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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웃음의 대상은 누구였나?

TV를 보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방청객들의 웃음소리 효과가 나오는 부분에 정작 나는 웃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릴 때. 분명 이 부분이 웃어야 할 포인트라는 것은 알겠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고 그냥 쇼가 흘러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며, 점점 보고 싶지 않아 눈을 돌렸다. 분명 TV에서 나오는 웃음에서 미세한 이질감을 느꼈다.

 

 

#더 이상 웃기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말마다 가족과 챙겨 보던 TV프로그램이 있었다. <개그콘서트>, <웃찾사>와 같은 개그 프로그램들이다.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해내며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개그 프로그램. 하지만 개그프로그램들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며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개그 프로그램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단순히 재미가 없어진 문제일까? ‘재미’는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는 요소로, 주된 원인이라 보기는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개그 소재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녀차별을 조장하거나 지속적으로 행하는 폭력적인 언행으로 웃기려는 개그들이 계속되었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개그 프로그램의 인기는 빠르게 식었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대중의 관심은 차가워졌다.

이외에도 개그 프로그램의 진부해진 형식 때문에 그리고 규제를 거쳐 낮추어진 수위 때문에, 만들어진 웃음에 내성이 생겨버렸다. 사람들은 보편적인 개그 프로그램의 형식에서 벗어난 케이블과 유튜브 등의 새로운 매체에 눈을 돌렸고, 점차 짜인 극 형식이 아닌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부상하였다.

최근 몇 년, <런닝맨> <프로듀스 101> <아는형님> 등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줄줄이 인기를 끌며 전통적인 개그 프로그램의 빈 자리를 꿰찼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과거 개그 프로그램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해소해준 걸까? 불편함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불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새로운 형식이 잠시 눈을 즐겁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 아래에 숨겨진 불편함은 여전히 찜찜함으로 남아있다. 이 찜찜한 불쾌함에 나의 웃음이 멈춰 버렸던 순간들을 짚어본다.

 

 

 

“예쁜 것 같다 하는 분들은 앞으로 앉아 주시고, 난 좀 아닌 것 같다 하는 분들은 뒤로 가주세요.”

 

작년 tvN '코미디 빅리그'의 오지라퍼 코너에서 한 남성 출연자가 여성 방청객의 외모를 놀림거리로 소비하며 한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이를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방송’의 대표 사례 중 하나로 꼽았다. 이 외에도 미의 기준을 잣대로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는 고전적인 유머 코드로 자리잡아 왔다. 개그 프로그램 속 외모비하, 인신공격과 같은 문제시되는 발언에 시청자들의 눈은 예능 프로그램을 향했다. <나혼자산다>에서는 헨리가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였는데, MC들이 친구들을 보며 얼굴 평가하였다. ‘아버님 친구 아닌가요?’라고 언급하거나 ‘왜 이렇게 삭았어?’라며 외모를 가지고 품평한 것이다.

외모를 트집잡는 방식은 예능을 비롯한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에 만연한 문제이다.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과 예쁘고 날씬한 여성이 함께 걸어가는 상황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대조적인 반응을 이용한 웃음 코드는 개그프로그램에서 빠진 적이 없을 정도이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뷰티잉사이드’는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다는 설정의 영화 ‘뷰티인사이드’에 빗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꾸민다. 이때 강유미가 극중 남자친구의 얼굴이 개그맨 박휘순의 얼굴로 바뀌자,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로 “이게 얼굴이야 거죽이야”와 같은 막말을 쏟아내며 수차례 뺨도 때린다. 다른 개그맨의 외모를 손가락질하며 비하하기 일쑤에 특히 뚱뚱한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에게 손찌검을 하는 등의 폭력적인 상황이 지속적으로 연출되었다. ‘못생기고 뚱뚱하면 사회악’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무의식적으로 심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처럼 Tv 속에는 일정한 외모 프레임이 존재해왔다. 멋지고 예쁜 외모를 가진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비만이나 못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은 억척스럽고, 불쌍한 사람으로 비춰왔다. 외모로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고 가치를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외모를 비하하지는 않아도 품평하거나 이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멘트와 자막도 난무하다. 이렇게 품평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유발하고자 하는 모습 또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외모를 평가하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 양 몰아가는 것이 재미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품평의 대상이 나의 가족, 친구 또는 나 자신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웃을 수 있었을까?

 

 

“양꼬치엔 칭따오”

 

남을 비하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 대상이 나 또는 내 주변인 것은 불편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비하할 대상을 찾기 시작했고, 우리와 확연히 다른 사람들을 다음 타깃으로 삼았다. “양꼬치엔 칭따오”라는 유행어를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예능 프로그램 <SNL> 중 출연진들이 다양 각국의 앵커로 분해 각 나라의 언어를 어설프게 따라하며 유행한 말이다. 방송은 서양 남성, 일본 여성, 중국인 등을 희화화했다. 별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아 보아지만, 중국인 특유의 말투를 흉내내며 이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것은 중국인 입장에서는 기분이 언짢을 수 있다. 반대로, 한 중국 개그맨이 ‘소주엔 닭발’하며 웃음을 유발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TV 속 인종 차별 혹은 인종을 소재로 하는 웃음 코드는 사실 오랫동안 만연해왔다. 개그콘서트의 <시꺼먼스>라는 코너는 얼굴에 까만 분장을 하고 흑인을 비하했으며, <사장님 나빠요>라는 코너는 동남아 근로자들의 어눌한 말투를 흉내 내며 비하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민감한 소재인 민족을 소재로 타 민족의 외모와 문화, 그리고 발음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비정상회담’과 같은 세계화와 다양성을 표방하는 방송도 아직 외국인 희화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정상회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패널들은 방송에서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제1 언어가 한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발음이나 억양, 단어가 한국인의 발음과 조금 다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방송은 이를 웃음 소재로 삼는다. 외국인의 발음을 그대로 적거나 한국인과 다른 억양을 따라 하는 등 외국인의 발음을 다른 것, 특이한 것, 웃긴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비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그들의 발음은 웃음거리가 된다. 12월 방송된 <라디오 스타>에서 잭슨은 이러한 한국 예능의 이상한 개그 코드에서 느낀 불편함을 드러냈다. MC인 김구라에게 ‘중국어 한번 해보라고’ 하며 “한국어는 자신에게 외국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잭슨은 홍콩에서 태어난 아이돌 멤버로 제 1언어가 한국어가 아니다. 이런 잭슨의 한국어 발음이나 잘못된 문법을 가지고 마냥 귀엽다거나 웃기다고 소비하는 것 또한 문제다.

미디어가 무분별하게 생산한 모습에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외국인의 서툰 한국어를 웃기고, 귀엽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한인 배우의 영어 발음을 조롱거리로 만든다면, 이 또한 엄청난 논란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어가 제1 언어가 아닌 외국인이 한국어 발음을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특성은 한국에서 개그 소재로 굳어졌다. 우리는 서툴거나 나와 다른 것을 우습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미디어는 우리에게 웃음을 학습시키고 다시 대중의 인식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편견을 재생산한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편견은 결국 사회 전체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안녕하세요? 시… 신현준이에요

 

웃음의 공격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외국인을 넘어 찾아낸 우리와 다른 사람은 사회적 약자였다. 웃음의 대상이 상대적으로 약자이며 나와 멀리 있다는 생각은 죄책감을 덜어주었고 그들을 마음껏 희화화하기 시작했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신현준의 작품 중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주인공 기봉이를 언급했고, 한 패널이 극 중 기봉이가 달리는 자세를 따라 하며 “아, 기봉이 있었네!”라고 말했다. “기봉이 인사 한번 해 주세요. 기봉이”라는 말에 <맨발의 기봉이>에서 기봉이가 쌈 싸 먹는 장면이 자료화면으로 나왔고, 신현준은 극 중 기봉이의 말투로 “안녕하세요? 시… 신현준이에요”라고 했다. 이에 제작진은 ‘넘치는 개그 열망’이라는 자막을 넣기도 하였다.

어린 시청자들들이 흔히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렇다. <나 혼자 산다>에서 멤버들이 무에타이를 배우던 중, 양쪽의 관자놀이를 오른쪽 주먹과 왼쪽 팔로 막는 가드 자세에 대해 “이거 동네 바보 동작이야?”라는 말로 장애인 비하의 포문을 열었다. 여기서 끝이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이 멘트에 대한 반응 또한 충격적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본 동작보다 과장된 폼으로 팔이나 몸을 웅크리고 뒤튼 자세를 표현했다. 그들이 흉내 낸 것이 ‘동네 바보’로 통칭되는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은 너무 명백했다.

그저 무에타이 기본 가드 자세가 우스꽝스러워 과장했을 뿐이라는 변명은 말이 안 된다. ‘동네 바보’라는 말이 나온 뒤에 과장된 신체 희화화가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 생각할 줄 모른다면, 그 순간 그들은 지성인 답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장면들이 개그 코드로 방영된 것은 비단 출연진의 인식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장애인들의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로 희화화하고, 이것이 문제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방송한 PD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사회적 약자로 배려가 필요한 이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희화화하여 웃음 코드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