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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블랙코미디 영화

웃기지만 마냥 속 편하게 웃기만 할 수는 없는 코미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어딘가 불편하지만 동시에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그 특유의 매력 때문에 무성 영화 시절부터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아온 장르이다. 이런 블랙코미디에는 어떤 영화들이 있을까?

 

블랙코미디가 뭐야?
블랙코미디란,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장르로, 냉소적이며 음울하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유머 감각에 기초하고 있다. 당시 시대에 대한 비판을 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쾌활하기보다는 씁쓸한, ‘웃픈’ 감정을 끌어낸다. 영화는 아니지만,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유병재의 스탠드업 코미디쇼가 이 장르에 해당한다. 자신의 SNS에 달린 악플들, 현 정치 실태, 대두되는 사회 문제 따위를 비판함과 동시에 거기서 웃음을 끌어내는 그의 쇼를 보면 블랙코미디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러니는 반어법을 사용한 표현이나 모순적인 상황/인물상을 뜻한다*스탠드업 코미디는 코미디언이 무대 위에서 마이크 하나만 갖고 관객들을 웃기는 코미디의 한 갈래로, 정치/사회 이슈/종교 등의 민감한 주제들을 과감하게 비판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런 작품들이 입맛에 맞으실런지요

찰리 채플린 감독, <위대한 독재자> (1940)
나치 독일의 비인간성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찰리 채플린의 역작

토매니아 제국 쌍십자당의 독재자인 힌켈은 아리아인의 혈통적 우월성을 주장하며, 자신들보다 열등한 존재라 여기는 유대인을 탄압한다. 그리고 힌켈과 외모가 똑같이 생긴 유대인 이발사 찰리는 친구 슐츠와 함께 자기 민족을 차별하는 독재 정권에 맞서 항의하다 수용소로 보내지게 된다. 힌켈의 악행과 야심은 나날이 심해져 가고, 그 와중 찰리는 제국군 장교의 제복을 훔쳐 입어 수용소에서 탈출하게 된다. 사람들은 제복을 입은 찰리를 힌켈로 착각하고, 군인들은 사냥을 나온 힌켈을 찰리로 착각하여 오히려 그를 감옥에 집어넣게 되는데…….
      영화는 비판하고자 하는 요소들을 대부분 이름을 바꾸어서 등장시켰지만, 너무 뻔해서 그 원래 대상을 못 알아차릴 수가 없다. 누가 봐도 토매니아는 독일, 쌍십자당은 나치, 힌켈은 히틀러를 상징한다. 요즘이야 나치를 비판하는 미디어가 흔하지만, 이 영화가 나온 시기를 생각해보면 이런 내용을 다루기로 한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1940년은 독일을 포함한 추축국들이 막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시기이고, 어떤 나라들에선 이런 내용의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처형당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또한, 영화에 유대인 강제 수용소가 등장하는 것도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소름 끼치도록 놀라운 일이다. 나치 독일이 첫 강제 수용소를 세운 것은 1940년 4월로, 이 영화가 개봉한 해이다. 즉, 영화를 만들 때는 수용소의 존재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고, 찰리 채플린의 상상 속 탄압 방식이 때마침 현실에 그대로 나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실제 수용소가 영화에 나온 것보다 더 비인간적이었음을 생각하면,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런 암울한 주제를 갖고도 채플린은 코미디를 만들었다. 그는 여러 장치를 적절하게 배치하여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는데, 가장 대표적이고 자주 나오는 것이 슬랩스틱이다. 채플린은 본인 특유의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 연기와 행동으로 아무리 무서운 상황에도 가벼운 분위기를 더한다. 이발사 찰리가 고객에게 면도를 해주는 장면이나 힌켈이 지구안 앞에서 야망을 내비치는 장면이 그렇다. 인물들이 일상적인 동작도 박자에 맞춰서 크게 하니까 마치 춤을 추는 것 같고, 표정을 과장되게 지어서 감정이 다 묻어나오니 관객들의 입꼬리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슬랩스틱과 더불어서 자주 사용하는 웃음 코드는 등장인물들의 허당끼 넘치는 모습이다. 가장 진지해야 하는 등장인물들이 가장 멍청한 행동을 해서, 어이없음에 피식, 하고 웃게 된다. 이를테면, 군 장교가 자신 있게 방탄복을 개발해 입고 왔다고 말하자마자 총 한 방에 쓰러져 죽는다던가, 힌켈이 근엄한 태도로 엉터리 연설을 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렇게 인물들이 아이러니함에서 웃음을 만들면서 현실을 향한 비판도 놓치지 않는 <위대한 독재자>는 블랙코미디의 모토에 가장 충실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슬랩스틱은 쉽게 말해서 몸개그다.

우디 앨런 감독, <돈을 갖고 튀어라> (1969)
개봉한 지 60년이 지나고도 공감과 비판이 살아있는 씁쓸한 필름

     주인공인 버질은 자동판매기를 터는 것으로 범죄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갈수록 대담해져서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감옥에 가게 된다. 비누를 깎아 만든 가짜 총으로 교도관들을 속여 탈옥하게 된 버질은 그 뒤로도 계속 온갖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며, 체포와 탈옥을 반복하게 된다. 이런 버질의 삶을 그의 가족과 지인들의 인터뷰에서 듣게 되는데, 인터뷰이마다 버질을 묘사하는 게 천차만별이다. 관객들은 다양한 관점을 참고하여 버질이란 사람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하게 된다.
      <돈을 갖고 튀어라>는 아이러니로 시작해서 아이러니로 끝난다. 범죄의 고리를 끊게 해야 할 교도소가 오히려 정상적인 일자리를 구하려는 버질의 발목을 잡아 다시 범죄에 뛰어들게 만들고, 스스로 버질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영화의 전개가 개연성이 없어 보이게 만들어 그 병맛에 웃게 하지만, 같은 이유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느 정도의 영화적 과장을 빼면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69년도에 나온 아주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용에 공감이 간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영화가 비판한 문제들이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한다. 자국중심주의적 정책의 범람으로 빈부격차는 다시 심해지고 있고, 약자를 위한 사회적 보장제도는 여전히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인터뷰이들처럼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모순적인 사람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늘 있다. 약 50년 전의 블랙코미디가 주제로 삼던 것들이 여전히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은 영화를 더 웃프게 만든다. 단, 개인의 모순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당시의 시대상을 다른 블랙코미디 영화들에 비교해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장준환 감독, <지구를 지켜라> (2003)
피로 얼룩진 병구의 불편할 정도로 순수한 웃음

     주인공 병구는 학창시절에 괴롭힘을 당하고, 사랑하던 여자가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병으로 입원하는 등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을 겪으며 미쳐버리게 된다. 이상한 책들에 빠져 살던 그는 외계인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고, 자신의 삶에 불행을 끼친 사람들을 외계인이라는 이유로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는 유제화학의 사장 강만식을 외계인의 왕자와 통신할 수 있는 외계인이라고 생각해 그를 납치하고 고문한다. 강만식의 납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추 형사가 파견되고, 강만식은 탈출하기 위해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병구는 강만식을 추궁하며 외계인들의 손에서 지구를 지킬 방법을 모색한다.
      앞에 소개한 두 영화가 모순적인 상황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식이었다면, <지구를 지켜라>는 조금 더 공포스러운 유머에 기초하고 있다. 공포스러운 유머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과하게 잔혹한 묘사나 예상치 못한 전개에 멘붕을 겪고 실성한 듯이 웃는 웃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병구가 외계인이라고 믿고 살해한 사람의 인육을 반려견 ‘지구’에게 먹이로 주는 장면이 있는데, 병구의 순수한 의도와 잔인한 행동 사이의 괴리감에 실소가 나오는 식이다. 하지만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유머 코드여서 웃기긴커녕 그저 무섭게만 느끼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이 영화의 공식적인 장르는 코미디인 동시에 스릴러라고 소개된다.
      이 영화는 거대한 자본과 권력 앞에 한없이 무력한 병구를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비양심적인 권력가들을 비판한다. 대기업의 횡포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잃는 병구는 어떠한 능동적인 대처도 할 수가 없고, 결국 누적되는 상처와 충격에 실성하게 된다. 병구가 정신을 놓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사회가 그렇게 하도록 몰아간 것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관객들은 병구의 잔혹 행위에 오히려 통쾌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대기업의 횡포와 복수는 미디어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이긴 하지만, 특유의 잔혹함과 주인공의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차별성을 더한다. 무엇보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엄청난 반전을 통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상징물로 강만식의 추악함을 풍자한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말하진 않겠다.


사람들이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민감한 주제들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블랙코미디 영화.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이만큼 통쾌하고 현실 인식을 키워주는 영화는 없다. 사회에 할 말이 좀 많은 당신, 한 번 블랙코미디의 유머 코드에 탑승해보는 것이 어떨까?

유동하  dendongyoo@navr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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