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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의 정석』과 나의 아날로그

아날로그는 느리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다. 그런데도 디지털이 보편화된 후에도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시대에 뒤처졌다기보다는 그냥 아날로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실은, 나 역시 그 부류의 한 사람이다.

 

연필 깎기의 정석

“시간이 좀 지나면 연필 촉의 모양이 잡혀가는 것이 눈에 보일 것이고, 갓 나오기 시작한 흑연 심에 칼날이 닿는 것이 느껴질 거다. 흑연은 나무보다 잘 깎이기 때문에 느낌이 다르다. 대체로 13~15바퀴를 돌리고 나면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부터 연필의 변화에 각별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데이비드 리스의 ‘연필 깎기의 정석’은 정말로 연필 깎는 법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책이 진행되는 내내 진지하게, 성실하게, 애정 넘치게, 그저 연필을 깎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준비물을 챙기고 혹시 모르니까 시작하기 전에 스트레칭도 하고 연필 깎기가 사용자에게 어떤 감각적 자극과 만족감을 주는지를 설명한다. 연필 해부도를 동원해서, 휴대용 연필깎이와 회전식 연필깎이와 전동 연필깎이를 이용해서, 진짜진짜 연필만 깎는다. 부록으로 연필 맛이 나는 와인을 소개하고 연필인들의 성지를 추천해둔 것이 킬링 포인트다. 대체 이 저자는 뭐 하는 사람인가 싶어 찾아보면 직업이 연필 깎기 장인이라고 한다. 더욱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하잘것없어 보이는 책인데도 왠지 마음이 가고 재밌게 읽히는 것은 자존심 상하게 자꾸 웃기는 아재개그 때문만은 아니다. 연필을 깎는 동안에는 오롯이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고 나만이 거기에 관여할 수 있다는, 연필 깎기의 매력에 대해 너무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이지는 않다. 심지어 저자는 기껏 깎은 연필을 쓰지도 않는다. 그건 파베르제의 달걀(캡션 : 러시아 황실의 보물이며 보석으로 섬세하게 세공된 부활절 달걀)을 먹는 것이나 마르셀 뒤샹의 변기에 오줌을 누는 거랑 다름없다고 하면서. 그런 허풍이 싫지 않은 것도 다 거기에 쏟은 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책에는 연필 깎는 방법이 대략 13가지 정도 소개되어 있다. 13개나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휴대용 연필깎이로 깎은 연필과 회전식 연필깎이로 깎은 연필이 대체 어떻게 다른가 따위의 궁금증은 생기지 않는다. 그 둘은 다른 거다. 왜냐하면 깎는 사람이 다르게 깎았기 때문이다. 흑연의 매끈한 정도도 다르고 경사각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책장을 넘기며 깎여 나온 연필들의 사진을 보다 보면 저자가 왜 그렇게 세심히 공을 들이는지 점점 이해가 된다. 그건 말하자면 ‘아날로그의 원리’다. 천천히 조금씩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깎아 내면 그 한 자루는 온전히 내가 깎은 것, 나의 연필이다. 다른 누가 깎은 것과도 똑같지 않은 나의 성과다. 그 사실이 가져오는 성취감은 적어도 연필 한 자루의 무게보다는 훨씬 묵직한 것이다.
     디지털이 딱딱하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유연한 가변성은 내가 좋아하는 아날로그의 특징 중 하나다. 시침을 홱 꺾으면 시간이 바뀌거나 얇은 종이에 글을 쓰면 손이 지나간 대로 궤적이 생기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제 거기에 한 가지 예시를 더하자면 내가 원하는 형태로 연필을 깎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연필에는 신비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책이나 양초를 볼 때 느끼는 매력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편리성을 따지기엔 지나치게 전시대적인 유물인데도 내가 만지는 대로 만져진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생기는 물건. 결과물을 보고 과정을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 흡족하고, 가끔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고 싶은 종류의 물건이다. 어쩌면 연필을 깎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충족감을 얻기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소 불편할지라도 나만의 것을 소유하고 싶다며 보채는 마음을 사각사각 달래는 일인 것이다.

“기다려라. 조금 더. 마음을 편히 가져라. 마음을 활짝 열고 기다려라. 조금 더 기다려라. 눈을 감아라.”

연필은 안 깎고 갑자기 뭘 기다리라는 거지 싶지만 이것도 책에 실린 연필 깎는 과정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뭘로 연필을 깎는가 하면, 마음이다. 저건 마음만으로 연필 깎는 방법이다. 이밖에 유명인처럼 연필 깎기, 폭포수 맞으며 연필 깎기 등 쓸모없는 방법들이 쓰여 있는데 아무래도 저자는 연필 깎기 전문가가 아니라 무협지 주인공인 것 같다. 왜 이런 허무맹랑한 방법들을 적었을까 생각해보면 일단 웃기고 싶었기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연필 깎기를 그만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장난인 건지 장인인 건지 구태여 어렵고 난감하게 연필을 깎는데도 말투는 한결같이 여유롭고 위트 있다. 자신의 마음속에 동요나 나약함, 딴생각이 있을 때는 연필을 깎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저자의 태도가 지극히도 정중하고 사랑이 넘쳐서 지켜보고 있으면 괜히 연필을 깎고 싶어진다. 놀라울 정도로 힘을 들이고 그만큼 완성품을 아끼는 게 과연 프로라고 불릴 만하다. 멀티태스킹 같은 건 아예 포기하고서 하나의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 이런 게 아날로그의 본질이 아닐까. 요즘 사람들은 비웃고 말겠지만, 그 턱도 없는 절실함이나 향수까지 느껴지는 불편함이 아날로그의 매력인 것이다. 너무 느려서 생각이 많아지고 또 생각하다 보면 내가 묻어나게 되는 거 말이다.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천천히, 비효율적으로, 그렇게 완성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좋아져 있는 게 나의 아날로그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1F
나는 바쁘고 빽빽하게 사는 걸 잘 못한다. 몸속에 아날로그 할당량 같은 게 있어서 너무 빠르게 살려고 하면 부하가 걸린다. 이렇게 연비 안 좋은 것까지 포함해서 참 아날로그 인간이다. 하지만 그래, 사람이 어떻게 건설적으로만 살 텐가. 가끔 여유도 부려야지.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느긋하게 있고 싶을 때는 버스 타고 양화대교 건너는 게 최고다. 보통 차가 막히는 구간이기 때문에 버스도 가다 서다 가다 서다 천천히 움직여서 한강 위에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다. 저렴한 아날로그다. 아니면 내키는 대로 아무 데서나 내려서 걷는 것이다. 낯설고 모르는 길이어도 좋고 몇 번 와본 곳이어도 좋다. 어느 쪽이든 시간 낭비니까. 기분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남들 일할 시간에 농땡이 부리는 건 상쾌한 일이다. 그 산뜻한 기분만 있다면 어디든 걸을 수 있다. 망원, 대학로, 수유, 양재, 이태원.
     맞아, 이태원은 실로 걸을 만한 곳이다. 길도 깨끗하고 분위기도 백 미터에 한 번씩 바뀐다. 골목이 여기저기 나 있어서 심심할 틈이 없는 거리다. 그 이태원 길 근처에 종종 시간 내서 들르는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 있다. 사실 이태원과 한강진의 중간 어드메쯤 있지만 곧았다가 구불텅했다가 하는 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그냥저냥 근처라고 부를 만하다. 이름이 꽤 모호하게 들리는데 알고 보면 어렵지 않다. 바이닐은 LP를 다르게 부르는 말이고 플라스틱은 CD를 말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LP와 CD를 주로 취급하는 곳이다.

9,000장의 바이닐과 16,000장의 CD가 구비된 청음 공간.

카세트테이프나 뮤직기어도 더러 있고 골목길 분위기의 카페와 음반이 내장된 테라스 석도 갖춰져 있다.

음반이 주는 아날로그적 감동과 소유의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현대카드가 만든 퍼블릭 공간이다.

 

건물의 겉모양은 네모나고 검고 꽤 크다. 길쭉길쭉한 철근이 격자로 외벽을 이루고 있고 커다란 유리창 사이로 가로등 같은 노란 조명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음반 가게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날로그적’으로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외려 지극히 현대적이고 세련돼서 그 정체를 몰랐다면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 외양이다. 하지만 어둑어둑한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거기부터는 별세계다.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아무튼 굉장히 훌륭하고 특별한 것을 갑자기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 든다. 눈이 조명에 익숙해지고 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전시되어 있는 휴대용 턴테이블이다. 빈티지한 수트케이스처럼 생겼는데 딱히 쓸 일이 없어도 누구나 갖고 싶어 할 만한 디자인이다. 그 옆으로는 베스트 앨범 10선이 소개되어 있다. 또 다양한 브랜드의 스피커와 헤드폰이 사용할 수 있게 진열되어 있고 리스너들이 그 사이를 돌아다닌다. 음악을 좋아하는 게 한눈에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왼편에는 고정된 턴테이블이 있다. 항상 사람이 차 있긴 하지만 운 좋게 빈자리가 났을 때 LP판을 골라오면 직원분이 사용법을 가르쳐준다. 복잡한 턴테이블 세팅은 다 되어 있으므로 나는 턴 위에 듣고 싶은 LP을 올리고 가장 바깥쪽 홈에 바늘을 대기만 하면 된다. 부드럽게 턴이 돌아가며 저장되어 있는 소리를 낸다. 요즘 LP는 판 위에 그림도 인쇄되어 있어서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재밌다. 일일이 판을 긁어가며 소리를 내는 귀찮은 방식이지만 LP에 담긴 음악은 어떤 음원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유한 매력이 있다. 음원으로 듣는 것과는 아예 다른 느낌이다. 현장감이 있고 풍부하다. 판마다 소리의 특징도 매우 달라서 LP는 각각이 하나의 음악을 의미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개체마다 차별성을 부여하는 것, 아날로그의 정수라고 하겠다.

     내부의 인테리어는 바깥과는 사뭇 다르다. 시멘트가 노출된 천장과 레트로풍의 진열장, 깔끔하게 타일이 붙은 벽면이 오래된 공중목욕탕이나 놀이터를 떠오르게 한다. 구역 표시를 네온사인으로 한 것을 보면 디자인으로도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임을 실감하게 된다. LP 하면 떠오르는 작고 낡은 가게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지만 색다른 방향으로 지난 세대의 여운을 느끼게 만든다. 기본 골조가 되는 구조물은 다 철로 만들어져 따뜻한 색감의 조명 아래서 반질반질 빛난다. 툭 튀어나온 LP 하나를 무심코 집어 들 때 손에 닿는 차가운 철골이 문득 그 옛날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하는 사색의 공간이다.
     빙 둘러서 진열된 LP를 차례로 구경하다가 멀찍이서 턴테이블을 바라보면 음악 듣는 사람들의 구부정한 등이 보인다. 이곳에는 나처럼 단지 아날로그 정취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을 즐기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인 듯하다. LP를 사가는 사람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레코드숍은 여기 말고도 많은데 저들은 왜 이곳을 찾아오는 걸까. 나는 그 답을 연필 깎기의 정석에서 발견했다. 8개의 턴테이블은 각각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연필을 깎듯이 음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손이 많이 가지만 완성하고 나면 다른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언뜻 무료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한 저 사람들로 인해 아날로그는 존재하고 재생산된다.
나올 때는 직원분에게 들어올 때 하지 못했던 인사를 했다. 입구는 외부와 같이 검은 기둥으로 되어 있어 밖으로 나가는 기분이 썩 아쉬웠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서 연필 깎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감상이 들었다. 자신이 고른 음악에 집중해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역시, 아날로그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아날로그의 매력은 여전하다. 때로 아날로그는 고루하고 답답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다. 정성을 다해 좋아하는 것의 즐거움이다.

최소현  7_3_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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