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경험한 사회생활이라곤 학교생활뿐이었다. 어느 집단에 속해본 적도, 일원으로서 어떤 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아직 학생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대학생이 되고 나선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을 떼고자 알바를 시작했다.

애기야, 뭐하니?

애기. 아주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성인다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 알바를 하며 ‘애기’라 불리다니.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떡볶이집에서 첫 알바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떡볶이를 포장하는 방법을 배웠고, 나는 어떻게 하면 빠르게 포장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열심히 포장했다. 하지만 포장을 다 하고 나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멀뚱히 서 있는데 저 멀리서 사장님의 앙칼진 외침이 들렸다.

“ 애기야, 뭐하니? 바쁜 거 안 보여? ”

나도 안다. 이 상황이 바쁘다는 것을. 하지만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다. 아무도 내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 적 없었기 때문이다. 난 고작 포장하는 방법에 익숙해지려고 애쓰는 1일 차 알바생이었다.

난 일머리도, 눈치도, 센스도 없었다. 사장님은 그런 내게 자주 큰소리를 치셨다. 이 정도 알려줬으면 다음 일은 알아서 찾아서 해야지- 라는 식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알려주신 일을 그대로 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그 이상의 일을 내게 요구하셨기에.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2주- 그러니까 알바를 시작한 지 4일 정도가 지났고, 이제 내게 알바 가는 주말은 절대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 되었다. 그래도 처음 하는 알바니까 힘든 거겠지, 다들 이러면서 배운다더라,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열심히 일해보려 했다. 하지만 결국 3주째- 그러니까 알바를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 알바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내가 알바를 할 수 없던 가장 큰 이유는 사장님의 이 한마디였다.

“그렇게 일만 하면 어떡하니. 다른 사람들이랑 살갑게 지낼 줄 알아야지.”

분하고, 허탈했다. 알바할 때 해야 하는 일들을 외우고, 잠깐 쉴 틈이 생겨도 쉬면 안 될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며 새롭게 해야 할 일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사장님께서는 내게 사교성까지 요구하셨다. 이건 마치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법」 마스터나 할 수 있는 행동 아닌가- 싶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난 이런 방법 따위 그 어디에서도 배워본 적 없었다. 또래 친구를 사귈 때도 먼저 다가가 본 적이 없었는데, 40, 50대분들과 일하는 곳에서 그들과 살갑게 지내라니.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이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처음이었다.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으며 사는 내게, 떡볶이집에서 알바했던 경험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 중 가장 선명히 남은 기억이다.

나는야 최강 E 알바생

떡볶이집에서 알바를 한 뒤 카페에서 다음 알바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 자자, 정윤아.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카페 알바생으로서의 자아를 하나 만들고 카페에 가서는 그 역할을 연기하는 거지. 먼저 말도 걸고, 질문도 바로바로 하고. 말도 시원시원하고 크게 하자. 넌 최강 E 알바생이야! ”

솔직하게 말하자면, 분리된 자아로 알바를 해보자는 나의 다짐은 첫날부터 무너졌다. 성격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근감 있게 다가가자니, 일하지 않고 돈만 벌려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고. 그렇다고 질문을 많이 하자니 너무 일만 하는 사람처럼 비칠 것 같았다. 적극적으로 일을 배우려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란 쉽지 않았다. 난 그 가운데서 줄타기를 해보려다 실패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만 적당히 잘 해내면 됐지, 굳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가 있나? 일하는 곳에서 친구를 만들려 애쓰지 말자.

그러던 중, 같이 일하는 사람과 쉽게 친해질 기회가 생겼다. 바로 평일 알바. 원래는 주말 근무를 했기 때문에 4~5명과 쉴 틈 없이 바쁜 시간대에 일을 해야 했지만, 평일 근무로 옮기면서부터는 2명이 일을 했다. 둘 다 8~9개월 차 되던 상태라서 일하는 것도 잘 맞아 정말 쉽게 일했고, 단둘이 일하다 보니 친해지기도 훨씬 쉬웠다. 문득, 이전 알바에서 너무 힘들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여태껏 내 삶 속에 존재하지 않던 ‘일하는 곳’이라는 낯선 장소에 겁을 먹었고,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 「무언가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 일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새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실은 그냥 친구 사귀듯 자연스레 다가가면 되는 거였는데.

떡볶이집에서 알바할 때는 사교성을 강요하던 사장님의 말이 너무나 버거웠다. 오히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처음 알바하는 나의 빠른 적응을 위해 사교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낯선 장소에서의 적응을 빠르게 돕는다. 사람 덕에 장소가 편해지고, 일에 익숙해지고, 그 환경에 적응하기가 쉬워진다. 일하는 곳에 내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곳에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어두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감정(+) 생각(-)

사과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하여 ‘그 사람이’ 피해를 보았을 때 ‘그 사람’에게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행동에 대해, 혹은 내 잘못이 아닌 일에 대해 쉽게 허리를 굽히는 것은 좋지 않다. 이는 착한 게 아니라 어리석은 거다. 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어리석은 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알바를 시작하고 2개월쯤 되었을 때, 손님이 방금 산 초코케이크를 교환하러 온 적이 있었다. 아들이 지금 당장 초콜릿을 먹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이 손님에게 케이크를 들고 밖에 나간 이상 특별한 이유 없이 케이크를 교환할 수 없다는 본사 방침을 설명했다.

그러자, 손님은 대뜸 내게 소리를 질렀다. “ 넌 나한테 사과부터 해야지!”

좀 벙쪘다. 나에게 갑자기 소리를 지르니 당황스러웠고, 내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니 혼란스러웠다. 잘못한 게 없는데 사과해야 하나. 이건 내 상식과는 어긋나는 행동인데. 옳지 않잖아. 그리고 만약 사과한다면, 뭐라고 사과해야 하지. 죄송하다고 하면 되나. 그런데 이렇게 말로만 사과하고 넘겨도 되는 문제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져 아무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조금 흘렀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게 느껴졌다. 식은땀이 주룩주룩 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긴장되어 이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이때 옆에 있던 알바생이 이럴 땐 죄송하다고 하는 게 제일 낫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머리가 띵- 했다. 아 손님의 컴플레인은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건가. 결국 나도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 컴플레인의 기미가 생길 때면 무조건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했다.

본인의 책임을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회피하라는 것은 아니다. 정말 잘못을 했다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손님의 일방적인 분노만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죄송하다고 얘기를 하자. 이 방법이 옳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생각은 빼더라도, 감정은 싣고, 죄송합니다. 감정이 포인트다. 사과하는 사람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상대는 점점 언성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씁쓸하지만, 이게 제일 나은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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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렇게 1년이 흘렀다. 원래 일하던 알바생들이 전부 나가고, 이제 나보다 오래 일한 알바생은 없었다. 남들은 눈치 볼 필요 없으니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걱정이 되었다. ‘가장 오래 일한 알바생’이 된다는 것은 카페를 총괄하는 나름의 임무를 부여받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커피 5개, 스무디 3개, 케이크 1개 주문이 들어온다. 전에는 ‘그러면 가장 오래 걸리는 스무디부터 만들어야겠다. 블렌더에 얼음을 채우러 이동해야지.’라는 생각만 했더라면, 지금은 ‘○○씨가 케이크를 퍼올 동안, △△씨는 커피를 내리고, □□씨는 스무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양만큼의 얼음을 담고 그 음료를 만들 준비를 해주세요.’라는 요구를 한다. 내가 만들어야 할 음료를 제조하는 동시에 누가 어떤 음료를 만드는지 파악하고, 그 음료들이 맞게 나가는지 확인한다. 음료를 제조하는 상황으로만 예시를 들었지만, 마감 업무를 하며 청소할 때나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대에 할 일을 확인하는 작업 등 카페에서 해야 하는 전반의 일에 대해 이와 비슷한 작업을 거쳤다.

알바생들은 나에게 해야 할 일을 묻고, 본인들이 한 일에 대한 확인을 바랐다. 일개 알바생임에도 이런 질문들을 계속 받다 보니 나는 나름대로 책임감과 부담감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이런 걱정도 잠시, 나는 카페를 총괄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1년간 카페에서 일하며 그 환경, 사람, 업무 등 여러 부분에 이미 적응한 상태였기에 카페의 다양한 일을 확인하는 나름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새로운 책임이 생기더라도 여태까지 내가 해왔던 것처럼 찬찬히 적응해 나가면 되겠다는 자신이 있었다. 1년 새 이런 생각을 할 만큼 발전한 자신이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카페의 모든 업무에 너무나 편해져 버린 나머지, 알바생으로서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도 하기 싫어졌다. 카페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안도감에 취해버렸다. 나는 정말로 나태해지고 있었다. 새롭게 배울 일이 없으니 더 이상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 깨달은 것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바짝 긴장하며 일을 할 때 일하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애써 간신히 적응했더니만, 이제는 너무 적응되었다고 나태해져 버리다니. 참 모순적이었다. 나에게 적응이란, 나를 팽팽히 조여 긴장 상태로 만들던 것들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또다시 부적응을 마주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이런 잘못된 안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1년간 해오던 알바를 그만두었다. 다른 알바를 구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가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실 지금은 다른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카페에서 나와 다른 알바 자리를 구해보려던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를 뽑아주는 곳은 카페밖에 없었다. 내가 봐도 웃기고, 어이없는 일이다. 더 이상 카페에서 일하지 않겠다며 당차게 그만두었는데, 다시 카페로 돌아가다니. 그래도 뭐, 카페라고 다 같은 카페는 아니니까. 분명 내가 새롭게 배울만한 게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알바를 시작한 초반부터 칭찬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사회에 내던져져 아무것도 모르던 나도 결국에는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머리도, 센스도, 학습하면 좋아진다. 그리고 이 적응을 한번 거친 뒤 나에게 부적응이 다가오리라는 것도 안다. 사람은 점차 나아진다. 살아있는 몸을 통해서, 그리고 손에 닿을 수 있는 재료를 통해서 깨닫자. 지레짐작하여 겁먹고 포기하지 말자. 한번 겁먹었던 경험은 미래의 나에게 더없이 좋은 양분이 될 테니까.

문정윤  jungyun031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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