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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공론장, 지금 궁서체 입니다"

세상에는 보기보다 많은 열정 토론러들이 존재합니다. 잘 모르겠다고요? 우리는 그들을 식탁 머리에서, 방구석 댓글 창 앞에서 자주 마주치곤 합니다. 그들의 토론은 참 부질없는 언쟁인 듯하면서도 신기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 담아냅니다. 웃기면서도 마냥 우습지는 않은 그들만의 100분 토론, 지금 시작합니다.

 

1. 튀김에 그만 소스를 부어버렸습니다.

찍먹: 오늘 튀김이 참 바삭하게 잘 튀겨졌습니다. 어디 한번 맛을…

부먹: (부어버린다)

찍먹: 아니..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부먹: 아, 찍어 드시는 쪽이군요. 기왕 부어버렸으니 이번 기회에 그냥 한 번 도전 해보시죠. 누구나 처음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찍먹: ‘처음이 다 그렇다’는 말로 희생되는 취향과 애로사항은 한둘이 아닙니다.

방금 탕수육을 자유롭게 먹을 제 권리가 희생되었습니다. 당신은 최소한의 배려를 모르는 사람이고 남의 권리를 짓밟은 것입니다.

부먹: 배려.. 배려 좋죠. 참 따뜻한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를 배려하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찍먹: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그 거창한 말, 지긋지긋합니다. 역사를 돌아보세요. 대의와 명분아래 개개인은 지워졌고, 다시는 반복되어서 안 됩니다. ‘나’라는 한 개인이 없는 이상 세계는 오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부먹: 그래요, 바꾼다는 말이 좀 거창할 수는 있겠네요. 그런데 당신과 같은 사고방식은 무언가를 바꾸기는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당신이 탕수육을 드시던 그 방법은 그저 주어진 튀김 조각과 소스를 가장 수동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소극적인 방식에 머무르실 겁니까? 부먹은 탕수육이 그저 튀김에 머무는 수준에서 큰 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길입니다. 튀김이니까 당연히 바삭해야 하고, 소스는 원래 찍어 먹는게 당연하다는 당신의 안일한 생각이 만나 탕수육이라는 메뉴는 그저 그런 음식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찍먹: 튀김 조각을 통째로 소스에 넣는 것이 물론 새로운 맛을 향한 전환이 될 수는 있겠죠. 그 정도 극단적인 행동을 취해서 어느 정도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앞서 지적했던 이야기를 정확히 되풀이하시네요. 약간 다른 맛 하나를 찾자고 당신이 희생시킨 튀김 조각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소스를 부어 버리기 전, 이 탕수육은 모두에게 주어진 탕수육이었습니다. 공평하게 각자의 기호에 따라 한 입씩 먹을 수도 있었지요. 당신이 소스를 부어버린 그 행동은, 모두의 몫을 독점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도 바라지 않은 전환을 핑계로 탕수육을 혼자 드시겠다는 속셈 아닌가요?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기 어렵네요.

부먹: 제 행동은 모두 같은 양의 소스를 먹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다 함께 먹는 자리를 떠올리신다면 이해가 빠를 것 같네요. 탕수육 접시는 하나, 사람은 여럿. 재빠르게 가까운 자리를 선점한 사람이 있다면, 소외되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개인의 권리를 운운하시더니, 그 개인이 본인이 아닌 다음은 생각하지 못하시는군요. 누군가는 소스에 손이 닿지 않아 질긴 튀김만 뜯을 것이고, 탕수육보다 소스를 더 많이 먹는 사람도 생겨나겠지요. 튀김에 손이나 대보면 다행이게요? 다 같이 나누는 과정에 소스도 함께 부어봤다면, ‘혼자 독점하려는 속셈’과 같은 말은 담지도 않았어야 합니다. 꽤 실망입니다. 소수와 개인을 생각하시는 분으로 알았건만, 그냥 탕수육 한 조각이 아쉬우셨나 봅니다.

찍먹: 같은 말 계속 반복해서 죄송하지만, 진짜 이기적인 쪽이 누군지 모르겠네요. 소스를 먹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먹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찍어 먹는 사람에게 소스를 부어버린 채 권하는 것은 원하지도 않는 배려입니다. 심지어는 소스를 안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배려를 거절한 나쁜 사람으로 만들겠죠. 또 한 가지, 더 많이 먹고 싶어서 부지런히 움직인 사람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부먹: 부먹도 찍먹도 스타일의 하나인데, 슬슬 섭섭합니다. 이렇게 화내시는 거 보니 같이 식사하실 때 부먹을 배려해 볼 생각은 한 번도 못 하셨나 봅니다.

찍먹: 분명 말씀드렸지만 원하지 않는 배려 받을 생각도 없고, 배려를 요구받아야 하는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네요. 전자도 후자도 제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고, 당신은 방금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기만한 것입니다.

부먹: 참.. 소스 한번 잘못 부었다고 누굴 기만하게 되었네요. 같이 식사 못 하겠습니다.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점원: 저 식사 벌써 마치신 건가요..? 계산은 어떻게…

찍먹: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소스 다 부어 버리셨으니 혼자 드시고 계산도 혼자 하고 가시죠. 전 손도 안 댔고, 한 푼도 못 냅니다.

 

2. 거울속나는내악수를받을줄모르오.

오른손: 처음 뵙겠습니다.

왼손: (왼손을 내밀며) 처음뵙겠습니…..

오른손: 악수를 왼손으로 하는 분은 처음 뵙네요. 혹시 악수가 처음이신가요?

왼손: 예? 처음이요?! 글쎄요, 저희 식구들은 모두 왼손을 쓰는지라…

오른손: 비뚤어졌군요. 위험한 가족이에요. 수저를 잡을 때도, 문을 열 때도, 글씨를 쓸 때도 모두 오른손으로 쓰게끔 만들어진 세상입니다. 그를 거역한다는 건 세상에 대한 부정일 수도 있습니다.

왼손: 행동 하나를 극단으로 끌고 가는군요. 왼손이 뭐 어떻다고 저희 가족을 깎아내리시는 거죠? 또 세상이 모두 오른손을 쓴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른손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세상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누군가의 이익일 뿐 옳은 것이 아닙니다. 왜 제가 오른손을 따라야 하죠?

오른손: 무엇이 옳은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약속에 돌을 던지는 그 발상과 행동이 위험할 뿐입니다.

왼손: 당신의 그 발상과 행동이 세상을 쳇바퀴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정작 누가 위험한지는 모르는 것 같네요. 모두가 동의하고 약속했다는 그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거죠? 그저 힘으로 세상을 점유하고, 모두가 같은 것을 옳다고 믿게 만들면 다인 겁니까? 안정된 세상에 돌을 던진다는 그 표현 자체가 모두를 하나의 울타리 안으로 가두는 것입니다. 옳고 바람직한 하늘에 감히 금을 내는 것,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옳음에 대한 의심은 필연적입니다. 그 의심의 싹을 자르는 건 그저 오른손이 계속 세상을 평정해야겠다는 이기로 볼 수밖에 없네요.

오른손: 물론 의심해 볼 수 있죠. 그럼 물어나 봅시다. 의심 하나로 세상에 돌을 던지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죠?

왼손: 모두 주어진 대로, 옳다고 학습 받은 대로 믿던 기준을 무너뜨리게 되겠죠. 그 자체로 대단히 개혁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른손: 개혁, 글쎄요. 모든 개혁에는 명분이 따르고 그 명분은 당신이 믿는 옳은 것이겠죠. 결국 개혁이 지난 후에는 그 또한 당신이 믿는 옳음으로 나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겁니다. 한 걸음 더 내다본다면, 당신은 옳음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기준의 중심에 당신이 있지 않은 것.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세상은 늘 피 바람을 동반합니다. 단지 깨부수는 것만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는 그 사고방식. 모두의 약속에 그렇게 쉽게 돌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이기적인 바램입니다.

왼손: 돌을 던진 결과가 참담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돌을 던지기 전, 다른 세상을 꿈꿔보는 사람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무너뜨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을 충분히 알고도 의심을 말해보는 것. 그건 단순한 의심을 넘어 용기가 필요합니다. 현재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수많은 용기를 이기적이라고 매도하다니… 아직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용기와 믿음을 억누르는 것입니다. ‘다수의 편의와 안녕’을 무기 삼아 힘없는 가능성은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른손: 워워. 일단 진정하시죠.

“여기 물 한 잔만 주세요.”

개혁도 다 살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왼손 당신은 예전에 태어났으면 운동권이었을 것 같습니다. 요즘 태어나면 시민단체, 뭐 그런 곳에 있을까요? 세상 곳곳의 약자를 대변하겠다 뭐 그런 논리들이겠죠.

그런데 글쎄요, 저도 의심 하나 해보죠. 저는 스스로 소수자, 약자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짓밟힌 소수자들의 권리는 그저 지금 체제에서 힘을 얻지 못했을 뿐 입니다. 힘이 실리는 순간 기준만 다를 뿐 지금과 똑같은 권력 구조를 낳을 것입니다. 요즘 만큼 ‘소수’라는 이름이 권력으로 사용되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소수자로서 침해받았다’ 고 한마디만 해도 그 반대편은 인권을 유린한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 되어버립니다. ‘소수’라는 이름의 집단이 되어 한 개인을 피해자로 내모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해보면 좋겠어요. 화가 끓어오른다고 곧장 내뿜지 말고.

왼손: 물론 요즘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역차별도 우려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네요. 기득권도 차별을 받을 때가 있지만, 피해를 보는 순간에도 기득권은 기득권입니다.

점원: 네, 물 필요하신 게 어느 쪽이죠?

오른손: 왼쪽이요.

점원: 죄송한데, 어느 쪽이 왼쪽이죠?

오른손: 당연히 저쪽 아닌가요?

점원: 어, 이쪽이 왼쪽 아닌가요? 제가 보기에는 이쪽이 왼쪽이라… 헷갈렸나 봅니다.

그런데 두 분 무척 친하신가 봐요. 왜 친하면 닮는다잖아요. 누가 누군지 헷갈릴 정도예요. 하하.

왼손, 오른손: (……)

 

3. 어차피 결론은 사이다

점원: 알리오 올리오 세트 주문 하셨고요, 세트에 음료는 콜라로 하시는 거 맞으시죠?

손님: 네 맞아요.

점원: 펩시콜라인데 괜찮으신가요?

손님: …펩시콜라를 취급하시나요? 펩시밖에 없다면 사이다로 바꿀게요.

사장: 잠시만요. 외람되지만 하나만 여쭙고 싶네요. 펩시만 취급하는 게 혹시 문제가 될까요? 굳이 코카콜라만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손님: 콜라는 코카콜라를 가리키는 말이고, 펩시는 그저 유사 음료일 뿐입니다. 펩시는 펩시콜라라고 설명해야 하지만 보통 ‘콜라’라고 하면 그 자체로 코카콜라를 떠올리게 되지요. 이미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걸, 억울하다고 어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억울하면 먼저 콜라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안타깝군요.

사장: 계속 외람되어 죄송하지만,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마케팅에 제대로 넘어가셨군요. 코카콜라가 주장하는 오리지널리티는 70년대 미국에서 만든 억지 논리를 아직까지 우기고 있는 것뿐입니다.

손님: 그럼요, 마케팅에 대한 부분은 인정합니다. 펩시와의 대결 구도 또한 미국에서 만든 것이죠. 물론 마케팅을 잘해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지만, 맛이 없었다면 단지 마케팅만으로 버틸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과한 돈을 들여 스타들을 앞세운 펩시의 저급한 마케팅보다 맛과 청량한 이미지만으로 승부한 코카콜라의 마케팅은 알고도 속아줄 만큼 잘된 마케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장: 1970년에 살고 계셨다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2020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콜라는 코카콜라’라며 더 이상의 의심도 기대도 없이 살던 사이, 펩시는 무섭게 치고 들어왔습니다. 코카콜라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몰랐지만, 펩시는 겸손한 태도로 저조한 시장점유율을 인정하고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코카콜라가 홍보에도 소홀하고 요식업계와의 계약에서도 성의 없는 태도를 보일 때 펩시는 틈새시장을 노렸습니다. 식당 가의 점유율을 확 높인 것이지요. 언제까지 콧대 높은 코카콜라를 고집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손님: 코카콜라는 과한 홍보 없이 늘 제자리를 지켜온 브랜드입니다. 설령 펩시가 치고 올라온다고 해도 제자리를 지키는 방식은 코카콜라 스타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쌓아온 브랜드의 자부심이 있는데, 그걸 콧대 높고 성의 없다고 치부해 버리시면 곤란할 것 같군요. 각자만의 스타일이 있는 거고, 공든 탑이 하루에 무너지진 않을 것 같네요. 저는 자기 길을 가는 코카콜라를 계속 이용할 것 같네요.

사장: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펩시가 요식업 프렌차이즈들과 잘 협상해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상당수를 점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표를 떼고 맛본 콜라 중 상당수는 펩시였을 것입니다. 손님께서 맛이 아니라 상표를 마시고 계셨던 건 아닌지 궁금하네요. 모르는 사이, 펩시도 잘만 드신 것 같은데… 어차피 오늘도 펩시밖에 없으니 드시던 대로 드시면 익숙한 맛일 겁니다. …솔직히 잘 구분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점원: 124번 고객님, 주문하신 알리오 올리오 세트와 음료 변경하신 사이다 준비되었습니다.

사장: (……)

손님: 아무튼 펩시는 안 마십니다.

 

주예린  jlin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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