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커버스토리
길에 있는 것들

 

길을 걷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것들이 있다. 공중전화박스, 유기동물, 노숙자…. 매일 만나지만 가까이하진 않는다. 그런 날, 그런 거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이다. 같은 길 위에 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존재들을 오늘은 잠시 바라본다.

 

다시 찾아온 거리의 작은 공간
  “동전 몇 개 들고 찾아가서 자주 이용했죠. 비가 오면 친구랑 둘이 들어가서 비를 피하기도 했고요.”
  “놀자고 친구들을 부를 때나 준비물을 놓고 와서 부모님께 전화할 때 썼던 기억이 나요.동전이 없으면 1541인가? 콜랙트콜 쓰고….”  
  동전 하나로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던 공중전화. 한때 공중전화박스는 생활과 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그때의 영광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점점 낮아지는 사용률과 관리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공중전화박스는 매년 폐쇄중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15만대에서 7만대로 그 수가 대폭 감소했으며, 2017년에는 5만 대까지 줄여질 예정이다. 3배가 줄었지만 공중전화 사업은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중전화를 아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중전화사업은 공익사업, 보편적 요구 사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통이나 무선통신이 마비되는 비상시에 꼭 필요하다. 실제로 일본에서 2011년 쓰나미 사태 당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필요성을 인정받은 공중전화박스는 결국 길 위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박스마저도 고장, 관리 미흡으로 외면받는 실정이다. 청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지저분한 거리의 흉물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 요즈음, 길 위에 특이한 박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모양새는 공중전화박스와 비슷하나 빛바랜 하늘색 대신 알록달록한 색을 입혔다. 걸어가며 찬찬히 살펴보니 종류도 다양하다. ‘흉물’이라는 얼마 전까지의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개선된 모습이다. 이렇듯 애물단지로만 여겨지던 공중전화박스가 변화하고 있다. 길 곳곳에 있다는 장점을 살려 리모델링을 거친 것이다. 전기차 충전소, ATM, 무인도서관 등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 설치되었다. 특히 전기차 충전소의 경우 30분이면 완전충전이 가능하며, 주차료도 무료인지라 전기차 보급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바뀐 공중전화박스는 거리의 안전지대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안전 부스, 자동심장충격기 등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안전부스는 비상시 안에 들어가 문을 잠글 수 있고, 문이 잠기는 동시에 사이렌이 울려 주위에 위험을 알릴 수 있어 유용하다. CCTV가 설치되어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기존의 공중전화에 경찰 직통선을 연결해 빠른 구조요청도 할 수 있다. 길 위에서의 따뜻한 시간을 안겨주던 공중전화박스. 흉물로 전락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오늘도 거리를 채우고 있다. 다시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게 된 작은 공간들을 보니 마음까지 채워지는 듯하다.
  


도로 위, 네 발의 온기
  길을 걷다가 종종 사람들이 쪼그려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어깨 너머로 크고 작은 동물이 보인다. 대게는 개 아니면 고양이다. 녀석들은 보통 주인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경계하는 아이도 따르는 아이도 모두가 어딘가 지쳐있다. 그들과 잠시라도 눈을 맞춘 날엔 발걸음이 무겁다. 내일도 길거리에서 지낼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내일도 살아 있을까’하는 물음이 그 지친 모습과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많이 마주치는 존재는 길고양이다. “여전히 서울에는 수많은 빌딩과 수많은 사람들과 200만 마리의 고양이가 같이 살고 있다.”(지식채널e 2006년 방송분 인용)는 말처럼 길고양이는 도시의 풍경에서 빠지지 않는 존재다. 유기된 경우도 많고 처음부터 길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많다. 유유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얼마나 길에 길들여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이들을 ‘길냥이’라고 부르며 보살피는 ‘캣맘’이 흔해졌을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길고양이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은 존재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뜯어 더럽히는 도둑고양이, 새를 잡아먹고 조류 AI를 옮기는 전염병의 근원지, 사람을 공격하는 위험한 존재, 냄새나고 시끄러운 동물. 길고양이에 관한 민원과 다툼이 일어났다는 다수의 뉴스 보도만 봐도 아직까지 이들을 길의 ‘해충’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길고양이는 길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일까. 사실 이에 대해서는 고양이의 습성, 도시 생태계 조사를 통해 ‘아니다’라는 답이 확정된 상태다.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뜯거나 새를 잡아먹는 것은 개체 수가 늘어나 먹이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조금의 사료와 물만 제공하면 고양이들은 굳이 쓰레기봉투를 뜯거나 새를 사냥하지 않는다. 개체 수와 소리 문제도 TNR(중성화 수술 후 방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길고양이 학대를 처벌하는 법률이 생겨났고, 공공기관에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홍보도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성남시의 ‘길고양이에 대한 협조문’이다. 성남시와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명의로 2012년 제작한 이 전단지는 버스정류장이나 아파트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이 절대 아니며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절대로 공격성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중략)… 사람에게 버려졌기에 사람 주변을 맴돌며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도심생태계 내에서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음을 이해하여 주시고, 한번 어긋난 생태계의 균형은 되돌리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됨 또한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2년 ‘길고양이에 대한 협조문’ 일부 인용

  이와 같은 새로운 시각을 통해 길 위의 생명과의 공생이 시도되는 중이다. 사람만이 걸어 다니는 거리는 얼마나 삭막하고 또 위태로운가. 바람직한 시도가 이어져 더 많은 온기가 있는 길을 걸을 수 있길 희망한다.

 

사람 곁에 다시 서다
  3년 전. 집 앞 폐건물에는 항상 노숙인들이 몰려들었다. 어쩌다 그 앞을 지나가노라면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밤이면 일부러 반대편으로 돌아서 귀가했다. 어느 길이든, 어떤 행인이든 추레한 그들을 달갑게 맞이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뉴스를 보면 ‘올해 노숙인 123명 동사’나 ‘50대 男 노숙자 상습 폭행’같은 헤드라인만 눈에 띌 뿐, 그들이 가해자인 사례는 드문 듯하다. ‘지적 장애 노숙인 대상 신용카드 사기범 구속’이나 ‘여성‧청소년 노숙인 상대 범죄 급증’같은 뉴스도 자주 보인다. ‘노숙인’하면 떠올렸던 것은 이상한 냄새와 차림새, 소주다. 하지만 매일 다니는 길에서 본 몇 사람과 길에 있는 그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달랐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2009년 기준 노숙인은 총 4,531명(남 4,288명, 여 243명)이다. IMF 이후 급증한 노숙인은 10년이 넘게 꾸준히 그 수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노숙인, 청소년노숙인, 가족노숙인 문제 등으로 대상층도 다양해졌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노숙인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조차 정하지 않은 상태다. 흔히 노숙인과 부랑인을 구분하지 않고 지칭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듯 사회적인 무관심과 따가운 시선 속에 놓여있는 노숙인들. 그들을 마냥 비난하거나 동정하기보다는 하루빨리 길에서의 생활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료 쉼터나 급식소와 같은 일차적 구호책보다 재활을 목표로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UN이나 미국에서는 노숙인은 경제위기로 인한 실직에 의해 쉼터나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부랑자와 구분한다. 또한 ‘노숙자’라는 단어는 2003년부터 인권존중의 차원에서 ‘노숙인’으로 변경되었으나 여전히 사회에서는 그들을 노숙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잡지 ‘빅이슈(BIGISSUE)’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 잡지로, 홈리스(Homeless, 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자활의 계기를 제공한다. 유명인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지며 현재 10개국에서 14종이 발행되고 있다. 권당 5,000원에 판매되며, 이 가운데 2,500원(50%)이 판매원에게 돌아간다. 홈리스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빅이슈 판매원이 되어 6개월 이상 판매하고 꾸준히 저축하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주어지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발행이 시작되어 2015년 55명(35명 임대주택 이주, 20명 재취업)의 노숙인 재활을 이루어냈다. 최근에는 여성 노숙인 피해 사례가 많아지는 점을 의식해 ‘빅이슈위드허(BIGISSUEwithHER)’도 진행 중이다. 잡지 포장 및 발송 업무를 통해 여성 노숙인에게 자활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노숙인들에 대한 시선과 길의 풍경을 바꿔주고 있다.  

“요즘같이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기 살기 바쁜 도시인들에게 <빅이슈>는 ‘인생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120호 <거리에서 온 편지:독자 김주연>
“저를 찾아오는 독자분들이 가끔 제 안부를 묻곤 합니다. 이제는 저도 용기 내어 독자분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를 갖게 됐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120호 <거리에서 온 편지:판매원 김기철>

  길을 걷다보면 신호등이나 역 근처에서 “빅이슈 사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면 반드시 빨간 모자를 쓰고 같은 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서 있다. 그에게 행인들은 안부를 묻는다. 커피 한 잔을 나누기도 한다. 무섭고 꺼려졌던 존재에서 일상을 나누는 존재로. 한 권의 잡지는 그렇게 길 위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홍대 근처에서 빅이슈 만나보기 : 홍대정문 / 홍대입구역 2, 9번 출구 / 신촌 3, 6번 출구 / 합정 2, 7번 출구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각각의 이유로 멀리하기만 했던 물건과 생명, 그리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보이는 변화의 조짐은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답다. 외면과 멸시에서 공존으로 가는 길. 길 위의 존재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내일의 걸음을 기대해 본다.

강민정  kmj06032003@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하이퍼리얼리즘
[문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하이퍼리얼리즘
[커버스토리]
아웃트로
[커버스토리]
( )
타이포그래피의 빛
[커버스토리]
타이포그래피의 빛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