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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종 관찰기

들어가며.

 

신기한 숲을 보았습니다. 높다랗고 요상한 종류의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그 숲의 나무들은 어떤 식물도감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회색 빛깔의 각진 나무들은 그 모양만큼이나 반듯한 위치에서 자라났습니다. 이 나무들은 성미가 급한지, 아직 계절이 다 가려면 한참 멀었는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색깔을 바꾸고는 합니다. 새벽녘에는 회색빛을 유지하던 것들이 낮이 되면 햇빛을 닮아 부서지다 밤이 되면 오색찬란한 빛깔을 막 뿜어내고는 하는 것입니다. 

 

숲을 파헤치고 들어가면 펼쳐지는 놀라운 세상이 있습니다. 아직도 거기서 본 이상한 동물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양새는 새도 닮았고 원숭이도 닮은 것이. 분명 동물도감에서 봤던 ‘인간’이라는 동물과 쏙 빼닮았습니다. 근데 도감에서 본 ‘인간’이랑은 너무 다른 것입니다. 두 팔을 휘저으며 두 발로 걷는 것은 분명 같은 동물인데, 다른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나는 이 동물들을 ‘기묘한 인간종’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첫 번째로 발견한 이 ‘기묘한 인간종’의 특이한 점은 자기 영역이 참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무리 지어 사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다니기를 좋아하고, 다니는 동안도 자신의 영역만큼은 확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이한 점은 다들 이상하고 네모나게 생긴 돌덩이를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근데 저 돌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좀 비범한 돌인 것 같습니다. 돌덩이와 대화를 하는 등, 인간종은 그 조그만 돌 하나에 참 많은 것을 기대는 것 같았습니다. 이 돌과 인간종의 관계는 너무 기묘해서, 따로 더 길게 얘기할 때를 마련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묘한 것은 정말 도무지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분명 동물도감에서 보았기로 이 동물은 야행성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이‘기묘한 인간종’은 나무가 요상한 빛을 내기 시작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처럼 잠들지도 않고 무언가 합니다. 그럼 아침을 살지 않느냐고요? 아뇨 그것도 물론 아닙니다. 이 희한한 인간종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활을 합니다. 분명 잠들지 않는 동물들은 무언가 두려워하는 더 상위의 포식자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간종도 두려워할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요?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 정도입니다만 이 기묘한 인간종의 행동은 더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관찰기

 

거대한 숲에도 질서가 있다면 있나 봅니다. 산자락을 따라 요상한 나무들이 줄지어 자라 있는데 열마다 또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산 이름에‘길’자를 붙여 각 열의 이름이 정해집니다. 이 기묘한 인간종의 이상행동을 보았던 그 줄기의 이름은‘와우산로’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인간종을 한 번에 보기는 쉽지 않은데, 나란히 서 있던 인간들이 네 개의 불이 켜지자 모두 다 방위표시를 살짝 돌려놓은 듯한 그 불빛을 향해 일제히 걸어나가는 것입니다. 기묘한 일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네 방위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개체들. 금방이라도 피바다가 될 것처럼 달려든 개체들은 순식간에 뒤섞여 하나의 멸치 떼와 같이 되었습니다. 걸치고 있는 이상한 털 뭉치에 난 작은 구멍에 두 손을 욱여넣고 맹목적으로 앞을 향하는 발걸음.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모습이었습니다. 스쳐 가며 서로 염탐하기 바쁘지만 그런 눈의 사정은 전혀 모른다는 듯 도도하게 앞으로 내딛는 몸짓은 정말 고등 동물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다운 행동이었습니다. 눈과 걸음이 각기 다른 일을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 말이지요. 한차례 크게 뒤섞인 후, 이들은 제각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슬슬 무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은 개체들은 아까보다 조금은 누그러진 듯했습니다. 그런데도 경계심은 여전한지 스쳐 가는 개체들이 일정한 거리보다 좁아지거나,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예상 범위에 없던 개체가 나타나면 자석에 밀려나듯 뒷걸음질 치거나 급하게 반대 방향으로 트는 모습이었습니다. 일정 거리가 확보되고 난 후에는 다시 아무 일도 없던 듯 자기 갈 길만 가고는 했습니다. 꼭 자신의 반경 몇 미터 정도에 원을 그리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이 동물들은 영역 싸움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가는 개체의 영역은 함부로 침범할 수 없고, 다른 개체가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일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갑자기 속도를 올려 다른 개체를 앞지르거나 반대로 속력을 낮추는 동물들은 분명 영역 다툼에서 이기거나 진 쪽일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동물들의 목적지는 사냥감이 있거나, 더 넓은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곳 정도이겠군요.

 

 

두 번째 관찰기

 

인간종의 세계에서 지낸 시간도 꽤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이 세계에 인간종보다 더 신기한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아마 모든 개체가 하나씩 지니고 다니는 돌덩이일 것입니다. 이 돌덩이의 능력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지금까지 발견한 효능만 해도 손에 다 꼽을 수도 없는 정도입니다. 우선 인간종들은 걸어 다닐 때 모두 이 돌덩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데도 부딪히지 않고 기가 막히게 서로를 피해 다니는 것을 보면 아마 저 돌덩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돌이 더 영특한 놈이라면 자신의 영역 안에 다른 개체가 침범하는지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특한 재능을 가진 덕인지, 돌덩이는 인간종에게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단순한 사냥 도구로만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나 봅니다. 이후 돌덩이와 대화하는 인간종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돌덩이를 납작하게 붙어있는 귀에 갖다 대기도 하고, 아예 다정하게 마주 보고 대화하는 인간종도 있습니다. 이 경계심 많은 동물에게는 저 조그마한 돌덩이가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인가 봅니다. 영장류의 최상위 계층이 고작 작은 돌멩이 하나에 울고 웃고 한다고 생각하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잘 이해하기 어려운 돌덩이의 효능을 보았습니다. 인간종들이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이 돌덩이를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모두 비슷한 얼굴, 비슷한 높이로 돌덩이를 쳐들고 잠깐 가만히 돌덩이를 바라보면 얼마 후 돌덩이가 기침하는 것 같은 소리를 냅니다. 돌덩이에 그런 생명력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아무튼, 그 이상한 행동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큰 위험을 무릅쓰고 개체 몇몇에게 직접 접근을 해본 결과, 그 행위는 인간종의 언어로‘사진을 찍는다’고 부른답니다. 꼭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력의 한계가 올 경우를 대비해 이 돌덩이가 대신 기억하게 하는 뭐 그런 효능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개체 자신들의 얼굴을 남기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용모가 가장 화려한 시기를 골라 남겨두고, 때가 되면 널리 알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제야 이해가 조금 갑니다. 역시 모든 동물은 특별히 구애하거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용모를 단장하고 뽐내고는 하는데 그것조차도 이 돌덩이의 도움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굳이 돌덩이를 통하는 이유가 조금 의아해 더 알아보았는데, 돌덩이가 단순히 주인 개체 하나와 친분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덩이들끼리도 나름의 연결고리가 있는 듯해 보이더군요. 각 돌덩이는 주인 개체와 이야기한 내용을 혼자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다른 돌덩이들에게도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쯤 되면 정말 돌덩이가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돌덩이들이 공유하는 이야기 속에 인간 개체들에게는 정말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내용도 많다는 것입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이 나온 그‘사진’이라는 것도 함께 공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용모를 과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저렇게 많은 모습을 노출하는 것은 분명 다른 포식자가 더 있을 때 위험한 일입니다. 제아무리 이‘기묘한 인간종’이 최상위 포식자라고는 하지만, 자신들 무리 안에도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데 저렇게 자신의 신분을 쉽게 노출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세 번째 관찰기

 

동물도감에서 보기를 무려 100년 가까이 사는 인간은 철저하게 햇빛을 보고 활동하며 밤이 오면 잠듭니다. 숲에도 밤은 오고 이 동물들에게는 모두 어딘가 숨어들 은신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숲은 밤을 존중하지 않는지 짙은 어둠을 깔보기라도 하듯 오색 찬란한 빛깔을 막 내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그런 숲이 익숙한지, 눈 아픈 빛깔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더욱 고개를 빳빳이 들고 분주하게 은신처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향합니다. 꼭 저 빛에서 힘을 얻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동물들을 연구하는 이상, 동물들을 따라 보기로 했습니다.

 

멀리서만 보던 숲을 더욱 파헤쳐 안쪽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 더욱 깊은 곳에 사는 동물 중에는 아예 밤을 지새우는 동물도 허다했습니다. 밤을 지새우고도 멀쩡할 수 있는 동물이 존재한다는 말일까요. 이 동물들의 행동거지, 모습 하나하나에 더 집중해 보았습니다. 붉은 줄기가 비치는 티미한 눈빛. 더 이상의 할 말이 떠난 자리 남은 굳게 닫힌 입. 거무죽죽한 얼굴은 이상한 빛을 받아 회색 빛깔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 이 빛은 또 무슨 빛이냐고요? 아마 본디 햇빛을 받아 사는 동물이 햇빛이 없으니 대신 만들어 받는 빛인 것 같았습니다. 그 빛도 여러 가지인데 천장에 달린 빛도 있고 돌덩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더 커다란 놈을 손 닿는 거리에 하나씩 펼쳐두고 거기서 나오는 빛을 쪼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여러 종류의 빛을 비치해 두었다지만, 그 세기가 태양 빛만 못한지 모두 피죽도 먹지 못한 것처럼 축 늘어진 채 시선만 커다란 돌덩이에 고정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았지만, 해바라기들은 어쩐지 많이 시들어 있었습니다. 잘 보니 작은 돌덩이를 만질 때보다 큰 돌덩이를 만질 때 손이 더욱 분주한데, 지나치게 눈이 부신 돌덩이에 홀린 눈과 눈을 따라 재빠르게 튕기는 손가락은 꼭 주문에 걸린 것만 같습니다.

 

글쎄요, 도대체 무슨 주문에 걸리면 본능을 거스르면서까지 밤을 지새울까요. 본능을 거스른 대가로 이들은 병을 얻은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면 병에 걸려 밤을 지새우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요. 혹시나 병이 옮을까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무슨 병을 얻어 밤을 지새우게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을 한 후 돌아온 답은‘글쎄’였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이 영특한 동물도 모르는 병은 그들도 모르는 새 그들 몸속에 침투해 세포 하나하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자기 몸이 썩어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인간종은 저 돌덩이만 바라보다 생을 마칠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지내는 것을 보면‘기묘한 인간종’의 수명은 책에서 본 인간의 정도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혹 오래 살게 된다고 해도 자기보호 본능을 잃은 동물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할지는 저도 차마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이 수명과 맞바꾸면서까지 얻으려고 하는 무언가는 저 돌덩이 안에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도 아닌 무언가가 또 있는 것일까요? 아마 이들은 스스로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아니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본능이 두려운 그들이 찾는 무언가는 분명 그들을 동물이 아니게 만들 것입니다. 포유류 인간이 아닌‘기묘한 인간’으로 말입니다.

 

마치며

 

나는 아직도 그 세계에 다녀온 일이 생생합니다. 워낙 기묘한 세계였다가 보니 자꾸 이 세계에 지내면서도 그 세계의 환영을 보고는 합니다. 내가 인간종의 병에 옮기라도 한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더욱 정신을 똑바로 하고는 합니다. 나는 그들을 멀리서 지켜본 한 마리의 동물일 뿐입니다.

 

관찰기를 마무리하느라 제대로 잠들지 못한지도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잠시 바깥 공기를 마시기 위해 오랜만에 이곳을 나섰습니다. 가끔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있음을 느끼며 나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는데, 계단을 내려가면 관절 깊은 곳이 아릴 때가 그때입니다. 통증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는 버튼을 누르는 쪽을 택했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면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데, 나를 저 아래 땅까지 내려주는 기특한 친구입니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가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앞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때 반대편에서 다른 동물 한 마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동물도 나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내가 놀라서 뒷걸음치자 그 동물도 흠칫 놀라며 뒤로 점점 물러났습니다. 나를 경계하며 거리를 벌리는 모습. 철저하게 자기 영역을 확보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 동물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붉은 줄기가 올라온 티미한 눈과 거무죽죽한 얼굴. 그것은 분명‘기묘한 인간종’이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이를 텐데 벌써 퇴색한 낯빛을 보니 시간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겠군요. 마침 그 인간종 바로 뒤로 시계가 보입니다. 그런데 저 시계는 고장이 났나 봅니다. 초침이 반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고장이 났다기보다는 차라리 이상합니다. 8자를 제외하고는 숫자가 모두 반대입니다. 시계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앞으로 내딛을수록 인간종도 점점 나를 향해 다가오다가 갑자기 나는 반짝이고 매끈한 벽에 부딪혀 버렸습니다. 그 순간 인간종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방 안에는 나 뿐이게 되었습니다.

주예린  jlin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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