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배설물, 끈적끈적한 액….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우리 신체가 배출하는 것이며, 더럽고 역겹다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 신체는 더러운 것을 밀어냄으로써 반응한다. 그리고 역겨운 것을 배설하는 신체의 중심에는 여성이 존재한다.

마그릿 실드릭은 서양의 윤리가 탈-육체를 행위자의 조건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서양 윤리에서는 마음과 의식을 물리적 몸체에서 분리하여, 육체에 얽매이지 않는 이성적인 마음과 의식을 높이 평가해 왔다. 이는 개인의 복잡한 육체에서 분리된 추상적이고 이상화된 행동 능력을 선호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선호는 성별, 정체성, 장애 등 개개인의 중요한 측면을 간과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탈-육체가 이상적인 능력의 전제가 된다면, 선천적으로 신체적 활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은 이상적인 인간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을 신체와 관계하여 바라본다면 여성은 월경, 출산을 하는 주체로 신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더러운 피를 흘리고 끈적끈적한 오물을 쏟으며 아이를 낳는 여성은 서양 윤리에서 배제되어 왔다. 이들은 아브젝트일 뿐이다.

‘아브젝트’라는 개념을 정립한 사람은 프랑스의 여성 철학가 줄리아 크리스테바이다. 그녀는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을 대표하는 저작이 바로 <공포의 권력>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아브젝트란, 주체도 대상도 아닌 어떤 것으로 비천하고,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이 책에서 아브젝시옹을 ‘자신의 경계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추방함으로써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정체성이 구성되는 정신의 작용’이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아브젝트에 대한 주체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브젝트는 주체와 대상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하는 더러운 것으로 주체가 배설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론에 따르면 아브젝트는 주체의 정체성 인식에 도움을 주는 근원적인 것이기도 하다. 주체는 이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배설하고 맞닥뜨리면서 자기 주체성을 위협받음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확립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테바가 아브젝트의 예로 삼은 한 대상은 바로 여성인 ‘어머니’이다. 크리스테바는 아이가 언어 세계에 진입하여 주체성을 형성할 때, 아이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면서도 부정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존재를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이론에 따를 때 아기는 태어나 거울단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처음 인식한다. 거울단계 이전의 아기는 자신을 잉태한 어머니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만, 거울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아이는 자기 몸을 일관된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거울단계를 지나면 아이는 상징계에 들어가게 된다. 상징계는 언어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언어 그 자체가 지니고 있기도 한 사회적 구조와 의미체계로의 진입을 뜻한다. 즉, 아기는 이 단계에서 사회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아이는 어머니를 밀어내고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아이에게 사회 규칙과 질서를 알려주는 것은 아버지의 명령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는 언어적이고 사회적인 규칙들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존재를 제한한다. 이 점에서 어머니는 아이의 자아와 타자, 안과 밖의 경계를 위협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주체도 대상도 아닌 어떤 것 즉, 아브젝트이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크리스테바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단순히 더러운 것, 오물, 거부해야 하는 것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동시에 어머니가 아이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해석하며, 아이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 필수적인 존재라고 바라본다.

취약한 신체의 가시화. 키키 스미스

그렇다면 아브젝트 아트가 실제 작품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먼저 소개할 작가는 1954년 독일출생의 미국현대예술가, 키키 스미스이다. 그녀는 미니멀리스트의 선두 주자 중 한 명인 조각가 토니 스미스와 오페라 가수 및 연기자인 제인 로렌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미스는 1970년도 후반, 콜랩(Colab)의 뉴욕 미술 컬렉션에 참여하여 전시회, 영화상영회, 공연 등을 조직하여 예술이 지역사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1980년대의 그녀는 콜랩의 타임스퀘어 쇼를 위해 작품 활동에 참여하고, 이후 단순하고 해부학적인 장기 조각에서 완전한 신체 형상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신체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신체 조각을 해오고 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그녀의 작품은 <Untitled>이다. 각 12개의 유리병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적혀있다. 정액, 점액, 구토, 기름, 눈물, 피, 젖, 침, 설사, 소변, 땀, 고름. 이는 우리에게 더럽고 혐오스러운 오물이다. 키키 스미스는 아브젝트를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비천한 것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12개의 유리병이 실제로 각 물질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관객이 이 유리병 안에 든 오물들을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면 유리병 안에 든 거울로 인해 오물이 아닌 자기 얼굴을 보게 된다. 더러운 오물의 이름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던 관객들은 그 속에서 개인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문자 기호와 실재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키키 스미스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보지 못하는 인간 신체 안에 있는 측면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12개의 병에 적힌 이름들은 우리 신체 속에 있는 아브젝트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더럽고 비천하다고 생각하여 아브젝시옹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것들은 우리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우리가 밀어내려고 하는 오물들의 이름을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 위에서 마주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 살펴볼 작품은 <Train>이다. 여성 조각은 생리혈로 보이는 피를 바닥에 쏟으며 서 있다. 길게 늘어선 피를 보았을 때, 여성은 생리혈을 끊어내지 못하고 걸어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생리는 여성에게 있어 매우 근원적인 것이지만, 생리는 사회 속에서 숨겨야 할 것으로 인식된다. 사춘기가 되면 모든 여성 청소년은 월경을 하고 이 월경은 여성의 삶의 반 이상을 함께한다. 그러나 여성은 생리대를 숨기면서 화장실에 가야 하고, 자신이 생리 중인 사실을 함부로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 월경은 비천한 것이기 때문이다.

키키 스미스는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여성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여성의 신체와 주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생리혈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어느 누가, 자신의 생리혈을 회사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가족 구성원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이 작업은 기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 그러나 이 아브젝트를 통해 관객은 기존의 사회질서와 여성의 주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여성은 신체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렇게 생리혈을 끌고 가는 것일까? 그러나 여성이 신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다는 것인가?

키키 스미스는 인간의 신체에 관심을 두고 인간의 신체에서 가시적이지 않은 부분을 가시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몸속 존재하는 아브젝트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신체가 인간의 삶을 경험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기 때문에 신체를 표현한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고, 그 신체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그녀의 작업 특징은 신체의 내재적 취약성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그녀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죽음, 성에 대한 주제를 탐구하며 취약성을 신체로써 가시화한다. 그녀의 다른 작업 중에서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기둥에 바싹 매달려 여성은 가슴에서 젖을 흘리고, 남성은 정액을 흘리고 있는 작품이 있다. 젖과 정액은 인간의 생명성을 입증하는 분비물이지만, 두 인물은 모두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매달려 나른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다. 이처럼 키키 스미스는 생명력과 죽음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신체가 지닌 취약성을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또한, 그녀는 이성적이고 종속적이며 잘 작동하는 기계에 부합하는 문화적 환상을 지닌 신체들을 거부한다. 이는 서양 윤리 전통의 신체들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신체는 더럽고, 취약하고, 우리의 통제 속에 있지 않다. 신체는 다양한 물질들을 분비하고 배출한다. 그녀는 신체의 오물들을, 그리고 신체가 부패하는 모습 등을 보여줌으로써 생명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아브젝트 예술은 우리가 배제하려고 하는 비천한 것들을 눈앞에 보여줌으로써 기존에 존재하던 이성적이고 이상화된 문화적 환상들을 깨버리고, 관객들 개개인의 주관성, 그리고 상호주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보이는 나는 내가 아니야. 신디 셔먼

다음으로 만나볼 작가는 신디 셔먼이다. 포스트모던 아트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신디 셔먼은 1954년 미국 뉴저지에서 자랐다. 활발한 성격의 그녀는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버팔로 주립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였지만, 이후 그림에 한계를 느끼고 전공이었던 회화에서 사진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당시 로버트 롱고와 함께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며 <Untitled Film Still>의 전신이 된 <오려낸 그림들>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1977년 <Untitled Film Still>을 통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셀프 포트레이트, 구성 사진 등으로 불과 5년 만에 회고전을 열고 최연소로 구겐하임 재단의 회원 자격을 받는 등 현대 미술 최고의 사진작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먼저 살펴볼 작품은 신디 셔먼의 대표작인 <Untitled Film Still> 시리즈 작업이다. 해당 작품에서 신디 셔먼은 작가인 동시에 사진의 피사체로 등장한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전까지의 사진작가들은 카메라 앞에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에서 신디 셔먼은 가부장적 남성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시각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연기하는 사람이 신디 셔먼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그녀는 우리가 실제의 신디 셔먼을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없듯이, 여성을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Untitled Film Still>에서 그녀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한 스틸컷의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는데 이는 너무나 전형적인 이미지로, 마치 어딘가에서 실제로 본 듯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시각 작용에는 주체가 대상을 바라보는 것 즉, ‘시각’과 내가 타 주체에 의해 대상이 되는 ‘응시’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응시를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주체를 형성한다. 그녀는 대중매체와 사회 속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응시를 지적한다. 신디 셔먼의 사진 속에서 그녀는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에게 관찰되는 듯한 놀란 표정을 띠고 있는데 그녀는 타인의 시선 강조를 통한 수동적인 이미지를 자아냄으로써 대중매체와 사회의 응시가 개인에게 스테레오타입을 주입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두 번째로 살펴볼 작품은 셔먼의 후기 작업 중 하나인 <Untitled #153>이다. 그녀가 앞선 <Untitled Film Still> 시리즈를 통해 대중매체 및 시각 매체에서의 ‘여성상의 허구성’을 지적하였다면, <Untitled> 시리즈를 통해서는 더욱 기괴하고 잔인한 사진을 통해 ‘여성상의 파괴작업’을 진행한다. 이때 그녀는 부패하는 신체 등을 통해 아브젝트 아트를 드러낸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신체 미술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90년대의 신체미술은 오브제를 통한 작업이나 설치 미술로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신디 셔먼 또한 여전히 모델로 등장하지만, 더 이상은 인간의 형상이 아닌 모습을 띠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았던 신체를 조망하게 되었고 동시에 신디 셔먼은 절단되고 파괴된 신체를 통해서 이전의 관습을 해체하고 ‘여성을 위한 여성의 신체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를 했다. 즉, 그녀는 잘못된 응시를 통한 주체는 허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신디 셔먼은 이러한 작업에 대해 “나는 매우 인간적인 형태와 아주 추악한 형태를 부각해 왔다. 지금 나는 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이겨내려 하고 있으며 사람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처럼 보일 수 있는지 모든 가능성을 완전히 대상화하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신디 셔먼은 여성상의 파괴작업을 통해 이전까지는 숨겨왔던 진정한 주체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신디 셔먼의 작품을 단지 신체미술 작업에 대한 해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신체 담론으로 연결지어 세계를 인식하고 주체성을 확립하는 방법으로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필요가 있다.

키키 스미스와 신디 셔먼의 작품을 통해 아브젝트 아트와 그들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아브젝트 아트는 기존 미술의 개념을 철저히 파괴하며 그 너머의 어딘가에서 등장하여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결국 아브젝트는 우리 신체 가까이에서 주체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었고, 우리는 아브젝트 아트를 통해 주체성에 한발 다가가게 되었다.

최봄이, 박시윤  hic2450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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