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때 반대편에서는 돈과 권력을 얻는가 하면, 모든 걸 걸고 싸워나간 이들보다 옆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제삼자가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되기도 한다.

전쟁이라는 과도기 속, 전쟁 당사국의 사이에서 몸을 불리는 이들은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나타난다.

세상은 전쟁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 마치 전쟁을 인류의 양분이기라도 한 듯 묘사하는 이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학계에서 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변화와 성장은 불안정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하나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과 자본이 요구되고 이는 곧 사회의 변혁, 나아가 진보로 이어진다.

전쟁의 승자는

전쟁에서 어느 편이 스스로를 승자라고 부를지라도 승자는 없고 모두 패배자뿐이다. 영국의 60대 총리인 네빌 체임벌린이 세상에 남긴 말이다. 과연 전쟁에 승자는 없는가? 단언컨대 전쟁에는 승자가 존재한다. 언제나 당사자 중에 승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오만일 뿐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나라는 어디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강대국. 국제 사회를 주동하는 미국의 황금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900년대 초, 건국된 지 고작 100여 년 만에 미국은 전 세계 해군력 3위로 급부상했다. 1800년대 중반 링컨의 당선과 함께 시작된 산업화.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기회의 땅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유럽의 이민자들. 마침내 쿠바의 독립운동을 이용해 스페인과의 전쟁을 일으켜 자본과 영토마저 확장하던 당시의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국제 사회의 다크호스였다. 스페인과의 전쟁을 4달 만에 마무리한 미국은 스페인의 식민지라는 명분을 이용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을 미국의 영향 내 영토로 편입하기 시작했으며,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던 산업화 사업 또한 대성공을 거둬 마침내 군사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당시의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해관계와 견제, 엄청나게 복잡한 셈법. 좁은 영토 내에 많은 국가가 들어섰기에 존재하는 유럽의 이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미국은 입장이 확고했다. 유럽의 국제정치와는 얽히지 않겠다는 것. 이는 건국 초기부터 이어진 미국 국제정치의 기조였다. ‘아메리카 대륙은 아메리카 대륙의 질서를, 유럽대륙은 유럽대륙의 질서를’이라며 언제나 유럽 국가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초기, 전쟁을 그저 관조했다. 먼로 독트린¹⁾과 고립주의²⁾를 철저하게 따르던 그들의 기조에서 이는 당연한 처사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 역시 자본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무너졌다. 1914년 전쟁의 발발 이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무역과 사업의 나라 미국에서는 군수물자를 미친 듯이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쟁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으니 상업적 이윤을 취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논리였다. 미국은 주로 프랑스, 영국, 러시아를 비롯한 협상국 측에게 군수물자를 팔아넘겼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군수물자 거래로 취한 이윤은 미국을 상업 무역 국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후 독일, 멕시코와의 갈등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된 미국은 다시 한번 도약했다. 협상국 측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최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미국이 규모가 크고 기간도 길었던 전쟁 속에서 거의 피해가 없었던 이유에는 장소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전쟁터가 주로 유럽 각국이었기에 풍비박산이 난 유럽과 반대로 미국은 자국 영토에 거의 영향이 없었던 것. 구태여 미국을 침략할 이유도 여력도 없는 동맹국 측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던 미국은 최강대국 반열에 말 그대로 무혈입성한 것이다.

이어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번 역시 미국은 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참전 의사가 전혀 없었다. 무기 대여법³⁾을 제정해 그저 군수물자 수출을 통한 이윤에만 관심을 가졌던 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독일은 미국의 전함을 침몰시켰고,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했다. 이에 미국의 고립주의는 국민의 여론에 의해 완전히 파기되었고, 결국 1941년 미국은 참전을 선포한다. 미국은 이제 아무도 무시 못 할 새로운 강대국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였다. 추축국 세력을 초토화하며 한순간에 연합국 측에 승기를 가져온 미국은 군수물자 거래로 인한 이윤과 국제적 위상, 두 측면에서 막대한 성과를 거뒀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초강대국의 지위가 기존 대영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음을 증명하는 미국의 독무대로 마무리되었다.

승자란 피를 흘린 사람과 흘리지 않은 사람,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 가장 맛있는 부분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사람. 즉, 최대 수혜자를 부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두 전쟁을 거쳐 탄생한 국제 사회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전쟁의 승자는,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전쟁의 낌새가 보이기 시작하는 신냉전 시대. 현대의 전쟁에서도 과거와 같은 장면은 나타나는가? 당연하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역사다. 전쟁에는 얻을 게 넘쳐나고 그 규모 또한 과거와는 비교를 불허한다. 현대 사회에서 전쟁은 단순한 분쟁을 넘어,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78년 만에 유럽에서 대규모의 전쟁이 발발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패권국가인 미국에 이 전쟁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미국은 현재까지 이 전쟁에서 피를 거의 흘리지 않았다. 미국의 초기 목표는 러시아의 정권교체였고, 이는 곧 전쟁 이후 상실된 우크라이나의 영토 탈환으로 수정됐으며 이제는 사실상의 전쟁 승리가 미국의 목표다.

2023년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명목으로 약 470억 달러(61조 원)를 투자한 미국은 그 대가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현재 미국의 군수 공장은 주야로 가동된다. 유럽의 공장은 러시아 가스 대신 미국 가스로 운영되고 있으며, 에너지 비용으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은 유럽 상품에 대해서는 미국 상품이 우위를 점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전쟁을 노련하게 지원하면서 골치 아팠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신규 회원(핀란드, 스웨덴) 가입 안건도 해결했고 러시아가 이익을 고갈할 때, 미국은 이를 충분히 축적했다. 나아가 미국의 우크라이나 원조는 단순히 패권국의 대의명분에만 그치지 않는다. 종전 직후 넘쳐날 우크라이나 인프라의 복구 사업과 방위적 보충,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까지. 미국의 넓은 시야는 470억 달러의 가치를 훨씬 능가한다.

전쟁에는 항상 경제적인 파급 효과가 따른다. 이른바 전쟁특수라는 것. 이에 미국은 세기가 바뀐 현재에 이르러서도 전쟁특수의 효과를 온전히 향유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럽 각국이 미국 제트전투기 및 기타 군사 하드웨어에 지출한 금액은 세대에 한번 드물게 있는 투자에 해당한다. 최근 수년 국제 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투자 규모는 비교적 평화로웠던 이전 20년 전체와 맞먹는 수준이며, 그 근원은 미국의 방산업체들이 움직이는 방위 산업과 에너지 시장 활성화로 인한 경제 발달이다.

미 국무부는 2022년 10월부터 2023년 9월까지 1년 동안 약 800억 달러 이상의 주요 무기 거래계약을 체결했으며, 그 대부분이 유럽 동맹국들과의 계약이라고 밝혔다. 방산업체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역사적 기준의 5배 이상의 수치다. 폴란드와 독일, 체코는 수십, 많게는 수백억 달러를 미국과의 전쟁 물자 거래에 소비했으며, 전쟁이 확대된다면 이는 더욱 큰 규모의 거래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 전쟁특수는 직접적인 거래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쟁 직후 정비할 우크라이나의 무기고와 군수 공장은 모두 자연스레 미국 자본으로 유입되며 유럽 국가들과의 방산 계약 체결로 인한 영향력도 확대되었다. 말하자면 미국은 지금 ‘러-우크라 전쟁 프리미엄’이라는 전쟁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군산 복합체 기업인 Northrop Grumman, Raytheon, Pratt & Whitney 및 Lockheed Martin이 평년 대비 높은 수익을 거둔다.

전쟁과 정치. 결국에는 모두 돈이 움직인다. 그리고 미국이 지금 벌어들이는 그 돈의 중심에는 에너지 시장이 있다. 미국 월간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022년 3월 1,060억 달러로, 2000년대 들어 최고점을 기록한 뒤 4월~ 8월까지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 총수출에서 상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직전 약 68%에서 71%가량으로 상승했다. 그 배경은 독일, 프랑스, 폴란드, 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이 러시아산 상품 수입을 크게 줄이고, 그 대신에 미국 상품 수입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8월 사이 품목별 미국 수출액을 보면 원유, 석유·석탄 제품, 철강,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자원 품목들이 수십 억대의 증가를 내보였다. 또, 러시아산 가스공급 중단으로 유럽의 에너지 가격과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유럽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미국은 지난해 세계 최대 LNG 수출국에 올랐으며 이미 체결된 계약만으로 2030년 미국의 LNG 수출은 현재보다 2배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 LNG 수출의 약 3분의 2는 유럽으로 향한다. 미국이 여간 비싼 값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기에 유럽 수입국 또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의 닫힌 파이프라인을 열기란 더욱 어렵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과의 무역을 단행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다시 한번 정치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셈이다.

미국이 최대 원유 생산량 기록을 경신했다.

전쟁은 단순하고 정치는 복잡하다. 그렇기에 전쟁을 이용한 정치는 가장 큰 이익을 얻는다. 미국이 의도한 고도의 계산에 러시아의 군사력은 약화하는 중이고, 나토의 결속력은 강화되었다. 외적을 이용해 내부를 다스리는 관습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립적 입장인 핀란드, 스웨덴 등의 국가에 ‘결국 러시아는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진다. 그들이 확실한 미국의 편이 될 필요는 없다. 그저 러시아를 멀리하는 것, 적의 적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미국에는 엄청난 성과다.

78년 만에 발발한 대규모의 전쟁을 통해 미국은 다시 한번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있는 적기를 맞았다. 피 흘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타국땅에서 벌어지는 전쟁 속에서, 돈다발을 가져가는 미국. 언젠가 봤던 익숙한 장면이다.

미국을 옹호하거나 비난할 의도는 없다. 그저 우리는, 세계는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 당사자의 패배와 제삼자의 승리. 유구한 전통을 잊고 일으킨 전쟁은 언제나 많은 것을 앗아가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만을 낳는다. 지금도 몸을 불리는 이가 있다. 누군가의 사이에서.

윤도진  yundojin11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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