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거대하고 새까만 우주를 홀로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나는 목적지 없이 떠나야 하는 여정의 근원적 불안을, 존재의 이유와 의미가 없다는 직감에서 비롯된 허무를 느낀다. 그렇다. 구원 없이 사는 건 괴롭다. 난 세계와 나의 분명한 존재 이유가 있다고 믿고 싶다. 헛됨이란 없는 확실한 세계 안에서 살고 싶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이 무(無)의 상태를 견딜 수 없다. 

난 늘 구원 없이 사는 법이 있느냐고 물어왔고 우연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내 의지에 의해선지 날 무(無)에서 해방해 줄 세 명의 인물을 만났다.

고타마 싯다르타

죽음과의 첫 대면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왕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비가 축축이 오던 날 관을 안치하던 어른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어린 나는 -흙 속의 비좁은 상자 안에 갇혀 꽁꽁 묶인 채로 영원을 살아야 한다는- 그저 단순하고도 원초적인 공포감이 들었다. 그리곤 처음으로 ‘생이 아닌 상태’는 무엇일까 떠올려 보았다. 그간 세계는 항상 내 궁금증과 물음에 부합하는 답을 내놓았었는데 난 처음으로 마주한, 결코 그 답을 내놓지 않는 묵묵부답의 세계가 두려웠다. 죽음에 관해서라면 나는 그 어떤 희망의 싹도 가질 수 없는 터였다. 

    싯다르타 역시 어린 나와 아니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이러한 침묵에서 답을 찾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생은 고통으로 가득 찼다. 생은 고통 그 자체다.’ 그의 말이 맞다. 우리는 태어났기에 늙는다. 태어났기에 죽어야만 한다. 태어났기 때문에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 하며, 태어났기 때문에 무언가를 잃는다. 염세적으로 들리겠지만, 이게 사실이다. 나는 생을 고통이라고 말하는 싯다르타가, 그리고 그가 말하는 -태어남의 굴레를 끊은 상태인- 니르바나라는 게 흥미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간 삶에서 느끼던 어떤 묘한 꿍함은 삶을 고통으로 인정해 버린 순간 사라졌다. ‘삶의 행복을 되찾자’에서 ‘삶의 괴로움을 덜어보자’로의 변화였다. 추한 면을 가리고자 덮어놨던 포장지를 벗겨 내버린 순간, 귀찮고 볼품없었던 하루의 그 많은 시간을 삶의 본모습으로 받아들인 순간. 그 자체로 해방의 첫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궁금했다. 설령 고통이 그가 말하는 숙명 같은 것이어서,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것일지라도 난 그 세기를 약하게 만드는 방법이 필요했다. 싯다르타는 ‘무상한 것’에 ‘집착’하기에 괴롭다는 간단한 원리를 소개한다. 마치 ‘지구상의 모든 것은 원자 알갱이들의 조합이다’라고 말하는 현대 과학처럼 싯다르타는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들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만물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당연하게 여기던 모든 ‘실체’들은 허상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유일하며, 변하지 않는 ‘나’의 실체란 무엇일까? 얼굴이나 목소리? 아니다. 이것은 시간에 따라 바뀌니 ‘실체’가 될 순 없다. 혹은 생각하고 있는 마음이 실체일까? 그런데 과학은 의식이 신경의 작용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식물인간이 된 나는 내가 아니란 말인가. 품어왔던 실체의 허상이 무너진다. 애초에 그 어디에도 내가 영원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모인 오온들은 흩어질 것이고, 흩어진 것은 다시 새로 모일 것이다. 모든 존재들의 생과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그 이상의 기쁨도, 슬픔도 아니다. 불변과 영원의 실체를 깨뜨려보니, 그저 존재할 뿐인 내 존재의 자유가 느껴진다. 난 이제 싯다르타가 ‘사라지는 것들에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붙잡았던 사사로운 것들을 놓을 수 있는 조그맣지만 단단한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난 인간은 태생적으로 우울한 존재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싯다르타의 말대로라면 만족 않는 욕망을 지녀 괴로울 수밖에 없으며, 죽음을 선고받은 시한부의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싯다르타는 연기 緣起의 법칙을 알려준다. 만물은 ‘우연한’ 오온들의 결합으로 서로가 서로에 얼기설기 얽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만약 우리 아빠가 엄마를 만나기 전 h양과 결혼을 결심했다면, 그리고 2002년의 어느 날 엄마가 친구의 결혼식에 가지 않아 우연히 아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없을 존재다. 외에도 얼마나 많은 우연이 내 존재에 겹쳐 있을지 나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심지어 이 무수한 우연들 하나하나는 모두 내 존재에 절실하다. 이처럼 우리는 우주가 태어난 이래 서로서로 지탱하며 존재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양의 우연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난 인간이 ‘고통을 모태로 해서 태어난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만족 없는 욕망, 그로 인한 끝없는 노력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태어나 존재함은 엄청난 우연이고 그렇기에 행운이다. 내가 아주 아주 아득한 시절부터 쌓여온 우연들로 잠깐 여기, 이 순간 존재하는 동안 또 그만큼의 우연으로 나에게 와 잠시 머무르는 것들을 맞아줘야겠다. 그리곤 그저 존재함에서 비롯된 생의 이 ‘순간’을 충분히 즐겨봐야겠다. 

장 폴 사르트르 

대학에 합격하고 난 1월과 2월, 스무 살 겨울의 그 감각을 기억한다. 입시를 핑계로 미뤄뒀던 행복과 자유를 실현할 그 ‘미래’가 이제 현재가 돼버린 데에서 오는, 설렘과 부담감이 뒤섞인 붕 뜬 느낌이었다. 지루한 현재의 생활을 행복할 미래로 뭉뚱그려 합리화해 왔던 내게 웃기게도 자유와 행복은 스물의 내가 이뤄야 할 일종의 과제가 돼 있었다. 처음으로 본가를 떠나 혼자 사는 일, 새로운 사람들과 술 퍼마시는 일, 서울의 인프라를 누리는 일, 관광 온 외국인들을 구경하는 일 등등-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선택의 빈도가 자유의 정도와 비례한다면 난 확실히 전보다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낯섦이 주는 새로움, 설렘의 칼날은 일회용이다. 곧 그 빛을 잃으며 무뎌지고 만다. 날 즐겁게 만들던 그 새로움이 더 이상 새로운 게 아니게 됐을 때 그것은 공허가 됐고 난 다시 지루해졌다. 입시 내내 나의 나쁜 버릇이었던 초조와 불안은 당연히 스물의 내게도 여전해서 잔잔히 내 일상에 스며있었다. 오히려 난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이런 이유로 묘하게 권태스럽고 무기력하던 스무 살 여름, 나는 사르트르의 강연록을 읽었다. 그리고 딱 운 좋게,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를 논한다. 

    그는 인간이 사물과는 다른 자유를 가졌다고 본다. 만약 종이 자르는 칼이 있다면, 그 칼은 설계자에 의해 미리 -그것의 크기, 재질, 용도 같은- 본질들이 모두 구상된 후 태어난다. 말 그대로 그 칼은 ‘제작’됐고, 그래서 칼의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칼의 설계자 같은 존재가 우리에겐 없다고, 다시 말해 우리의 본질을 미리 정해줄 신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세계에 먼저 실존’한다.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설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우리가 이 세계에서 의존하고 매달릴 그 무엇도 없는 채로 홀로 던져진 피투성 (被投性, thrownness, 내던져짐)의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일단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내던져진 인간 개개인에게 본질이란 또 ‘인간은 이래야 한다’ 같은 본성이란 없다. 단지 그는 무(無)의 상태에서 그가 구상하는 무엇인가가 되며, 그의 선택들과 일종의 신념들이 그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갈 뿐이다. 본능은 있을지 몰라도 본성은 없다. 선과 악의 구분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었다. 

    문득 나는 ‘의미는 정말 내 거다’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개개인은 ‘해석의 힘’으로 그저 길가의 돌덩어리인 것을 징표로써 수집해 왔다. 그리고 그 돌에 의미라는 것을 부여해 많은 ‘나’들을 이어 왔다. 내겐 무수한 의미의 농축인 아주 소중한 돌덩어리를 남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젠 그다지 놀랍지 않으며, 그래서 자유롭다. 내 의미의 역사를 꿰뚫어 느낄 수 있는 사람, 내 의미들의 통합과 연대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징표와 해석의 창조주인 ‘나’ 뿐이다. 그러니, 의미에 갇히지 말자 다짐한다. 의미는 완벽히 내 영역 안에 있으니. 나는 그저 삶의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나만의 징표로 만들며 끊임없이 나를 나의 의미들로 기워나가기로 한다. 그리고 의미들이 일상의 한 시점에서 통합되는 순간, 내가 이해되는 바로 그 순간만큼 짜릿한 시간은 없다. 

알베르 카뮈

아침에 꾸역꾸역 일어나 알람을 끄고, 마포08 버스를 타서 학교 정문에서 내린다. 분명 나는 대학에 가 하루 종일 전공 공부만 하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었는데,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3시간 동안 강의실 창문 밖을 보며 멍을 때리기도, 다른 수업 과제를 끄적이기도, 옆자리 동기와 카톡 하며 속으로 실실 쪼개기도 한다. 그렇게 또 기숙사에 들어와 씻고 누워 릴스를 넘기다 보면 잘 시간이다. 다음 날 나는 역시나 또 알람을 끄고, 마포08 버스를 탈 것이다. 다만 오늘은 다른 생각이, -그야말로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살다 보면 문득- 세계 안에서 내 행동들의 가치와 목적을 찾을 수 없다는 정말이지 막연한 기분이 든다. 어차피 죽으면 다 끝인데 그러면 이 삶의 의미는 뭐냐는 허무주의의 답 없고도 유치한 질문들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이 의문은 바로 카뮈가 말한 ‘부조리’ 인식의 시초다. 

    우리는 세계의 ‘합리성’을 원한다. 우릴 둘러싼 거대한 세계가 권선징악 따위의 ‘통일된 의미’ 안에서 일정한 룰로 움직일 때, 우린 세계의 그 비대함을 훨씬 더 편안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불행일지라도 우리는 일어난 모든 일의 원인과 이유를, 또 어떤 모종의 가치를 믿고 싶어 한다. 그러니 인간은 인간의 선택들 그리고 무작위의 우연들로만 결정되는 ‘가능성의 영역’ 안에 완벽히 홀로 서 있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우리에게 참 떫다. 당신은 당신을 특별한 존재 이유와 가치 따윈 없는 ‘무의미’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를 맞닥뜨린 인간은 삶의 의미를 신에 돌리거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하는 방법으로 세계의 낯섦을 거부하고 부조리를 회피한다. 난 그렇다면 ‘부조리를 맞닥뜨린 인간은 결국 구원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가?’하는 생각과, 만약 인간이 삶의 부조리를 발견하고도 구원 없이 살 수 있다면, 과연 ‘어떻게?’란 의문이 든다.

    카뮈는 이렇게 말한다. 의미를 찾을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과 괴로움에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것을 절대자에게서 찾아 비합리를 신격화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부조리 속에서’ 살면 된다고. 부조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책 페이지를 넘기고 넘겼는데, 오히려 카뮈는 나에게 그 안에서 평생 살아가라는 말을 한다. 마치 싯다르타가 네 운명과 한계를 인정하라고 말한 것처럼 카뮈 역시 내게 비합리, 이해되지 않음, ‘알 수 없음’ 안에서 부조리와 함께, 부조리를 안고, 그럼에도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부조리 속에서 산다는 것은 곧 인간과 세계의 대립을 직면하며, 영원히 ‘희망 없는 반항’을 하며 사는 거다. 

    마치 떨어져야만 하는 바위를 끝없이 올리는 신화 속 시지프처럼, 부조리의 인간은 죽을 때까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에서 ‘반항’하며 살 뿐이다. 무의미의 절망도, 유의미의 희망도 없다. 죽음 뒤 모든 것이 종료되는 인간의 패배로만 귀결되는 무력한 싸움을 할 지라도 -그가 살아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 시간 안에서 그는 반항하며, 무작위의 세계 속에, 그리고 미래에 의식적으로 자신을 던진다. 그러니 의식이 중요하다. 돌을 올리는 그 순간에 환하게 깨어있는 의식이 중요하다. 필연적으로 그는 죽고 그의 모든 열망과 의지는 한 줌 재처럼 꺼져버릴지라도, 다행히도 이 희망 없는 반항은 오히려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한다.

    시지프는 그에게 주어진 무거운 바위마저 그의 의미로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투쟁이 아름답듯, 부조리 속에서 반항하는 인간의 삶 역시 아름답다. 의미를 도대체 찾을 수 없는 무의미의 삶이, 곧 가장 유의미하단 생각이 든다. 부조리의 생일지라도 이제 그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다 다른 광채로 빛나게 만드는 무한한 ‘해석의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구원 없이 사는 법

다채로움. 싯다르타, 사르트르, 카뮈는 결국 내게 삶을 다채로움으로 받아들이라 말하는 듯하다. 세계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하는 긍정과 부정의 경지를 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아있는 동안의 평안을 추구하라 말하는 싯다르타는 곧 부조리 속에서 사는 카뮈와 같다. 카뮈처럼 산다는 것은 곧 ‘당연한 게 하나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이며 이는 모든 사건 하나하나에, 모든 사물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내게 보이고 일어나는 갖가지 모든 일은 낯섦이기에 ‘다채로움’이지 확신으로 찬 무한 긍정의 세계도, 염세와 절망의 논리로 찬 무한 부정의 세계도 아니다. 나는 세계의 그 다채로움을 맛보며 사는 동안 ‘나’의 균형과 평안을 좇아보겠노라 다짐한다. 무거운 바위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든 시지프처럼 살아보기로 다짐한다. 그렇지만, 아니 당연히,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무언가 영감을 주는 웅장한 말을 들으면 세상을 살아갈 단 하나의 정답을 꿰뚫듯 한 느낌을 받곤 쉽게 부풀어 오르지만, 이 상쾌한 기분은 주변의 여러 자극에 또 금방 무뎌지며 난 쉽게 피로해진다. 나아진 듯한 나와 그대로인 것 같은 나 사이, 그 도돌이표 안을 자꾸 빙빙 도는 듯하다. 분명 버렸다고 생각한 쓰레기가 자꾸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듯하다.

    얼마 전, 상점을 받겠단 목적으로 기숙사 워크숍에 갔다가 ‘변화란 A에서 B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변화란 A에서 A′가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즉 ‘변화는 replacement가 아니라 an addition’이라는 거였다. 올 한 해 동안 너의 이상점인 B가 되었느냐는 물음에 나는 그저 자신 없이 고개를 저어야 한다. 하지만 난 ‘더 나은 A가 되었느냐’라는 물음엔 확신을 담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나만 아는 그 지극히도 개인적인 순간들의 경험에서 뿜어져 나오는 확신이다. 이 변화들은 사르트르의 말처럼 모두 내 자유의지의 산물이었고 무의미의 사건에 의미를 불어넣는 나만의 해석 활동이었지만, 동시에 싯다르타의 말마따나 –별생각 없이 간 워크숍에서 연말 내내 나를 다잡은 문장 하나를 얻은 것처럼- 그 모든 일의 일어남은 아주 많은 우연의 조합이었다. 내 선택과 결심으로 그리고 의지로 행했던 행동들은 수많은 우연에 이미 종속됐고, 도중에 결합했고, 새로운 우연들을 낳았던 것이다. 내 의지는 단 하나였을 거다. 좀 더 나아지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고, 즐거워지고 싶으며, 현명해지고 싶다는, 양(+)의 상태로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 그거 딱 하나였을 거다. 그리고 이 순간마다, 나의 A 덩어리에는 내 자유의지와 우연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프라임들(′)이 하나씩 찍혀간다. A′, A′′, A′′′……. 이렇게 더 나은 A가 되고, 난 카뮈의 말대로 구원 없이 살아갈 수도 있음을 느낀다. 자주 고꾸라지는 기분을 느끼고, 쉽게 풀이 죽고, 의지를 잃기도 하지만 난 이제 이런 부조리 상태는 당연한 것임을 배웠다. 또 난 이제 과도한 희망도, 과도한 절망도 아닌 그저 ‘가능성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움’으로 삶을 받아들이며 나의 A에 프라임을 찍어가면 된다는 것을 안다.

김민서  atomins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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