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복지국가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불편하 지 않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아무도 닿지 않는 곳까지 뿌리를 뻗는 나무가 결국 가장 울창한 법. 차세대 스타가 될 재목, 팟캐스터이자 스탠딩 코미디언 셀럽 맷을 소개한다.

*팟캐스트 :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을 결합해 만든 신조어로, 주로 오디오 파일으로 각종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영혼의 노숙자>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셀럽 맷’ 이지희라고 합니다.

Q. 독어독문과를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선배님께서는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부끄러운데, 엉망이었죠. (웃음) 어쩌다가 독일어를 전공하게 되었다 보니 저는 1학년 때 공부를 안 했어요. 전공을 포기하고 싶어서 학교에 잘 가지도 않고, 학교를 나가더라도 여자휴게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죠. 대신 예전에 있었던 학교 비공식 개그 동아리 활동은 나름 열심히 했어요. 개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동아리였어요. 물론 학년이 올 라가면서 졸업을 위해 계절학기도 듣고 전공 공부도 계속했지만, 대학 생활 초반의 저는 동아리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었 네요.

Q. 학부 졸업 후에는 유학 생활을 오래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독일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독일에서 어떤 공부를 해볼까 고민하다가, 독일어 번역으로 석사 졸업을 했어요. 그 당시의 저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계속해왔었어요. 생계형으로 여러 알바를 전전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저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었어요. 처음에는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지내면서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편했는데, 그게 길어지다 보니 나를 알아주는 사람 이 없다는 게 쓸쓸하고 지루했어요.

그 당시 송은이, 김숙 씨의 <비밀 보장>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이 제 유학 생활의 한 줄기의 빛이 되어주었어요. 그래서 친구와 둘이서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독일 언니들>이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되었죠.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고 실패하더라도 재밌는 추억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외국에서 혼자 외롭게 생활하고 계시는 분들께 보내드리는 위로 방 송, 혹은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께 보내드리는 현지 교양 방송을 모토로 진행했어요. 저에게는 새로운 도 전이었죠. 그런데 그 도전이 생각지도 못한 빠른 성공을 안겨줬어요. 1년 정도 방송을 진행하면서 청취자분들께 반응도 좋았고 나름 마니아층도 생겨났거든요.

Q.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치시고 한국에 돌아와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시작하게 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일 사회는 한국 사회보다 열려있는 느낌이라, 초반에는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기도 했었죠. 그런데 팟캐스트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알려지게 되면서,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이뤄나가고 싶어졌어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제대 로 방송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독일 언니들>을 진행하던 때가 마침 독일에 계속 남을지 한국으로 돌아갈 지 고민이 많던 시기였는데, 팟캐스트에서의 성공이 저를 한국으로 이끌게 되었죠. 제대로 방송을 시작해봐도 괜찮겠다는 용 기가 생겼거든요.

Q.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영혼의 노숙자>는 ‘영혼의 집을 잃고 헤매는 방랑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본격 위로 방송!’으로, 매주 일요일 업로드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코미디 팟캐스트인데, 코드가 대중적이지는 않아요. 코미디이지만 페미니즘과 퀴어를 주소재로 하면서 다 양한 주제를 다루려 하고 있어요. 코너를 잘 짜면 방송을 채우긴 쉽겠지만, 저는 코너에 얽매이거나 틀을 지켜나가는 게 힘들어 서 다양한 게스트분들을 모셔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에요.

종종 민감한 이슈를 접하면 우울하거나 분노가 쌓이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화내고 울면서 꺼낼 수도 있지만, 웃음과 함께 유 쾌하게 담아보고 싶었어요. 어느 정도는 재밌지만, 어느 정도는 유익한 방송으로요. 그래서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방향으로 지 킬 수 있는 선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사실 ‘피씨함’ 과 ‘개그’가 공존하기가 쉽지 않지만요. 어떤 상황에서라도 개그에서 조롱이 되는 대상이 사회적 약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때문에 누군가가 저격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개그는 지양하 고, 편집과정에서 불쾌할 수 있는 요소를 전부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피씨함 : ‘피씨’는 ‘PC(Political Correctness)’를 말하는 것으로, 피씨하다는 것은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Q.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혼자 <영혼의 노숙자>를 꾸려나가는 중 어려움은 없었나요?

// <영혼의 노숙자> 로고 사진 추가 //

많았죠. <독일 언니들>을 함께 진행한 ‘드라마퀸’이라는 친구는 재주가 많았어요. 함께 진행했던 대본 작업 외에 필요한 로고 제작과 음악 편집을 그 친구가 도맡아 해주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 부분을 혼자 하려니 힘들더라고요. 다행히도 주변인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시그널 송은 제 친오빠가 만들어줬고, 로고도 다른 친구가 디자인해 줬어요. 진행 같은 경우에는, 다큐 멘터리 <피의 연대기>의 김보람 감독님을 우연히 알게 되어 <영혼의 노숙자> 초반 방송을 함께했어요. 저에게 믿고 갈 만한 파트너가 필요했는데, 감독님이 힘든 시기를 함께 해주셔서 버틸 만했죠.

지금은 게스트 섭외부터 대본작성, 녹음, 편집까지 저 혼자 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끔 벅차기도 해요. 쉬고 싶은 시

기도 많았는데, 항상 힘들 때마다 좋은 반응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파도를 탔을 때 계속 밀고 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일 주일에 한 번 마감한다는 느낌으로 힘을 내서 진행하고 있네요.

Q. 선배님께서는 <영혼의 노숙자>를 통해 약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연결망을 만들어나감으로써 누구보다 용감하게, 자신도 미 처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아가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수자를 비하하지 않는 개그’를 지향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 인가요?

<독일 언니들>을 진행할 때는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기도 했고, 저에겐 ‘여성’이라기보다는 ‘외국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이 강했어요. 그래서 독일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전부 몸소 느끼기엔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저는 외국인이 기에 그 사회의 일을 한 발짝 뒤에서 보게 되니까요.

한국에 돌아와서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졌고, 페미니즘이 왜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다시 생각해 보아

야 할 문제가 많아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즘이 인권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자연 스럽게 장애인이나 성 소수자 등의 이야기까지 관심이 닿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독일 언니들>을 다시 듣다 보면, 피했으면 좋았을 표현들이 종종 있어요. 편집 당해야 마땅한 표현들 이요. 하지만 그걸 없었던 일로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두고 있어요. 예전 방송을 듣다 보면 변해온 제 모습, 그리고 그와 함 께 변한 청취자분들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천천히 변해가는 과정도 지금 와서 보면 큰 의미가 있어요.

Q. 개그의 무대로 팟캐스트라는 오디오 매체를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해요. 팟캐스트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가장 큰 강점은 목소리가 가진 힘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것이에요. 목소리로만 소통한다는 게 조금 구식이지만, 거기서 오는 편 안함이 있거든요. 요즘 유튜브를 시작하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듣는데, 저는 영상매체는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장시간 보는 게 피곤하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와 달리 다른 일을 같이하면서 듣기도 어렵고요. 이런 점에서 오디오 매체가 가진 장점이 참 많 죠.

Q. <영혼의 노숙자>가 청취자들에게 어떤 방송이 되었으면 하시나요? 또,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앞서 말했듯, 유쾌하면서도 유익한 방송이었으면 해요. 그래서 더욱 다양한 게스트분들을 모시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불편 하지 않은 개그를 하고 싶은 만큼, 앞으로도 편하게 공감되는 솔직한 이야기를 담는 방송으로 꾸려나가고 싶어요. 단기적인 목 표로는,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이걸 계기로 언젠가 박나래씨처럼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해보고 싶어요.

Q. 아직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학우분들도 많을 텐데요. 한 말씀 전해주세요.

저도 대학을 다닐 때부터 20대까지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고민이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행운이지만, 현실적으 로 그 행운이 모두에게 찾아오지는 않으니까요. 할 수 있는 일로 삶을 이어나가면서 소소한 취미를 하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너무 거창하게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하죠. 꿈 없이 청춘을 보내는 것이 마치 초라하고 실패 한 삶인 것 마냥 이요.

하지만 후배분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거나 성공하는 시기는 다르니까요. 저도 30 대에 꿈을 향해 나아갔는데, 여러분들은 그에 비하면 아직 어리잖아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기 마음을 잘 돌아보는 게 가 장 좋은 것 같아요. 또, 정신건강을 잘 돌봅시다! 나 자신이 괴롭지 않은 방향으로, 초조하지 않게요.

 “누가 날 키워줄 거죠?” 셀럽 맷이 방송의 끝마다 던지는 물음은 우리가 서 있는 현재의 지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 금 이곳에서 더 발전하고 더 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맷과의 짧은 인터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바로 나를 가장 잘 키워줄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맷이 독일 유학 생활 중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은 단순히 우연한 행 운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으려는 고민 끝에 얻은 결실이지 않았을까. 누구나 가는 당연한 길이 아닌, 여러 탐색 끝에 찾은 자신할 수 있는 나만의 길. 미래에 대한 머리 아픈 고민, 혼자 떠안기만은 버겁다면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코미 디로 유쾌한 웃음을 주고 있는 맷의 목소리를 팟캐스트에서 만나보는 건 어떨까.

이민지  leereum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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