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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 다름의 역사

인간, 그 탄생과 함께 다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끊임없이 구분해왔다. 인간 사회에서 ‘다른’ 존재는 어떻게 인식되었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1. 다름을 바라보는 인간의 역사

인류의 시작부터 ‘다름’은 존재했다. 처음에는 외모, 체격 등 단순한 외형적 특징으로 다른 존재를 구분했고, 점차 종교, 정치적 성향, 인종, 국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무리가 구분되었다.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인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숭배’이다. 인간은 일반적인 무리보다 우월해 보이는 존재를 자신과 동일한 일원으로 보지 않는다. 대개는 그를 한 단계 위의 존재로 인식하고 추앙한다. 이는 대부분 ‘하늘, 신’과 연관하여 그 존재를 인식하는 경우인데, 그 예로 과거에는 머리색, 눈동자 색 등이 특이하거나 행동이 특이한 여자아이를 ‘신이 내린 자’로 여겨 그를 높이 추앙하고 귀 기울였다. 혹은 나라를 세운 왕조에 신화를 부여함으로써 그의 전쟁을 정당화하고, 우월함을 부각하여 그 권위에 대한 도전을 차단하였다. 이를테면 고조선 신화에서 환웅은 하늘을 다스리는 신 환인의 아들로 바람, 비, 구름을 다스리는 세 신하를 거느리고 지상에 내려와 고조선을 건국한다. 즉, 고조선의 건국은 하늘의 뜻이었고, 그 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 존재였다는 신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심은 것이다.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는 존재에 대해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두 번째, ‘차별과 소외’이다. 인류 역사에서 다른 존재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숭배가 아닌 차별과 소외였다. ‘우리’보다 약해 보이거나 괴상해 보이는 존재에 대해 사람은 그를 배제하고자 한다. 원시 시대에는 왜소한 체격 혹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지 않고 버렸다. 중세 시대에는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 혼자 사는 여자라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했다.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끔찍한 학살을 당했으며,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는 단지 정치적 성향이 지배층과 다르다는 이유로 인해 수천만 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탄자니아에서는 현재까지 백색증(알비노) 환자를 ‘zeru zeru’라고 부른다. 유령이라는 뜻이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악마, 유령, 짐승으로 취급하며 기피하거나 혐오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백색증 환자의 시체를 부와 권력을 불러오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알비노의 머리카락은 물고기가 잘 잡히게 하고, 손과 피부는 장사가 잘 되게 한다. 주술사는 알비노의 뼈와 피부로 약을 만들어 만병통치약이라고 판매한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미신이 퍼지면서 알비노 환자의 무덤이 파헤쳐지는가 하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다르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자연재해나 전염병보다도 위험한 존재였다.

 

2.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를 차별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끊임없이 다른 존재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걸까?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학설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본능 깊이 내재한 원초적 반응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두려움에 기인한 원초적 본능 :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해 큰 두려움을 느낀다. 어떤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 존재가 가진 위험성이나 자신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을 모른다는 것이고 이는 본인의 생존 가능성과 크게 연관된다. 즉, 무지한 존재에 대한 공포라는 감정은 생존을 위한 뇌의 원초적 반응이다. 공포를 느끼면 대다수의 동물은 그 무리와 멀어짐으로써 안전을 확보한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종(種)에게만 공포를 느끼는 대다수의 동물과 달리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도 다른 점을 인식하고 공포를 느낀다. 이때, 인간은 공포를 느끼는 존재로부터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즉 자기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인간’에 대해 차별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일반적인 인간 무리와 다른 외모를 가진 존재를 ‘악마’ 혹은 ‘재앙을 일으키는 자’로 인식하여 추방하거나 죽이는 일이 빈번했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인지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도 인간의 본능 깊숙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과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공포의 대상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2) 무리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 :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 인간은 가장 약한 존재였다. 강한 이빨도, 두꺼운 털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도 인간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고도의 사회성 덕분이었다. 인간은 오랜 기간 무리를 지어 고도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무리가 해체된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무리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위험한 짐승도, 외부의 적도 아닌 무리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일원이었다. 내부의 규율이 무너지면, 그 단체는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리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그 집단의 존속을 위협하는 일원을 걸러내는 행위를 지속해왔다. 이를 통해 무리 내 위험 요소를 사전에 예방하고, 집단의 규율도 지킬 수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의 도편 추방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실제로 무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없더라도 이를 모색하는 경우가 있다. 그 집단 내 혼란을 잠재우고 단결시키기 위한 정치적 행위이다. 집단에서 다른 존재(혹은 집단)을 ‘우리’와 분리하여 구별함으로써 그 집단은 결속력이 강화된다. 이 결속력 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배척 행위를 행하는 것이다. 과거 나치나 KKK(백인우월주의단체), 트럼프의 이민자 차별 정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누군가를 배척함으로써 우리는 더욱더 끈끈해진다. 차별은 비도덕적일지라도 강력한 정치 효과가 있다.

 

3) 뇌 작용에 기인한 호르몬의 본능적 반응 : 

무언가를 괴롭히는 행위는 그 자체만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부도덕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행위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뇌는 그렇지 않다. 타인을 괴롭힐 때 뇌에서는 그 어느 행위를 할 때보다 많은 양의 도파민이 분출된다.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우리의 뇌는 존재감과 희열을 느낀다. 이는 일종의 향사회성의 표출로 인간의 무리 행동과 연관된다.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것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때 뇌에서는 도파민을 방출함으로써 집단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를 내가 배척했다는 정의감, 승리감을 고취하도록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차별을 합리화시키는 뇌의 작용이 발발할 때 우리는 양심적 가책을 덜고 이성적 욕구가 마비된 채 거리낌 없이 차별을 행한다. 이는 특히 무리 속에서 행할 때 더욱 강력해진다. 어린아이들이 한 아이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행위가 이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적 판단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괴롭히는 행위의 부도덕성은 인지하지 못한 채 종종 괴롭히는 행위 자체에 희열을 느껴 이를 행하곤 한다.

 

3. 이해와 존중,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전히

과학과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곳에서 다른 존재에 대한 숭배는 사라져 간다. 이제미지의 존재는 인간에게 공포가 아닌 탐구의 대상이다. 21세기, 우리 사회는 대체적으로 인권이 보장되고 ‘존중과 이해’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인종, 국적, 신체적 장애 등의 이유로 나와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치적 행위로서, 혹은 본능적 행위로서 차별을 행한다. 은연중에 다른 존재는 여전히 곳곳에서 차별을 받는다. ‘짱깨, 쪽바리, nigger, 불구자, 화냥년’ 등 이곳에는 아직까지 다른 존재를 낮잡아 이르는 단어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선진국, 후진국에 대한 인식, 인종에 대한 선입견.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를 무리에서 찾아낸다.

다름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뇌를 개조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나 사이의 다른 점을 찾아내고 비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어쩌면 정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차별적 행위를 인간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다르다는 것을 알아도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존재를 다르게 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이상적인 방향일 것이다. 그간 인간 사회에서 다른 존재를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해 왔는지, 다름을 인정하지 않 음으로 인해 수많은 존재가 얼마나 끔찍한 방식으로 인간 역사에 기록되어 왔는지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혹시 또 같은 역사가 기록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미림  mllee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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