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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귀여워♥

 

 6평 남짓한 방에 누워있는 것은 자취를 시작하면서 강제로 나의 취미가 되었다. 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옆에는 작고 부드럽고 토실토실한 나의 고양이가 나와 함께 나란히 누워있다.
 
 작년에는 유독 집에 들어오면 ‘싸움을 끝내고 돌아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개중에는 정말로 나의 가치관에 대치하는 것들과 ‘싸우고’ 온 날도 있었고, 고요하고 평탄했지만 그냥 기분이 그랬던 날도 있다. 분명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참 좋아했던 나인데 말이다. 이 느낌은 대단한 피로감으로 변해서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귀가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그 무섭다는 대2병에 걸렸던 것일까. 하루가 다르게 더욱더 나빠지기만 하는 세상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집 앞까지 지겹도록 늘어진 가파른 오르막길 때문일까. 집에 돌아오면 문 앞에서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숨을 몰아쉬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집에 도착함으로써 그 감정이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피로감을 푸는 대신에 지독한 외로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때문에 모순적이게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외로움을 못 견뎌 다시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밤, 어김없이 현관에 멍하니 서 있다가 깨달았다. 아, 나 혼자 사는 게 처음이구나. 나의 천장을 가진다는 건 사실, 이렇게 외로운 일이구나. 자유를 느끼는 딱 그만큼, 어두운 공백이 나를 버겁게 짓누를 수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꼈다. 어두운 집의 쓸쓸함이 밖에서의 피로감을 압도했을 때부터 나는 많은 대안을 찾아 나섰다. 어쨌거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 친구들 불러서 파티하기,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만끽(하는 척)하기, 혼자 있을 땐 무조건 책을 읽거나 영화 보기 등 그 좁은 집구석에서 무더운 여름을 더 무더운 무기력감으로 보내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하지만 2학기 개강을 일주일 남겨둔 와중, 슬슬 서늘해지고 있는 침대 한 귀퉁이를 뜨끈한 엉덩이를 가진 고양이에게 내어주는 일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대안이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1주일간 맡게 된 하얗고 작은 고양이 ‘밍키’는 피치 못할 사정과 나의 욕심으로 인해 2주가 넘어도 우리 집에 머물더니, 한 달 후에는 결국 “키우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전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의 동거묘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집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이 지경으로 밍키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사랑을 속삭이고, 집착할 줄도 모르고. 내 인생을 완전히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인 줄도 모르고. 
 언젠가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상상해본 적은 있지만 사실 이 결정은 확실히 급작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집에 들어오면 꿀 같던 잠을 멈추고 사뿐사뿐 문 앞까지 다가와 눈길 한 번 쓱 주고 사뿐사뿐 다시 잠을 청하러 가는 고양이의 무심한 마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 고양이는 어둡고, 좁고, 메말랐던 나의 집을 ‘즐거운 나의 집’이라도 열창하고 싶게 만드는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분명 외로웠다. 그래서 더욱 고양이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흔히들 ‘외롭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들이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동거에는 오로지 반려인의 동의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찌 됐든 이기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움에 있어서 어떤 이유든 좋다고 생각한다. 예뻐서, 불쌍해서, 외로워서, 친구가 필요해서. ‘얼마나, 어떻게 함께하는지’라는 중요한 관문이 반려동물 평생에 있어서 존재하는데 키우게 된 계기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하지만 본격적으로 동거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오죽했으면 ‘내가 이 아이를 키우고 싶었나?’ 되돌아볼 정도였으니까. 고양이는 내가 주고, 주고 주다가 또 주고, 그렇게 주기만 하는 존재다. 그나마 내가 기대하는 보답은 가끔 나의 무자비한 뽀뽀세례를 피하지 않는 정도? 악몽을 꾸다가 울면서 깬 나의 눈물을 정성스럽게 그루밍(핥아주는) 해주는 정도? 그리고 앉아만 있어도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귀여움 정도다. 귀여움이라는 건 내 예상보다 너무 강력했다. 그래서 이 엄청난 희생과 돈과 ‘줌’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버린 것은 물론, 어떻게 하면 더 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만들며 나를 시중만 들어도 행복한 존재로 전락시켰다. 그래도 불쌍함을 느끼실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 귀여움을 본다면 이렇게 되고야 말 테니까. 잘 씻기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는 흰 털, 흥분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면 빨갛게 변하는 핑크색 코, 이름을 부르면 무심하게 쫑긋거리는 핑크색 귀, 내 가슴팍에서 꾹꾹이를 하곤 하는 푸딩 같은 발바닥, 기분이 좋으면 하트모양을 그리는 우아하고 긴 꼬리. 그뿐이 아니다. 태양을 머금은 듯 노란 토파즈를 박은 눈, 기분이 좋을 때만 보여주는 포동포동한 배, 가끔 나의 손가락을 핥아주는 까슬까슬한 혀! 이 모든 게 한 생명체 안에 들어있다. 이 단락을 쓰고 나니 나의 고양이를 꼭 안아주지 않을 수 없다.

 내 인생을 오랫동안 괴롭힌 과제는 ‘나의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작게는 과 내 학생회 직책이나 팀플에서의 내 역할부터 종국에는 과연 돈은 제대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까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꽤나 현실적으로 엄습해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브 앤 테이크’가 수평을 이루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는 애정만큼 상대에게서 받는 것, 내가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 기대를 받은 만큼 해내는 것 따위에 말이다. 내가 먼저 ‘테이크’한 경우에 그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과 내가 ‘기브’한 만큼 돌려받지 못했을 때의 우울감은 서로를 먹고 먹어 몸집이 집채처럼 거대해졌다. 게다가 이렇게 계산적으로 모든 관계를 바라보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덤으로 날 짓눌렀지. 

“모두가 나에게 객관적인 이 세상에서 끝없이 예뻐해 주는 한 사람을 네가 가질 수 있다면, 보답 같은 건 상관없다.” 모 웹툰에서는 딸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이런 강박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끝없이 주는 일밖에는 할 수 없는 고양이 덕분이다. 애초에 내가 받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 관계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고양이에게 받는 것은 조금 다른 것이다. 내가 주었던 것과 같은 가치로 돌려받지는 못하지만, 나는 고양이의 ‘존재’에서 더 큰 것을 받는다. 우울할 때면 그냥 귀여운 나의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로가 된다. 나조차도 믿지 못했지만 그렇다. 딱히 만지거나 안고 있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만지고 안으면 고양이 님이 별로 안 좋아하신다) 귀여운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강박, 우울 따위의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있다. 사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답을 바라지 않고 주기만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조금씩 ‘주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전혀 다른 가치로 ‘받는’ 법도 배운다. 이렇게 나 혼자만의 위로를 받으며 한참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양이는 칭찬이라도 해주듯 조용히 내게 다가와 머리를 비빈다. 그렇게 우울함이 떠나간 자리에는 엔도르핀만이 가득가득 차오른다. 가득가득. 

 이 글의 초안을 쓰던 1월 4일은 나의 고양이 밍키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앞으로 함께할 수많은 시간 동안 나의 작은 바람은 딱 하나다. 이 동거가 그녀에게 속박이지 않길. 따뜻한 잠자리와 가득한 사료가 나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행복이길. 나의 행복이 그녀에게도 전해져서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편안함이 되길. 그래도 밖에서 사는 것보단 낫다는 마음으로 내 옆에 오랫동안 있어주길. 이 따뜻한 보금자리에 대한 보답으로는 지금처럼 약간의, 아니 아주아주 커다랗고 감당이 안 되는 귀여움이면 충분하다. 

 내 옆에는 지금도 고양이가 있다.

윤다원  dawon0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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