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늘, 감정별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어쩌면 우리는 마음속에 저마다의 커다란 하늘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조용하고 잔잔한 곳에 누워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을 헤아리듯,
우리도 가끔은 가만히 멈춰 우리의 감정을 헤아려야 하니까.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볼 때야 비로소 하늘을 이해하듯,
무심하게 지나치면 내 감정조차 이해할 수 없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세상을 거쳐 가는 모든 이는 사실 마음속에 넓디넓은 하늘을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그 속에는 흔히 ‘감정’이라고 불리우는 별이 쏟아질 듯이 가득 살고 있고 우리는 온전히 그 별들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비로소 그것들을 마주한다. 저마다의 하늘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고, 또 예상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때로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버거워한다.

’행복’,’슬픔’ 등의 딱딱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수많은 감정이라는 것들은 놀랍게도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실제 별들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하늘을 머리 위에 떠 있는 것 하나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랬기 때문에 오래된 생각을 거스르는 또 다른 하늘의 존재를 차마 인정하지 못하고 딱딱한 단어들에 이러한 별들을 숨겨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별이 하늘에 존재하듯 우리 마음에도 셀 수 없는 별들이 존재한다는 걸 왜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하늘은 홀로 존재할 때에도 모습을 바꾸지만 다른 이들의 하늘과 만날 때 가장 특별한 별들을 탄생시킨다. 혼자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을 뛰어넘어, 누군가를 보며 떠올리는 아름답고 슬픈 별들. 그리고, 여러 개의 하늘이 만나 서로의 하늘을 물들이는 놀라운 일들. 특히 그 별들은 ‘사랑’, ‘열등감’, ‘친밀감’ 등의 수많은 이름으로 글과 노래가 되어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있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존재하기에 오늘 나의 하늘도 조금은 특별하다.

이러한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하늘의 모습이 부끄러워 다른 하늘을 지닌 척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지닌 하늘은 모두 제각각 달라야 정상인데 몇몇 하늘만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니까, 자꾸 진짜 모습들을 숨길 수밖에.

나는 지금부터 나의 진짜 하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별건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당신에겐, 수많은 다른 이의 하늘 중 하나일 뿐일 이야기.

나의 하늘은 홀로 존재할 때에도 모습을 바꿀 줄 안다.
외로움에 몸을 떨 줄도 알고, 슬픔에 몸담을 줄도 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사탕 하나에 행복을 배울 줄도 알고, 텅 빈 공간에서 내 귀를 타고 흘러오는 음악 하나에 나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감정을 나눌 형제가 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어릴 적부터 혼자였던 나는, 집에서 혼자의 하늘을 들여다보는 게 더 익숙했다. 어쩌면 세상에는 나의 하늘만이 존재한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주 어릴 적의 나는 오직 ‘나’라는 기준에 맞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해하고자 했으니까. 나는 나의 하늘을 온전히 보여주는 데도 익숙했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내가 느낀 것을 전부 표현했다. 조금은 과장된 이야기일 진 모르겠으나, 나의 하늘이 밝아지면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 조각들은 쉽게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라는 곳을 관찰할수록 나는 당연하게도 수많은 존재 중 하나였고 수많은 하늘 중 하나였다. 방문을 열고 발을 내디딘 세상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많은 하늘을 마주해왔다. 내 마음속에서는 아름다워 보였던 별이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옮겨가면서 뾰족뾰족하게 모습을 바꿔 가차 없이 그를 쿡쿡 찔러댈 때도,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나의 하늘에서 일어난 작은 진동이 다른 하늘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나에게 하늘은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많이 부딪혀도 봤다. 나와 맞지 않는 하늘과 마주하면서 내 하늘을 어지럽히기도 했고, 다른 이들의 하늘을 망가트려 보기도 했다. 다른 이의 하늘을 탓하기도, 나의 하늘을 탓하기도 해봤다.

셀 수 없이 부딪힌 경험들을 서랍 속에 갇힌 일기장에 차곡차곡 쌓아둔 나는, 그제서야 다른 이에게도 하늘이 존재한다는 것을 온전히 깨달았다. 내가 그랬듯 누군가는 나의 하늘을 궁금해하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자꾸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기심’이라는 별이 미워 보였고, 애꿎은 구름이라도 끌어와 별의 일부를 감춰 남들이 ‘이타심’이라고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하늘을 열심히 꾸미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새로운 하늘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의 진짜 하늘을 드러내는 게 두렵고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하늘에 슬픈 별이 떠올라도, 나는 그 별이 밝은 별인 것처럼 열심히 색을 입혔다. 내 슬픈 별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게, 또 그 그늘이 다른 사람의 하늘을 어지럽히는 게 너무 싫었다. 꽤나 효과가 있는 듯싶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고 나를 깎아내리는 부끄러운 별들에도 마구 검은색을 칠했다. 검은색을 칠하고 나면 그 별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적어도 다른 이들이 마주하는 나는 항상 행복한 사람이고 싶었고, 당당한 사람이고 싶었다.

스스로도 꾸며낸 하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려 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친구가 너무 슬퍼했다. 친구의 하늘엔 슬픈 빛을 내뿜는 별이 떠올랐다. 내 앞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진짜 나의 하늘을 드러내는 것보단 꾸며내는 것에 더 익숙했던 나는 가장 먼저 ‘공감’이라는 별을 그가 볼 수 있도록 밝게 높이 높이 띄웠다. 그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했으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공감이라는 감정을 진심으로 온전히 느꼈는지는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냥 그 행동은 내가 수없이 연습해왔던 행동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튀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수없이 공감을 연습해왔고 다른 이의 의견을 따라가는 법을 배웠던 사람이었다. 다른 이의 하늘과 마주했을 때 상처받지 않는 방법으로써 스스로를 감추는 게 더 편했던 사람이었다.

친구는 나의 말이 따뜻했다며 공감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친구의 슬픔은 진심인데, 그 진심을 불확실한 공감으로 감싸줬다는 게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하늘이 가짜로 물들여진 만큼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다른 이의 하늘도 모두 허구일 것만 같았다. 끝없는 의심이 시작되었다.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었다. 나는 오늘 모든 이에게 진심이었는지, 그들은 나에게 진심이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헛헛함 만이 나를 감쌌다.

살다 보면, 우리는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순간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순간들은, 나의 하늘에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그래서 많이 변해왔다. 나의 하늘을 드러내는 데 거침없었던 내가 겁에 질려 나의 하늘을 자꾸 숨기는 그런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최근의 나는 사실 많이 괴로웠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고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의 하늘을 접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의 하늘을 바꾸어 나갔다. 허구의 것을 드러내는 것도, 나의 진짜 하늘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모두 정답이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나의 하늘을 바라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을 해봤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지금의 나에게, 우리의 하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일 것 같았다. 꾸며진 하늘은 나쁜 것이냐고 묻는다고 해도 나는 대답을 망설일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우리의 하늘을 경험하고 배워가는 중이니까.

그래도 오랜 시간 개개인의 하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나였기에, 감히 몇 가지 결론 정도는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이의 하늘과 어울리고자 나의 진짜 하늘을 드러내지 않는 마음도 또 하나의 감정이고, 나의 하늘이라는 것. 나의 하늘은 꾸며낼 순 있지만, 완전히 새롭게 바꿀 수는 없게 홀로 흘러간다는 것. 하늘을 가졌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나의 별들을 들여다보고 돌봐주는 것뿐이라는 것.

방금까지 늘어놓은 나의 이야기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어쩌면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하늘을 지녔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 하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으니까. 수많은 별이 존재하듯 하늘을 관리하는 방법에는 수만 가지가 존재할 테니까.

나는 오늘도 나의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예쁜 색을 칠하고 있다.

나와 마주한 지금, 당신의 하늘은 어떠한가?

김지윤 jy0007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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