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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으로 완성된 예술의 세계-전영백 교수님

존 버거의 보는 방식을 시작으로 미술을 보는 다양한 시각들, 그리고 세잔의 철학적 이해, 반 고흐와 고갱의 관계를 통한 작품 해석, 손탁이 제시한 사진의 권력, 형식주의(벨) 미학의 유용성, 사회와 미술의 연계를 주장하는 러스킨의 운동, 그리고 오늘날 각광받는 호크니 회화의 의미 등 다양한 주제들을 원서로 읽는 수업이 여기 있다. 게다가 수업 진행은 교수님의 강의만이 아니라, 미리 주어진 화두에 따라 리뷰하고 토론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채워진다. 바로 전영백 교수님의 예술학과 2학년 전공 수업 ‘미술원서강독’이다. 누구보다 미술과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시는 교수님께서는, 최근 전시사를 중심으로 20세기 이즘(ism)의 미술사를 다룬 책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을 출간하셨다. 교수님께서 수업과 저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으셨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전영백 교수님 약력>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영국 리즈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및 박사

 

 

 

교수님께서는 대학 시절 사회학과를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미술사학을 연구하게 되셨나요?


본래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려던 꿈이 있었는데 아마도 미술 전공의 어머니 쪽에서 타고난 면이 있었던 듯해요. 실제로도 미대 입시 준비를 3년 꼬박했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공부 쪽으로 집중하게 되었지요. 그때 선택한 학과는 아버지와 언니처럼 사회학과였어요. 그러나 늘 미술에 대한 아쉬움을 접지 못하다가 미술사학과를 알게 되어 ‘이거다’ 싶었지요. 그렇게 1988년에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으니까,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이 30년이 되었네요. 결국은 사회학과 예술을 합한 것이 미술사였던 겁니다. 특히 석사 졸업 후 영국에서 공부한 대학의 미술사학과는 ‘미술의 사회사(Social History of Art)’라는 담론이 시작된 곳이었는데, 그쪽에서는 학부에서 사회학을 했다고 하니 무척 반겼지요. 돌이켜보아, 미술사 공부를 해온 건 개인적으로 ‘유일한 길’이었다고 믿어요. 미술의 여러 방식, 문화적인 배경, 사회에서의 역할이 이론적으로 궁금했는데 미술사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학문이거든요.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가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술 세계에 늘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PART1. 미술원서강독, 학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다

 

미술원서강독이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술학은 미술과 언어의 관계를 배우는 것이고, 미술 이론은 미술을 언어로 접근하는 것이에요. 어떤 작품을 접할 때 그 원어로 접해야 작품에 대한 밀착도가 높은데, 우리는 서양 미술을 번역서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런 점에서 이 수업은 서양 미술을 원어로 접근해 들어간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가 있어요. 번역된 언어가 아닌 원어를 통해 그들의 표현 방식과 생각에 밀착해서 작품을 같이 느껴볼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미술원서강독은 미술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점을 다루는 중요한 수업이라 할 수 있어요.

 

 

 

예술학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타과 학생들도 수강을 허용해주셨는데요, 과에 상관없이 수강 기회를 열어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술 이론 공부를 위해서는 작업과 실기의 감각이 중요합니다. 미술 작업과 이론 공부를 연결하지 않는 건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라고 봐요. 예술학 혹은 미술사를 다룰 때 보통은 언어 위주의 공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실기와 얽혀있는 부분들이 많거든요. 예컨대 작품의 표현 방식, 재료의 냄새, 촉감적인 표현이 모두 보는 방식의 문제와 얽혀 있는 거죠. 그래서 미술원서강독 수업에서는 실기를 언어와 밀착해서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고, 이때 다양한 전공자들의 시선이 필요해요. 미술은 인문학, 공학 등 많은 학문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미술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 학생들의 의견도 들을 필요가 있고요. 여러 학과의 다양한 시각이 있다면 수업이 더 풍성해질 거라 판단해서 수업을 오픈하게 되었죠.

 

 

 

수업에서 다루는 원서를 선정하시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근현대를 중심으로 오늘날까지의 범위 안에서 미술사 흐름에서 뼈대가 되는 내용을 텍스트로 선정했어요. 작가의 심도있는 표현의 고민이 담긴 작가론, 미술 이론을 공부하는 방법론, 철학,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등의 후기 구조주의 담론들 등 다룰 것들이 정말 많죠. 그런 내용을 대표적으로 맛볼 수 있는 글들을 선정했어요. 해당 원서의 번역문도 함께 찾아서 한 권의 교재로 제본하니, 베고 자기 딱 좋은 두께의 교재가 완성되었죠. (웃음)

 

 

 

매 수업은 화두조와 리뷰조가 번갈아 가며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런 방식을 적용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 방식을 도입했어요. 학생들이 미리 주어진 텍스트를 예습해오고 수업 시간에는 내용을 숙지한 상태로 토론하며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이에요. 예습은 원서 중 본인이 재밌다고 생각한 문장을 5개씩 골라오는 것이고, 이를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화두조’와 ‘리뷰조’를 통해 만들었어요. 화두조는 원서의 내용 중 논의할만한 부분을 꼽아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리뷰조는 화두에 관한 생각을 미리 가지고 와서 토의를 전개하는 역할을 해요. 전체적으로 보자면 학생 각자는 매 수업 예습을 통해 원서를 읽어오고, 번갈아 가며 화두조와 리뷰조가 되어 수업 시간에는 생각의 진행과 심화를 경험하는 것이죠.

 

물론 학생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수업이기 때문에, 업-앤-다운(up-and-down)이 있긴 해요. 학생이 중요한 화두를 짚는다면 뜻밖의 좋은 논의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학생이 평면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사실 교육은 이래야 하는 거죠. 기계적으로 쭉 가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반응에 따라서 유기적으로 달라야 하는 거죠.

 

 

 

미술원서강독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가장 배웠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먼저, 미술 이론 공부가 굉장히 다양하고 깊이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가면 여러 가지 학문이 연결되어 다층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울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사회학, 정신분석학, 문화학, 포스트 식민주의 등 다양한 지식의 보고들이 어떻게 미술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연구될 수 있는지를요. 그러면서도 미술 공부가 얼마나 재밌는지 경험했으면 좋겠네요.

 

그다음으로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독립적인 방식을 깨우쳤으면 좋겠어요. 인문학적 공부라는 것은 주입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어떤 관점을 채택할 것인지 정해야 해요. 정보 차원의 내용을 닥치는 대로 읽기만 한다든지 피상적으로 남이 해주는 설명만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자신만의 고유한 '보는 방식(way of seeing)'을 가져야 해요. 이 수업으로 학생들이 독립적인 공부 방식을 취하면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그 방향을 원하는 대로 풀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PART2.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 더 나은 미술 문화를 위하여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을 저술하신 계기와 책에서 전달하고 싶으셨던 메시지가 궁금합니다.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은 전체적으로 20세기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즘(ism)이 무엇인지 들여다본 책이에요. 결국 이즘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전시들이 열렸기 때문이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전시야말로 이즘이 생기게 했던 결정적인 순간들이지 않나 싶었죠.

 

홍익대학교에서 20년째 강의를 해오면서, 서양미술을 가르칠 때 적절한 텍스트북이 없어서 늘 고민이었어요. 유명한 원서를 번역한 책들은 있었지만, 언어가 번역된다는 것은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기에 내용이 왜곡되고 결여되거든요. 아무리 좋은 번역이라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이차적인 겉도는 지식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즘*의 클라이맥스였던 20세기의 주요 작가와 전시를 균형적으로 다루는 책을 찾기가 어려웠죠. 결국 국어로 강의하기 위해 이 책을 직접 만들게 되었어요. 학생들이 알았으면 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연결해서, 사건으로서의 전시, 사건으로서의 미술사를 담아냈어요.

 

*이즘(ism):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 미술과 관련된 이즘으로는 큐비즘, 다다이즘, 미니멀리즘 등이 있다.

 

 

현재 한국의 전시와 미술 문화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미술 문화의 발전은 굉장히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자본을 투자했을 때 결과로 보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전시 차원에서도 좋은 전시가 탄생하려면 적어도 3년 정도의 기획 기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장기 계획을 세운 전시들이 적은 것 같아요. 미술관 관장이나 큐레이터의 임기가 짧아서 긴 시간의 전시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도저히 불가능하거든요. 이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좋은 전시가 많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니까요. 기획자의 작업 기간에 대한 임기 보장이 되어야 좋은 전시가 열릴 기반이 되는 것이지요. 요컨대, 미술 문화의 발전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특수성을 이해하고 전문가들이 긴 시간 동안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미술 문화가 생각보다 훨씬 우리 삶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고, 사회 발전과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바지할 수 있는 바가 엄청나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어요. 어떤 사람은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미술을 지원하느냐는데, 그건 정말 모르는 얘기예요. 미술 문화가 줄 수 있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파급력이 엄청나게 크거든요. 그것을 깨우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동시대의 전시기획자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전시가 성공해서 좋은 작품들을 대중에게 알리려면 굉장히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이 필요하지요. 대중들이 전시를 보게 하려면 시대 분위기, 시대 정신, 시대 취향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획자가 가져야 할 소양이나 역량이 많이 요구되고요. 중요한 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감식안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에요. 이 사람들이 남들이 다 간과하고 무시하더라도 중요한 작가들을 알아보고 전시를 가능하게 했으니까요. 대중에게 미술이라는 상당히 난해하고 어려운 보고를 알리기 위해서는 소수지만 정말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기획자, 컬렉터, 자본가들이 필요해요. 고독하게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을 세상에 알리려면, 그들을 대중과 잘 연결해주고 또 자본을 들여 컬렉션을 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중요해요.

 

 

전시기획자를 꿈꾸는 학우들이 '감식안'을 얻기 위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노력이 있을까요?

 

‘장소이동’ 하기를 권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깃들어 있는 예술적인 취향과 문화적인 차이를 몸소 느낄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른 문화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이 영국적인 취향이고, 프랑스적인 감성이고, 독일적인 표현인지, 그렇다면 한국적인 특성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동시에 장소와 문화가 달라도 사람은 다 마찬가지라고 느껴질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류애와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거죠. 그렇게 타인에게 공감하고 타인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본다는 것은 미술을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태도이기도 하고요. 작가의 입장이 되어 작품을 이해해야 좋은 비평이 나오고, 작가의 작업 정신과 동일시되어야 제대로 된 이론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말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바랍니다. 요즘 우리 제자들 보면 마음이 너무 안쓰러워요. 대학에서는 이상적으로 공부를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부딪히는 벽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길이 없기도 하고, 많은 난항을 겪잖아요. 이러한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잠재력을 끄집어 올려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에요. 그러니 주위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도움의 손길이 오게 돼 있으니까요.

이민지, 민태홍  leereum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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