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출연자들의 표정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적인 드라마, 각본대로가 아닌 현실 속의 이야기! 리얼리티 쇼는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만큼 매력적인 장르다. 그러나 TV를 보다 보면 들지 않을 수 없는 생각이 한 가지 있다. ‘잠깐, 저거 실화냐?’ 과연 어디까지가 리얼인지, 세계 리얼리티 쇼들의 뒷면을 알아보자.

리얼리티 쇼는 무엇?

리얼리티 쇼(Reality show)는 대본에 기반을 두지 않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말하며 현실성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쇼 장르를 뜻한다. 방청객이 참가하는 토크쇼들, 관찰 예능, 서바이벌 게임, 데이트 프로그램, 오디션 프로그램 등이 리얼리티 쇼에 해당한다. 1947년 미국 ABC에서 방영한 ‘캔디드 카메라(Candid Camera)’라는 몰래카메라 시리즈를 시초로 보는 사람도 있고, 80년대에 와서 시나리오 작가가 없을 때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탄생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발전해서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에 유형이 매우 다양하고 많은 구성 요소가 섞여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TV 프로그램 중 가장 흥행한 장르이며 성공한 프로그램의 포맷이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문화에 따라 재해석되는 등 파급력도 대단하다.

(캡션 : 일례로 미국에서는 2003년 11월에만 무려 130개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리얼리티 쇼는 실시간 생방송도 아니고 완전한 실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마치 현재의 현실 상황을 보는 것처럼 꾸며진다. 사실은 지금 진행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보는 사람이 현장감을 느끼도록 짜여 있다면 리얼리티 쇼라고 부를 수 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시청자가 실제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리얼리티 쇼가 지금처럼 인기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지적되는데 가장 주요한 요인은 말 그대로 리얼리티, 현실감이다. 실제 인물이 본인의 역할로 등장한다는 진정성과 대본에 없는 즉흥적인 애드리브, 순간적인 반응과 감정 변화 등이 재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출연자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지 못하거나 개인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발언을 할 때 시청자는 친숙함과 공감을 느끼게 된다. 출연자들의 사적 영역을 공개하거나 감시하는 소재가 자주 활용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경쟁 구도의 프로그램이라면 긴장감과 드라마틱함이 셀링 포인트이고, 버라이어티 쇼에서는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확실한 것, 시청자가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주는 것, 익살스러운 자막 등이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리얼리티 쇼는 그 범주를 정하기가 꽤 난감할 정도로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 따라서 리얼리티 쇼가 황금 시간대에 TV를 장악한 이유 또한 프로그램의 개수만큼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얼리티 쇼, ㄹㅇ 리얼리티일까?

-재미만 있다면 다른 건 상관없어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각광받은 이래로 시청자의 참여를 유도해서 현실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계속 존재했다. 한 사회의 빈부격차나 질병 관리 수준 등 정부에 대한 비판이 필요할 만한 문제를 자극적으로 가공하고 조명하여 시청자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곧 어려운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도와주자는 취지의 리얼리티 쇼들이 등장했고 여러 가지 논란이 탄생했다. 범죄 사건을 해결하려는 프로그램이나 개인의 사생활을 폭로해 버리는 프로그램들이 특히 문제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방영된 <시야에서 사라지다>는 실종자들을 찾아주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었을 뿐 아니라 방송된 내용이 실제와는 거리가 있어 사회적으로 논란을 가져왔다. 이는 리얼리티 쇼에 대한 최초의 부정적 스캔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쇼 제작자는 팩트와 재미가 충돌할 때 재미를 선택한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알아차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리얼리티 쇼는 말 그대로 ‘리얼리티’가 매력이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을 경우 종종 조작 논란이 따른다. 한국 예능 중에도 몇 가지 떠오르는 사례가 있을 것이다. 특성상 일반인의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자주 입방아에 오르는데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를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안녕하세요>는 사건의 진위를 제보자 자신밖에 알 수 없다는 시스템상 무수히 많은 조작 의혹을 낳았다. 그밖에도 출연자들의 대화가 대본대로였다는 것이 밝혀지거나 별로 험하지 않은 지형을 일부러 어려운 척하며 모험했다는 제보가 나오는 등 프로그램 컨셉에 맞춰 사실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을 때 시청자는 실망감을 느낀다. 리얼리티 쇼를 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사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웃음과 드라마다. 그러나 그 ‘사실’이라는 것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가 모호하기 때문에 시청자의 눈을 가리고 손쉽게 즐거움을 꾸며내는 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승자만이 승자, 전력을 다해 싸우게 하라

리얼리티 쇼를 현실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출연자들끼리 경쟁하게 하는 것이다. 출연자들의 즉각적인 감정 변화와 어디서 한 번쯤 겪어본 듯한 적자생존 구도가 현실감을 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생존 경쟁을 통해 참가자들이 탈락하고 살아남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나타났다.

영국의 포맷을 미국이 소화하며 전 세계 서바이벌 TV 쇼의 효시가 된 <서바이버>는 매주 출연자들의 평가를 리셋해서 누구든 탈락할 수 있게 한 극악무도한 시스템과 정치라고 불러도 좋을 눈치싸움으로 시청자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실력이 아닌 여론으로 승자가 결정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상금 100만 달러를 눈앞에 둔 출연자들은 날카롭고 공격적인 면을 보일 수밖에 없으며 제작자들은 교묘한 편집을 통해 이를 이용했다. 결국 실명으로 등장하는 출연자들의 이미지를 모두 인성 쓰레기로 만들고서 최고의 시청률을 얻어낸 <서바이버>는 지금까지도 경쟁이라는 소재를 가장 잘 사용한 리얼리티 쇼로 꼽히고 있다. 말하자면 ‘악마의 편집’의 조상이다.

그런가 하면 아예 팀을 나눠서 한눈에 승패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프로그램들도 있는데 그중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미국의 <어프렌티스>다. 유능한 지원자들에게 취업 인터뷰를 진행하여 일주일에 한 명씩 해고하고 최후의 견습 경영자 1인을 뽑는 이 쇼는 진행자가 도널드 트럼프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많은 짤을 생산한 그의 ‘You’re fired!’는 <어프렌티스>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면접이라는 별명을 얻게 해준 명대사다. 출연자들은 상대 팀과 경쟁하는 동시에 졌을 때를 대비해 자신의 팀 안에서도 돋보여야 하고, 거기다 고용주의 막말까지 견뎌내야 하는데 몇 년 전까지 그 고용주가 트럼프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얼마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인지를 알 수 있다. 그 잔인함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청률 미끼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형 판옵티콘,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요 몇 년 사이 한국 예능계를 강타한 관찰 예능의 파도를 이끈 것은 세계적으로 흥행한 네덜란드의 TV 쇼 <빅 브라더>였다. 제목부터가 감시와 관음을 암시하는 이 프로그램은 9명의 남녀가 100일 동안 폐쇄된 집에 사는 모습을 보여준 예능이다. 그들의 일상, 관계, 갈등, 연애 전선 등을 분석하고 편집해서 내보내는 형식으로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카메라가 있으며, 원한다면 인터넷으로 24시간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이 공개된 <빅 브라더>는 마치 정말로 현실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감상을 남긴다. 출연자들이 100일 동안이나 연기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얼리티 쇼가 노리는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TV에 비치는 모든 것이 삶의 재연을 통한 연출이라는 것을 잊게 하고 현실과 허구를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가짜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면 시청자는 출연자의 행동에 몰입한다. 언뜻 듣기에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 쇼가 영어권 국가에서 아직도 높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게 그 증거이다.

포맷을 옮겨온 프랑스의 <로프트 스토리>는 한술 더 떠서 출연자들이 세입자이고 제작진이 집주인이라는 설정 아래 세입자들이 매일 집주인의 명령을 하나씩 듣게 했다. 거기에 시청자 투표를 통한 퇴출 제도까지 도입해 출연자들이 하루 종일 일거수일투족에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그 퇴폐적인 프로그램은 엄청난 붐을 일으켰고 순식간에 스타 등용문이 되었다. 이 예시는 출연자에게 주어지는 상황들은 임의로 조정되어도 별로 거부감이 없고 단지 출연자가 현실적인 반응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작자든 시청자든 결과적으로 원하는 것은 재미이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쇼는 재미를 위해 제작되고 있고, 그래서 재밌지만, 한편으로 현실을 자의적으로 편집해서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리얼리티 쇼가 보여주는 세계를 그대로 믿었다가는 속는다는 것도 모른 채 속게 될 것이다. 리얼리티 쇼에서 얻을 수 있는 제1요소는 재미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자.

최소현  7_3_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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