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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채식, "안녕하신가요?"

최근 들어 채식을 선택하는 현대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종교나 윤리, 건강 등 채식주의의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또한, 채식주의라고 해서 다 같은 채식주의가 아니다. 채식의 유형을 나누고, 그에 따라 채식의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채식인들도 진정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어디서부터 채식이 오는가

 

채식주의자란 고기류를 피하고 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 위주로 식생활을 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각양각색인 채식의 이유를 단정 지을 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채식이 오는지 굳이 분류해보자면 건강의 측면과 신념의 측면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채식주의는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동맥 경화와 성인병을 예방하고, 불필요한 지방 축적을 막아 비만에도 효과적이다. 육류 알레르기에 의한 채식도 찾아볼 수 있다. 육류를 먹었을 때 얼굴과 피부가 가렵고 붉은 반점이 올라오며, 붓는 증상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채식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렇듯 건강을 돌보기 위해 일부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를 자처한다.

또 다른 이유는 신념과 관련 있다. 이 또한 채식주의자마다 다르겠지만, 신념에 의해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의 대부분은 크게 종교적 신념과 윤리적 신념으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은 교리에 따라 육식을 금하는 유형이다. 최근에는 종교적 신념과는 별개로 윤리적 신념에 따른 채식주의가 늘고 있는데, 이를 환경 보호와 동물의 권리 존중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엔 대량소비를 위한 대규모 공장형 축산이 들끓고 있는데, 이는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된다. 목축장을 확보하기 위해 숲을 태우는 건 기본, 축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기 및 수질 오염과 토양 악화는 기후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온실 효과를 키운다. 이러한 환경 파괴를 문제 삼고, 환경 보호를 위해 채식주의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동물의 권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 권리 존중을 위해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이들도 있다. 공장형 축산 시설 안 가축들은 태어나서 도축 당할 때까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공장식 사육장의 거의 모든 가축은 비좁은 공간에서 사육당하고, 풀밭이나 야외의 넓은 땅을 밟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이를테면 달걀의 생산 방식 문제다. 인간의 달걀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닭은 비좁은 공간에서 항상 알을 낳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밖에 무자비한 동물실험, 가축 살처분 등 인간의 욕심이 개입되어 동물권 소멸을 가속화 한다. 이처럼 눈에 띄게 떠오르는 동물권에 대한 부당함을 줄이고자 채식주의를 결정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같으면서도 다른

 

채식주의자라고 다 같은 채식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허용하는 음식에 따라 채식주의의 층위가 결정된다.

 

채식주의자의 유형은 크게 베지테리언(Vegetarian)과 세미 베지테리언(Semi-Vegetarian)으로 나뉘며 채식의 속성에 따라 베지테리언에는 다섯 가지, 세미 베지테리언에는 세 가지의 채식 세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베지테리언

프루테리언 – 허용 음식이 가장 적은 채식으로, 동물뿐 아니라 식물의 생명까지 존중하기에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는다.

비건 - 고기를 비롯해 알, 유제품, 꿀 등 동물에게서 얻은 식품을 먹지 않는 채식으로, 완전히 식물성 식품만 먹는다.

락토 - 고기와 알은 먹지 않으나, 유제품과 꿀은 허용하는 채식이다.

오보 - 고기와 유제품은 먹지 않으나, 동물의 알은 허용하는 채식이다.

락토–오보 – 고기는 먹지 않으나, 동물의 알과 우유 및 유제품은 허용하는 채식이다.

 

세미 베지테리언

페스코 - 육식은 하지 않으나, 해산물·알·유제품은 허용하는 채식이다.

폴로 -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으나, 조류·해산물·알·유제품은 허용하는 채식이다.

플랙시테리언 - 평소 채식을 하나, 경우에 따라 육류나 해산물을 먹는 채식이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 글쎄

 

전 세계적으로 채식주의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채식주의자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졌고 그들을 위한 서비스가 많아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도 채식주의자에 대한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을까? 한국 비건의 동향을 더 가까이 듣기 위해 우리 학교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한 학우를 만나 이야기해보았다.

 

“채식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채식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A 씨는 페스코 채식인이다. 그가 채식을 막 시작할 무렵에는 삼겹살, 목살 등 육류가 곧 음식인 것만 피하면 될 줄 알았지만 알게 모르게 고기가 함유된 식품이 여기저기 많았다고 한다. A 씨는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 먹기엔 시간이 모자라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때 그에게 포착된 것은 바로 ‘참치마요 삼각김밥’.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육류가 포함되지 않아 삼각김밥을 구매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뿔싸, 성분 표시를 보니 쇠고기 분말이 들어있었다.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인 소고기 분말을 첨가한 것이다. 이렇듯 채식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아닌지 겉으로만 봐서 알 수 있는 식품은 한국에 많지 않다. 편의점 제품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한식에 김치, 나물 등이 많아 한국에서의 채식이 수월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외로 고기나 해산물이 들어간 음식이 많다. 프루테리언, 비건과 같이 허용 음식이 적은 채식인들은 김치, 떡국같이 채소만 들어있을 것 같은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한다. 김치에는 새우젓·멸치젓과 같은 젓갈이 들어가고, 고기 고명만 올리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떡국에는 고기·생선 육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채식주의자들의 시야를 좁게 하는 음식이 한국에 많다. 한국에는 확실하게 비건 표시가 되어있는 시제품들이 적기 때문에 마음 놓고 채식을 할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

 

“한국인이지만, 한국보다 외국에서 식사하는 것이 편할 때도 있어요.”

 

유럽 국가로 여행을 다니며 A 씨는 이러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한국보다 밥 먹기 편하구나’라고 말이다. 한국인인데도 불구하고 A 씨가 이렇게 느낀 까닭은, 유럽 식당 대부분에 비건 옵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뿐만 아니다. 동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건 옵션을 제공해 한국보다 식사하기 편할 때가 많다고 한다. 이렇듯 일반 식당에도 비건 옵션이 존재하면 채식인들이 비건 레스토랑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반 식당에 비건 옵션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고, 비건 레스토랑이 있어도 그 수가 많지 않아 채식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 채식 식당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 경제적으로 굉장히 부담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비건 식당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채식연합 추정 전국에 분포되어있는 비건 레스토랑의 수는 약 350~400개다. 많다고 느낄 수 있지만, 넘쳐나는 일반 음식점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또, 비건 레스토랑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 어디서나 비건 레스토랑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음식을 믿고 고를 수 있는 식당이 없어 채식인들은 돈을 내고도 조심스럽게 식사를 해야 한다. 당연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할 때면, 메뉴 선택에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해요.”

 

사람에 따라 식습관이 다른 건 당연한 섭리다. 누군가는 고기를 좋아해 육식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채소와 과일을 좋아해 채식만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채식주의자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바라본다. A 씨는 친구들에게 처음 채식주의를 밝혔을 때의 반응이 시원찮았다고 한다. ‘채식을? 왜?’, ‘야, 그냥 (고기) 먹어’와 같은 태도 말이다. 이제 채식한 지 약 2년이 되어가는 그에게 친구들은 예전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함께 식사하러 갈 때면 A 씨는 매번 고민한다. 혹시 본인 때문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지 못하진 않을까 생각하며 페스코 채식 위주인 메뉴를 완곡하게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듯 주변 지인들에게 식사 메뉴를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한국의 채식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히 채식주의를 밝히는 것이 어렵다. 이러한 사연에서 비건이 한국에서 겪는 고충을 파악할 수 있다. 과거부터 고기를 즐겨 먹은 우리 조상을 따라, 한국인들은 육식을 중요시하며 식탁에 고기가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러한 식문화는 비건에 대한 한국인의 편향된 시선을 낳았다. 사람들 대부분이 고기를 즐겨 먹기에, 고기를 멀리하는 한국인이 거의 없다는 편견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결과로, 채식주의를 하는 소수의 의견이 뭉개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편견은 비건에 대한 무지로 이어진다. 모든 채식주의자는 무조건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생각이 다분해 여러 층위로 나누어진 채식주의의 틀이 무시된다. 결국, 채식인에 대한 근거 없는 깎아내림만이 남을 뿐이다.

 

 

걸어온 길

이렇듯 한국의 채식인이 겪는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렇다면 정말 한국은 채식인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나라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채식인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관련 단체, 학교 등 여러 곳에서 비건의 권리 보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비건 인증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 미국 채식협회(AVA) 인증, 비건 액션 인증, 유럽채식협회(EVU)의 V-라벨 인증처럼 확실하고 규모 있는 비건 인증 시스템을 국내에선 볼 수 없던 것이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원재료부터 제조 공정까지 비건 여부를 공급자에 의지해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정식으로 비건 인증이 가능한 기관이 없었기에 비건 식품 표시 및 광고에 제한이 따랐다. 하지만 2018년 11월 9일 기준 한국비건인증원이 국내 최초 비건 인증기관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믿을 수 있는 비건 산업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비건인증원은 철저한 심사 및 평가를 통해 비건 산업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비건 인증뿐만 아니라 비건 박람회, 비건 플리마켓 등을 열어 비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중이다.

대학에서도 베지테리언을 위한 식당 및 행사를 구성해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려 힘쓰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지난 2010년 학내 채식주의자, 종교적 이유로 육식을 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구내 채식 식당을 개설했으며,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는 채식 뷔페 형식으로 구내 채식 식당이 마련되어 있다.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도 비건을 위한 행사를 연 사례가 있다.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간식 행사에서 비건을 위한 간식을 제공해 채식인 학생들의 행사 참여를 이끌었다. 이처럼 대학에서도 비건 권리 보장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채식협회(AVA, ‘American Vegetarian Association’의 약자), 비건 액션(Vegan Action), 유럽채식협회(EVU, ‘Europe Vegan Union’의 약자)의 V-라벨은 채식주의자들이 동물 식재료 및 동물실험이 포함되지 않은 제품을 안심하고 고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제조사에 소비자 입장을 대신 요구하는 조직이다. 각 홈페이지에서 인증 절차와 로고를 확인할 수 있으며, 비건 관련 레시피, 검증된 기업 등을 알려주기도 한다.

미국 채식협회 : https://www.amerveg.org/

비건 액션 : https://vegan.org/

유럽채식협회 : https://www.v-label.eu/

한국비건인증원 : http://vegan-korea.com/

 

 

걸어갈 길

한국의 채식인 다수가 경험하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그들을 위한 움직임이 많아졌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수두룩하다. 한국비건인증원이 비건 인증기관으로 정식 인정받았지만, 아주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비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즉 인증기관으로 인정받았지 비건이 믿고 소비할 수 있는 재화, 이를테면 비건 인증 절차를 거친 업소나 제품 자체의 수가 아직 적기에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대학가에서도 비건을 위한 서비스를 활성화하지만, 일부 대학에서만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한계점으로 볼 수 있다. 건강, 윤리적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시점에, 학교에서 비건의 권리 보장을 위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대학가의 전체적인 비건 시스템 도입, 더 나아가 모든 학교에 비건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한국의 채식주의자가 걱정 없이 채식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실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의 고충을 직접 들어보았지만, 이는 새 발의 피일 것이다. 세상엔 수많은 채식주의자가 살고 있으며, 개개인이 겪는 고충이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채식인들이 겪는 고충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각 채식인의 고충에 대한 해답에 가까워질 수 있진 않을까?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식이 소수자를 대상화하지 않는다면. 즉, ‘식이 소수자를 배려한다’라는 태도보단 ‘식이 소수자도 우리와 같은 권리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라는 사고를 전제로 그들을 존중한다면, 해답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공생의 왕도인 것이다.

홍기수  rltn03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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