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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 너머의 침묵

‘일 더하기 일은 이가 아니야.’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사회가 당연시 하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마디를 한다면 우리는 비웃음 당하고 그 말은 일말의 고려 없이 지워진다.

일 더하기 일은 이야. 이 간단한 수식을 기반으로 한 말에 단 한 번이라도 의심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대체 왜? 왜 그래야 하는 거야? 대답은 늘 같다. 그냥. 원래 그런 거야. 하나의 약속 같은 거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절대적인 사실인 것이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문제였다. 내 생각이나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일 더하기 일’이 있다. 사회가 먼저 결론을 지어서 던져주는 사회적 사실, 현실의 인식. 주관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들. 수긍하지 않으면 나만 이상해지는 그런 것. 

여기 평생을 일 더하기 일 속에서 살아온 여성이 있다. 그녀는 전쟁 성폭력 피해자로 평생을 고통받았다. 지금 그녀가 행복하다고, 자신의 삶에는 사랑이 가득했노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말을 믿겠는가?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 사회가 씌운 일 더하기 일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그녀.  

 

희곡 화염
희곡 <화염>은 1970년대 레바논 내전 당시를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진행되는 극작이다. 주인공 ‘나왈’은 기독교 여인으로 내전 당시 사랑하던 남자와 아이를 떠나보내고, 정치적 운동 중 반대 세력에게 붙잡혀 수많은 고문을 당하다가 종전 이후 풀려난다. 
나왈 ; 화염의 주인공. 노래하는 여인
와합 ; 나왈의 첫사랑이자 니하드의 아버지
니하드 (아부 타렉) : 첫째 아들. 자나안과 시르완의 아버지.

 

읽고 쓰고 셈하고 말하는 걸 배워. 생각하는 걸 배워라. 나왈, 배워야 한다.
나왈은 처녀 시절 와합과 사랑에 빠지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이슬람인 와합과 그의 가족은 마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난다. 나왈은 와합을 따라가려 하지만 어머니의 억압에 결국 와합과 헤어진다. 나왈의 할머니는 그녀에게 읽고 쓰고 셈하고 말하는 걸 배우라고 유언에 남긴다. 그것만이 과거에서 벗어나 달라질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왈은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배움을 실천하고 이전과는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그녀는 와합과 함께 떠나보낸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나 널 사랑할 거야.
아이와 작별인사를 할 때 나왈은 작은 피에로 코 하나를 손에 쥐여주며 속삭였다. 아이를 찾는 여정 속에서 그녀는 많은 난관을 겪는다. 민병대에 붙잡히기도 하고, 폭탄이 터지는 내전에 휘말리기도 하며 눈앞에서 사람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처참했던 것은 적군에게 붙잡혔을 당시 그녀가 겪은 수모들이다. 그곳에는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사형 집행부 ‘아부  타렉’이 있었는데 그는 여성 죄수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일삼았다. 투옥 중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했던 나왈은 자나안과 시르완을 낳게 된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나왈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아들 ‘니하드’와 한 약속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을 다시 만나고, 그 아이를 사랑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이 긴 세월을 버텨낸다.

 

이젠 역사를 다시 써야 해, 산산조각 나버렸거든. 천천히, 모든 조각들을 위로해 줘야 해. 서서히, 모든 기억들을 치유해 줘야 해.
십여 년이 지난 이후 나왈은 전쟁 피해자로 재판에 선다. 아부 타렉과 다시 마주한 그녀는 진술 당시 아부 타렉이 꺼낸 물건을 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나왈이 니하드에게 쥐여준 삐에로 코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나 널 사랑할 거야. 사랑과 증오는 함께 있을 수 없거든.
 이 말을 지키기 위해 나왈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침묵을 지키는 일밖에 없었다. 매일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녀를 나락 끝으로 내몰았던 전범자 아부 타렉. 평생을 찾아 헤맸던 와합의 아이, 니하드. 이 둘이 같은 인물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잔인했던 내전은 있을 수 없는 일을 만들어냈고 그녀는 지금 한 사람 앞에 서 있었다. 불처럼 타오르는 증오와 분노를 억누르고 그를 사랑하기 위해 나왈은 침묵으로 분노를 닫았다. 자신을 성폭행했던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위이다. 자신의 아들을 증오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 둘이 같은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보는가는 나왈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평생 간직해온 아들을 향한 사랑의 약속이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입을 열지 않는 자신을 사람들이 경멸하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그에게 직접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침묵이란 나왈이 니하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진솔한 사랑의 방법이었다. 읽고 쓰고 셈하고 말하는 걸 배운 나왈에게 침묵이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열여덟 살 즈음, 썩 좋지 않은 소문에 휘말린 적이 있다. 
쟤가 너 뒤에서 성추행하고 다녔다던데? 
당시 가장 친했던 아이였다. 아니야, 걔 그런 애 아니야. 
아니, 걔는 원래 그런 애였어. 늘 저런 애였어. 너만 몰랐던 거지. 
그날 이후 나는 수업을 들을 때도, 밥을 먹으러 갈 때도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혹시 나한테 말을 걸지 않을까. 피해자에게 늘 던져지는 날카로운 비웃음이 나에게도 돌아올까 무서웠다. 네가 꼬리치고 다닌 거 아니야? 여자애 행색이 얼마나 가벼우면 그랬겠니. 소문에 사로잡혀 고통받을 때 나는 이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주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조용히 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허무하게도 소문은 거짓이었다. 모두가 ‘원래 그런‘ 애라고 불렀던 아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날 괴롭히던 그 소문은 날 위로해주던 아이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모두가 ‘착하고, 성실하고 참 좋은 학생’이라고 부르던 그 아이.

 

화염을 강 너머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침묵은 때로 상처가 되기도 사랑이 되기도 한다.
나왈의 침묵을 읽으며 지난날 나의 두려움 가득했던 침묵을 떠올렸다. 그녀의 침묵은 사랑을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나의 침묵 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사람들은 이 사회에도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부의 무관심도, 일본의 뻔뻔함도 아니었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자신들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을 때 돌아올 주변의 ‘달라진 시선’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었을 때 위안부 소녀들은 집에 돌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타지에 모여 살거나, 가문의 수치라며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일부는 사실을 숨기고 힘겹게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위안부 소녀들에게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어렵게 되찾은 일상생활을 다시 망가뜨릴 수 있는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외면하는 침묵이 아닌, 그들을 이해하는 침묵을 지킬 수 있는가?

 

그들에게 씌워진 일 더하기 일
열여덟 살의 소문 이후 나는 위안부 소식이 들려오거나, 성폭행 피해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단어 하나가 그들에게 빼낼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것이 좋은 의도의 말이었든, 동정의 의미였든, 그들이 상처를 받는다면 조롱이랑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날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위안부 소녀들. 당신은 그들은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형제일 수 있을까. 이 사회는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을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나와 관계된 사람일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위안부 피해자는 ‘희생당한 불쌍한 사람’일 뿐 나의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누군가 ‘난 사실 전쟁 성폭력 피해자야.’라고 밝힌다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꼬치꼬치 캐묻거나 많은 곳에 떠들고 다닐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다른’ 시선이 그들을 위축되게 만들며 두려워하게 만든다. 사회가 그들에게 씌운 일 더하기 일, ‘전쟁 성폭행 피해자 = 나와는 동떨어진, 불쌍한 사람들.’ 이란 수식이 그들을 괴롭힌다. 그것이 과연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인가?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인가?
지난날 내가 받은 상처는 그들의 아픔에 좀 더 공감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아주 적게나마 알기 때문에 더 침묵을 지키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위안부 소녀들을 떠올리면 여자아이가 철도 위에 서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철도에는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이가 철도를 따라 하염없이 걷는 모습이 떠오른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가족을 향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고향을 향해. 과거와는 너무 달라져 버린 지금이지만 아직도 서울 한구석에 그때의 모습을 어렴풋이 간직한 곳이 한 곳 존재한다. 그들을 위한 침묵을 찾기 위해, 그곳에 잠시 들른다. 
 

항동 철길

 

 

 

시내 한복판 고개를 돌리면
7호선 천왕역에서 내려 십 분 정도 걷다 보면 항동 철길의 입구가 무심코 나타난다. 주택가 사이로 우뚝 솟은 회색 가로등에 걸려 있는 갈색 팻말이 항동 철길을 알리는 전부이다. 주택가 띄엄띄엄 주차된 차들 사이 텅 빈 철로는 혼자만 옛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항동은 서울에서 농촌의 모습을 간직한 몇 안 되는 지역이었다. 재개발로 인해 주변 지역이 전부 철거되고 주택과 상가가 들어서며 철로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하지만 서울임에도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제법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항동 철길의 잊혀진 이름
항동 철길은 사실 본래 이름이 아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오류선’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부설된 화물 노선으로 오류동역에서 분기되어 부천지역 흑연광산 수송을 위해 운행되었다. 지금도 이따금 화물 운송을 위해 사용된다고 하지만 내가 본 항동 철길의 모습은 오류선으로의 역할은 완전히 잊은 듯 보였다. 두껍게 발린 시멘트는 전부 갈라지고 터져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철로 사이로 잡초가 무성했다. 그럼에도 그 소박하고 조용한 철로가 시끄러운 클랙슨 사이로 발길을 이끈다.

 

사색과 공감의 항동 철길
시멘트에 뒤덮인 낡은 철로를 따라 걷다보면 등장하는 빛바랜 패널에 적힌 ‘사색과 공감의 항동 철길’.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금씩 생기를 되찾은 항동 철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주택가는 발 너머로 지워지고 어느새 나무 사이로 자갈이 가득하고 푸른 풀이 파릇하게 돋아 있는 철로가 펼쳐진다.
2018년, 지금 오류선이란 이름은 잊었지만 새로운 공간으로 살아간다는 듯 철로 곳곳에는 손길의 흔적이 있었다. 철로 바닥 위에 박혀 있는 작은 철판, ‘8살 첫 등교를 하다’. 이 철로를 따라 신나게 걸어가고 있는 한 아이를 상상하며 따라 걷다 보면 다시금 나오는 팻말. ‘31살, 엄마아빠가 되다.’ 그리고 다시 ‘너라서 아름다운걸.’

 

개성 80KM, 해남 325KM
끝없이 펼쳐진 철로를 따라 걷는 것이 무료할 즈음 간이역처럼 꾸며진 휴식공간이 등장한다. 항동 철길 역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과 같은 간이역에는 철로를 구부려 만든 벤치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꽂혀 있는 방향 지시 팻말. 개성 80KM, 해남 325KM. 구로에서 개성과 해남이라니, 심지어 개성은 저 너머 북한의 땅인데. 이곳에서 개성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는 걸까. 다시금 철도 위에 서 있는 소녀가 떠오른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고향 땅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겨 있을 아이. 곧게 뻗은 철도 위에서 수많은 생각과 고민에 잠겨 있었을 아이. 고향에는 갈 수 있을까? 부모님은 뵐 수 있을까? 마을 사람들이 날 반겨주기는 할까?

 

철길 너머에는 푸르른 푸른 수목원이
삼십 분 정도 항동 철길을 따라 걸으면 그 끝에는 푸른 수목원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평생 철로 위를 걸으며 헤맸을 소녀들의 발걸음 끝에는 푸른 들과 꽃이 가득할 것이다.
머나먼 길을 되돌아 왔을 위안부 소녀들. 많이 늦었지만 그들의 이름을 돌려주어야 한다. 전쟁 성폭행 피해자가 아닌, 한 소녀로서의 이름을. 항동 철길 너머로 펼쳐진 푸른 수목원처럼 그들의 꽃이 만개하기를.
 


우리는 ‘일 더하기 일은 이’와 같은 사실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일 더하기 일을 이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왈이 사랑을 지켰던 방법과 위안부 소녀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들의 침묵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몰랐다. 때로는 당신이 던지는 위안의 한 마디보다, 고요한 침묵이 그들을 위하는 일일 수 있음을.

이미림  mllee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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