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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유주 동문을 만나다

함축된 은유, 시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드는 문장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읽고 나면 깊은 여운에 오랜 생각을 해야 하는 소설. 전통적인 서사를 벗어난 파격적인 형식과 참신한 내용으로 항상 상반된 평가를 불러오는 소설.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 소설의 틀을 깨는 소설가, 한유주 동문을 만나보았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소설 쓰는 한유주라고 합니다.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주요 작품 목록

달로 (2006)

얼음의 책 (2009)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2011)

불가능한 동화 (2013)

 

 

>선배님의 학창 시절이 궁금해요.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학과 공부보다 동아리 활동과 독서를 좋아하던 학생이었어요. 독어독문학과에 갓 입학했을 때는 독일어를 배우는 것이 처음이라 무척 재미있었어요. 1학년 때는 독일어 관련 수업과 ‘독일문학사’를 재미있게 들었고, 독일 문학 작품들도 많이 읽었습니다. 특히 음악 감상 동아리 ‘짜라투스트라’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동아리 사람들하고 친해지면서 학과 수업에 좀 느슨해졌던 것 같아요. 또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 수업마다 계속 조는 바람에 선생님께 잔소리도 들었어요. 그래서 3학년 때까지는 학점이 정말 낮아요. 가끔 성적증명서가 필요해서 떼어보면 부끄럽습니다.(웃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가 제일 재밌었어요.

 

 

>소설 창작 외에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예창작론’ 수업 강의도 하시고, 책 번역도 하셔서 선배님의 직업을 소설가라고 한정하기 모호하다고 생각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홍익대학교에서는 ‘문예창작론’과 ‘현대문학연습’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현대문학연습이라는 수업은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저로서는 여러 귀한 의견들을 듣고 나눌 수 있어 즐거운 수업입니다. 개인적으로 문예창작론 수업은 조금 더 힘든 것 같아요.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저도 아직 잘 모르는데 수업을 이끌어 나가야 하니까 힘들고, 또 소설가가 되는 데에는 여러 길이 있을 수 있어서 제 방식만 알려드릴 수 없기도 하고요. 그래도 홍익대학교 같은 일반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수업이 개설되면 학생들이 비교적 편하게 들으러 와요. 그래서 새롭거나 이상한 것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더 좋아요. 번역은 당분간 좀 쉬기로 했고, ‘울리포프레스’라는 1인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햇수는 꽤 되었는데 출간된 책은 네 권이네요. 물론 소설은 언제나 쓰는 것이고요.

 

 

>소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볼게요. 2003년, 단편소설 <달로>로 제3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하셨는데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 소설가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문학과지성사의 계간지 『문학과 사회』는 2002년부터 신인 작가를 대상으로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발표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학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자연스레 글이 쓰고 싶어졌는데, 두려움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써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어떻게 쓰는지는 몰랐거든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즈음에 국어국문학과의 문예창작론 수업을 들었어요. 대형 교양강의보다 다른 과 전공 수업이 더 재미있었거든요. 기말과제가 단편소설 한 편을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원고지 84매를 꼭 맞춰야 하고 분량이 넘치거나 모자라면 학점을 안 주겠다고 그러셨어요. 지금은 84매가 그렇게 어려운 분량은 아니지만, 그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84매를 채울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동아리방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며 고민하고 있으니까 친구들이 ‘대사를 써서 늘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소설에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대체 뭘 쓰고 있냐고 묻기도 했습니다.(웃음) 아무튼 어떻게든 마감을 해야 했으니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완성된 과제를 불어불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친한 친구가 읽어보고는 출품을 권유했어요. 그래서 다듬은 원고를 《문학과 사회》에 송부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소설가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문예창작론 수업이 아니었더라도 소설을 쓸 수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두려워서 제대로 못 썼을 것 같아요. 그때는 조금 더 어리고, 잘 몰라서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던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거기다 자기 이름을 걸고 뭔가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걸 그때는 몰랐어요. ‘내가 소설가구나’라는 자각은 더 나중에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데뷔작 <달로>뿐만 아니라 선배님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깼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특히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쓰는 것’이 특징인데요. 선배님의 독특한 문학 세계가 탄생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소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더욱이 한국 근대문학사는 이제 백여 년이 되었어요. 유럽에서 17세기에 완성한 장르를 우리는 뒤늦게 받아들였는데, 그 와중에 한국에서는 아직 모더니즘도 안 끝났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이 끝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소설이 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이야기들이 의아하게 여겨질 때가 있죠. ‘전통적인 서사’라고 할 때 ‘그 전통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게 이야기 중심의 서사라면 제가 할 역할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는 재능이 타고났다면 저도 이야기를 썼을 테지만 저는 타고난 이야기꾼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형식에 가두거나 제한하지 않고 확장하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묵직한 이야기의 힘을 강조하는 것만이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뚜렷한 이야기가 있어야만 소설인 것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야기를 빼고 남은 것들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선배님의 글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가장 독창적인, 일탈적인 글쓰기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에요. 전통적인 소설을 부정하는 작업 방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혹시 미학 대학원에서의 경험과 관련이 있나요?

예술사는 보통 직전 단계의 흐름을 부정하며 나아가잖아요. 소설에도 그런 측면이 있어요. 기존의 소설들을 충실히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이전 작품들을 거부하는 움직임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대단히 급진적이진 않을 수도 있지만요. 예술이라면 과거의 것들을 일정 부분 부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예전에 제가 썼던 것들을 어느 정도 부정하거든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작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에 관한 여러 에세이들에서 과학의 진보 방식과 소설의 방식을 이렇게 이야기해요. 예를 들면 지동설 이후에 천동설은 폐기되었잖아요. 하지만 소설의 경우는 이전의 것이 없어지면서 변화하는 게 아니에요. 저마다 수용하고 부정하는 것이 다르죠. 새로운 소설이 하나 탄생할 때마다 별자리 하나가 늘어나는 식으로, 다 같이 환하게 하늘을 밝힐 수 있겠죠. 저는 이 설명이 많이 와 닿았어요.

 

또 대학원에 관해서는, 그때는 취직을 하면 소설을 못 쓸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 쓰기와 완벽하게 관련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느슨하게 관련이 있는 공부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었습니다. 미학이라는 단어가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공부였지만 그래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에 이야기가 없다는 게 선배님 소설의 특징인데, 이야기 없는 소설을 어떻게 구상하는지 잘 상상이 안 가요. 선배님의 소설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탄생하나요? 또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소설을 창작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라는 단편이 있어요. 왼손은 글을 쓰게 하는 왕, 오른손은 명을 받들어 글쓰기를 실행에 옮기는 필경사로 작가를 둘로 나눈 이미지를 생각하며 썼어요. 또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이라는 단편에서는 자가당착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붙박인 인물에 관해 썼어요. 기본 골격은 가정폭력을 당하던 여자가 집을 뛰쳐나가다 머리채를 잡히는데, 실제로는 1초 정도밖에 흘러가지 않은 찰나의 순간을 10페이지 분량으로 풀어낸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는 아주 짧은 어떤 시간을 소설의 시간을 활용하여 확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어요. 가정폭력에 시달려서 도망치려 하는 인물이 할 법한 이야기는 아주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상적인 시간을 소설 속에 똑같이 가두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식으로 ‘무엇을’보다는 ‘어떻게’에 더 중점을 두고 작업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소설의 형식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후회되는 일도 많아요. 주변에 소중한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세심하게 관찰해본 적은 거의 없고 너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있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이제 나를 그만 써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죠.

 

 

>앞으로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으신지, 또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좋은 소설가가 되고 싶고, 좋은 삶을 살고 싶어요. ‘좋다’라는 말이 뻔하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사실 좋게 된다는 게 아주 어렵잖아요. 소설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한때 되게 쓸데없는 고민을 한 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 ‘손등의 각 부분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이었어요. 심지어는 비가 내릴 때 빗방울 하나하나의 이름에 대해서도 고민한 적도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적합한 단어나 표현을 찾지 못해 뭘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를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런 애매한 것들에 해당하는 단어를 꼭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또, 이름 붙어있는 것들도 이름이 그것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잖아요. 내가 ‘한유주’라고 불리고 있지만 ‘한유주’라는 이름이 나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좋은 작품은 지금까지 애매하거나 잘 보이지 않거나 설명되지 않았던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 이름이라는 것이 한 인물이나 사물의 모든 구성요소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다소 거창한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가가 좋은 직업인 것이, 돈은 잘 못 벌지만 평생 할 수 있고 매일 할 수 있어요. 어쨌든 삶을 살아나가는데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살아야 하잖아요. 글쓰기가 좋은 삶을 지향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동료 작가들과 책을 주고받는 것도 좋고요. 또 책을 매일 읽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도 좋아요.

 

 

>선배님과 같이 소설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순서를 매기자면 책 많이 읽기, 그다음엔 글 많이 써보기, 세 번째는 부차적인 것들부터 생각하지 않기에요. 책을 많이 읽고, 따라 써보기도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요새 바빠서 잘 지키지는 못하지만 저도 의식적으로라도 하루에 조금씩 책을 읽으려고 해요. 또 두려움을 갖지 마시고 그냥 써보세요. 하다 보니 되는 것도 있거든요. 일단 좋은 글을 많이 쓰시고 그 뒤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은 조금 덜 중요하게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홍익대학교 후배들한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참, 읽어보면 좋을 선배님의 소설도 하나 추천해주세요.

많이 돌아다니시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피상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의외로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나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뭐,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미리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전에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닌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미리 각본을 쓰려고 하지 마세요.’ 좋은 쪽으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고민하느라 행동을 미루지 말고 일단 뭐든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또 제 소설 중에 뭘 하나 꼭 읽어야 한다면 뭐가 좋겠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에게는 비교적 최근에 발표한 ‘불가능한 동화’라는 장편을 추천해 드려요. 그나마 좀 재밌고 쉽게 읽을 수 있고, 제가 특히 오래 고민하고 오래 쓴 소설이기도 합니다.

김지연, 임유빈  letsplay57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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