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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와우 어르신 칠순잔치 (축)

사회자 :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흠흠. 여러분 안녕하세요! 와우 어르신의 칠순 잔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떤 분들께서 오셨는지 한 번 볼까요?

 

사회자 : 우선 항상 와우 어르신의 안위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가족분들이 자리해주셨습니다. 글도 잘 쓰고, 디자인도 잘하는 우리 자식들 덕분에 와우 어르신이 참 든든해하신다지요. (웃음) 저기 보니 와우 어르신의 이웃 주민분들도 와 주셨네요. S동 한 지붕 아래 사는 홍대신문 어르신, 영자신문 Hongik Tidings 청년, 웹진 청년부터 저~기 학생회관에 사시는 교육 방송국 HIBS 어르신까지. 모두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멀리서 구경 오셨네요. 먼 길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친구분들의 축하 인사를 한마디씩 들어볼까요?

 

홍대신문 : 70, 공자는 고희(古稀: 예로부터 드물다)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그만큼 교지가 오랫동안 활동해왔다고 할 수 있겠죠. 공자는 또 70을 종심(從心: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이라고 했답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학내 언론사로서 학내 구성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만큼 앞으로의 70도 무궁무진하게 발전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회자 : 홍대신문 어르신의 진심이 담긴 덕담에 가족들 모두 감동을 하신 것 같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아, 저기 방송국 어르신께서 준비되신 것 같군요!

 

방송국 : 자네나 나나 어떻게 지금까지 살고 있구먼…. (웃음) 멀리서나 지켜보고 있지만, 항상 응원하우이.

 

영자신문 : 언론사 막내 영자가 교지 어르신의 무병장수를 기원합니다! 어르신의 만 호까지 Cheer up 합니다요!

 

사회자 : 저기 웹진 청년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데요. 망설이지 말고 한 말씀 해주시죠!

 

웹진 : S동 신입 거주민 웹진도 교지 어르신의 70세를 축하합니다! 항상 교지 어르신들의 기사를 보며 많이 배운답니다! 웹진도 70세를 맞이하는 날이 오겠죠? 오래오래 함께해요~

 

사회자 : 네, 홍대신문 어르신의 덕담부터 영자 청년의 서양식 응원멘트까지! 개성이 넘치는 축하 인사였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많은 분께서 자리해주셔서 와우 어르신께서도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어르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와우 : (멋쩍어하며) 허허, 많이들 모였네! 감회가 새롭구먼. 내가 벌써 70호가 되었다니. 내가 이곳 홍익대학교에서 갓 태어났을 때의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야. 오늘 와줘서 다들 정말 고맙네. 차린 건 많이 없지만, 이제부터 잔치를 즐겨보세! 다들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감?

 

사회자 : 잠시만요, 와우 어르신. 눈뜨고 사회자 자리를 빼앗길 뻔했네요. (웃음) 제가 준비한 특별한 순서가 있습니다. 본격적인 식을 진행하기에 앞서 와우 어르신을 처음 뵙는 독자들을 위해 잠시 와우 어르신의 약력을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다음 자료화면을 보시죠!

 

1. 나이 : 1951년, S동 한 지붕 아래 살며 최고의 우정을 자랑하는 신문사와 영자신문사보다 먼저 빛을 보셨다. 와우 어르신은 인간인 우리와 달리 학우들과 소통하는 순간 나이를 먹는다. 대학 언론이라는 선천적 직업에 부합하게, 학우들에게 읽히고 평가를 통해 개선되어야만 생각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약 10년 전부터 1년에 두 번 학우들과 소통하시면서 나이를 평소보다 빨리 먹는다고 불평하시지만, 사실 학우들을 자주 만나 좋아하시는 듯하다. 올해로 학우들과 70번째 인사를 하셨으므로, 가족들은 와우 어르신이 70세라고 생각하고 있다.

 

2. 거주지 : 와우 어르신은 다양한 곳에서 머무르신다. S동 204호에서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가장 안락해하시지만 학우들을 만나기 위해 밤낮을 가판대에서 보내시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가판대 위층에 사는 친구인 홍대신문을 걱정하는 여유도 보이신다. 가끔 상수역 쓰레기통 같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는데, 와우 어르신의 말씀을 들어보면 한 학우의 우산으로 쓰였다고 한다. 가장 걱정되는 일은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3. 업적 : 와우 어르신은 홍익대학교의 교지, 즉 학내언론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오셨다.

 

사회자 : 업적은 와우 어르신께 직접 듣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고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요. 첫째로, 학내의 중요한 사안들을 학우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에서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하십니다. 직접 얘기 들려주시겠어요, 어르신?

 

47호(2006년) - <정문관을 말하다>

와우 : 어디 보자…. 이 얘기를 해봐야겠구먼. 홍익대학교가 지금의 얼굴을 하게 된 게 언제인지 아나? 바로 2006년 12월, 홍문관이 준공했을 때라네. 47호 적에는 홍문관이 한참 공사를 하고 있을 때였어. 그땐 이름도 안 정해져서 ‘정문관’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지. 홍문관이라는 이름도 이름 공모전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그래서 정문관이 왜 지어지게 됐냐 하면, 크게 두 가지 이유였어. 첫째는 공간 포화 문제. 시설이 너무나 좁아서 문제였거든. 특히 C동은 당시 법경대, 사범대, 인문대가 다 같이 사용하는 만큼 공간 포화 문제가 심각했지. 둘째는 홍보 문제야. ‘홍대’의 이미지나 너무 약하니까, ‘홍대’ 하면 바로 떠올릴 만한 상징물로 거대한 정문을 세워보자, 한 거지. 문제는 정문관의 새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느냐인데, 구성원들과 충분한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게 학생들의 입장이었어. 그래서 학생들 의견을 반영시키려고 공간조정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네.

 

사회자 : 홍문관이 지어지던 당시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홍익대학교의 모습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홍문관 건설의 이모저모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의도대로 홍문관은 공간 포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것으로 보이고, 거대한 규모로 홍익대학교의 상징적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홍문관이 지어진 지금도, 공간 포화 문제와 시설 낙후 문제는 여전히 홍익대학교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죠. 실기실 부족 문제를 비롯하여 여전히 학생들은 부족한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노후 문제도 심각해요. 1977년에 지어진 C동은 건물 내 균열을 비롯한 낙후된 시설로 불안을 사고 있죠. 홍문관으로 공간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은 맞지만, 학생들의 공간은 아직도 부족하고, 낡았습니다. 공간 문제에 대한 다른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네요. 그렇죠, 어르신?

 

47호 - <총여학생회, 총여학생회!>

와우 : 그럼 그럼. 그리고 말이야, 우리 학교에도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있었다는 사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은 아마 모를 거야. 2015년에 사라져버렸으니 말이야. 47호에서 총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 인터뷰를 통해서 총여의 구성, 기조, 활동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았지. 당시 총여는 여학우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에 많이 투자하기도 했고, 여성 영화제, 월경 페스티벌,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 등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지. 이후에 57호, 59호에서도 총여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어. 지금은 성인권위원회에서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지?

 

사회자 : 어르신께서는 총여와의 인터뷰를 47호 외에도 자주 하셨죠! 학생들의 궁금증과 요구를 반영하여 이를 기사로 전달해 주는 와우 어르신의 역할이 돋보입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총여는 2015년에 해체되었습니다. 당시 총여는 여러 활동을 해왔는데, 해체 이후 현재 2대째 활동 중인 성인권위원회가 학내 인권기구로서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요. 성인권위원회를 소개하는 글은 68호에 실려 있네요. 성인권위원회는 여성 인권을 비롯해 노동자 인권, 장애인 인권 등 다양한 인권과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총여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재정적으로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회의실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요. 성인권위원회가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회자 : 그리고 어르신께서는 홍대 앞 문화가 변화해오는 과정에도 주목하셨죠. 홍대 앞 상권의 특수성부터 그에 타격을 받은 홍대의 이미지까지, 홍대 앞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했던 생각을 나누셨는데, 어떤 이야기들이었는지 궁금해요 어르신!

 

38호(1997년) - <대동, 이런 시공 우리는 반대한다>

와우 : 홍대 앞 상권에 관한 이야기는 교지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주제인 만큼 홍익대학교를 거쳐 간 학우 대부분이 공감하는 문제야. 내가 97년도에 이 기사를 썼을 적에는 홍대 앞 상권이 지금만큼 발전하기 전이었지. 이 기사에서는 94년에 있었던 ‘시공’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 시공이란 건 호미화방 재건축 문제야. 호미화방을 재건축하면서, 건축 회사가 학교와는 5층으로 합의한 바와 다르게 건물의 규모를 9층으로 하겠다고 밝히자 총학생회 주도로 반대 운동이 일어난 거지. 교육권 문제를 주장하면서. 나도 홍대가 ‘오로지 자본적인 모습이 남아 대학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노력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될 것을 우려했었지. 학교 앞 문화를 홍익대학교 학우들이 주체적으로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였어. 자본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학우들을 위한 독립적인 휴식 공간의 필요성도 외쳤었지.

 

사회자 : 어르신이 말씀하신 대로, 홍대 앞 상권이 발전하기 이전의 이야기라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홍대 앞 상권은 당시 상대적으로 더 번화했던 신촌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화실과 소극장이 들어서면서 자본이 유입되었는데, 이 기사는 딱 이 시점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상권이 뜨면서 비싸지는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의 자리를 거대 자본이 차지한다는 의미인 ‘젠트리피케이션’이 홍대 상권에서 발생한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67호 교지에서 이 젠트리피케이션에 주목했었죠. 교육권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서는 69호 대학로 캠퍼스 취재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어요. 대학로 캠퍼스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 부족하고 상업시설이 주가 된다는 점이었어요. 이미 자본은 대학 앞을 넘어 대학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현재까지 이어지는 홍대 앞 상권 문제, 사람들이 대학이 아닌 문화 관광지로서 ‘홍대’를 인식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고민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것 같네요.

 

46호(2005년) – <홍대생, 홍보를 말하다>

와우 : 그렇단다. 그 문제는 바로 홍익대학교의 이미지와도 이어지는 문제지. 내가 46호 때 이야기야. 나는 항상 우리 홍익대학교가 이름난 학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홍대’라고 말하면 다들 홍익대학교보다는, 학교 앞 놀 거리부터 떠올리는 거 아니야? 쯧쯧… 내가 그게 참 안타까워서 한소리 했네. 그때 당시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0%가 넘는 학생들이 ‘학교의 이미지’를 보고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고. 그런데 온갖 놀 거리만 가득하다는 학교에 오고 싶어 하겠나? 그러니까 우리 학교도 홍보에 좀 신경을 써서, 이미지를 바꿔보자 이 말이었지. 문제가 왜 생겼느냐면 말이야, 당시 우리 학교에는 입시 부서와 홍보 부서가 같이 있었어. 입시일이 가뜩이나 바쁘니, 홍보 일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거지.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있네. 우리 학교 홍보슬로건이 뭔가? ‘산업과 예술의 만남’이지. 꽤 오래 쓰인 문구야. 슬로건이라 함은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것인데, 종합대학으로서 면모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새 슬로건으로 바꿀 때가 된 것 같구먼.

 

사회자 : 와우 어르신께서 우리 학교의 홍보 실태에 대해 짚어주셨네요! 어르신께서 홍익대학교의 발전을 위해 홍보 부족이라는 큰 문제점을 짚어주신 점에서 의의가 있는 글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과거 기사에서 지적했던 문제인 ‘홍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탈피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대 앞의 상권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유흥가도 많이 들어서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렇다면 과거 입시와 홍보 업무를 같이 했던 행정적인 문제는 현재 어떨까요? 다행히도 현재는 입학관리본부와 홍보부가 분리되어 있다고 합니다. 입시 관련 홍보는 입학관리본부에서 하며, 학교 자체 홍보는 홍보부에서 전담하고 있다고 해요. 한편 우리 학교의 홍보 슬로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만의 목소리가 큽니다. 산업과 예술의 만남에서 배제된 인문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를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할 것 같네요!

 

사회자 : 그런가 하면 과거 대학생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지금과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한 대학 문화가 신기하게 다가오는군요!

 

25호(1983년) - <대학생의 은어>

(와우 어르신이 칠판에 무언가를 적고 계신다)

「웬일이니」! 약속시간을 한 시간씩이나 까먹다니. 「별리지날」과 「이빨까다」보니 늦었어, 원! 얘는 E·T인데 「별리지날」이 있다니 세상 오래 살다 볼일이네. 어머! 섭하다 얘. 그래도 남들이 E·T 닮았다고 그러는데. 뭐? 착각하지 마. 그런데 오늘따라 저 DJ는 왜 「썰」만 푸냐? 아! E·T를 입었기 때문일 거야. 그런데 나 이번 학기에 성적표에 「쌍권총」 떴어. 나머지는 「박카스드링크」 하나, 「오란씨」가 두 개야. 완전 E·T지 뭐. 「빨래집게」 한번 받아보고 싶다. 「특공대」 어디 안 간다니까?

 

와우 : 자네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25호면 내가 한창 젊었을 때 구만! 지금의 ‘대학생 칼럼’ 역할을 ‘요즘 애들’이라는 특집기사로 실었었지. 이 특집의 모든 기사는 다 홍익대학교 학우들이 작성했으니 ‘요즘 애들’이란 이름은 약간 유머라고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이 칼럼은 전자공학과 2년 박동만이라는 학우의 글이었어. 대학생이 수용하는 은어들이 그들의 심리적인 한 단면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어. 욕구불만으로 인한 반항적 심리작용으로, 풍자와 해학을 위해 은어를 사용했다는 거지. 특히 미팅과 관련된 은어들이 많은 이유를 중·고교 시절에 금지당한 이성 교제의 기회가 대학에 와서 확대되었고, 또한 사회의 성(性) 개방이라는 명목 아래 좋지 못한 성 윤리를 풍자한 것이라고 풀이했어. 조금 철학적으로 느껴지지? 아무튼, 저 말을 한 번 해석해볼 수 있겠나?

 

사회자 : 어르신! 너무 어려워요.... 글을 읽어보니 총 여덟 페이지 분량의 칼럼에서 은어 소개에 네 페이지를 소비하고 있는데요, 네 페이지를 참고하여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겠어요.

 

(어르신의 글 밑에 한자씩 적어 내려간다)

웬일이니! 약속시간을 한 시간씩이나 까먹다니. 별로 관심 없는 이성과 이야기하다 보니 늦었어. 얘는 이쁘기는 틀린 애인데 별로 관심 없는 이성이 있다니 세상 오래 살다 볼 일이네. 그래도 남들이 엘리자베스 테일러 닮았다고 그러는데. 착각하지 마. 그런데 왜 저 DJ는 이야기만 하냐? 이쁜 티셔츠를 입어서 그래. 그런데 나 이번 학기 성적표에 F학점이 두 개야. 나머지는 B가 하나, C가 두 개야. 완전 이번 학기 탈락자지 뭐. A학점 한번 받아보고 싶다. 특별나게 공부도 못 하는 대가리 어디 안 간다니까?

 

사회자 : 현대의 은어는 이 기사가 지적한 것처럼 대학생만이 향유하지는 않지요. 은어가 인터넷으로 옮겨가면서 은어의 사용이 확대되었고, 이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제가 되었어요. ‘야민정음’이라고 불리는 신조어 또한 등장하면서, 이를 새로운 문화라고 보는 시각과 함께 바람직한 언어생활에 대한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지요. 25호 교지가 제시한 결론처럼, 우리도 바람직한 언어 사용에 대한 성찰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시절 대학생들의 언어문화와 함께 현재의 언어문화까지 성찰해볼 수 있는 좋은 글이었어요.

 

사회자 : 자, 모두 박수! (박수가 터진다) 교지 어르신의 업적이 너무 많아 소개하느라 애를 먹었네요. 교지 어르신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학우들에게 중요한 학내 사안들과 다양한 생각들을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 다음 순서는 케이크 커팅식입니다. 144장의 종이로 구성된 교지 어르신을 상징하며 144장으로 쌓은 크레이프 케이크를 준비했습니다! 케이크를 자르기 전에, 교지 어르신이 100세가 되었을 때 여기 모인 여러분이 함께 열어볼 수 있도록 타임캡슐을 묻는 이벤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종이와 연필을 나누어 주며) 여기 다들 하나씩 받으시고…. 어르신과 함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캡슐 안에 넣어주세요!

 

(마지막 사람까지 모두 타임캡슐에 쪽지를 넣고 돌아간다.)

 

사회자 : 이 타임캡슐은 교지실 어딘가에 소중히 보관하겠습니다. 모두 배고프시죠? 이제 정말 케이크를 자르고 다 같이 건배를 해보겠습니다.

 

다 같이 : 교지교지~ 파이팅~!

 

타임캡슐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가족들이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어르신의 앨범과 일기장이 눈에 띈다.

 

48호(2007년) 

 

 

48호 교지의 주제는 ‘홍익’이었다. 이 당시에 어르신은 교지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좌우명을 피력했다. 즉 하나의 주제로 교지 전체를 관통하여 기사를 구성한 것! 이때 어르신은 홍익대학교에 대해 고찰하고 싶으셨다고 한다. 다만 그 고찰 과정에서 우물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다양한 사람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 결과 교지를 인터뷰로만 구성했다. 총 20명의 각계각층의 인터뷰이에게 ‘홍익대학교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교지 어르신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나는 홍익인이 순수한 진실을 탐구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기계발에 힘쓰고, 타인의 발전까지도 생각하며, 하나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커버스토리가 없어 매 호 목차나 글의 주제가 매우 다양했던 시절이긴 하지만, 교지 전체가 인터뷰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전무후무한 교지가 아닐 수 없다.

 

50호(2008년) 

 

50호를 축하하며 ‘홍익’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인 ‘와우’를 선택하셨다. 홍익대학교는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한 와우산 근처에 있으며, 은근과 끈기를 나타내는 소가 한국인의 정서와도 맞는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50호 교지의 주제는 ‘in&out’이었다. 이 당시의 내지 디자인은 가족들 사이에서 교지 디자인 역사상 가장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지를 읽는 과정에서 책을 뒤집어야 하기 때문! 어르신은 교지를 절반으로 나누어 각각 in과 out이라는 주제를 녹여내셨다. 항상 같이 다니는 ‘안과 밖’이지만, 교지 어르신은 그 차이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주제가 바뀌는 지점에서 독자들에게 책을 뒤집게 하여, 서로 다른 두 권의 책을 보는 느낌을 선사했다. 책이 반전되는 중간 지점에 학교로서의 ‘홍익대’와 문화 메카로서의 ‘홍대’의 관계를 고찰하는 기사가 있다. 홍익대학교를 ‘in’이라고 생각하는 학우들에게 홍대 앞은 ‘out’이지만, 이 기사는 홍대 앞 문화와 홍익대학교 사이에는 필연적인 상생의 관계가 있음에 주목했다. 책을 뒤집기 직전에 거쳐야 하는 터널과 같은 기사이기 때문일까? 이 기사는 교지를 세로로 들고 읽어야 한다. 정확히 in도, out도 아닌 이 관계를 in&out의 정 가운데에 배치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58호(2012년) 

58호 교지의 커버스토리는 ‘열아홉’ 이었다.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의 경계인 열아홉에서 ‘경계선’에 주목했기 때문일까? 58호를 전후로 교지의 구성이 새롭게 태어났다. 가족들은 교지 어르신이 58세에 비로소 새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커버스토리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이전 교지들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교지 전체를 구성했기 때문에 학내 사안들마저 그 주제에 맞추어야 하거나 시의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 가족들은 과연 와우 어르신이 학내 언론의 역할을 잘하는 걸까 고민을 했고, 그 결과 커버스토리를 포함해 학내, 사회, 문화, 생활이라는 고정 섹션이 등장했다. 이로써 교지의 내용에 체계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와우 어르신은 본인의 외양을 매 호의 커버스토리의 주제에 따라 가꾸기 시작했다. ‘열아홉’이라는 교지 최초의 커버스토리는 열아홉을 주제로 어른의 의미, 사랑의 의미, 성의 의미를 다루었다.

 

60호(2013년) 

와우 어르신은 60호에 이르러서야 목차 정비를 마치신다. 58호 이후로 1년간 다양한 시도를 한 끝에, 현재와 가장 유사한 목차 형태가 처음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 섹션 하나만 존재한 58호와 달리, ‘이십대 이토록 차가운’, ‘VIEWPOINT’, ‘감히 정치를 말하다’처럼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세부 섹션을 두었다. 흥미롭게도 60호는 ‘경제’ 파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교지이기도 하다. 새로 구성된 세부 섹션에 이름을 붙였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매치포인트’, ‘CINE CLOSE-UP’ 등은 이때부터 존재하던 이름으로, 현재는 변화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머지않아 새로 개명한 와우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당시 와우는 ‘minor’를 주제로, 비와 우산이 나타난 모습을 하고 있다. 가족들은 마이너, 소수자의 눈물을 비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66호(2016년) 

 

 

현재의 목차가 확정된 것은 66호에 이루어졌다. 목차가 축소되고 기사가 사라지며 대혼란을 겪었던 65호 때의 경험에 비추어 대대적인 조정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전체적으로 각 섹션의 하위 섹션이 추가되었는데, 그중 학내 섹션이 가장 강화되며 교내 언론이라는 이미지가 한층 두드러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학내 소통’ 코너는 학우들과 교지가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학교 구성원 중 가장 먼저 교내 마스코트 문제를 다루며 그 지위를 단단히 했다. 가족들 대부분은 이 당시 어르신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66호의 커버스토리는 ‘얼굴’ 이었는데, 여러 개의 선이 효과적으로 얼굴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표지 디자인이 커버스토리의 주제를 잘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사회자 : 이것으로 와우 어르신의 칠순 잔치를 마치겠습니다. 참석해주신 여러분 모두 와우 어르신의 밀레니엄 파티 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와우 어르신이 100세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적어오셨는데요. 그 다짐을 함께 들어보는 것으로 행사의 끝을 장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 앞으로 나와 주세요!

 

와우 70호를 기념하며 교지에게 칠순 잔치를 해준다는 설정으로 기사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70호, 67년의 시간 동안 홍익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는 변화를 거듭하며 학우들의 사랑을 받는 교내 언론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 교지편집위원회는 변화하는 대학 언론의 분위기에 맞추어 고민을 계속할 것입니다. 대학의 언론, 교내의 언론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완전한 자치 언론을 이루어 더욱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관심이 채찍질이 되면, 와우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우 여러분의 많은 응원 바랍니다!

-교지편집위원회 드림

 

 

김지연, 김예지  letsplay57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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