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넷플릭스 드라마를 접하게 된 계기는 상당히 중 2 스럽다. 남들이 도깨비를 보며 진자 운동 운운하는 가사에 감동할 때, 공유와 이동욱이라는 비주얼 가득한 투 샷을 보며 감탄할 때, 나는 뭔가 다른 걸 보고 감동을 하고 싶었다. 그런 협소한 문화 사대주의로부터 나의 넷플릭스 탐방은 시작되었다. 매사에 끈기가 없는 나는 드라마 시청에서조차 중도 하차를 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내 취향을 저격하는 인생 드라마들을 줄줄이 만나게 되며 나는 근 한 달 동안 학교를 마치고 자취방에 들어오면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를 트는 덕후의 삶을 영위했다. ‘블랙 미러’, ‘지정 생존자’, ‘루머의 루머의 루머’까지, 덕질이라고는 인생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나를 바꾼 넷플릭스 드라마 입문기 이자 추천서.
week 1. 파격과 상상의 끝을 원한다면? - ‘블랙 미러’
 |
처음 선택한 드라마는 그 이름도 거창한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반대말) SF 물, ‘블랙 미러’이다. 일단 대세 문화에 대한 반발심으로 시작한 넷플릭스 탐방이었기에 일상 코미디나 로맨스 혹은 그 동류들 - 각종 지상파를 틀면 나올 법한 친구들은 모두 배제했다. 또한, 옴니버스 구성임과 동시에 매회 4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은 입문 드라마로서 정말 제격이었다. 결정적으로 ‘블랙 미러’라는 이름이 그때의 나에게는 간지로 다가왔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첫 넷플릭스 동반물은 ‘블랙 미러’가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블랙 미러는 옴니버스 구성이지만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존재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어떤 불행을 가져올 것인가?’
행복 or 불행이 아닌 기술 발전이 가지고 오는 불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블랙 미러의 대부분 결말은 비극적이다. 에피소드 대부분의 분위기는 어두침침하며, 어렴풋하게나마 남아있던 우리의 인류애를 앗아간다. 그렇지만 이런 ‘우중충함’을 뒤덮으며 다음 에피소드를 틀게 만드는 블랙 미러의 두 번째 매력은 바로 아이디어 참신함이다. 잠시 시즌 1 에피소드 1을 살펴보자면, 1편은 현대 영국에서 발생한 가상의 납치극을 소재로 삼는다. 납치 대상은 영국 공주이며 납치범의 요구는 영국 총리가 카메라 앞에서 돼지와 성교를 하는 것이다. 파격적이지 않은가? 이것의 도덕성과 이를 통해 어떤 디스토피아 면모를 밝히려 했는지는 모든 시청자가 다르게 판단할 문제이지만, 주제의 파격성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을 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감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를 대입해 잠시 상상에 빠져보자.)
하지만 블랙 미러의 가장 무서운 마지막 매력은 각 시즌의 에피소드 수가 아주 적다는 것에 있다. 1화를 시청하고 코드가 맞는다면, 열에 아홉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시즌 1 에피소드 3개밖에 없는데 나머지 2개도 마저 봐볼까......?’ 본인 또한 아홉 중의 하나였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입문을 한 첫날 시즌 1을 독파했으며 다음 날에는 과제 할 시간을 쪼개가며 시즌 2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주에 나는 블랙 미러의 전 에피소드를 2번씩 보게 되었다.
|
몰입 포인트 □ 매번 다른 참신한 주제들과 간혹 있는 반전들로 머리 한쪽이 신선해지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신파극의 종결인 해피 엔딩에 진저리가 났다면 더더욱 추천한다. □ ‘증강 현실 기술이 개개인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인식해, 그것을 실체화시킨다면 사람들은 이를 견딜 수 있을까?’ 와 같은 주제에서 볼 수 있듯 현대 기술의 트렌드 또한 놓치지 않 고 반영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는 ‘기억 녹화’를 다룬 시즌 1의 세 번째 에피소드와 ‘범죄자 처벌’을 다른 시즌 2의 두 번째 에피소드를 추천한다. |
week 2 서사의 끝판왕 - ‘지정 생존자’
 |
둘째 주에 들어, SF에서는 블랙 미러를 넘어설 만한 나의 ‘취저물’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스릴러 장르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맞닥뜨린 작품은 바로 ‘지정 생존자’. 매회 1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 22개의 에피소드라는 장기 호흡을 요구하는 드라마였지만 나는 이틀 만에 독파를 해버렸다.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한 번 틀면 멈출 수 없는 지정생존자의 마력 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본 덕택이었다. 단연코 나의 넷플릭스 최애 드라마로 꼽을 수 있는 정치 스릴러 ‘지정 생존자’이다. 각설하고, 지정 생존자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던 상상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부 관료가 모두 죽으면 나라는 누가 다스리는 것일까?’
본인 또한 뉴스를 보며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망상을 해본 적이 있기에 위와 같은 스토리는 나에게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미국은 이와 같은 테러 상황에 대비해 ‘지정 생존자’라는 제도를 실행하는데, 최고위 정부 관료가 모두 모이는 국가적인 행사의 경우 관료 중 일부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있어야 한다. 이들이 지정 생존자이며 실제 테러가 발생, 고위 관료가 다 죽으면? 대통령은 이 ‘지정 생존자’ 중 한 명이 맡게 된다. 드라마 속, 국회 의사당 테러로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된 우리의 주인공 ‘커크맨’은 학자 출신 도시 개발부서 장관이다. 정치질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초짜 순둥이가 그 이름도 버거운 ‘미국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맡았을 때, 미국은 미국대로 그는 그대로 어떤 시행착오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정치 드라마로서 이보다 짜릿한 아이템은 없을 것이라. 또한 ‘스릴러’로서의 면모 또한 빠질 수 없는데, 커크맨을 대통령으로 만든 국회의사당 폭파 테러의 배후를 파헤쳐나가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하다.
‘정치 심리전’과 ‘스릴러’로부터 오는 짜릿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드라마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감성에 젖고 색감에 놀라고 싶은 사람은 당장 드라마를 끄도록 하자. 지정 생존자는 영화 내내 검은색, 회색으로 점철되어있고, 러브 라인 또한 전혀 없다. 그렇지만 정치라는 대서사에서 배신과 배신이 꼬리를 무는 처절한 심리전의 전율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정 생존자’는 딱 이다. 매 화가 끝날 때마다 ‘응.....?’ 이라는 생각이 들 게 하는 감독의 연출력과 반전을 맛본다면, 이틀 만에 22개의 에피소드를 끝낸 본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
□ 정치와 스릴러를 합친 드라마인 만큼, 호흡이 굉장히 길다. 그만큼 감독의 밀당력 또한 대 단해서 한 사건이 한 에피소드 만에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만큼, 어느 정도의 인내심은 필요하다. □ 대서사 극이다. 감독이 매 에피소드 마다 뿌리는 떡밥들 또한 놓칠 수 없다. 뿌려진 떡밥 들이 다음 에피소드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예측하면서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 미드 24에서 유능한 특수요원을 연기한 키퍼 서덜랜드의 어리숙한 대통령 연기를 지켜 보 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
week 3 일상 속의 공포 - ‘루머의 루머의 루머’
 |
세 번째로 고른 드라마는 바로 ‘루머의 루머의 루머(이하 루머)’란 드라마이다. SF와 액션 스릴러에 2주 동안이나 몰입되어 있던 나는, 점점 일상 속의 소소한 사건이나 혹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소재로 한 ‘감정 서사’를 찾게 되었다. 물론 본 드라마의 소재는 ‘왕따의 자살’이지만 대통령의 암살 시도, 기술의 윤리성과 같은 주제들에 비해서는 훨씬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본 드라마는 본인의 짐작보다 훨씬 깊은 서사를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앞의 두 드라마보다 훨씬 더 깊은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드라마 루머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여자아이, 헤나의 자살 이후 그녀의 주변인들에게 도착한 한 소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포의 내용물은 다름 아닌 라디오 카세트이고 거기서는 뜬금없이 헤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만약 네가 이 테이프를 받았다면, 너도 나를 자살로 내몬 사람 중 한 명이란 이야기야.’
헤나의 생전 가장 친했던 친구인 알렉스 또한 그 카세트의 수령자 중 한 명이며, 알렉스는 친구였던 헤나가 ‘왜 자기에게 이런 내용을 남겼을까?’ 하는 혼란을 느끼며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의식을 맡긴다.
본 드라마는 카세트에서 나오는 헤나의 독백을 따라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고록이다. 그리고 회고의 순간에 시청자들이 접하게 되는 드라마의 시선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왕따 사건의 가해자들, 피해자인 헤나, 마지막으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었던 방관자들의 시선. 드라마 루머는 가해자의 따가운 폭행과 방관자들의 초점 없는 입과 눈을 동일 선상에 올리는 동시에, 소외당했던 헤나의 시선을 중심으로 끌어온다. 가학적이며 은밀한 시선들이 그녀에게 꽂히는 순간들은 어느 특정 순간이 아닌, 매 순간이며 그 시선의 주인들 또한 특정인이 아닌 ‘누구나’였다. 카세트를 들으면 들을수록 헤나에게 동조하게 되는 알렉스는 점차 ‘가해자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더불어 독백을 들으며 고민하는 알렉스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시선 또한 흔들리게 됨은 당연하다. 다시 한 번, ‘가해자란 무엇일까?’ 알렉스의 고민은 스크린 밖에서도 유효하다.
|
□ 단순한 일상이 아닌, 현대 사회의 이슈들을 모두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이나 성폭행 사건의 삐뚤어진 대처에 대한 건전한 비판들 또한 등장하기에 드라마를 보며 생각에 빠지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드라마이다. □ 착하거나 나빠 라는 흑백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관찰하기에도 딱 인 드라마이다. □ 그 와중에 각각 배역에 딱 들어맞는 듯한 배우들의 캐스팅은 프로듀서 셀레나 고메즈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
week 4 & after week
3주에 걸쳐 세 개의 드라마, 에피소드 개수로만 친다면 40여 개가 넘는 영상을 독파했기에, 마지막 주에는 어느 정도 휴식이 필요했다. 과제와 잠을 줄이며 드라마를 본 사람이 휴식 운운하는 것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에 지나치게 열중을 하면 당연히 뇌가 피곤해지는 법이다. 마지막 주 휴식 기간에는 밀린 과제와 보고서를 쓰며 앞으로 볼 드라마를 틈틈이 찾았는데 그 중 두 작품을 소개하자면,
첫 번째는 <웻 핫 아메리칸 썸머: 퍼스트 데이 오브 캠프> 10대의 청소년들이 보내는 뜨거운 여름 캠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원작은 2001년 제작된 영화인데, 당시에 배역을 맡았던 배우들이 16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출연한다. 대표 출연 배우는 브래들리 쿠퍼. ‘시간이 흘러 40대를 바라보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10대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를 기대하며 보기에 좋을 것 같다. 두 번째는 <기묘한 이야기>인데 SF 장르이다. 시골에서 실종된 아이를 찾는 도중 우연히 만나게 되는 비상식적 생명체에 대한 드라마이다.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기괴한 분위기로 일관하는 <기묘한 이야기>는 팝콘을 우적거리며 밤에 보기에 최적일 것 같은 드라마이다.
 |
| 웻 핫 아메리칸 써머에 출연할 브래드리 쿠퍼 |
3주 많게 치면 4주간의 덕질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평소에 집중력이 부족한 나라는 사람도 어떠한 분야에 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여주는데, 에너지 또한 얼마 들지 않는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취미활동인가. 물론 간혹 뒤늦게 몰려오는 현실 감각들로 힘들 때도 있다. 드라마가 끝난 뒤 검은 노트북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마주했을 때라던지, 드라마를 보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페이스북에 들어갔을 때 접하게 된 동년배들의 취업 소식을 접했을 때 말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 이제 그만해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조금씩 일상과 조율을 해나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여기에 단단히 빠진 모양이다. 넷플릭스야 앞으로는 가끔씩 오래 보도록 하자.
황동규 downey1009@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