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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시간, 비는 지갑, 비는 마음. 여백은 일상 속 곳곳에서 우리를 골치 아프게 하거나 생각에 잠기게 하거나 마음 편하게 한다. 아홉 명의 사람이 있으면 아홉 개의 여백이 있는 법. 여기 와우 에디터들이 자기 삶에 녹아든 여백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가깝고 사소한 비움에 대하여.

 

오만 원짜리 공연. 조기예매 할인받아서 삼만 오천 원. 예매처 수수료 붙어서 삼만 오천오백 원. 지난겨울에 연극표를 샀었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타이틀 사진이 분위기 있었던 배우가 연기하는 날짜에, 한 번 가본 적도 없지만 왠지 역사와 전통이 있어 보이는 대학로 극장이었다. 
당일에 나는 늦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공연 시작 십오 분 전이었다. 극장까지는 한 시간이 걸렸다. 아직은 쓰레기라고 부를 수 없어서 더 슬픈 예매표를 들여다보며, 나는 삼만 오천오백 원어치 욕을 했다. 공연 시간 132분. 인터미션 포함. 아마도 공연이 잘 진행되고 있었을 그 두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허망했고,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그 바보 같은 날을 생각한다. 무언가로 채워질 것이었던 시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혹은 채워진 줄 알았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을 때 나는 완전히 길을 헤매고 만다. 원래 없었던 것과 갑자기 비워진 것은 많이 다른 듯하다. 나는 후자로부터 뭔가를 배울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어떤 것을 잃어버리면 그 족족 당황하고 아득해진다. 결국 쓸모없이 지나가 버리는, 나에게는 삼만 오천오백 원만큼의 여백. 최소현

 

통학 2년 차, 지긋지긋한 통학에 다음 학기에는 자취하기로 마음먹었다.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통학을 하는 나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나는 통학하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다고!’ 하며 버럭대곤 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 퇴근 시간을 절묘하게 피하면 텅텅 빈 버스에 좌석 자유 이용권을 끊은 것 마냥 어느 자리에 앉아볼까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다. 에어컨 바람이 가장 잘 올 것 같은 자리를 골라 푹신하게 몸을 기대고 등받이를 뒤로 젖히면 집에 가는 2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다. 오늘 그 친구는 나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나는 오늘 어제처럼 말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내일 할 일은 무엇인지. 여러 가지 생각들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과 만나 제 자리를 찾아간다. 버스에서의 2시간은 나에게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장과도 같다. 버스에서 내리면 아무리 우울했던 하루라도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 도착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하루를 정리하고 마음의 여백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자취를 하게 되면 마음의 여백을 찾는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버스에 중독된 것 같으니, 마포구 마을버스를 이용해보는 게 좋으려나? 김지연

 

경주. 그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별것 없다. 자전거를 타고 첨성대와 대릉원 주변을 맴돌다 단골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자주 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음악을 듣다 눈을 붙이는 것. 이 지극히 평범한 여행을 나는 나름 여백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돌아오는 길은 더없이 아쉬웠다. 내 여백의 너비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선 늘 같은 고민이었다. 
그 고민을 해결해준 건 아주 작고 가벼운 것이었다. 
그 날 여행에서 기념으로 데려온 것은 성냥개비였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더라면 쓸데없이 왜 그런 걸 기념품으로 샀느냐며 나무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여행을 여백이라 여겼던 나에게는 완벽한 선물이었다. 세상에서 쓸모없다 여겨지는 것들이 그렇지 않게 보이던, 그런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념품이란 것들이 늘 그렇듯 곧 잊히기 마련이었다. 서랍 안 어딘가 포장째 내버려 두었던 성냥개비를 다시 발견한 건 몇 주 뒤였다. 처음 산 향초에 불을 피우려던 순간 마침 그것이 떠올랐다. 한참 서랍을 뒤져 성냥개비를 찾아낸 나는 잠시 향초 피우는 일을 미뤄야 했다.
성냥개비의 얇은 비닐 포장을 뜯어 버리려던 그때, 나는 그곳에 언제부터 붙어있었는지 모를 작은 민들레 씨앗 하나를 발견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같이 있었던 건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내가 그것을 경주에서부터 서울까지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시간이 나에게는 여행의 끝이었지만, 이 작은 것에게는 여행의 시작이었겠구나. 어쩌면 나에게도 이곳에서의 시간이 여행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평범해져서 의미를 두지 않았던 이곳에서의 시간이 여백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백은 그런 것이 아닐까. 늘 존재했지만 참 미안하게도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 너 나와 함께 있었구나, 민들레 씨앗을 창밖으로 불며 나의 새로운 여백에 인사했다. 이민지

 

‘여백’이라 하면 일부러 만들어 낸, 소중한 비움이라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여백을 누구나,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여백을 여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땐 빈 공간, 빈 시간을 그대로 두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자는 시간조차 편안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대학 입시 철, 감히 빈 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다. 주변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을 깨기 위해 아침에도 소리가 꽉 들어찬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학교에 갔고, 카페인으로 꽉 차다시피 한 커피 우유를 마시며 학교에서 14시간 정도를 버텼다. 그런 생활과 압박감을 견딜 만큼 단단하지 않았는지 갈수록 자존감은 낮아졌고, 당연히 성과도 나지 않았다. 여러 시험이 다가올 땐 집에 가는 길에 매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입시를 겪은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특히나 나에게는 여유가 먼 얘기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스무 살이 왔다. 그때 잃은 자존감을 한동안 회복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에 점차 적응하면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고, 여백의 의미를 되찾아 그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여유를 찾고 나서는 시험기간이든 언제든 아무도 없는 곳에 가만히 앉아 몽상이라도 하는 시간을 일부러 낸다. 당장 마음이 급해지는 일이 있더라도 말도 안 되는 여유를 한 번 부려보기, 그리고 잠깐이라도 여백의 시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하기. 이렇게 나를 위한 행동지침을 만들어내고, 소중한 내 자신에게 여백을 주면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가려고 한다. 김예지

 

어린 시절의 나는 여백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빽빽하게 채워진 그림보다 어딘가 한가득 빈 공간을 안고 있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보고 있자면, 빈 공간이 가득한 그림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내 마음은 여백으로 인해 채워지는 듯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여백을 견디지 못해 했다. 사람들은 여백을 불안해한다. 빽빽하게 채워진 일정 속에서 지쳐가면서도 뿌듯함을 느낀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그들은 이어폰을 꽂은 채 쉴 새 없이 핸드폰을 누르며 자신의 시간을 채운다. 인간관계도, 시간도, 모든 것이 빈틈없이 꽉 차 있을 때 비로소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 이 세상은 여백은 낭비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 또한 어느 순간 거기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함을 느꼈고 모처럼 여유로운 저녁이면 할 일을 찾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두리번거렸다. 빽빽하게 종이를 가득 채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더 이상 나는 여백을 즐기지 못했다. 이건 나에게 맞지 않았다. 여백 없는 나의 생활에서 나는 만족감 또한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나는 의식적으로 나의 여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억지로 만든 나의 여백은 더 이상 여백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의식적으로 만든 나의 빈 시간에, 나의 빈 종이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나의 여백은, 무엇보다 나를 채워주는 존재이다. 이미림

 

어렸을 때 빈 공간을 지독하리만큼 싫어했다. 내가 수집하는 자동차를 전시해두는 장식장의 빈 공간을 없애기 위해 꽃 화분이라도 집어넣어야 속이 시원했고 가족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지낼 때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와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모의고사 시험지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있던 '이 면은 여백입니다' 여백만이 유일하게 허용할 수 있었던 여백이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제는 너무 오래 시간이 지나버려 기억의 저편으로 가버린, 할아버지께서 병으로 고생하셔서 부모님께서 자주 비우셨던 집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 영향이 컸으리라. 그 불안감의 씨앗은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내가 인간관계에 집착하게 되는 촉매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나와 누군가 사이의 여백을 병적으로 싫어했기에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사이의 여백을 메꾸기 위해 발버둥 쳤고 지쳐갔다. 공황상태 직전까지 가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은 여백은 있어도 좋은 게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무언가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억지로 채우려고 하다가는 나 자신만 힘들어져 갈 뿐이다. 애초에 비어있는 것이 목적인 것에 무언가를 채우려고 하는 행동 자체가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더 악착같이 일하려 드는 꼴이다. 여백에 대한 내 공포와 불안감을 인정하고 그것을 즐기려 하자 한결 편해진 삶이 찾아왔다. 이제는 더 이상 무언가를 채워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21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산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여백. 지금까지 숨 막히도록 꽉꽉 무언가를 채워왔던 내 인생에 이제는 여유라는 단비를 내려주고 있다. 김현섭

 

어떤 글을 읽을 때, 사실 우리는 글만 읽지 않는다. 글 사이사이의 여백도 같이 읽는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문단과 문단 사이의 여백은 독자로 하여금 의미 단위를 어디서 구분해야 할지 가르쳐준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삶을 채운 후 남은 공간은 소통을 이끌어낸다. 
예를 들어, 여기 가상의 인물 A가 있다. A는 굉장히 성실해서 절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그는 남들과 다른 팔자를 타고 났는지, 매일매일 무언가 특별하고 거대한 사건 사고들이 일어난다. A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 지루할 틈이 없고, 아무리 들어도 끝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다. 만약 A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나는 A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어떠한 슬럼프도, 아무런 의미 없이 날려버린 시간도 없었던 A에게선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지 않고, 난 그런 A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띄어쓰기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책이 읽기 힘든 것처럼. 
나는 가끔씩 나의 삶의 빈 공간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마치 개학 전날까지 방학 숙제를 하지 않은 초등학생처럼. 그럴 때면 서둘러 베이스 기타 연습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뭔가 생산적인 느낌이 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순간, 그런 모습이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것이 아닐까? 유동하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이런 쪽글을 본 적이 있다. 20대는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고, 30대는 돈은 많지만 시간이 없는 나잇대란 것이다. 30대가 어떤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20대 중반을 한창 달리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통장의 여백을 매일 매일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취 공과금, 휴대폰 비용, 교통비 그리고 가끔 기분이 내킨 날 지른 옷값 등이 내어준 통장의 공백은 대부분의 20대가 가장 두려워하지만 매달 마주해야만 하는 일상일 것이다. 전산상의 여백과 공백을 없애려고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일상의 여유를 뺏어가 버리며 이를 되찾고자 시작한 취미활동이나 문화활동은 또다시 통장의 여백을 나에게 안겨준다. 
'일상의 여유와 통장의 공란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순간'에 대한 망상에 빠져보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 용돈 지급일까지 남은 일자를 계산하는 나에게, 그런 유토피아적 일상이 성큼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쳇바퀴 속의 다람쥐가 된 것만 같다. 황동규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교에 다니며 한 번이라도 여백을 가진 적이 있을까. 1학년 1학기 이후에 공강이 있는 날은 없었으며 2학기 들어서는 그나마 쉬던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2학년부터 복수전공은 하고 싶지만 추가학기는 듣고 싶지 않아 최대 학점으로 꽉꽉 채워 들었다. 
그러나 말로는 힘들다 힘들다 해왔지만 뭔가를 하지 않을 때는 오히려 불안감이 들었다. 이런 불안감은 부담감이 되었으며 그 부담감은 결국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약속이 없는 날이면 억지로라도 사람들과의 약속을 만들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맡아 하기도 했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적어도 대학을 입학하기 전만 해도 무언가를 하지 않고 쉴 때 불안감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불안감의 원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은 알 수 있다. 겨우 대학에 왔을 뿐인데 사회에 던져지기 바로 전이라는 생각 때문인가. 이런 내 모습과 생각이 막상 사회에 나가 잘 버텨온 날 지치게 만들 것 같아 무섭다. 임창열

최소현 외 9명  7_3_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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