피해자 대부분이 ‘업계를 떠났기 때문에 고발 할 수 있다’는 말로 고발을 시작한 것 또한 개인 차원의 해결이 오히려 더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의 경우 선배, 조교, 교수에 대한 고발의 내용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이 어렵거나 피해자가 집단으로 구성되었을 경우도 그렇다. 특히 언어에 의한 성폭력은 녹취하지 않았다면 처벌 가능성이 0에 가깝다. 이 경우 공론화는 가해지목인이 가해 사실을 인정하게끔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특히 가해지목인의 언행이 누구한테도 지적당하지 않을 정도로 피해자와의 권력 차이가 나는 경우나, 단체 채팅방에서 다수를 희롱한 경우에는 공론화함으로써 가해 사실이 해당 집단에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해시태그 고발운동의 본질적 의도이자 가장 의미 있는 지점은 공론화됨으로 인해 제보의 내용이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집단의 문제점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아트인컬쳐> 2016년 12월 호에 실린 기사를 인용하자면, 이현 에디터는 “하지만 나를 포함한 여러 피해자가 최악의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공개 고발을 감행한 이유는, 성폭력의 원인이 한국사회에 뿌리 깊이 고착돼 온 약자 혐오적 인식에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우발적인 실수거나 도덕적 결함이 있는 특정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암묵적으로 조장되고 누적돼 온 성차별적 문화의 '사건화'다.” 라는 이유로 ‘공론화’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3. 공론화를 넘어서 – 우리의 태도, 집단의 제도

따라서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를 통해 우리는 성폭력을 집단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간 쉬쉬하며 넘어갔던 사건들, 이상함을 느꼈지만 미처 문제 삼지 못했던 언행들을 다시 짚고 넘어가면서 가해자를 처벌할 방법, 소수자 혐오를 내포하지 않은 발언에 대해 다 함께 고민해 볼 기회가 생긴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SNS를 통한 공론화에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가해자를 향한 과도한 마녀사냥 등의 문제점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만 하더라도, 계정 폐쇄 직전에는 과도한 저격성 제보가 빗발쳐 몸살을 앓았다. 게다가 ‘사실 적시 명예 훼손’ 이라는 법에 따르면, 아무리 사실만을 담은 제보이더라도 공개적으로 사건이 게시됨에 따라 가해지목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와 게시자가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한계 또한 뒤따른다. 따라서 공론화는 집단의 발전을 향할 수는 있지만,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제1의 해결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서, 개별적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학교 측에서는 Q동 3층에 ‘홍익대학교 성 평등 상담센터’ 라는 기관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기를 권한다. 사건 접수 즉시 관련 위원회가 소집되는데 위원회는 가해자에게 공개 사과 혹은 교육 프로그램 이수 명령 등의 처벌을 내릴 수 있다. 가해자가 재범이거나 위원회의 조치를 불이행할 경우 또는 피해자에게 유형, 무형의 보복을 가할 경우 가중 징계를 요구하거나 발의할 수 있다고 한다.

홍익대학교 규정집 제3편 일반행정 제2장 복무-성폭력 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 부분을 참조하면 더욱 자세하게 해결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피해, 가해자 중 한 사람이라도 본교 구성원이면 해당 규정이 유효하며 제4조에 따라 모든 과정은 피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제삼자도 신고가 가능하며 신고자와 피해자는 동등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은 공론화 이후인 작년 11월에 개정, 보충된 내용이다.

총학생회 등의 학생 집행부에서도 이를 집단의 문제로 인식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제50대 총학생회 다같이[다:가치] 산하 성인권위원회에서는 '강의실 속 숨은 혐오 찾기' 활동을 전개하여 수업 중 이루어진 소수자, 여성 혐오성 발언을 제보받고 홍익대학교 교무처에 이를 전달하며 임기를 마무리했다. 제51대 총학생회 ‘Begin Again’ 역시 성인권위원회를 독립 산하기구로 발전시켜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진행할 것임을 정책자료집을 통해 밝혔다. 제31대 미술대학 학생회 ‘열림’은 학생회의 첫 번째 핵심가치로 ‘성폭력에 있어서 학생회의 역할 찾기’를 선정하고 젠더 감수성 강화 교육, 악/폐습 특별 위원회 구성 등의 공약을 이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는 미술대학 학생회가 운영하는 카카오톡 옐로 아이디 ‘@홍익미대아띠’와 총학생회 산하 성인권위원회 측을 통해 더욱 편하게 상담을 하거나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다.

 

물론 많은 문제점과 시행착오 또한 있었음도 부정할 수 없지만, 홍익대학교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홍익미대 성폭력 아카이브 계정이 불러온 일들은 뜻깊은 이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인 ‘우리’의 태도다. 우리는 많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피해 사례를 밝히고 공론화한 피해자의 용기를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혐오발언이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하며 성희롱, 성폭행을 비롯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해자가 정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속한 집단부터, 우리의 학교부터 그곳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윤다원  dawon09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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