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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내 꺼

낙태(落胎), 말 그대로 잉태한 아이를 떨어뜨리는 일을 말한다. 산모보다는 태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알게 모르게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단어이므로 최근에는 임신중절이라는 대체어가 권장되고 있다. 그러나 관용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말이므로 아래에서는 임신중절과 혼용하도록 한다.

 

검은 시위에 관하여

지난해 10월, 불법 낙태에 대한 처벌 강화방안이 발표되자 낙태 금지를 반대하는 ‘검은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참가자가 착용하는 검은 옷과 마스크는 여성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였다. ‘내 몸은 나의 것’, ‘내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든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다. 시위를 주도한 여성단체들은 임신 중단을 죄로 규정하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대한민국은 낙태가 가장 많은 국가군에 속한다. 그러나 형법상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동안의 낙태는 비밀리에 치러지거나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예외적 허용사유를 통해서만 합법적으로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 낙태수술이 적발되면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최대 1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추진되자 의사들이 수술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고, 시민들의 시위 참여 행렬이 거세졌다. 불법 낙태의 대책은 전혀 나오지 않은 채 사안이 표면적으로만 다뤄졌기 때문에 반발을 산 것이다.

낙태, 즉 임신중절수술에 관한 논의는 오랜 기간 뜨거운 감자로 화두에 올랐지만,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양측의 대립은 여전히 팽팽하고 임신중절수술은 여전히 불법이다. 우리는 프로라이프(pro-life), 프로초이스(pro-choice)라는 말을 알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입장을 프로라이프, 여성의 선택권을 우선하는 입장을 프로초이스라고 한다. 이 표현이 아주 적확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뭉뚱그려 말하면 프로라이프는 낙태 반대, 프로초이스는 낙태 찬성이 된다. 우리가 검은 시위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아연했던 것은, 여태 학교에서 낙태의 잔인성과 위험성,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연민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프로라이프 위주로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이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작년부터 가속화된 국내의 낙태 금지 반대 시위를 계기로 우리 주위의 낙태 담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내의 임신중절수술에 관하여

우리나라에서 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이 된 것은 1995년이다. 현행법상 임신중절수술은 형사처벌 대상으로, 몇몇 경우에만 한정적으로 허용된다.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르면 ①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④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⑤임신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합법적으로 시술할 수 있다. 이 경우 임신 24주 이내에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조건들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심지어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은 해당 사건이 형사 고소나 기소가 되어 있어야만 인정된다. 만일 법에 정해져 있지 않은 사유로 수술한 사실이 적발되면 여성과 의사 모두 형사처벌을 받는다. 임신중절수술을 ‘태아에 대한 살인 행위’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말이 어딘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위해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라면, 본인이나 배우자에게 유전 가능한 질환이 있으면 법적으로 낙태 수술을 허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경제적, 환경적인 이유의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의 모자보건법이 태아의 생명 존중을 위해 꼭 필요한 법이라는 확신조차 어려운 대목이다.

예외 조항에 따라 합법적인 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동의도 있어야 하는데, 조금 다르게 말하면 여성은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낙태를 할 수 없다. 배우자의 동의 없이 수술을 받은 여성은 법에 따라 형벌에 처하지만 수술을 반대한 배우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낙태의 기록도 여성에게만 남는다.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고 낙태를 결심하더라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배우자의 의사 앞에 맥없이 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따져보면 우리나라의 낙태 문제는 엄격한 규제법과 높은 낙태율 사이의 괴리에서 온다. 형법은 태아의 생명권을 거론할 뿐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낙태선택권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없다. 또 낙태라고 하면 미혼모 문제라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임신중절수술이 마치 문란한 성생활과 생명 경시 때문에 일어난다고 여겨지는 통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복지부가 실시한 전국 인공임신중절 수술 변동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이뤄진 16만 8,739건의 수술 사례 중 피수술자가 기혼 여성일 경우는 9만 6,000여 건으로, 7만 2,000여 건인 미혼 여성보다 더 많이 불법 낙태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낙태는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고 흔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형법상 범죄로 규정되어 있어 여성들이 낙태 비용과 의료사고 등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관하여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저출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행정부가 발표한 전국 243개 자치단체의 출산 통계 자료이다. 한마디로 지역별 가임기 여성 분포도라고 볼 수 있는데, 어느 지역에 임신이 가능한 여성이 몇 명 있는가를 나타낸다.

저출산의 원인이 출산에 대한 복지가 미흡한 것, 경제난, 출산 의지 등에 달렸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저출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자료라고 하기에는 사회 문제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또, 출산에 대한 통계의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고 이것을 ‘지도’로서 발표한 것은 여성을 임신의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가임기 여성은 반드시 미래에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는 전제에도 문제가 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조심성이 부족한 접근이었고, 보는 이에 따라 폭력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아이를 출산하는가 마는가의 문제는 여성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결정한다. 여성이 스스로 앞으로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너무 당연해서 구태의연하기까지 하다. 여성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사람의 존엄성을 스스로 주장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프로초이스를 프로라이프의 반대말로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부당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치 프로초이스가 생명권에 반대하는 입장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초이스는 여성의 생명권과 삶을 지지하는 것이다.

한 여성이 낙태하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사회적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끊이지 않는 성폭력, 부족한 성교육, 여성의 순결을 중요시하는 풍조, 피임 의식의 부재 등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상대 남성의 존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여성에게 아이의 생명을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억압되는 것은 대한민국 출산지도의 태도와 같이, 여성이 출산할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면접에서 결혼이나 육아에 대해 대놓고 물어보거나 ‘애 낳으면 그만둘 것’이라는 편견으로 여성을 채용하지 않는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채용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조조정의 명목으로 권고사직을 받는 임신(산)부도 많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고, 또 지속되기 얼마나 힘든지는 단순히 취업률 그래프에 나타나는 지표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모성애의 이름으로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가 되었다. 매년 수십만 명의 여성이 산부인과 의사의 처분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고 있다.

 

여성의 선택권에 관하여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일에 대해 하겠다, 혹은 하지 않겠다로 대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선택권이 있다’고 말한다. 굳이 말하건대 여성의 선택권은 여성에게 있다. 여성이 임신을 지속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여성이어야 하지, 국가나 정부, 가부장제, 형법이어서는 안 된다. 안전한 출산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성에게 아이 낳기를 강요하는 것은 성차별이며 인격을 무시하는 대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여성의 몸은 도구가 아니다. 낡아빠진 성 인식 아래에서 여성들은 흡사 출산의 ‘기능’을 가진 것처럼 언급되곤 한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기능을 쓸지 말지는 여성에게 달려 있으며, 누구도 출산의 용도로 여성을 이용할 수 없다. 어머니가 되고 싶다면 될 수도 있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에, 낙태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범법의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낙태해야만 한다면 여성은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태아 생명권과 여성 선택권의 대립 구도로 논의된 낙태 문제는 이제 더는 VS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시선에서 낙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소현  7_3_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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