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죽음-사후. 나는 죽음을 통해 생전을, 그리고 사후를 본다.

1.

살아있을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돈을 잘 벌지는 못했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20대 시절 벌어놓은 돈을 가지고 내 가게 하나를 차렸다. 남들에게는 보잘것없어 보였을지 몰라도, 내게는 소중한 과일 가게였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상태 좋은 과일을 고르고, 가끔씩은 거래처와의 말다툼도 있었지만, 가게 일을 하며 아내 영선이를 만나 딸 지은이도 얻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과 아내를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과일 가게는 나만의 가게가 아니라 우리의 가게였고,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가게에 임했다. 나는 이곳을, 그리고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여느 때와 같이 열심히 땀 흘려 장사하고 들어온 날, 지은이가 어느덧 중학생이 된다고 신나 하던 그날, 아내는 우리에게 희귀병에 걸렸다고 고백했다. 믿기지 않았다. 희귀병? 왜? 어쩌다가 그 병에 걸리게 된 거야? 호전될 방안이 아예 없어? 어느 정도로 심각한 건데? 증상의 진행 속도는 어떻대?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떠다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괜찮을 거야. 우리 함께 버텨보자.”…. 사실 난 영선이한테 이런 말을 할 만큼 강한 사람도, 든든한 남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우리 아내와 딸,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이전보다 더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이어야 했다.

병원에서는 병의 진행 속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아내의 장기 입원을 권했다. 아내는 장기 입원비를 댈 정도의 형편이 되지 않는 우리의 상황을 고려해 집에서 쉬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내를 집에 마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제아무리 치료 방법이 없는 희귀병이라고 해도, 병원에서 연구하다 보면 치료 방법이 생길 수도 있고, 병원에서 간호받다 보면 상황이 점차 호전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집에서 쉰다는 것은 그런 찰나의 희망을 스스로 버리겠다는 의미다. 너무나 뻔해서, 우리를 더욱이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희망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희망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부서져 가는 희망에 나 자신을 걸어야만 했다. 아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몇 배로 더 일했다. 4시에 일어나서 과일 도매 시장을 둘러보고, 판매하던 수량을 2배로 늘리고,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시간을 10시까지로 늘렸다. 잠을 제대로 자본 게 언젠지, 끼니를 제대로 먹은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몸이 고될수록, 돈을 더 벌고 조금 더 많은 손님을 반길수록, 희미한 희망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아 일을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일과 돈에 치여 아내와 딸을 자주 보지 못하면서도 이 길이 가족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점점 딸과 아내에게 소홀해지는 내 모습을 당연하게 여길 때쯤, 몸이 아파졌다. 망가진 생활패턴으로 위궤양이 생겼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암으로 발전했다.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단받았을 때는 이미 위암 4기까지 진행이 된 상황이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1년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자, 내가 감히 희망을 넘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져오려던 그 희망이, 내 힘에 못 이겨 터져버렸다. 더 이상 아내의 병은 내가 노력한다고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일하느라 바빴던 사이에 아내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말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희망이 이런 거였나? 아내도, 딸도, 보지 않고 일만 했는데, 그 결과가 아내의 증상 악화라면 내가 그동안 쏟아부었던 노력은 뭐가 되는가?

병원비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내를 집으로 데려왔다. 딸과 아내에게는 미안하다는 이야기만 했고, 위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내도 아픈 상황에서 나라는 짐까지 굳이 더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가족들에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몸이 힘들어 아내의 병간호는 차마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고등학생이 된 지은이에게 아내의 병간호를 맡겼다. 지은이는 학교생활을 하며 아내를 간호한다는 것에 짜증을 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싸웠다. 단란하던 우리 가정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변했을까 싶다가도 결국은 다 내 탓이라는 생각에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 결국 지은이는 가출했다. 지은이가 너무 걱정되었고, 나도 너무 미안했지만, 이제는 나도 내 몸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정도로 병이 심해졌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내 고통을 핑계로 딸의 가출을 외면했다. 방 한쪽에 누워있는 아내도 외면했다. 내 병 자체로도 너무 힘들었고,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배달로 끼니를 때우고, 봉투에 배설물을 처리하며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싶을 때쯤, 나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

나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남편과 함께했다. 기쁠 때, 슬플 때, 아플 때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아프기도 내가 먼저 아팠고, 고생시킨 것도 나였는데, 왜 세상을 떠난 건 내가 아니라 그 이인가.

내 병이 심해지고 남편의 일이 늘어날수록, 내 곁에 든든하게 남아있을 것만 같던 남편은 사라졌다. 내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어쩔 수 없지, 싶다가도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남편이 괘씸했다. 그나마 내 곁에 딸 지은이가 있어 줘서 참 다행이었다. 중학교 마치고 매일 와주는 딸이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정말 고마웠다. 그런 지은이 덕에 힘을 낼 수 있었고, 나도 내 병이 낫길 진심으로 바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을 매몰차게 무시하기라도 하듯, 점점 내 증상은 악화하였다. 다리는 마비되어 걷지 못했고, 배변 활동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는 실어증으로 인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 입원을 결심했을 때는 나도 내 삶에 기대를 걸었다. 혹시나, 정말 운이 좋다면, 나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면, 아빠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던 딸과, 나와 지은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남편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우리 가족과, 나를 사랑해 줬던 우리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병이 심히 악화하자 더는 삶을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죽음을 바랐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맞는 편한 죽음을 기대했다.

남편이 오랜만에 병원에 왔다. 병원비 낼 돈이 부족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정말 미안해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이미 내 육체의 고통에 대해서는 해탈했고, 그저 우리 남편과 딸을 한자리에서 보고 싶을 뿐이었다. 이게 내 마지막 소원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더 이상 내가 생각하던 단란하고 밝은, 과거의 그 집이 아니었다. 일하느라 바쁜 남편은 집에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 새 딸과 남편의 사이는 소원해져 있었다. 게다가 내가 집에 들어오면서 내 병간호 문제로 둘은 자주 다퉜다. 지은이는 그대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참 한심하게도,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이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가 가출하고 나서 남편은 많이 괴로워했다. 하루 종일을 울며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남편도 어디 아픈 곳이 있는 건지, 제대로 걷지도 못해 배설물을 봉투에 버렸고, 끼니도 소홀히 했다. 온갖 음식 냄새와 배설물 냄새에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내가 누워있는 방 안에서, 남편은 손목을 그었다. 그다음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퍼졌다. 원래 있던 불쾌한 냄새들이 싹 사라졌다. 남편의 흔적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내 몸이 아픈 것도, 우리 가족이 해체된 것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숨을 들이쉬면, 과거의 단란했던 우리 가족이 생각났다. 기분 좋은 날이면 술 한잔 먹고 치킨을 사 들고 취해 들어온 남편, 술 냄새난다고 싫다 하면서도 치킨은 맛있게 먹는 지은이,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하는 나. 방 안에 우리 가족의 행복이 그려졌다. 이대로 있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똑, 똑, 똑. 집주인 아주머니의 노크 소리가 나를 깨웠다. 문을 열고 들어와 남편의 죽음을 보더니 소리 지르며 신고를 했다. 눈물이 마구 흘렀다. ‘남편이 죽었구나. 그리고 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았구나.’ 침대에서 버둥거리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남편의 몸을 붙잡고 싶었다. 이미 생을 떠난 것을 알면서도, 그의 온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곁에 있고 싶었다. 남편 쪽으로 이동해 그를 끌어안고 울었다. 구더기 떼와 파리가 들끓었고, 주변에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배설물도 나뒹굴었지만, 그런 것들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후에 딸이 왔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죽음을 1주일 뒤에 안 딸을 괘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불화의 시작은 나였고, 그 끝도 나였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죽음을 늦게 알게 된 딸에게 미안했고, 1주일 동안 애도 받지 못한 남편에게 미안했고, 내 존재 자체가 원망스러웠다.

3.

그리고 다시 이렇게, 영혼의 형태로 방안을 떠돌고 있는 건지, 귀신이 되어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사후를 보고 있다. 내가 선택한 죽음의 결과를 직접 마주하고 있다. 살아있을 때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끔찍하다는 것이었다. 단란했던 시절의 사진들이 벽면에 걸려있는 동시에, 피와 배설물, 음식이 바닥을 가득 채웠다. 이질적인 물건들이 한 장소에 있었다. 우리 가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었나 싶을 만큼 끔찍한 냄새가 진동했고, 내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하였다. 아내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굴러 나에게 다가왔다. 여태껏 살면서 처음 보는 울음을 토해내는 아내를 보며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걸까. 병원비를 벌겠다는 명목하에 일에만 치중하느라 정작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 내 병을 숨긴 것, 지은이와 다툰 것, 가출하는 지은이를 잡지 않은 것, 집에서조차 아내의 간병을 하지 않은 것,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 나는 너무 이기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을 생각했다. 아내를 위해 일하느라 가족을 자주 보지 못한 건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진심으로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던 거였다면, 가족에게 소홀해서는 안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냈어야만 했고, 전화라도 한 번 해야 했다. 아내를 보러 병원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집에 왔을 때 지은이와 소소한 대화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만을 생각했다. 일하느라 몸이 아픈 것을 아내를 위한 내 노력의 근거로 여기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다가 얻은 병 때문에 아내와 지은이 모두를 저버린 것 역시 위암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 편해지자고 내렸던 결정이었다. 결국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내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고, 20살밖에 되지 않은 지은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지게 했다. 아무리 돈이 인생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사랑을 훼손할 만한 가치는 없다는 것을 그때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사후 며칠이 지나고서야 지은이도 내 죽음을 알게 되었다. 가출 후 3년 만에 돌아온 지은이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했다. 끔찍한 시취로 뒤덮인 방안과, 혼절 직전인 아내를 바라보며 벙쩌 있었다. 그러나 이내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차리고 이 상황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괜찮은 척 노력하는 것 같아 아빠로서 마음이 아팠다.

4.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현장에 도착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몇십 명의 마지막을 함께 했지만, 죽음에 익숙해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익숙해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마지막을, 고인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도록, 오늘도 이런 마음으로 유품을 정리해야겠다고 되뇐다.

방 안에 들어서 보니, 어머님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딸만이 그 자리를 지키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딸과 함께 어머님이 마음을 추스르도록 도우며 축문을 올렸다. ‘고인이 떠나고 슬피 사모하여 편하지 못하매 삼가 예를 다해 유품을 정리하오니 저희에게 맡겨주시고 흠향하시옵소서. 그동안, 이 집안에 고인께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것, 남은 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 살아생전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것 모두 정성스레 찾겠다는 의미를 담겠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영면하시라는 기원을 담아 묵념을 올리겠습니다. 일동 차렷, 묵념.’ 괜찮은 줄만 알았던 딸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너무 미안하고 후회되는데, 내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그래서 더 미안해. 그렇게 집 나가버리지 말걸. 한 번이라도 연락할걸. 왜 그랬을까.’ 대부분의 유족은, 그리고 이 딸 역시 고인에게 미안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때를 후회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떠나간 사람은 붙잡을 수 없다. 그 사람은 현세를 떠났고, 우리는 이곳에 남아 애도할 뿐이다. 그 사람이 여전히 이 세상에 함께할 때, 그때 잘했어야 한다. 집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고, 생각날 때 한 번이라도 더 연락하고, 미안하면 사과하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표현했어야 한다.

방은 그 사람을 고스란히 담는다. 눈에 보이는 가전제품, 냉장고, 사치품 등의 유형의 것부터 취향, 냄새, 감정의 무형의 것까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 준다. 들어가자마자 내 눈 앞에 펼쳐진 방 안의 모습은 너무나 처절했다. 방 안에 가득 걸려있는 가족사진과 배설물 봉투라니. 분명 무슨 일이 있기 전까지는 아주 단란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별다른 이벤트 없이도 서로만으로 행복한, 그런 가족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을까.

시취와, 그와는 다른 또 다른 악취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옷장 안에 쌓인 검은 봉투에서 악취가 풍겨오고 있었다. 봉투 안에는 배설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봉투와 소주병 안에서 오래된 오물이 부패하고 있었고, 몇 개는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이 냄새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힘들게 다 치운 후에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곰팡이와 썩은 내, 수많은 플라스틱 용기가 눈에 띄었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다가, 죽음 직전에는 거의 음식을 먹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책장을 보니 수많은 잡동사니 물건과 광고 전단들이 쌓여있었다. 거동이 심히 불편하지 않았을 때까지는 딸이 언젠가 집에 돌아오겠거니 하고, 딸을 위해 모아둔 물건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렇게 물건을 쌓아두는 것은 헛헛한 마음을 물건으로 채우려는 정신병의 일종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위암 말기 상태였다고 하시던데, 몸이 아팠던 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의지할 수 있는 식구가 없던 고인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시체 주변에 들끓는 구더기와 파리를 청소기로 마저 빨아들이고, 시체에서 나오는 악취를 청소하기 위해서 장판을 닦고, 뜯는다. 그러고 나서는 고인의 취향이 담긴 물건들을 하나둘 담는다. 쓸 수 없는 물건이라고 버리고, 고가의 물건이라고 유족에게 무조건 전달하는 것은 고인의 마음을 헤아린 정리가 아니다. 고인의 흔적이 가득 담겨있는 물건들을, 고인이 삶과 죽음을 대했던 마음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으로 담은 물건들을 유품 정리함에 담아 딸에게 전달한다. 내 자식을 보는 것 같은 마음에 편지 한 장도 함께 넣어두었다. 이렇게 또 한 분의 마지막을 함께함에 감사한다.

문정윤  jungyun031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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