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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modern: 역사의 끝에서-다음을 쟁취하다.

모던: 요즘 미술관만 가면 참 혼란한작품들이 많네.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포스트 모던: 개성들이 좀 넘치죠. 나름 신선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모던: 길 가다 주운 쓰레기와 벽 낙서가 미술이라는 건가? 그놈의 포스트 모던이뭔지... 난 도통 모르겠네. 아무거나 다 미술이 된다는건가? 아무나미술을 한다고 설치니 더 이상 발전이 없지, 말세야 말세...

 

1. Post-Modern

1) 모던의 무덤에서 자란 포스트모던

유일하고 옳은 것만을 믿던 시대. 신이 쌓아 올렸던 시대는 그 자리를고스란히 이성에게 내어주며 막을 내렸다. 신은 죽었지만,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은 곧 종교의 권위를넘어섰다. 과학을 무기로 내세운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는 같은 인간 안에서 더 이성적이고 온전한 인간을 가려냈고, 그렇지 못한 모두를 ‘불온한 존재’로 내몰았다. 모던은 의심의여지가 없는 완전한 이상에 대한 믿음으로 세운 시대였다. 이상을 향한 발전만이 계속될 거라고믿던 1960년 어느 날, 꿈에 부풀었던 모던은 불온한 존재들의 습격을 받았다. 모던의 논리로 설명되지 못한 수많은 불온한 존재들은 한 곳만을 바라보던 뻣뻣한 모던을 땅에 묻었다.

 

2) 미술, 모던의 탑을 무너뜨리다.

포스트 모던(Post-Modern)은 건축계에서 직각 반듯한 모더니즘 건축물에대항해 등장한 자유분방한 형태의건축물을 이르며 처음 사용한 말이다. 60년대 이후 사회 전반에 퍼진 포스트모더니즘은 합리주의로 표방된 모더니즘에반발한 시대 정신이었다. 이러한 정신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미술계였다. 포스트 모던이태동하기 전 미술계를 장악했던 세력은 ‘추상 미술’이었다. 모더니즘 미술의 끝으로 불린 추상 미술은 천재 작가가오롯이 자신의 영감으로 내놓은결과물이었다. 스스로가장 숭고한 미술이라 칭하며 화면 위에서 모든 것을 없앤 추상 미술은 자신 이전의 모든 미술, 자신과 다른 모든 미술을 저급한 것으로치부했다. 이러한이분법은 곧 포스트 모던의타깃이 되었다.

남성 중심적, 엘리트주의적이던 추상 미술이 붕괴되며 가장 먼저 화면 위에 구체적인 이미지가 복귀했다. 복귀한 이미지는 저급한것으로 여겨졌던 광고 이미지나 상업 영화 속 스타의얼굴부터 아이 장난 같은 낙서까지 다양했다. 이후 미술가들은 아예 전시실 밖으로나가 거리에 낙서하고, 길에서 주운 재료를 들고 다시 전시장으로 들어와 미술관의 경계를 허물었다. 형식적인 경계가 붕괴된 후 미술은 더 이상 아카데미에서 공부한백인 남성 작가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60년대 사회운동에 힘입어 여성이 작가로미술계에 등장하고, 흑인과 제 3세계 문화, 그리고성 소수자들이 차례를 이었다. 개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중요해진 나머지, 미술은 대단한 이념을 외칠 필요가 없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었고, 작가와관객의 구분 또한 모호해졌다. 오히려미술의 관객은 더 이상 고상하게 걸린 그림을 보러 전시장을 찾지 않았다. 포스트 모던 미술은대지로, 공공장소로 나가거나 일회성을 띠는 퍼포먼스의 형태로 변신하며 자신에게 맞는 관객을 찾아 나섰다.

 

2. 천재 작가 신화의 종말

1) 작가에게도 관객에게도 정답은없다.

‘미술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있다. 놀랍게도 이는 포스트 모던 이전에는 꿈꾸기 어렵던 말이었다. 작업에도 어느 정도 정답이 있었고, 따라서 관객에게도 해석과감상의 정답이 존재했다. 하지만 포스트 모던이 오며 이야기는 달라졌다. 작가는천재적인 개인이 아니었고, 관객 또한 천재의생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다. 모던은 작업을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을 ‘야만’으로 간주했지만, 포스트모던의 관객은 비로소 ‘잘 모르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높아진 관객의지위는 작품에 관한 다양한의견을 끌어냈다. 작품을 둘러싼 해석과 논의는 더욱 더 풍요로워졌고, 이는 작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관객의 위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자신의 추상적인 영감이나 아름다운 것, 형식적인 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위 ‘미술적인 주제’에서 탈피하며매우 구체적인 이야기가 미술의주제로 등장했다. 또 관객층이 넓어지며 그 안에도분류가 생기고, 성격 또한 구체화 되었다. 불특정다수의 관객을 상대하던 이전 미술과 달리, 작가는 작업의내용에 적합한 관객을지목하기도 했다. 달라진 작가와 관객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고상한 모던의 미술관에서 벌어진 해프닝에서 찾을 수 있다.

 

안드레아 프레이저는 퍼포먼스 작업 <미술관 하이라이트: 갤러리 토크>(1989)에서 고급 예술 소비층을 미술관으로 초대한다. 작가 자신은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로 분하고, 스스로 ‘고상한미술 애호가’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열심히 작품을설명한다. 미술사에서 인정받는 작품들을 칭송하는 모습은여느 도슨트와 다를 바가 없지만, 작가는 작품뿐만 아니라미술관의 화장실, 식당, 음수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설명한다. "정말 놀라운 음수대가 아닌가요! 놀라운 경제성과 기념비 성을 모두 갖춘 음수대입니다!"와 같은 식이다. 작가는 작품이 아닌 것들에도 화려한 미사여구를 덧붙여 소개하고, 관객은 현란한 말에 감탄한다. 기념품샵에 이르러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75만 불이면 여러분은 이 매장의 이름을 새로 지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75만 불이 있다면, 저는 이 가게 이름을 ‘안드레아’라고 짓고 싶네요.” 75만 불의 후원금이면 자신의 이름을 미술관에 새길 수 있고, 부르주아 관객들은 엉터리 같은 설명을 듣고도 이에 솔깃하다.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는 부르주아 계층의 허황된 사치와 그들의 사치를 통해 운영되는 미술관의 실태를 꼬집는다. 그저 작품을보며 감탄하고, 후원하는 것이 전부였던 관객들은 포스트 모던에 오며 작업의 타깃이 되었다. 작가도 더는 작업의 뒤에 숨지 않고 관객의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며, 그 내용은 결코 숭고하지 않다.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업은 여전히 모던의논리로 관객을 상대하는 시대착오적인 미술 제도의 민낯을 드러낸다. 포스트 모던 미술은 엘리트들이 낳은 폐단을전면에 드러냈고, 미술의 내용은 크게 해방될 수 있었다.

 

2-1) 오리지널리티의 붕괴: 진짜 먼로가사라졌다

잠시 고고하던 추상 미술로 돌아가 보자. 한국의 추상 미술,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는 작가가갖춰야 할 자세로 ‘스승을 닮지 말라’, ‘동료를 닮지 말라’, 그리고‘미술의 역사에빚지지 말라’는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이전의역사를 참조하거나 베끼는것은 모던의 천재에게는 용납될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창의력은 다른 외부의 영향 없이 나올 수 없었고, 애석하게도 추상 미술은 이를 끝까지 거부했다. 추상 미술이 막을 내리고 화면에다시 이미지가 돌아오며, 미술은 이미 알려진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중에서도 엘리트들이 가장 저급하게 여긴 상업 영화 속 마를린 먼로의 얼굴이 미술의소재로 등장한다. 대중문화는 작품의 독창성과 신비로움이라는 허물을 벗겨냈고,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는 수명을 다했다.

 

-앤디 워홀 <마를린 먼로 연작>, 실크스크린, 1962

:1962년 앤디 워홀은 마를린 먼로가 사망한 기사를 접하고, 그녀의 얼굴을 여러 장 찍어낸 작품을 내놓는다. 실크스크린 기법은 같은 이미지를 찍어내지만, 잉크색이나 바르는 양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져 실제로 완전히 같은 이미지는 하나도 없다.

 

먼로1: 요즘 좀 거슬리는 애들이 있어요. 글쎄, 저랑 똑같이 생긴 애들이 막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거 있죠. 자기가 진짜 먼로라고 하질 않나... 참 별일이 다 생겨요.

먼로2: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제가 진짜 먼로인데요?

먼로49: 처음 뵙겠습니다. 자꾸 어디서 제 이름을 불러서왔는데, 누가 ‘먼로’ 찾으셨나요? 제가 본인인데요.

마를린 먼로: 다들 누구시죠?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제가 진짜입니다. ‘마를린 먼로’요. 당신들은 모두 제 환영일 뿐이에요.

먼로49: 어차피 우린 다 똑같이 생겼어요. 밖에 나가봐야 사람들은 아무도 진짜를구분하지 못할걸요? 의미 없는 싸움들은 그만두시죠.

 

누구라도 외부의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대이다. 미술도쏟아지는 문화 현상을 닮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점차 어떤 것이 먼저이고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팝 아트 에디션 속 먼로의 얼굴은그린 것도 아니고, 프린팅된 이미지이다. 똑같이 찍어낸 얼굴 중 어느 것이 원본인지를 가리는일은 무의미할 것이다. 모두 TV 속 먼로 얼굴의 복사본일 뿐이다. TV 화면에비친 먼로의 얼굴은 다시 실제 ‘마를린 먼로’라는 사람의허상이다. 하지만대중이 접하고 아는 먼로는TV 화면에 비친 모습일 뿐, 실제 먼로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먼로 에디션은 원본이 사라진 채 복제를 이어간다. ‘오리지널’의 개념이 모호해지며 미술에는 이미 알려진이미지를 다시 사용하는 것에 제한이 없어진다. 미술사에는 많은 이미지가 남아있고,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어진 미술의관심은 이전의 역사를 향했다.

 

2-2)오리지널리티의 붕괴: 낙서가 남긴 것들

가전제품들 사이 수많은 명화가 살아 움직이는 광고를 기억하는가? 패러디, 풍자와같은 기법은 광고, 포스터를 비롯해 이미 많은 곳에 쓰이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기존의 맥락을 다시 이용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지만, 숭고한 원본에 감히 손도 댈 수 없던 시절, 명화와 냉장고 광고의 조합은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마르셸 뒤샹 <L.H.O.O.Q.>, 엽서에 낙서, 1919

:모나리자는 수 많은 해석과 논쟁을 안은 작품이다. 작품은 모나리자의 수수께끼에 대한 뒤샹 나름의 해석으로, 모나리자 풍자화의 시초가 되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나리자는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유명한 얼굴에 감히 수염을그려 넣은 악동이 있다. 마르셸 뒤샹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모나리자가 그려진 엽서에 낙서하고 ‘LHOOQ’이라는 글씨를써넣는다. 프랑스식으로 6개의 알파벳을 읽으면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와 유사하게 들리는 언어유희가 완성된다. 1910년대 등장한 이 낙서에 대한 해석은 고전에 대한 발칙한도발 정도에 그쳤지만, 포스트 모던이태동하며 해석은 새로운 국면을맞는다. <L.H.O.O.Q.>에서 뒤샹은 모나리자의 이미지를 가져오지만, 작품 속 인물에 얽힌 에피소드를 비롯한 어떠한 내용도 이용하지 않는다. 엽서 위에 전혀 관련이없는 낙서를 얹는 순간 모두가알던 모나리자는 기존의 맥락을 잃고 전혀 다른 모나리자가 된다. 그럼 새로운 모나리자는 어떤 의미를 얻은 건가? 뒤샹은모나리자를 원래 맥락에서 떼어낸이후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고이 미술관으로 들어갔던 모나리자를 현재로불러왔다는 시도에 있다. 뒤샹은 모던에 살면서도 탈-모던적인 행보를 보였고, 오늘날 포스트모던 정신성의 시초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 도미니크 앵그르 <그랑드 오달리스크>, 신고전주의 1814

:사실적인 표현력의 최고로 꼽히는 앵그르는 오리엔트 분위기에 관심이 많았고, 터키의 후궁을 그린 작품을 여럿 선보였다.

 

-게릴라 걸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나>, 1989

:게릴라 걸스는 개개인의 성격보다 사회적 이슈에 초점을 두기 위해 모두 익명으로 활동한다. 고릴라 마스크를 쓰고, 죽은 여성 예술가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들의 신상은 가려져 있다. 게릴라 걸스는 누구나 될 수 있고,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수염 달린 모나리자가 등장한 지 어연 50년 후, 포스트 모던 미술계에는 본격적으로 예전의작업, 예전의 맥락을 이용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1985년 결성된 여성 예술가 그룹 게릴라 걸스는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나>라는 포스터를 전시한다. 제목 아래에는 ‘미국 최대의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미술 부문에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이 5%밖에 걸려 있지 않지만, 이 미술관에 걸린 누드화는 85%가 여성을 소재로 한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포스터 형식과 문구 외에도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다. 포스터 왼편 여유롭게 앉은 뒷모습은 신고전주의의 대표작 <그랑드 오달리스크>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이다. 게릴라 걸스는 뒤샹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원래의 맥락을 파괴한다. 오달리스크는 터키 궁전 밀실에서 왕의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던 궁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누구도 그림 뒤에 존재하는 화류 문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림 속 오달리스크는 그림 밖의 감상자를 유혹하는 자세를 취한다. 역사적으로 오달리스크는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과 여인의 아름다움으로 칭송받았고, 미술계에 여성 해방의 움직임이 일어난 후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제작된 여성 누드 작품의 전형으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게릴라 걸스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누드’ 오달리스크의 불편한 맥락을 1985년으로 가져온다. 신고전주의에서 출발한 오달리스크는 고릴라 얼굴을 한 채 포스터에서 새로운 맥락을 얻는다. 누드를 기대한 남성 관객에게 당황스러움을 선사하는 고릴라 오달리스크는, 오늘날 원작의 의도와는 반대로 미술계의 성 불평등을 고발한 대표 작업으로 남아있다.

 

3. 21세기에서 내다보는 포스트모던

20세기 포스트 모던은 미술에큰 전환을 가져왔다. 작가와 관객이 변하고, 미술의 내용과 형식에해방이 찾아왔다. 많은 약한 존재들이 목소리를 얻으며 미술의영역에도 큰 확장이 일어났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지금의 결과가 당연한듯 느껴질지도 모른다. 1960년대 태동한 포스트모던은 어느덧60년을 앞두고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하나의 사조나 스타일로 보는 사람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수명을다한 유행으로 보기도 한다. 한때 저항정신으로 이뤄낸미술의 해방은, 이미 자유로운 지금 듣기에는 너무 거북한 구호일지도 모른다. 유행의끝에서 돌아보는 포스트 모던은획일화된 옳음의 기준을 크게 무너뜨린 정신성이었다. 원하는 결과를 쟁취한 후, 다가올 시대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60여 년간 지속된 저항 정신만큼은 미술에 남아있을 것이다. 시간이흘러 포스트 모더니즘이 완전한역사가 되는 날에도, 미술은 여전히그 정신성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모던: 잘 들었네. 그래서 도대체 포스트모더니즘이 뭐라는 건가? 너무 방대해서 다 기억도 못 하겠네.

포스트 모던: 5년 전, 한 벽 낙서가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그 내용을 빌려 정리해드리죠.

신은 죽었다.-니체

니체 너 죽었다.-신

니네 둘 다 죽었다.-청소 미화원

모던: 다 죽고 낙서하는 미술만 남았다는 말인가? 허, 참. 젊은 친구, 앞날이 기대되네.

포스트 모던: 저도 이제 환갑입니다. 언제 갈지는 모르지만, 선생님께도 명복을 빌어드리겠습니다.

주예린  jlin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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