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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價紙 (무가지)

무료로 배포되던 신문을 일컫던 말, 무가지. 하지만 이제는 무료로 배포되던 신문은 많이 사라졌다. 대신 시대가 변화하면서 '무가지'라는 말은 신문 외에 다른 인쇄물의 영역까지 넓혀졌다. 잡지, 학술지 등 더 넓은 분야에서 무가지가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료로까지 배포되면서 사람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무가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떻게 생산되고 있을까?

 

 

무가지를 발견하다.

 

무가지(無價紙)는 유가지(有價紙)의 반대말로, ‘가치를 내지 않고 무상으로 제공하는 편집물’로 해석될 수 있다. 많은 가구에서 신문을 구독했던 약 15년 전만 해도, 무가지라 하면 보통 신문사에서 경쟁을 위해 구독 가구에 무료로 제공하는 부가적인 편집물을 말했다. 하지만 신문사에서 홍보를 위해 무작정 발행하는 무가지에 대한 환경적인 비판이 들려오고, 종이 신문의 구독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무가지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 생소한 말이 되었다.

 

지면을 이용해 편집물을 제작하는 출판업계의 사정이 힘들어지면서, 무가지를 제작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무가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무가지를 해석하여 무언가를 전달하려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편집물의 중요성을 믿는 젊은 시각을 가진 학생들, 편집자들, 독립 출판계 종사자들이 무가지가 가진 무상 제공과 자유로움이라는 장점을 살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 되어 무가지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본다. ‘각박한 출판 현실 속에서도 발행인의 독특한 시선을 담아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무상 제공 편집물’로 해석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무가지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까. 무가지는 무상으로 발행되기에, 다른 출판물과는 달리 누군가를 100% 충족시킬 의무가 없다. 종종 무가지가 다루는 주제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큰 제제가 없는 편이다. 이처럼 무가지에서는 발행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장르와 종류가 다양하다. 생김새도 마찬가지이다. 신문사나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편집물이라면 신문이나 책과 닮은 모습을 하기 마련이지만, 무가지는 예산이 얼마나 투입되는지에 따라 종이의 질, 컬러 출력 여부, 페이지 수, 판형 등이 달라진다. 예산 문제를 떠나 무가지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실험적인 생김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주제도, 모양도 다양한 무가지. 우리 주변에서 살펴볼 수 있는 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둘러보자.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무가지를 읽어보고 싶다고 해도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홍대는 출판 사업이 발달한 곳 중 하나이므로 독립 책방이나 카페와 같은 많은 곳에서 무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가판대에 여러 뭉텅이로 꽂힌 출판물을 발견하고 ‘이게 무가지인가?’하는 생각이 든다면 당당히 사장님께 여쭤보자. 이거 가져가도 되나요?

 

 

무가지를 읽어보다.

 

<톺>, 한글꼴연구회 /교내 시각디자인과 소모임 한글꼴연구회에서 격월간 발행하는 타이포그라피 무가지이다. ‘톺’은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는 순우리말 ‘톺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한글꼴연구회 부원들이 주축이 되어 타이포그라피라는 큰 틀 안에서 매 호의 주제를 정하고 있다. 인쇄업계에서 쓰이고 있는 일본어들, 으후루꾸 현상 등 가벼운 주제로 시작해 타이포그라피의 중요한 부분을 짚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출판공동체 편않 /whatreallymatters의 우수콘텐츠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제작된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는 기존 출판의 권위적, 퇴행적 관행에 의문을 던지며 시작한 기획으로, 0호, 1호, 2호까지 제작되었다. 독립출판, 에디터 십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생각들이 다양한 레이아웃으로 담겨있다. 출판과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책’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긴 글을 담은 출판물이 아닌, 조각나 있지만 편집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엮여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인상적이다.

 

<월간 이리>, 이훈보 /상수역 부근 위치한 이리 카페에서 부지런히 발간되고 있는 월간 무가지이다. 무가지를 매월 발행하는 것은 힘든 일일 텐데, 2011년부터 현재까지 매월 꾸준히 발행된 점이 대단하다. 이렇게 장수하는 무가지가 있을까. 그림, 사진, 음악, 영화, 여행 등. 다양한 주제가 서슴없이 엮여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월간 이리는 흑백으로 발간되고 있고, 매월 표지의 일러스트와 폰트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 그 나름의 소소한 매력도 있다.

 

<Cling>, 이준영 /<Cling>은 2018년 12월 첫 발간된 따끈한 무가지이다. 창작자와 소비자 간의 갭이라는 주제로 발행된 1호는,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A2 정도의 큰 판형의 신문 느낌으로 제작되었지만, 영어로도 번역되어 있고, 웹사이트도 운영되고 있는 점이 있는 점이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Pavourite>, 홍성모 /반려동물에 대해 다루는 무가지이다. 5년간 지속되어 발행된 것이 인상 깊다. 매월 반려동물과 그 주인에 대해 소개하고, 유기견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다. 끝 페이지쯤 유기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 점이 무가지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하다.

 

<스트리트h>, 정지연 /홍대앞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무가지이다. 현재 100호가 넘게 발행될 만큼 긴 시간을 홍대와 함께했다. 매 호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담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FEATURE, ROOKIE, THINK&TALK, OPEN STUDIO, FOOD, SPACE, OPINION, CULTURE CALENDAR 등으로 구성된 목차에 따라 홍대앞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월 생생한 홍대의 역사를 담아주는 고마운 무가지.

 

<[ ]의 요일>, wrm 기획단 1기 /whatreallymatters에서 운영하는 기획단 1기가 발행한 무가지로, 홍대앞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요일 관련 워크숍에서 얻은 그래프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무가지의 내용은 다소 설명적이지 않고 모호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들의 그래프를 보며 홍대앞에서의 일주일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더 가까이 만나본 무가지.

 

무가지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무가지 제작자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분들

<[ ]의 요일>, wrm 기획단 1기

<Cling>, Cling team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편않

 

#무가지 제작을 결심하게 된 이유

wrm 기획단 1기 사소한 생각이지만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무가지를 제작하게 되었다. 말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지만 막상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느꼈었다. 이럴 때 누군가 나서서 그것을 공유해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홍대앞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블랙홀에 빠져들 듯이 제작을 결심하게 되었다.

 

Cling team 대학에 입학해서 학교에서 배포되는 무가지를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었고, 언젠가는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친구를 만나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 작업을 하는 한 명은 작업할 이미지를 보여줄, 글을 쓰는 한 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플랫폼이 필요했다. 스마트폰이 아닌 종이 무가지를 생산하게 된 것은, 올드한 종이 잡지만의 감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제작비, 출판공동체 운영을 위한 자본 해결을 위해 유가지로 진행할까 하는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점차 자본이나 시장주의가 멈추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보자는 의견을 모아 무가지 제작을 결정했다. 무가지를 통해 제작자, 서점, 독자 모두가 더 큰 그림을 그렸으면 했다. 책을 유통하는 방식, 경험하는 방식을 다르게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작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wrm 기획단 1기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되어 제작되었기 때문에, 만들면서 ‘과연 이 내용과 디자인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가져다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 ]의 요일>은 글 없이 이미지적으로 워크숍 결과물을 담은 제작물이라 더욱 그랬다. 실질적인 제작 과정에서도 그 고민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다량이 아닌 소량 제작이었기에 샘플을 받아보지 못하고 곧장 300부를 받아 보아야 해서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받을까 많이 걱정했다. 다행히,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던 처음 받았을 때의 쾌감과 스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Cling team 큰 돈 들이지 않고 재미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지만, 무가지 제작을 막상 해보니 최소한의 노력을 들이더라도 본업과 병행하려니 꽤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누가 돈을 대주지도 않고 판매 수익도 없어서 자비로 인쇄비, 원고료, 촬영비 등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취미 정도로 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두 달에 한 번씩 발행하다 보니 쉴 틈이 없다. 본업을 하지 않는 주말에 기고 요청을 하고, 원고를 편집하고, 직접 영어로 번역하고, 촬영 구상을 하고, 모델을 섭외하고, 스튜디오를 대여해 촬영을 하는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단정한 디자인의 현재의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도 좋지만, 사실 제작비를 계산할 때는 현실적으로 망설여진다. 인쇄물에서 조금만이라도 변주를 주려고 하면 제작비가 많이 오른다. 다만 이런 고민을 무가지의 한계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배포와 그 이후

wrm 기획단 1기 배포할 곳을 물색하고, 동의를 얻고, 협의한 부수대로 배포를 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택배를 이용하기에는 그것대로 돈이 나가는 일이라 무거운 무가지 더미를 짊어지고 끙끙대며 이곳저곳 떠돌기도 했다. 그래도 힘든 배포 과정이 지나면 비로소 독자들과 만나볼 수 있다. 한 번은 <[ ]의 요일>을 구경하는 손님 바로 옆에서 몰래 이야기를 엿들은 적이 있는데, 필터링 없는 솔직한 비판과 감사한 칭찬을 들을 수 있어 신선한 경험이었다.

 

Cling team 자주 가는 카페, 문화공간, 독립서점 위주로 배포를 하였다. 무가지인 덕분에 수익 분배 같은 구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배포에는 부담이 덜했다. 배포처에 다시 방문하여 무가지가 얼마나 소진되었는지 확인을 해보았는데, 방문객이 많은 곳은 빠르게 소진되었고 그렇지 않은 곳은 아직 많이 쌓여있다. <Cling>의 기고자들이 기고를 통해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다. 제작 과정에서 참여하는 사람이 재미있게 하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일까. 또 일을 벌이면 모르는 사람과 우연한 기회로 연결되는 느낌도 재미있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서점들은 한정된 공간을 운영하다보니, 팔아도 이익은 나지 않고 공간만 차지하는 무가지를 서점에 입고할 수 있을지 막연한 걱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편않과 독립 서점들이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해서 입고를 요청했고, 걱정과는 달리 대부분의 서점에서 흔쾌히 입고를 결정해주었다. ISBN도 없고 가격도 없는 무가지의 특성상 ‘휘발’된다는 느낌이 배포 후에도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어떤 독자에게 얼마나, 어떻게 읽혔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다행히 서점 쪽에서 이왕이면 출판 쪽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전달되도록 신경써 주시기도 했다. “이게 왜 무가지냐.”, “다음 호부터는 유가지로 전환해도 될 것 같다.”, “구하고 싶어 서점에 갔는데 이미 재고가 없다고 한다.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등의 반응이 있었고, ‘무가지’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다음 무가지는

wrm 기획단 1기 whatreallymatters에서 열린 워크숍 결과물을 가지고 제작된 무가지이기에, 아쉽게도 다음 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번 제작을 통해 지속적으로 홍대앞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무가지를 제작해볼 의향이 있다.

 

Cling team 2019년 2월에 발행될 2호의 주제는 ‘학계와 ___ 사이의 간극’이다. 제작자들이 학계에 있으며 느꼈던 여러 가지 괴리감을 다루게 되며, 강의를 하는 필자, 박사과정 중인 필자가 참여한다. 대학원생이 많은 학교 내에도 배포하고자 하니, 연구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미래에 학계에 몸담을 많은 사람들에게 <Cling>이 전달되었으면 한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기획’과 ‘투고’라는 두 파트의 구성은 유지할 것이다. ‘기획’에서는 언제나처럼 출판계 내에서 주목할만한 질문을 다룰 것이고, ‘투고’에서는 글을 투고한 저자와 함께 출판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조금만 더 근처를 돌아본다면, 여기 무언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무가지가 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무가지도, 어떠한 공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그에 대해 소개하는 무가지도, 어떤 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향유하고자 탄생한 무가지도,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지면 위에 펼친 무가지도 있다. 각박한 출판 현실 속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절실히 전하고자 하는 무가지들에게 한 번 눈길을 줘보는 것은 어떨까.

 

이민지  leereum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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