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건 결국 사진밖에 없다. 이 말을 가만 살펴보면,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잊힐지도 모르는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런 순간을 더 특별하게 담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면, 필름카메라와 함께하는 것도 좋다.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을 당신이 원하는 빛으로, 필름으로, 구도로… 온전히 담아낼 수 있으니까.

서툴러도 괜찮아
카메라를 켜고 끄고 셔터만 누를 수 있다면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르게, 필름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과정에 손이 많이 간다. 렌즈로 빛을 받아들이고, 조리개로 빛의 양을 조절하고, 서터 스피드로 빛이 들어올 시간을 조정하고… 필름카메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루한 설명을 듣다 보면, 사진을 찍기도 전에 질려 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만 필름카메라를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름카메라를 다루면서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필름카메라와 함께하면 실패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필름을 제대로 넣지 않아서 한 롤도 찍히지 않은 일도 있었고, 카메라를 잘못 열어서 필름이 그대로 빛에 노출되어 찍은 사진이 다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빛의 양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 너무 하얗게 나오거나 어둡게 나온 사진들도 수두룩하고, 심지어는 여행을 가서 찍은 필름이 공항에서 X-ray 검사를 하는 바람에 이상하게 변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필름카메라는 사람들에게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실패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통해 카메라를 어떻게 조작하고 다루는지는 물론, 순간을 한 장 한 장 공들여 기록하고, 운반하고, 기다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수많은 실패와 기나긴 인내가 섞인 쓰디쓴 경험 끝에 얻어낸 사진들은, 결국 계속 돌아보게 된다.

사부작사부작 준비하기
_ 어떤 카메라를 살까?
필름카메라는 조작법에 따라 크게 완전수동필름카메라와 자동필름카메라로 나뉜다. 각기 다른 하나의 종류가 아니라 처음 사진이 발명된 이후로 발전해 나가면서 생긴 종류들이다. 당연히 사진과 카메라가 처음 탄생했을 때는 모든 것을 수동으로 조작하는 완전수동카메라를 사용했다. 그다음에는 빛의 양에 따라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를  자동으로 잡아주는 자동필름카메라가 나왔다. 수요에 따라 수동과 자동 모드를 다 함께 가진 필름카메라도 함께 등장했다. 이후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필름카메라는 점차 생산을 멈췄고, 이렇게 쌓여온 시간 속에 필름카메라는 조작법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나뉘게 된 것이다. 그럼 어떤 종류의 필름카메라로 입문하는 것이 좋을까? 자동은 필름을 넣고 빼는 것 외에는 사용자가 직접 조작하는 부분이 없다. 수동과 자동 모두를 가진 카메라는 기능이 많은 만큼 무겁다. 이왕 필름카메라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완전수동필름카메라를 다뤄보는 것을 추천한다.

_ 필름 없는 필름카메라? 팥 없는 찐빵!
자동으로 사진이 저장되는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르게, 필름카메라는 필름이 없으면 그냥 장식품일 뿐! 필름카메라를 사기로 마음먹었다면, 필름도 당연히 알아보아야 한다. 필름의 크기는 카메라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다. 일반적인 크기의 필름카메라는 35mm 필름을 이용하면 된다. 그보다 더 큰 중형이나 대형 필름카메라는 110mm, 120mm 등 그에 맞는 더 큰 필름을 써야 한다. 카메라가 커지면 필름도 커져야 하고, 필름이 커지면 카메라도 커져야 한다. 어느 하나가 커지면 다른 하나도 커져야 한다는 것.
     100, 200, 400, 800… 2의 배수로 커지는 이 숫자는 필름의 감도를 의미한다. 감도는 필름이 빛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나타내준다. 감도가 높아질수록 필름이 빛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사진의 입자는 거칠어지지만 어두운 곳에서도 사진 표현이 잘 된다. 반대로 감도가 낮아질수록 필름이 빛에 둔감하게 반응해서, 사진의 입자는 곱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사진이 거의 찍히지 않는다. 취미로 사진을 찍을 때는 일반적으로 컬러 필름은 200을, 흑백 필름은 400을 사용하면 된다. 대신 높은 감도는 아니어서 빛이 적은 곳에서의 촬영은 주의하는 것이 좋다.
     필름의 크기와 감도를 결정했다면, 이제 어느 회사의 제품을 구매할 것인지 선택하면 된다. 현재까지도 필름을 생산하는 회사는 코닥, 후지, 아그파 사가 있는데 각 회사별로 필름이 잘 표현해내는 색이 다르다. 코닥은 노란색 계열을 잘 나타내서 인물 촬영할 때, 후지는 녹색 계열을 잘 나타내서 풍경 촬영 때, 아그파는 파란 계열을 잘 나타내서 정물 사진을 촬영할 때 좋다. 자신이 어떤 필름 사진을 찍고 싶은지, 어떤 색을 잘 표현해보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필름을 선택해보자.

드디어, 찰칵!
1. 필름 넣기
필름을 넣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열어야 한다. 카메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필름 리와인더를 들어 올리거나 카메라 밑 쪽에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면 카메라가 열린다. 카메라를 열면 왼쪽에 보이는 필름 리와인더 밑의 공간에 필름을 넣는다. 필름의 살짝 나온 부분을 잡아당겨서 필름 이송레버와 연결되어있는 부분에 끼워 넣으면 필름 넣기 성공!
2. 공 셔터 날리기
필름을 넣을 때 빛에 노출된 부분은 사진이 찍히지 않기에, 필름 카운터가 1로 올 때까지 필름을 넘겨야 한다. 필름 한 컷을 넘기기 위해서는 필름 이송 레버를 열고, 셔터를 누른 뒤, 필름 이송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가 놓으면 된다. 빛에 노출된 필름을 버리는 표현을 '공 셔터를 넘긴다’라고 한다.
3.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조절하기
필름 카운터가 1로 왔다면, 이제 필름에 담길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필름이 적당한 빛을 담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절해야 한다. 빛의 노출을 적정하게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출을 맞게 설정했나 확인하는 방법은 셔터를 반 정도 누르면 뷰파인더 안에 보이는 노출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노출계의 불빛이 빨갛다면 빛이 너무 많이 들어오거나 적게 들어오는 것이기에,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절해야 한다. 노출계의 불빛이 초록색이라면 노출이 맞는다는뜻이니 사진을 찍으면 된다. 일반적으로는 햇볕이 좋은 날에는 조리개 8에 셔터스피드 1/125초를, 흐린 날에는 조리개를 좀 더 열거나 셔터스피드를느리게 하면 된다. 이를 기억하기 어렵거나 노출계를 사용하기 힘들다면 빛에 따른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알려주는 Lightmeter 앱을 이용하자.

4. 초점 맞추기
렌즈의 앞부분을 잡고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뷰파인더를 통해 사진의 구도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면 된다. 초점은 찍고자 하는 피사체에 맞출 수도 있고, 배경에 맞출 수도 있다. 찍고자 하는 사진의 의도에 맞게 초점을 조절해보자.
5. 사진 찍고 필름 넘기기
위에서 공 셔터를 넘긴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필름 이송 레버를 열고, 셔터를 누르고, 다시 필름 이송 레버를 끝까지 당겨서 필름을 넘기면 된다.
6. 필름 감고 빼기
36장의 사진을 다 찍어서 필름을 모두 썼다면, 이제 필름을 감고 뺄 차례다. 필름 리와인더를 화살표가 표시된 방향으로 ‘틱’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돌린다. 소리가 나면 감는 것을 멈추고, 카메라를 열어서 완벽히 감아진 필름을 꺼내면 된다.
7. 필름 현상소에 맡기기
다 찍은 필름은 현상소에 맡기고 현상이 완료될 날을 기다리면 된다. 요즘은 필름카메라 사진도 디지털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홍대의 필름 현상소 : 홍대사진관, 홍대스코피, 남강칼라 등 몇 현상소가 학교 가까이 있으니 편리하게 이용해보자. 현상과 함께 필름 사진을 디지털 데이터로 넘겨받거나 인화 받을 수 있다.

나와 우연이 만들어낸 사진
어렵게 구한 카메라와 어떤 사진을 찍을까 고심하면서 고른 필름. 한 컷 한 컷 빛에 따라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절하면서 조심스레 초점을 맞추고 찰칵-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들. 필름 컷 수가 36장으로 한정되어 있어 한 장을 찍을 때도 엄청나게 집중해서 찍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모든 것이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카메라로, 어떤 필름에, 어떤 노출로 찍을지 모조리 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진들을 무사히 만나서 다행이기도 하다. 조리개를 한 단계 더 닫았다면, 셔터스피드를 더 빠르게 설정했다면 나오지 못했을 사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이 아닌 우연이 주는 매력도 있다. 많은 것들을 스스로 조정해도 아직 서툴러서 우연한 결과물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빛이 담겨서 더 밝거나 어둡게 나온 사진도 있고, 카메라 어딘가가 잠깐 고장이 났는지 사진의 한 모서리에 빛이 새어 들어온 사진도 있고, 손이 흔들렸는지 피사체가 마구 겹쳐서 나온 사진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사진들이 싫지 않고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이런 사진을 보면 그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넘어, 그 순간에 카메라를 잡고 있던 나의 모습까지 보이는 기분이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나의 의도대로 나온 것들이든 그렇지 못한 것들이든, 사진 너머의 ‘나’도 함께 담긴 사진이라는 느낌을 전해줘서 참 좋다. 오늘도 만지작만지작 필름카메라를 만지며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의 빛을 담으러 가봐야겠다.

이민지  leereum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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