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낯섦이 침투할 때 우리는 면역 반응을 하듯 그 이질적인 것을 밀어낸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달리 말하자면 어떠한 변화는 결국 찾아온다고 믿는다. 낯선 것은 익숙한 것이 되고 익숙한 것은 다시 낯선 것이 된다. 변화와 저항의 과도기.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자.

귀신의 장난에서 역사의 증거로.

1883년, 사업차 중국 상하이에 갔던 황철은 경이로운 물건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흐르는 현재를 조각 내 영구히 박제해 낼 수 있는 물건, 사진기였다. 사진에 매료된 18세의 황철은 촬영술을 익힌 후 사진 기계를 사 들고 그해 조선으로 귀국한다. 신문물인 것을 처음 소개할 생각에 그는 부풀면서도 긴장했을 것이다.

1883년 자신의 안국동 자택의 서재를 개조해 촬영소로 만든 후, 황철은 사진기를 들고 한양 이곳저곳을 누볐다. 왕의 공간인 궁궐에서부터 일상적인 저잣거리 풍경까지. 그는 붓으로만 기록되던 조선을 처음 빛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조선 사람 모두가 사진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황철만이 사진의 기록 능력에 흥미를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셔터를 누를 때 귀신이 혼을 빼간다, 사진 재료로 아이의 살과 뼈를 쓴다, 부부가 같이 촬영하면 이별한다 등의 수많은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대부분의 조선 사람에게 사진의 기록 능력은 경이가 아니라 괴상함 그 자체였다. 실제로 황철은 사진으로 나라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투옥되기도, 1884년 갑신정변 당시에는 개화파로 지목되어 군중에 의해 사진관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경멸받던 사진기가 어떻게 조선인들에게 수용되기 시작한 걸까?

1895년 11월 15일, 고종은 태자와 함께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나타나서는 위생과 일의 효율을 이유로 전 백성들의 단발을 선포하였다. 가위를 든 체두사들이 거리를 다니며 조선 남자들의 상투를 싹둑 잘라버렸고, 거리는 잘린 상투를 주머니에 넣고 통곡하는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한성으로 왕래하는 발길이 뚝 끊겨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으며, 심지어는 자살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사진은 조선인에게 수용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마지막일지 모르는 상투 튼 모습을 남기겠다며 제 발로 사진관에 찾아왔던 것이다. 귀신에게 혼을 빼앗긴다며 터부시했던 사진이 더 낯선 것 앞에서 수용되는 모습이 참 모순되고 흥미롭다. 또한 울며 겨자 먹기의 마음이었을 그들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 낯선 단발 앞에서 사진의 이질성은 무너졌고, 오히려 그것은 변화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됐다. 사진기는 익숙함을 위협하는 괴상한 것에서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할 기록 도구로 새롭게 변모한 것이다.

1900년대부터 사진은 조선 사회의 분명한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1907년 김규진이 서울 소공동에 차린 최초의 상업용 사진관인 ‘천연당 사진관’이 개업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니 말이다. 성수기에는 한 달 동안 가게를 찾은 사람이 1천여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후 천연당 사진관에 대한 넘치는 수요로 전국에는 자연스레 초상 전문 사진관들이 여럿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사진은 조선인의 완연한 기록 문화가 된 것이었다. 그들은 점차 당연했던 도화지 속 세계와는 멀어지고, 인화된 새로운 세계와 친해졌으리라. 낯선 마음은 절대적이지 않은가 보다. 다행인 건지 아쉬운 건지, 결국에 우리는 적응하나 보다.

천연당 사진관의 모습

예나 지금이나 변화는 일어난다. 변화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현재의 덫에 걸린 우리는 그간 끊임없이 부딪혀온 변화와 저항의 과도기를 잊고 만다. 그렇지만 삶은 늘 무언가의 과도기로 메워져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어쩌면 평생을 무언가의 과도기 속에서 보내는지도 모른다.

주제넘은 거만함에서 모두의 표준으로.

필자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그 안의 모두가 양쪽 귀에 에어팟을 꽂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어팟이 등장하기 전 우리는 음악을 어떻게 들었던가. 주머니 속에서 배배 꼬여있는 이어폰 줄을 열심히 풀어서, 휴대폰마다 있는 전용 구멍에 이어폰을 꽂고, 다 들은 후에는 다시 줄을 돌돌 말아 주머니 속에 넣었었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어폰의 당연하고도 마땅한 이 기능과 역할에 언제나 만족했었다. 그러던 2016년, 애플은 ‘선이 없다. 간결하다. 경이롭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에어팟(Airpods)을 출시했다. 한국 기준 출시가는 무려 219,000원. 혹시 당시의 반응이 기억나는가? 길 가다 툭 치면 잃어버릴 것 같다, 20만 원 주고 저거 살 바엔 줄 이어폰 쓴다, 이를 본 스티브 잡스가 저승에서 울고 있을 것이다……. 줄이 없으며, 충전해야 하는, 20만 원어치 이어폰의 등장은 그야말로 우리에게 낯선 것이었고 당시 반응은 냉랭했다. 하지만 ‘당신이 이어폰을 사용하는 방법을 에어팟이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던 애플의 예언은 2024년 현실이 됐다. 모두가 주머니에 에어팟 하나씩은 다 가지고 다니니 말이다. 오히려 이젠 줄 이어폰을 쓰는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 에어팟을 끼고 처음 밖에 나갔던 날의 민망함을 기억한다. 분명 우리는 에어팟의 낯섦에 저항했다.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 어떤 이유로 에어팟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까? 그 해부대 위에 우리를 올려놓아 보자. 방금 우리가 사진기를 경멸하다 어느새 순순히 받아들인 20세기의 조선인을 관찰했던 것처럼 말이다. 앞선 경우에서처럼 먼 옛날의 사료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이 질문에 가장 투명한 역사 사료가 되어줄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일 것이기에.

필자는 주변인에게 에어팟의 첫인상을 떠올려보게 했다. 그러자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그 웃긴 모양과 비싼 가격이 황당했다고. 누가 저걸 사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그 낯섦이 어떻게 처음 받아들여졌는지를 물었는데, 대부분 그 답은 ‘유행’이었다. 주변에서 하나둘씩 에어팟을 끼고 다니더니, 어느새 에어팟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당시 학교의 가장 큰 유행은 예쁜 케이스와 스티커로 에어팟을 꾸며 키링처럼 가방에 달고 다니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 지인은 ‘필요보다는 유행에 따르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샀던 것이었는데, 막상 쓰다 보니 그 편리함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지’라며 이를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우리가 에어팟에 저항한 이유는 그것이 주제넘은 거만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저 선을 꼽으면 순순히 음악을 틀어주던 이어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던 음악 감상 도구가 갑자기 그것의 중추이던 선을 뚝 자르고는 곱절의 곱절이 넘는 가격표를 붙여 나타난 것이다. 고작 이어폰 주제에 충전이 필요하다니, 고작 이어폰 주제에 20만 원이라니. 바로 이 거만함이 우리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걸지도 모른다. 기존과 다른 파격적인 외관, 상식에 맞지 않는 원리. 우리는 이 두 가지 조건을 가진 거만한 새것들을 본능적으로 밀어내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과도기 안에 서 있을까? 장대한 시간의 흐름 속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보는 일은 중요하다. 언제나 현재의 끄트머리에서 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는 과감한 시도이기에.

아직 정의 내릴 수 없는 현재의 끄트머리에서.

일명 ‘뇌에 칩을 심는다’는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머스크는 뇌에 칩을 심어 신경세포인 뉴런의 파장을 수집하고, 그것을 데이터로 변환하여 인간이 생각만으로도 기계를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럴링크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많은 호기심 섞인 우려 또한 있었다. 네이버 지식인에 ‘뉴럴링크’를 검색하면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나온다. 뉴럴링크라는 게 현재로선 불가능한 거냐는, 만약 가능하다면 몇 년 뒤쯤이냐는 호기심 엿보이는 질문, 뉴럴링크로 치매도 치료할 수 있느냐는 희망 섞인 질문, 혹시 뉴럴링크가 뇌를 해킹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불안 섞인 질문…….

뉴럴링크를 이용해 체스 게임을 즐기는 아르보

2024년 3월, 생각만으로 체스 게임을 자유자재로 즐기며 경탄하는 사지마비 환자 아르보의 영상이 공개되었다. 기술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되느냐 안 되느냐’ 하던 좀 전까지의 논쟁이 무색하게도 뉴럴링크는 이미 실현되었고, 진행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활발히. 머스크는 뉴럴링크로 시각 청각장애인, 사지마비 환자, 우울증 환자 등의 장애와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의 장대한 꿈은 결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머스크의 최종 목표는 기계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이 고도로 발달할 AI에 맞서는 것, 그리고 뇌를 로봇에 내려받음으로써 영원한 생을 누리는 것이다. 정말 뉴럴링크는 미래에 장애나 질환의 치료법으로 널리 자리 잡을까? 머지않은 미래엔 뇌에 칩을 이식받는 것을 그저 당연한 의료행위 중 하나로서 여기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거북함은 역시나 새것에 대한 단순한 저항, 그렇기에 극복해야 하는 무언가일 뿐일까?

만약 이 행위가 보급되어 단지 개인의 선택만으로도 쉽게 기계와 결합할 수 있다면, 혹시 머지않은 미래에 초인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자연선택이 아닌 인간 기술의 진화로 만들어진 새로운 인간 ‘종’. 자신을 얼마나 기계로 치장할 수 있느냐가 부에 의해 결정되며, 결국 그에 따라서 인간 종이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치 지금 부가 사회적 계급을 결정하듯.

변화의 과도기에 직접 서니 이런저런 물음표들이 둥둥 떠다닌다. 이 저항의 물음표들이 어리석음인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옳은 경계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역사 안에서 굳어지지 않은 현재의 인간은 불안하다. 현재에 발 딛고 서니 완성된 도화지 속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평가하던 오만함은 무력해진다. 우리는 언제나 붓을 쥐고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말했던 것처럼, 어떠한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 어느 시기일지 그리고 형태일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어떠한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안의 본능을 무기로 삼아 결국은 닥쳐올 변화에 저항이 아닌 대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함이라는 껍질을 벗는 일은 늘 과도기의 사람을 괴롭게 한다. 본래의 껍질이 벗겨지고 뜨거운 태양 빛을 가려줄 새 껍질이 생길 때까지. 과도기의 사람은 현재의 끄트머리에 서서 예민한 맨살로 미래를 마주한다.

김민서  atominseo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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