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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렇지 않은, 원래 그러한 것들에 관하여

나는 ‘원래 그래’라는 말을 싫어한다. 

원래 그래. 어렸을 적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라는 동요를 듣고 심각해진 나는 엄마에게 “그러면 안 돼. 손으로 받아서 먹어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일대일 대응 관계를 학습했는지 모른다. 밥은 원래, 공부는 원래, 옷은 원래 이렇게 먹고 하고 입는 거야. 그리고 이 공식은 강력한 주문이 되었다. 
원래 그래. 이 주문의 효과는 바로 사유의 체념이다. “교수님, 이 과제 수업시간에 배우지 않은 부분에 해당하는데 혼자 공부해야 하는 건가요?” “네, 이 수업의 방식은 원래 그렇습니다.” 나는 교수님께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이 수업은 항상 그래왔다는 강력한 주문은 관습에 동참하라는 요구와도 같다. 그렇게 대화는 끝나고, 나는 더 생각하기를 체념하게 된다.
     내가 대학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나의 주변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선두에는 ‘원래 그래’에 의문을 품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동아리의 먼지 쌓인 회칙들은 그 내용을 수정하는 것보다 ‘원래 그래’라는 인식을 깨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원래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원래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이 주문에서 ‘원래’는 유전학적인 의미일까? 태초부터 밖을 싫어하니 나에게 놀러 가자고 하지 말라는 경고? 비슷한 예시는 오늘 하루 친구, 가족, 애인과의 대화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나를 이해해 달라는 그들의 주문은 마치 자신의 DNA를 탓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 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본질의 가치와 의미는 애초에 없고, 후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잘 표현해주는 문장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너는 원래 밖을 싫어하는 사람인 거야? 본질이 먼저 태어났어? 밖을 싫어한다고 믿는 건 아니고? 차라리 지금은 밖에 나갈 기분이 아니라는 대답이 더 나았을지 몰라.” 이러한 나의 투정을 들은 친구의 반응은 한결같다. “미안해, 나는 원래 직설적인 사람이라 그래.” 친구의 또 다른 주문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다. 

 

‘원래 그래’는 언어를 매체로 하는 폭력이다.

원래 A는 항상 B해. 이 단순한 문장은 차별의 시작이 된다. “남자친구가 연락을 자주 안 해줘서 서운한데, 원래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항변해서 더 서운해.” “내 남자친구도 연락의 중요성을 잘 모르더라, 남자들은 원래 다 똑같으니 네가 이해해.” 친구의 대답은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커녕 의문만 불러일으킨다. 마치 ‘형이 거기서 왜 나와?’와 같은 상황이다.
     광범위한 일반화로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 이러한 유형의 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익숙하다. 우리는 쉽게 일부로 전체를 판단해 버린다. 문제는, 일반화를 통해 만들어진 전체의 특징이 다시 개인을 바라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연락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너도 애인 생기면 그러겠지. 원래 남자들은 다 똑같으니까.’ 
일반화는 달콤한 사유의 방법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준, 혹은 자신의 경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내린 하나의 결론을 통해 세상을 보다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함의 대가는 가볍지 않다. 너무도 쉽게 차별이 시작된다. 단순함을 과소비하며 더욱 단단해진 차별의 벽은 우리 사회의 고민이 되어 ‘원래 항상 그래왔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원래 그래’는 ‘현실’로 인식된다.

원래 그래. 강력한 이 주문은 사회의 문제점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무기력하다. 또 다른 형태의 사유의 체념인 것이다. ‘할 수 없어. 한국 사회의 현실이 원래 그런걸.’ 부조리한 사회에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위로인 양 건네는 이 말은 더한 슬픔을 안겨다 준다.
     한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하철에서 50대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학생의 사연이 올라왔다. 성추행을 당한 이후로 글쓴이는 정장을 입은 50대 남성과 지하철이 너무도 두렵다고 한다. 변호사의 말은 그녀의 뇌리에 깊이 박혀버렸다. ‘이런 작은 일 합의금 두둑이 챙기는 것이 학생한테 최선이야. 대학생 치마 속에 손 한번 넣었다고 성인 남자의 인생을 망칠 만큼 대한민국 법이 친절하지 않거든.’
     사람들은 이 변호사의 말을 두고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 ‘너무도 화가 나지만, 맞는 말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법의 현실인 것 같다.’ 슬프고 부조리한 일이 많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가 원래 그런 걸 어떻게 해.’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일까? 공부를 열심히 해 형법을 뜯어 고치겠다는 고등학생의 댓글에 잠시 웃었지만 깊은 우울함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 ‘원래 그래’는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그래’라는 말을 비판적인 생각 없이 남발하는 개인의 자세도 문제지만, 그런 개인을 만든 교육적인 측면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A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사회는 A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닌 하나의 정답을 가르쳐주고 있었는지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내가 코끼리 아저씨의 식습관을 비판했던 것처럼 말이다.
     몇 년 전 놀이터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의 놀이터와 외국의 놀이터를 비교하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은 한국의 놀이터와 다르게 외국의 놀이터는 언덕과 널빤지, 이리저리 걸려있는 밧줄이 전부였다. 한국 놀이터가 디자인적으로 훌륭하군, 이라고 생각할 때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한국의 놀이터는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방해합니다. 반면 외국의 놀이터에서 밧줄은 위태로운 외나무다리가, 정글의 넝쿨이, 또는 새 가족의 둥지가 됩니다.”
     그 후로 우연히 놀이터를 만나면 놀이터를 관찰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대부분의 놀이터에는 집의 모양을 한 구조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왜 집 밖에서 소꿉놀이를 하지 않고 집 안에서 하는 거니? 누가 정해준거야?’ 마음속으로 던진 질문에 코끼리 아저씨의 식습관을 나무라던 어린 시절의 내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것 같다. ‘원래 그러라고 있는 장소니까요!’

 

정말로 ‘원래 그런’ 거야?
그럼 나는 ‘원래 그래’의 문제점을 간파한 깨어있는 사람인가? 우습게도 아니다. 이 글은 고정관념과 통념 속에 자주 갇히는 나에 관해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뿌리 깊은 관념이 다른 사람에게는 사유의 체념을, 사회에게는 단단한 차별의 벽을 만들어주고 있는지 몰라 항상 걱정이 된다. 과거의 나와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새로운 주문을 하나 연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원래 그런 거야? 간단해 보이는 주문이다.
     또한, 나는 원래 그렇다는 주문 아래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원래 겁이 많다는 이유로 여러 기회를 저버리는 것은 아닌지, 내가 상처를 받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문과라서 그런지 수학과 과학이 어려워요.” 학과 공부가 적성에 맞는지 묻는 말에 습관처럼 하던 대답은 돌아보니 원래 문과였다는 이유로 내 한계를 미리 정해놓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항상 생각하던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주문을 외워보자고 주장하려는 내가 방금 이 글을 쓰며 에세이는 원래 훈훈하게 마무리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정말 그렇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부터 개인의, 또 사회의 거대한 통념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끼리 아저씨의 코도 손이어야 하는 우리에게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김지연  letsplay57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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