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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라즈베리 내 맘대로 맛보기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 장르, 배우, 감독, 스토리…. 이유야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겠지만, 이미 그 영화를 봤던 사람들의 리뷰나 평점이 영화 선택에 큰 영향을 줄 때도 있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최악의 작품상’을 받은 영화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에디터의 주관적인 리뷰를 바탕으로 서술된 것임을 밝힙니다.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 
 영화계 최고의 시상식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하루 전날, 영화인들에게는 다소 기분 나쁜(?) 시상식이 열린다. 바로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이 그 주인공. 라즈베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열매의 의미도 있지만, 입술 사이에서 혀를 진동시켜 내는 야유 소리로 경멸이나 냉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래지상(Razzies)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상식은 아카데미 시상식 못지않게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1981년 작가 존 윌슨(John Wilson)이 만든 골든 라즈베리 재단에서 ‘영화값 1달러가 아까운 영화’를 뽑자는 취지로 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초창기에는 윌슨과 그의 친지들이 조촐하게 시작했지만, 현재는 기자와 골든글러브 심사위원 등이 포함된 700여 명의 골든 라즈베리 재단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수상작을 선정한다. 재미로 시작한 시상식이 이제는 영화계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상식이 되었다. 
 <최악의 작품상>부터 시작하여 <최악이 남‧여우주연상>,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각본상> 등 시상 항목도 다양하다. 수상자에게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4달러 29센트(약 5천 원) 짜리 트로피가 수여되는데, 실제로 수상자가 참석한 일은 드물다. 

최근 10년간 수상작 목록
2016년 수상작: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판타스틱 4
2015년 수상작: 세이빙 크리스마스
2014년 수상작: 무비 43
2013년 수상작: 브레이킹 던 part 2
2012년 수상작: 잭 앤 질
2011년 수상작: 라스트 에어벤더
2010년 수상작: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2009년 수상작: 러브 그루
2008년 수상작: 나는 누가 날 죽였는지 알고 있다.
2007년 수상작: 원초적 본능 2
2006년 수상작: 더티 러브 

골든 라즈베리 상의 정확한 기준은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흥행 실패 또는 흥행을 했더라도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내용, 작품성 부족, 장르의 모호함 등으로 논란이 되었던 작품들이 대부분 수상 명단에 올랐다. 

 


1. 2010년 수상작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 에디터가 분석한 ‘최악의 작품상’ 선정 이유 : 긴 상영시간에 비해 지루한 스토리 전개, 전편과의 차별화가 없음, 캐릭터의 특징이 잘 살아나지 않음 
- 에디터의 선택 : 최악의 작품? 글쎄, 재밌기만 했는데? 

 누구나 영화 제목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트랜스포머, 쉽게 말해 변신 로봇들의 이야기다. 지구를 지키는 ‘오토봇’과 지구를 파괴하고 지배하려는 ‘디셉티콘’의 대결 그리고 두 로봇 종족 사이에 끼어있는 인간 세계의 주인공 ‘샘 윗위키’의 이야기가 영화의 큰 줄기다. ‘트랜스포머’ 1편을 살짝 살펴보자. 만물을 창조하는 힘을 가진 ‘올스파크’라는 물체가 지구에 있다는 단서를 발견한 ‘디셉티콘’은 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때 ‘오토봇’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디셉티콘과 맞서 싸운다. 샘과 오토봇들의 활약으로 디셉티콘을 물리치게 되고 오토봇들은 미국 정부와 거래를 맺고 지구에 남는다. 
 후속편인 이 영화 역시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대결이라는 큰 틀은 변함없다. 다만 ‘패자의 역습’이라는 부제처럼 패자였던 ‘디셉티콘’들이 더 강해졌다. 디셉티콘의 대장 ‘폴른’이 등장하고 오토봇의 대장 ‘옵티머스 프라임’이 죽는다. 그러나 인간 샘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이 전편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다. 샘은 생명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매트릭스의 위치를 알아내고, 옵티머스 프라임을 살려내 디셉티콘을 물리친다. 
 SF 영화를 사랑하고, 때려 부수는 장면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이게 왜 최악의 작품상을 받았지? 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14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비해 내용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후반부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장르 특성상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중간중간 녹아있는 고대 로봇들의 이야기와 트랜스포머의 역사, 그리고 새로운 로봇 ‘폴른’의 등장은 전편과는 다른 새로움을 주었다. 우르르 등장하는 로봇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트랜스포머의 최대 강점은 화려한 CG 기술이다. 로봇들이 날아다니고 싸우고 폭탄이 터지는 장면은 보는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다른 로봇과 합체하여 거대한 모습으로 디셉티콘을 때려 부술 때의 짜릿함이란. ‘역시 옵티머스 프라임은 멋있다’라는 감상은 변함없다. 최악의 작품상, 동의하지 못하겠다. 완벽한 CG와 믿음직한 오토봇들의 활약.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영화 아닌가?  
 


2. 2005년 수상작 <캣우먼> 

- 에디터가 분석한 ‘최악의 작품상’ 선정 이유 : 애매한 캣우먼 ‘페이션스’, 배트맨과 분리하려다 모든 걸 분리했음.
- 에디터의 선택 : 캣우먼의 ‘히어로’ 모습이 보고 싶을 때는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겠다. 

 DC 코믹스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배트맨의 조력자 ‘캣우먼’이다. 그러나 기존의 캣우먼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이 영화는 화장품 회사 ‘헤데어’에 다니는 여성 ‘페이션스 필립스(할리 베리)’가 그 주인공. 소심한 성격에 자존감은 바닥을 치는 페이션스는 어느 날 헤데어에서 출시 예정인 노화 방지 화장품 ‘뷰린’에 피부를 굳게 만드는 등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이 들어있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비밀 누설을 막기 위해 헤데어의 회장 부인이자 광고 모델인 로렐(샤론 스톤)과 헤데어 관계자들은 그녀를 살해하지만, 고양이들의 신비한 힘을 받아 페이션스는 부활한다. 초자연적인 감각과 힘을 얻은 그녀는 이전의 연약하고 소극적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적극적이고 강인한 ‘캣우먼’의 삶을 살게 되고, 헤데어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한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나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다니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여주인공 페이션스가 캣우먼의 삶을 살아가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확실하게 표현되었다. 자신을 무시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은 소위 말하는 ‘걸크러쉬’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문제는 그뿐이라는 것. 1시간 40분이라는 상영시간 중 거의 절반이 페이션스와 형사 톰 론(벤자민 브랫)의 사랑 이야기고, 정작 캣우먼의 액션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이었나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배트맨의 조력자였던 캣우먼을 단독 주인공으로 앞세웠다면 선과 악, 순수함과 교활함, 자애로움과 표독함이 공존하는 캣우먼만의 특성을 잘 살려야 했다. 그러나 페이션스는 완벽한 캣우먼으로 변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자신의 정체를 톰 론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자신을 믿어달라며 우는 그녀의 모습과 강인한 캣우먼은 매치가 되지 않았다. 페이션스가 캣우먼으로 선택받은 자라는 느낌보다는 페이션스를 자유롭게 만들어주기 위해 캣우먼이라는 옷을 억지로 입힌 느낌이다. 화장품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꼭 ‘캣우먼’이 필요했을까. 평범한 사원이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하는 내용이 더 통쾌했을 거 같다. 톰 론에게 이별 편지를 전하고, 커다란 달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캣우먼의 뒷모습으로 끝나는 이 찝찝한 결말. 새로운 활약을 보여준답시고 속편이라도 제작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부디 다른 곳에서는 ‘히어로’인 캣우먼을 볼 수 있기를. 

 

3. 2000년 수상작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 에디터가 분석한 ‘최악의 작품상’ 선정 이유 : 이것저것 다 하고 싶은 감독의 욕심, 거대한 거미 로봇의 활약
- 에디터의 선택 : 이 영화는 대체 무엇일까. 보지 않을 거다. 절.대.

 연방정부의 비밀요원 제임스 웨스트(윌 스미스)와 발명왕이자 또 다른 비밀 요원 아티머스 고든(케빈 클라인)은 미합중국 대통령을 암살하고 미합중국을 자신의 나라로 만들려는 알리스 러브리스(케네스 브래너)를 체포하기 위해 파견된다. 알리스 러브리스를 체포하기 위해 두 사람은 여장을 하여 잠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차에서 뛰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온몸을 불사 지른다.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와 코미디적 요소가 돋보이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문제는 일명 ‘브로맨스’와 중간중간 피식거리게 하는 장면 그게 전부라는 것이다. 영화 도입부부터 상당히 당황스럽다. 윌 스미스가 나체 상태로 떨어지지 않나 미국 최고의 비밀 요원이라는 사람이 부담스러운 여장을 하고 나타나지를 않나. 창문을 깨부수고 마구잡이로 총을 쏘는 윌 스미스가 악당인지 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끼고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야 알았다. 이 자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주인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맨 인 블랙>에서 비밀을 파헤치거나 <나는 전설이다>에서 좀비와 싸웠던 윌 스미스는 그야말로 참 ‘멋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윌 스미스가 맡은 캐릭터는 억지웃음을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총 쏘는 모습에 몰입하려 하면 바로 누군가에게 얻어맞거나, 용감하게 철로로 뛰어든 모습에 이제 뭔가 보여주려나 보다 기대하고 있으면 줄이 끊어져서 소리를 지른다. 후반부에서는 총에 맞고 쓰러지더니 여장을 하고 다시 등장한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감독님은 왜 윌 스미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원망스럽다. 
 영화를 보아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발명품’들이다. 의외로 꽤 놀라운 발명품도 여러 개 있었다. 못 만들어내는 게 없는 고든 역의 케빈 클라인 덕에 가끔은 ‘오 신기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장면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발명품 경진대회가 아니다. 기계를 이용한 대학살,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두 비밀요원의 활약이 등장하나 싶었는데 너무 앞서갔다. 러브리스와 고든은 내가 발명왕이라고 대결하고, 그 사이에서 웨스트는 발명품 실험 요원으로 활약한다. 
 백번 양보해서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여 싸우는 것, 좋다. 그런데 러브리스의 기지에서 튀어나온 거미 모양의 거대한 로봇은 정말 아니다. 거미가 러브리스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는 하는데, 그 로봇을 타고 다니면서 폭탄을 쏘고 파괴하고 다니는 모습에서 대체 지금 무슨 영화를 보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서부 영화라는 장르를 표현하고 싶었다면, 말만 타고 다녀도 거미 로봇보다는 백 배 더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코미디 요소를 살리고 싶었으면 이것에 좀 더 초점을 맞출 것이지, 그렇다고 내세울 만한 액션 장면도 없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원대한 꿈을 꿨지만 토끼의 발자국도 찾지 못한 셈이다. 이 영화가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별로 궁금하진 않다. 다신 보지 않을 테니. 
 


최악의 작품상. 명확하게 공개된 기준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최악인지 혹은 최고인지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내가 선정할 골든 라즈베리 상의 수상작은 무엇인지 한번 판단해보자.

송지민  sjm96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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