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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향수를 찾아서

며칠 전 집 근처 역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간 모르는 사람의 향수 냄새에 나는 마치 갈고리에 걸려 끌리듯이 그 향을 좇아 걸었다. 거부할 수 없는 신선한 자극에 이성은 마비되어 친구와의 약속은 잊어버린 채, 오로지 코가 가르쳐주는 방향대로 발을 내디뎠다.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린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빨리 그 향을 찾으러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향수를 찾으려면 일단 공부를 해야겠지?

부향률(희석 정도)
향수는 향료를 알코올에 타서 만드는데, 이 향료의 농도를 부향률이라고 한다. 부향률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이름을 다음과 같이 부른다.
- 퍼퓸 : 15%~25%
- 오 드 퍼퓸 : 10%~15%
- 오 드 뚜왈렛 : 5%~10%
- 오 드 코롱 : 3%~5%

향수의 노트
향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발향되는데, 이 시간 단계를 노트라고 한다.
- 탑 노트 : 막 뿌렸을 때 맡을 수 있는 향.
- 미들 노트 : 뿌린 지 30분에서 1시간 정도 됐을 때부터 맡을 수 있는 향.
- 베이스 노트 :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나는 잔향. 향수의 종류에 따라 발향 시기는 다르다.

계열
향수의 계열은 쉽게 말해서 향료의 종류에 따라 생기는 이미지이다. 종류가 많아서 대표적인 것 몇 개만 알아본다.
- 플로럴 계열 : 장미, 재스민, 히아신스, 라일락, 바이올렛 등의 꽃을 향료로 사용하며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 우디 계열 : 고급스러운 목재 같이 편안하면서도 고상한 느낌이 나는 향이다.
- 시트러스 계열 : 귀엽고 상큼한 느낌을 주는 향이다. 시트러스는 레몬, 자몽, 라임 등의 감귤류 과일을 의미한다.
- 시프레 계열 : 시원하고 축축한 지중해 이끼의 개성적인 향으로, 성숙하고 편안한 향이다.
- 그린 계열 : 막 베어낸 풀에서 나는 신선하고 깔끔한 향이다.
- 머스크 계열 : 사향노루의 사향샘에서 나는 분비액의 독특한 향이다.
- 스파이시 계열 : 시나몬, 클로버, 후추, 생강 같은 향료를 사용한 자극적인 향이다.

나를 홀린 그 향을 찾아보려 했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향수 코너에 있는 수많은 제품 중 어떤 게 어떤 효과와 특징이 있는지 전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 도와주기 위해 직원분들이 있으시지 않은가. 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어, 시향을 해보고 싶은데요….”
     “네, 고객님. 어떤 느낌의 향수를 찾으시나요?”
     흐음, 느낌이라. 이미 며칠이 흘렀기에 그 향이 어떤 이미지인지 뚜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일단 맡으면 맞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든 이미지를 일일이 시도해보기로 했다.

 

상큼하게 터져볼래?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의 향수가 있을까요?”
나의 당돌한 질문에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몇 가지 제품을 가져왔다.

아틀리에 코롱 - 포멜로 파라디
처음으로 집은 향수병은 누가 봐도 과즙미가 넘치는 향이 들어있을 것 같았다. 투명한 유리병 사이로 비치는, 마치 우유를 조금 섞은 듯이 부드럽고 묽은 오렌지색 액체는 보기만 해도 달달함과 새콤함이 전해졌다. 그 위에 붙어있는 라벨지는 이름의 포멜로가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감각적인 자몽 색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겉과 속이 같은 솔직한 녀석이었다. 스읍 들이마시자마자 내 머릿속에 날 것의 플로리다 자몽이 그려졌다. 즙이 가득한 속살의 향을 이리도 직관적으로 담을 수 있다니, 조향사라는 사람들은 사실 마법사가 아닐까. 이 침투력 넘치는 새큼한 첫 향을 몸에 감고 다니면 어떤 무딘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눈길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탐스러워 보였다. *포멜로 : 포멜로는 지중해 쪽에서 나는 자몽의 한 종류이다
아틀리에 코롱 - 오랑쥬 상긴느
이 아이의 색은 앞엣것보다도 원색적이었지만, 향은 훨씬 부드러웠다. 은은한 오렌지 향은 방금 짜낸 과즙보다는 아기들이 바르는 로션에 가까웠다. 뽀송뽀송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구름처럼 모여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그저 곤히 자며 좋은 꿈을 꾸는 아기와 같았다. 아, 이곳은 천국이 아닌가? 이 향수를 뿌리고 다니면 평소에도 늘 이런 어린아이의 상큼함이 내게서 퍼져나가게 되는 걸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순수함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내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겠지. 분명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에 이보다 적합한 향수는 없을 것이다.
아틀리에 코롱 - 베르가모트 솔레이
달다. 레몬색이라 엄청 시큼할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한 레모네이드, 아니 그것보다 더, 마치 레몬 사탕처럼 달았다. 정말 달아서 내가 냄새를 맡은 건지 혀로 맛을 본 건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달아서 부담스럽기는커녕, 그만큼 중독적이었다. 맡아도 맡아도 자꾸 맡고 싶었다. 향기가 코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깝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 만큼, 현실 감각이 둔해지는 기분이 들 만큼 나는 이 향기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단순히 달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번 잡아보라고 놀리며 달아나는 연인같이 도발적으로 빠져나가는 끝향 때문에 그랬다. 잔향이 매력적일 것 같은 베르가모트 솔레이는 맡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련을 남길 것 같은, 못됐지만 미워할 수 없는 향수였다.
     아쉽게도 내가 찾던 그 향은 이 중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향수에 별 관심이 없던 내게 이 향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직관적으로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의 마음 같은 것이 내 안에서 부글부글 일었다. 나는 서둘러 다음 질문을 내뱉었다.

 

바람을 병에 담다

     “시원하고 깔끔한 느낌의 향수가 있을까요?”
      나는 두 번째 질문을 했다. 직원은 역시 자신 있게 몇 가지 상품을 내왔다.
세르주 루텐 - 로
이 향수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운영하는 조향사 세르주 루텐이 이 향수에 관해 설명한 글이 붙어있었다. “내 마음의 눈에 자꾸 뜨거운 다리미가 새로 빤 옷감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 이미지를 향수로 담아낸 후에야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독특한 설명에 걸맞게 로는 정말 독특한 향을 가진 향수였다. 말끔한 와이셔츠가 떠오르는 시원하고 깔끔한 향이 났지만 동시에 어떤 열정이 숨어있는 듯 끝향이 강렬했다. 강하고 시원한데도 불구하고 싸구려 스킨 냄새 같은 느낌은 조금도 나지 않고, 편안하고 고급스러웠다. 내 안에 성숙을 동경하는 마음을 싹틔울 정도로 매력적인 성숙함의 결정체였다. 그리고 로라는 짧고 잠재력 넘치는 어감의 이름에 어울리게, 어떤 불필요하거나 거슬리는 잔가지 없이 통쾌했다. 로의 향이 나는 미니멀리즘적인 인테리어 배치를 실천한 방 따위의 구체적인 상황 설정이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생겨났다.
아쿠아 디 파르마 - 미르토 디 파나레아
이번에 향수가 날 데려가 곳은 이탈리아의 파나레아 섬이었다. 나는 푸른색과 흰색이 조화롭게 배치된 아름다운 식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지중해식 해산물 요리와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오른쪽 포크로 바질을 찍어 들어 입에 대는 순간 눈을 떴다. 손에 들려있는 건 포크가 아니라 시향지였다. 그렇다. 어째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가야 하는가. 이 작은 유리병 하나로 언제든지 파나레아로 떠날 수 있는 것을. 신선한 바질과 드넓은 바다의 향이 손안에 쥐어져 있는 것을. 이 시원한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팍팍한 현실에서 누적된 모든 피로와 답답함이 남김없이 날아갔다. 시향지의 향이 옅어지고 잔향이 맴돌 때 즈음, 비누 향도 나기 시작했다. 잔향이 비누 향이라니. 티 없는 깨끗함에 나는 확인 사살당했다.
     이쯤 되니 원래 찾으려던 향은 거의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서 더 광활한 향수의 세계를 탐방하고 싶은 설렘과 기대감이 내 마음속을 꽉 잡고 있었다. 나는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생각에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본능의 묘약

     “매혹적이고 강렬한 느낌의 향수가 있을까요?”
     나는 세 번째로 물었다. 슬슬 귀찮다는 눈치를 뿜어대며 직원은 또 몇 가지 제품을 꺼내왔다.
세르주 루텐 – 라 휘 드 베흘랑
앗, 아까의 로와 마찬가지로 세르주 루텐이 설명한 글이 붙어있는 향수가 있었다. 석류처럼 검붉은 통은 치명적인 아우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녀를 거슬리게 하지 마. 그녀는 가시가 있는 장미야. 그녀는 극단적인 것을 즐기지. 가끔은 너를 달래줄 거야. 그리고 원할 때는…! 그녀의 향은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주고, 뒤흔들고 놀라게 할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리도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나 싶었지만 시향지에 코를 갖다 대는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코에서부터 등까지 전율이 일었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감각은 뒤흔들리고 놀랐다. 이것은 얌전한 꽃이 아니었다. 가시가 있는 장미였다. 놀란 마음에 황급히 코를 뗐지만 나는 치명적인 황홀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시가 아프게 할 것을 알면서도 장미를 끌어안듯이 다시 코를 갖다 대었다. 다시 맡아보니 무언가 더 느껴졌다. 다른 기척이 있었다. 더 깊고 더 매운 무언가가 톡 쏘는 느낌을 더하고 있었다. 그것은 후추였다. 검은 후추의 고급스러운 풍미가 코를 거슬러 올라가 뇌 아랫부분을 찔러대고 있었다. 다음 향을 맡기 위해 나는 밖에 나가서 라 휘 드 베흘랑을 떨쳐내고 와야만 했다.
아쿠아 디 파르마 - 피오니아 노빌레
해리포터에 나온 사랑의 물약이 이런 냄새가 났을까. 물랭 루주의 여왕이 입었던 공연복이 이런 냄새가 났을까. 비염이 있는 나는 다른 향수들은 코를 시향지에 바짝 갖다 대야 향을 맡을 수 있었는데, 피오니아 노빌레는 코에서 거의 한 뼘 정도 떨어져있는 곳에서부터 찌릿하게 공기를 뚫고 들어왔다. 대놓고 짙고 화사한 향은 호르몬을 자극했다. 하지만 결코 그렇고 그런 흔한 향은 아니었다. 특유의 톡 쏘는 향이 있었는데, 계피의 진함과 매움에 무화과의 달콤함이 한 데 섞인 오묘하고 개성적인 향이었다.
끌로에 - 끌로에 오 드 퍼퓸
“아, 이건 좀 특별한 향료를 사용했어요. 머스크라고, 사향노루와 사향고양이가 짝짓기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생식기 근처에서 내뿜는 분비액인데 호불호가 심하게 갈려서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직원이 제품을 내밀며 덧붙였다. 그 말대로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운, 정말 독특한 향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만 가지 향이 섞여 있는 듯 화사하면서 무궁무진하고, 캐러멜을 넣은 것처럼 끈적하게 달콤했다. 생각해보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분비액을 향료로 썼으니 매혹적인 향수가 나오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통 안에서 찰랑거리는 흰색 액체를 바라보니 근거 없는 확신이 솟았다. 이걸 뿌리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면 아마 주변 사람들은 다 나를 좇는 한 마리의 사향노루가 되어있을 것이다.


다양한 향수를 시향하느라 피곤해진 나는 집에 돌아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하루 종일 혹사당한 코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오늘 시향해본 수많은 제품 중에 찾던 그 향은 아무 데도 없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비록 그 향은 찾지 못했지만 나는 무궁무진한 향수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으니까. 나는 손에 쥔 작은 메모지를 보며 기대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메모지에는 다음에 사러 갈 향수의 목록이 길게 적혀있었다.

유동하  dendongyoo@navr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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