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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손과 발로 하늘과 땅을 짚어보라.

두 손과 발로 하늘과 땅을 동시에 짚는다? 글쎄,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혹시 키가 무척 큰 편이라면 어렵지 않게 두 손이 천장에 닿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은 뛰어 봐야 손과 발이 모두 떨어질 뿐이다. 질문에 하나를 더해보자. 양손으로 하늘과 땅을 동시에 짚을 수 있을까?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천장이 너무 높아서, 도저히 닿을 수 없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손은 땅을 짚었고, 거꾸로 숙였으니 하늘도 짚은 거다. 성공 아닌가? 어설픈 논리를 들이밀지만 역시 쉽지 않다. 애초에 나보다 높은 곳에 닿는 것, 혹은 나보다 한참 낮은 곳까지 낮추는 것 어느 쪽도 쉽지 않다. 안 되는 두 가지를 애써 병행한 결과는 보는 바와 같다. 엉거주춤할 뿐이다.

 

1. 몸을 뻗어 두 손으로 하늘 잡기

두 발을 땅에 딛고 손을 뻗어보자. 양쪽 어깨가 귀에 닿도록 뻗어 올리면 목과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팔뚝이 저릿저릿하다. 팔이 뽑힐 것처럼 쭈욱 뻗어도 야속한 하늘은 점점 멀어진다. 위를 바라보는 건 늘 그렇다. 쳐다만 봐도 뒷목이 뻐근하게 아프고 혹시나 닿을까 손을 올려 가늠해보면 갈피도 안 잡힐 만큼 멀다는 깨달음만 돌아올 뿐이다. 두 발에 더욱 힘을 주고 척추를 세워 보았다. 갈비뼈가 올라가고 숨이 찰 만큼 더 높이 뻗어 올린다. 등 허리가 제법 말리고, 배에 힘이 들어간다. 이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꿈꾸던 곳을 향해 내디딜 땐 늘 욕심을 내게 된다. 숨이 차고 얼굴이 벌겋게 변해가는지도 모르고 자꾸만 위를 향해 뻗는다. 온 신경이 손끝을 향해 있고, 어느새 손끝을 뺀 모든 힘은 저린 듯하다 자연스레 풀린다. 하도 위를 향해 힘을 준 나머지, 꼭 발바닥에 힘이 빠지고 점점 뜨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몸에 모든 감각이 무뎌지면 이 대로 저 높이 떠올라 닿을 것만 같다.

착각이다. 감각이 이렇게 무섭다. 두 발이 묶여있는 한, 저 하늘을 향해 뻗을수록 고통스러울 뿐이다. 높은 곳을 쳐다본 죄로 벌을 서고 있을 뿐이다. 감각이 무뎌지고 서서히 어깨와 허벅지 위쪽의 힘이 풀리며 중심이 휘청인다. 꿈꾸던 곳이 감히 바라볼 수 없는 곳일 때, 중심을 잃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모두 위를 향해 뻗고 있고, 어쩐지 점점 나만 제자리에서 아등바등하는 것 같다. 나도 같이 저 위에서 얘기하고 싶고, 마주 보고 싶다. 다들 여유롭게 웃을 때, 나만 인상 쓴 채 억지로 웃으며 귀만 저 위에 가서 달린 것 같다. 사실 제 자리면서.

더 무리해본다. 발가락 끝에 힘을 주어 바닥을 힘껏 차올린다. 이제 저릿한 온몸은 발끝으로만 지탱한 채 발 뒤꿈치는 허공에 떠 있다. 능력에 맞지 않는 덤벨을 들어 올리고, 경제력에 벅찬 사치를 꿈꾼 대가는 발끝으로 온다. 발가락은 피가 쏠려 시뻘게지다 못해 슬슬 파래진다. 버틸 거다. 버틴다. 버텨야지. 버틴다... 아이구 이러다 넘어간다..

 

이번에도 결과는 야속하다. 두 발이 붙어있는데, 아무리 멀리 뻗어봐야 닿을 수 있는 곳은 내 키, 딱 내 키만큼이다. 더 뻗어봐야 점점 휘청이다 넘어갈 뿐이다. 높은 곳을 향하는 일은 늘 리스크를 동반한다. 들인 시간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가져오지 않고, 배신감만 커져서 돌아온다. 리스크는, 나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대할 때 특히 심하다. 나보다 높은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 무리해본 적 있는가? 누군가는 리스크를 성장통으로 발판 삼아 쭉쭉 올라간다. 누군가의 허리는 너무 무리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 척추에 힘이 빠지면 허리, 복부의 힘이 함께 풀리고 결국 무릎이 텅! 하고 꺾인다. 휘청휘청하며 불안하게 서 있는 자세 좀 봐. 보고 있는 곳은 결국 위가 아니고 뒤다. 이제 넘어질 일만 남았다. 도움닫기도 너무 심하게 하면 안 된다. 무릎만 꿇린다.

위를 향하는 건 역시 쉽지 않다. 앞으로 엉거주춤하거나 뒤로 불안정한 어느 쪽도 안쓰러울 뿐이다. 위를 꿈꾼다고 함부로 따라 하지 않길 바란다. 나의 중심이 무너지는 순간 위, 아래 어느 쪽도 온전히 지탱하지 못한다. 허리들 조심하자.

 

2. 고개를 숙여 두 발을 감싸 쥐기

온몸을 쭉쭉 뻗어줬다면, 반대로 저 아래를 향해 몸을 접어보자. 두 발바닥을 땅에 잘 디디고 다리를 쭉 펴준 후 손을 뻗어 발치까지 닿아보자. 결과를 알고 있다. 닿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이들 해보고 실패한 이 단순한 동작은 왜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운 걸까.

 

우선 두 다리를 곧게 펴고 골반부터 허리를 잘 세워주자. 놀랍게도 내 몸은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가 보다. 허리를 잘 고정한 채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허벅지 뒤쪽이 강하게 당겨오고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후들거린다. 손끝이 발에 닿을 즈음, 숙인 얼굴에 피가 쏠리고 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래를 향해 숙이는 게 이렇게 힘들다.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의 있게 행동하는 것과 진짜 낮아지는 것은 다르다. 나와 다른 곳에 있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건 그 사람의 높이가 되어보는 것이다. 예의 바르게 행동할 수는 있어도, 정말 나보다 낮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 고작 한 뼘 정도 숙이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래를 향해 비난할 수는 없다. 뻣뻣하게 위만 향하던 나의 오만한 자세가 문제이다.

힘들게 숙여 발을 잡고 난 후 진짜 고통이 시작된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은 튕겨 나갈 것 같지만, 발을 붙잡은 손이 족쇄같이 몸을 묶어 둔다.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며 나를 낮춘 다음, 그 상태를 유지하는 단계가 가장 사람을 소진되게 만든다. 몸을 풀고 싶고, 다시 나의 높이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손은 묶여있다. 식은땀이 다 나고 온몸이 저릿한 순간까지 지나고 나면 힘이 쭉 빠진다. 나의 의견과 인내심을 가장 바닥까지 양보했는데, 항상 그렇게 양보하며 남은 날을 버티는 건 쉽지 않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딱 하루만 최선을 다했는데, 남은 날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피가 쏠린 채 넘어질 것 같은 몸뚱이를 위에서 짓누르는 느낌... 끝까지 내려놓는 건 딱 그런 느낌이다. 계속 숙이고 있던 고개가 점점 떨궈지고, 슬슬 어지럽기 시작한다. 나를 낮추고 양보하는 건 대단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건 내가 높은 곳에 있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를 낮춘 채 버티는 것, ‘존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1) 가장 낮은 곳, 발바닥의 수고를 덜어주는 자세

조금이라도 쉽게, 유연하게 자세를 유지할 수는 없을까. 존버도 버틸 만할 때 하는 거다. 아래를 향한 자세가 원래 내 자세인 듯 편안한 방법을 찾아보자. 아래를 향해 숙이는 마음은 위를 향해 뻗던 투지와는 달라야 한다. 위를 향할 때 발바닥부터 허벅지, 골반, 허리, 가슴 순으로 들어 올렸던 몸을 반대로 중력에 맡겨 전부 내려놓는다. 몸을 말아 접는 건, 그 자체로 숨을 쉬기 힘들고 자연스럽지 못한 자세이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본능에 위배되는 행동을 굳이 해보겠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내 몫을 양보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욕심을 누르고 굳이 왜 내 몫을 내어주나 싶지만, 그럼 양보 잘하기는 또 쉬운가. 지나치면 상대에게 부담이 되고, 스스로는 또 얼마나 가식적인지 모른다. 본능을 무릅쓰고 상체의 힘을 내려놓는다. 숨을 잘 고르며 두 다리를 땅에 잘 붙인 채 엉덩이를 말아 올리고 골반을 접어 고개를 숙인다. 발 전체로 버티던 중심이 서서히 앞으로 이동하며 발 앞에 피가 쏠린다. 완전히 몸을 낮춰 손으로 발을 잡는 자세는, 사실 굉장히 불안정한 자세이다. 누가 툭 치기만 해도 옆으로 고꾸라질 수 있고, 스스로도 언제 앞으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의 가치관을 양보하고, 편안함을 다 내려놓은 상태가 안정적일 리가 없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머리에서 김 나는 cg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숙인 머리에서는 말 그대로 김이 나고, 얼굴도 달아오른다. 존버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한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 아래만 바라보고 억지로 버텨서는 기약 없는 존버에서 승리할 수 없다. 얼굴로 허벅지를 감싸고 손으로도 발과 다리를 감싸 안아보자. 손바닥을 발바닥 아래에 넣어 발을 꼭 쥐어 보자. 앞으로 쏠려 불편했던 발의 중심을 손에 나누어준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쿡쿡 쑤시고 불편했던 감각이 손바닥 하나 맞닿으며 부드럽게 풀린다. 발가락으로 엄지손가락 아래 두툼한 근육을 눌러보자. 손가락 끝도 살짝 세워 발바닥을 살짝 찔러본다. 내려놓을 때 내려놓더라도, 나의 고통도 살펴 가면서 하자. 나를 낮추기 전, 적어도 마음가짐은 그래야 버틴다. ‘존버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양보할 만큼 양보한 내가 남들에게 당연한 존재가 되었을 때, 뒷목부터 척추가 당겨오는데 다리마저 굳어져 말도 안 나오고 얼어붙을 때. 나를 분노케 만든 상황을 손바닥과 발로 감싸 쥐어보자. 놀랍게도 뭉친 고통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내가 힘들게 내려놓을수록, 발은 더 고통받나 보다. 힘을 빼고 내려놓을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잘났으면 뭐하러 사서 고생하고 혼자 주무르고 있나. 그래도 잘난 것도 없이 뻣뻣한 대가로, 저린 감각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2) 바닥 높이에서 쉬어가는 자세

충분히 통증을 즐겼다면 긴장을 잠시 풀어주자. 뒤 허벅지의 긴장을 내려놓으며 무릎을 접고, 발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무릎을 안아보자. 정말로 저 멀리 있던 머리끝이 발과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풀썩 주저앉아보면 비로소 평상시 얼마나 높이 서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키가 작더라도 말이다. 발과 가까워진 채 상체의 무게를 무릎에 실으면, 발끝과 발목에 힘이 쭈욱 실린다. 발끝부터 피가 몰리며 발바닥 전체에 열기가 퍼진다. 점차 발목 뒤 가느다란 근육이 당긴다. 근육이 당기는데 꼭 뼈를 쑤시는 것처럼 날카롭게 아프다. 가장 낮은 자세, 아팠던 발 뒤쪽을 자극하며 앞을 본다. 새삼 바닥 높이를 지내는 게 어떤 느낌인지 실감이 난다. 기어가는 개미도 친구 같을 높이에서 눈을 흘깃 올려본다. 책상 의자가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다. 책장은 아예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발치에서 위를 보는 느낌은 이렇다. 평상시 나의 높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쭈그린 채 내 키를 살짝 가늠해본다. 대략 낮은 책장 끝 선과 비슷할 것 같다. 낮추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지만, 정말 낮아진 상태에서 뻗어 올리는 게 얼마나 힘들지 상상해본다. 안쓰럽도록 하늘로 뻗다 고꾸라진 내가 문득 떠오른다. 주제나 알고 뻗을 걸 그랬다. 한참 지나고 나서 돌아본 내 모습은 ‘아등바등’ 한 마디로 설명된다. 그 우스운 모양새를 생각하며 발목 뒤쪽 아킬레스건에 힘을 충분히 실어준다. 한숨 쉬어 주고 다시 도약하기 좋은 자세이다. 슬슬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한다. 기지개 쭉!

 

3.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 맞잡기

천천히 몸을 낮추기도, 끝없이 뻗기도 쉽지 않다. 높은 곳을 움켜쥐는 것, 그리고 낮은 높이를 유지하는 것 무엇도 혼자서는 힘든 일이다. 가장 높은 자리가 고독하다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까. 뭐 나는 그 자리 근처에도 못 가봐서 잘 모른다. 아까 보지 않았나, 휘청이는 애. 어찌 됐건 홀로 높기도, 남을 위해 낮추기도 힘들다면 주변을 돌아보고 짝을 찾아보자. 둘은 서로 다른 높이를 맞춰갈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이다.

 

보이지도 않는 곳을 향해 뻗기는 어렵고, 허공에 갈길 잃은 손을 더 낮추기도 힘들다. 방법은 간단하다. 서로 잡아 끌어주는 건 둘이 합을 맞추는 첫걸음이다. 하늘을 잡기 위해 쭉! 끌어올리던 자세로 돌아가 보자. 발바닥부터 바로 하고, 두 발 너비를 어깨너비 정도로 벌린 후 허벅지, 허리, 척추, 갈비뼈, 목 순으로 쭉 들어 올린다. 들어 올린 어깨는 귀에 맞닿아 더 올라가지 않고, 더 들어봐야 고개만 뒤로 고꾸라질 때, 둘의 힘을 받아보자. 나보다 높은 곳에 닿는 방법은, 어쩌면 그 높이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팔이 안 올라간다고 손끝에 힘줘봐야 올라갈 리가 없다. 기를 쓴다고 더 빨리 도달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빨리 올라가 버리면 그만이라며 고군분투해도 닿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저기 위쪽, 높으신 파트너를 불러보자. 위에서 당겨 올리는 힘에 몸을 맡긴 채, 그저 나의 위치만 유지하려고 해보자. 최소한의 힘으로 발끝을 지탱한 채 몸통은 가볍게 쭉 늘어난다. 너무 높은 하늘을 맞잡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하늘을 나에게 끌어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낮으니, 니가 낮춰라.” 인정하면 빠른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내가 너무 뻣뻣해서, 도저히 낮아질 엄두도 못 냈다면 역시 둘의 힘을 받아보자. 발에 힘을 잘 주고 골반을 들어 올려 척추를 곧게 편 다음 어깨부터 힘을 푹 떨군다. 이럴 때만 전봇대 같은 나의 뼈는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도무지 내 손이 어디까지 더 낮아질 수 있는지 모르겠을 때, 저 아래 꼼지락대는 손을 바라보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무게를 내려놓는 건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가 잡아준다면 조금 믿음이 가지 않을까. 손을 맞잡는 순간 무게가 살짝 앞으로 쏠리며 몸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앞사람을 향한다. 도르래처럼 밀고 당겨주는 힘은 도무지 혼자 닿을 수 없는 지점을 한 뼘 앞으로 당겨준다. 뻣뻣한 사람도, 올곧은 뼈를 인정하면 빠르다. 그게 쉽지 않을 뿐.

 

 

몸을 위아래로 늘리고 또 움츠려 보았다. 숨을 가장 높이 끌어올려서 쉬어 보고, 턱 막힐 때까지 멈춰 보기도 했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두 손으로 하늘과 땅을 모두 지탱하는 것. 여기저기 쑤시는 몸뚱이를 보면, 너무 무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쑤시는 건 몸뚱이만이 아니다. 언젠가 가장 고고한 욕심과 겸손함을 동시에 품었다면, 그건 둘 다 욕심일지도 모른다. 혼자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잡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 혼자서는 힘들다. 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A.

주예린  jlin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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