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는 각종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이 만연하다. 혐오표현은 여성, 남성, 성 소수자, 이주민, 특정 지역 등으로 세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강도 역시 심해지고 있다. 특히 지역혐오의 경우 단순한 비유를 넘어 마치 유행처럼 여겨지면서 일상어 속으로 침투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혐오표현에 비교해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린 현실이다. 지역혐오를 내버려 두는 풍조는 수십 년간 지속하였고, 결국 지역혐오로 인해 생겨난 괴담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루머들이 대부분 전라도를 표적으로 삼고 있기에 일방적 혐오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지역혐오표현으로 상처를 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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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홍어랑은 처음 말해봐.” ”나는 광주에서 계속 살다가 대학을 서울로 왔는데 개총때 일베 하던 어떤 새끼가 술에 취해서는 나한테 홍어라고 하더라? 자기가 홍어랑은 처음 말해본대. 걔는 홍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했을까? 나도 나중에야 알았지만, 홍어라는 말이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광주 민주화 운동가들의 시신에서 나던 냄새가 홍어 냄새 같다는 비하에서 생긴 거래. 어떤 사람들은 홍어가 광주 특산품이어서 그런 거라고 포장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어. 광주는 내륙지방이야. 절대 홍어가 특산품이 될 수가 없어. 목포라면 모를까. 민주화운동을 깎아내리는 단어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단어를 쓰다니. 특별한 이유때문이라기보다 애초에 지역 간의 급이 다르다는 무의식과 함께 그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나는 한 번도 내 고향을 부끄럽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오히려 자부심을 품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사회 나와 보이니까 고향 이야기만 듣고 나를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꼈어. 특히 어른들과 이야기 나눌 때도 고향 어디냐고 여쭤보시면 자꾸 망설이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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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사람들은 뒤통수 잘 치니까 믿지 마.” “얼마 전에 택시를 타고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데 기사님이 대뜸 제 말투가 부산사람 같은데 맞느냐고 하시는 거야. 그렇다고 하니까 자기도 부산이 고향이라며 반가워하시길래 몇 마디 주고받았어. 그러던 중에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내가 남자친구와 하는 통화를 엿들으시더니 다짜고짜 전라도 사람 만나냐고 하면서 비하하셨어. 남자친구가 전라도 억양이 살짝 있었거든. ‘전라도 사람들이 뒤통수를 잘 친다.’ ‘너도 당할 수도 있다.’ ‘내가 뒤통수 당한 사람들은 전부 그쪽 사람들이었다.’ ‘원래 거기 사람들 모자라게 자라서 그렇다.’…… 정말 어이가 없었어. 얼마나 열불을 내시던지, 전라도가 그렇게 안 좋은 지역이었나 싶더라니까? 내가 알기론 전라도는 조선 시대부터 곡창지대였고 오늘날 전라도가 발전하지 못한 건 전라도가 군사정권 반대할 때 자신들을 옹호해주던 출신지역들을 챙겨주던 정치인들 때문인데 말이야. 민주주의 지켜주다가 정부 눈 밖에 나서 계속 발전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게 전라도인데, 왜 이게 뒤통수를 잘 친다는 말의 근거가 되었는지 진짜 어이가 없어. 나조차도 부산에서 전라도 지역으로 놀러 갈 때 서울 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게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속상한데 말이야. 너무 기분이 나빠서 택시기사님한테 그만해달라고 계속 말씀드려도 계속하시길래 길 한복판에서 그냥 세워달라고 하고 내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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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슨상님 7시잖아요.” “진짜 겉보기에는 너무 평범한 말 같지 않아? 나도 정말 아무 생각 없었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숨겨서 차별한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어. 내가 예전에 한 기업의 입사면접을 갔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도 나는 자기소개밖에 못 했었어. 혹시 내 복장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왜 저한테는 물어보지 않으시냐고 조심스레 여쭤봤더니 ‘슨상님 7시잖아요.(점 추가)’ 하면서 웃으시더라. 그 자리에서 나는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그냥 시간이 많이 늦었기도 하고, 내 문제점을 말해주기 싫으신가 보다.’ 하고 넘겼어. 근데 밖에 나와서 시간을 확인해보니까 오후 4시인 거야.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서 검색해보니 그게 전라도 비하 표현이래. 어이없지? 전라도가 한반도에서 7시 방향에 있어서 생긴 말이래. 전라도 사람이라서 안된다는 거지 뭐. 내 서류에 적힌 주소가 전라도였거든. 이렇게 바로 앞에서 차별을 당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 의미를 몰라서 바로 따지지 못한 게 너무 억울해. 지금은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비참하고 눈물이나. 내가 취업준비를 시작할 때 친척들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당해보니 정말 충격이었어. 슨상님이라는 말도 전라도의 사투리‘선상님’을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비꼬는 말이라는데, 이렇게까지 비유적으로 차별을 해야 하나? 표현의 기원은 일베 같은 소수의 혐오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일상화되어서 사용되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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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야 뭐냐노“ ”요즘 경상도 사투리를 무슨 유행어처럼 쓰더라? 차라리 말이라도 되게 만들어서 쓰지. ‘뭐냐노? 웃기다노.’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게 쓰는 걸 보면 좀 역겨워. 단지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서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자기 말투로 말하지 굳이 타인이 엄연히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뺏어서 밈처럼 즐겨야 하나? 그리고 나는 이게 일베 하는 애들만 쓰는 건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어떤 여자애가 이 말투를 쓰길래 너무 놀랐어. 왜 그런 말투를 쓰는 거냐고 물어봤더니‘일베에서 경상도 사람들 말투로 놀아서 경상도 사람들은 언어를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면 일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걸 차라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오히려 일베가 뺏어간 언어의 권력을 되찾아오는 길이다.’라면서 그럴싸하게 정당화하더라? 일베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여전히 피해를 받고 있는데 말투만 뺏어온다고 그동안 있던 혐오가 다 사라지나? 그 권력을 가진 언어가 여전히 호남을 짓밟고 있는데 |
나가며
어떤 이는 지역혐오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 발생하는 일탈적 행위이므로 그 집단만의 문제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의 일탈적 행위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혐오표현이 널리 대중화되고 일상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범죄 그 자체나 범죄자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지역감정과 성급한 일반화를 통해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악의적인 지역혐오 표현들은 주로 특정 지역을 표적으로 삼고 있기에 더 심각하다. 실제로 한국언론학보에서 진행한 포털과 지역혐오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에서 지역혐오 댓글 중 전라도 지역을 대상으로 한 혐오 댓글은 무려 64.4%를 차지했다. 이는 범죄의 발생지역과 무관한 전라도 혐오 댓글과 그에 달린 답글들은 분석의 곤란함으로 인해 배제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꽤 높은 수치였다. 즉 지역혐오는 전라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일방적이고 비이성적인 혐오라고 볼 수 있다. 범죄나 비도덕적 행위는 어느 지역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의 인구대비 범죄 발생률은 전국 평균과 비교해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에 관한 편견은 오랜 시간 지속하여왔다.
특히 사투리에 부여된 혐오적 의미는 오늘날 일종의 유희로 자리를 잡았다. 악의적 표현이 유희가 된다는 것은 그러한 일방적 차별과 언어폭력이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되고, 동시에 사람들의 양심과 죄의식은 무뎌진다는 말이다. 이미 오랜 시간 이어진 지역혐오는 이미 청소년들의 사고를 조형했다. 혐오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실제로 전라도는 위험한 지역이며 호남인은 표독하다는 괴담을 사실로 믿기에 끊임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혐오표현을 사용한다. 혐오표현은 혐오로 인해 생겨났지만, 한번 만들어진 후에는 오히려 표현이 혐오를 부추긴다.
사투리의 경우, 아주 독특하고 예외적인 언어라는 지역혐오가 깔려있다. 표준어 중심의 언어교육과 함께 사투리는 ‘촌스러운 것’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표준어를 구사자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사투리를 구사자는 마치 돌연변이처럼 보는 사회가 되었다.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사투리를 쓴다면 신기하다는 반응과 함께 ‘블루베리 스무디’를 말해보라 시키고, 사투리를 안 쓰면 ‘왜 지방에서 왔는데 사투리를 안 쓰냐’라며 굳이 서울말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심 쓰듯 말한다. 언제부터 이런 꽉 막힌 사고방식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이를 해소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때 우리는 ‘언어가 가진 힘’에 주목해야 한다.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폭력은 물리적 폭력과 다르게 여러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수많은 피해자를 낳는다. 지역혐오가 단지 윗세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기에 심각성을 가져야 한다. 언론과 문학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화콘텐츠에서 이루어지는 ‘지역혐오표현의 전시’는 거의 가해지는 제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방치되었다. 유튜브나 다시 보기 서비스를 통해 우리는 2, 30년 전 드라마를 꾸준히 소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이루어졌던 혐오는 콘텐츠 속에서 다음 세대로, 그다음 세대로 전해지게 된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 같다면 현실을 실제와 가장 가깝게 묘사하는 문화콘텐츠, 드라마를 살펴보자. 과거를 다루는 드라마 ‘사극’의 배경은 분명히 한양인데 노비들은 사투리를 쓴다. 오히려 지방 출신인 양반들이 한양말을 쓰며, 주연급 노비는 주연이라는 이유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어눌하거나, 모자라거나, 신분 차이로 양반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노비들이 모두 사투리를 쓰는 게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게다가 노비 대부분은 많은 지역 가운데 굳이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충청도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느릿느릿하고 멍청하다는 고정관념이 투영되어있는 것이다. 노비의 사투리는 사극과 같은 콘텐츠 속 단순한 요소겠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현실에서도 노비를 묘사할 때면 자연스럽게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게 된다. 이처럼 미디어와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과 함께 혐오를 이어지게 한다.
문학작품과 드라마, 영화를 포함한 문화콘텐츠에서 이루어지는 혐오표현의 전시는 생각보다 오랜 세월 우리의 사고를 조형해왔으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각 지역에 대한 차별적인 고정관념(편견)을 가진 채 살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이상, 호남인들은 오늘도 혐오를 안고 살아간다. 말도 안 되는 근거와 논리로 시작된 지역혐오를 계속 이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지역혐오를 청산하자고 외쳐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당장 우리 세대의 개개인이 끝낼 수 없는 문제라면 앞서 말한‘언어가 가진 힘’을 경계하며 혐오표현의 사용을 자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예진 dimplezyn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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