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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플레이리스트 속 ‘그’ 음악

유명 가수의 범법 행위는 이슈가 된다. 음악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문화 중 하나로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범법행위 또는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른 음악인들과 그들의 음악을 분리하여 소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담론이 일고 있다. 또한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일관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처럼, 음악인들의 사생활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일러두기 : 이번 칼럼의 주제는 예술의 여러 분야 중 ‘음악’으로 한정한다. 음악은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며, 영화나 소설 등 다른 예술과는 다르게 개인의 선택만으로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범법자의 음악을 피하지 못한 경험을 떠올려보라. 

 

논의의 필요성
우리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으며,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지 않고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 음악인의 창작물인 음악은 저작권의 보호라는 명목 아래 ‘법’으로써 보호받고 있다. 강남역 여자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범죄가 드러난 가수 문문은 소속사에 전속 계약 해지를 당하는 등 공분을 샀다. ‘고등래퍼’ 우승자 양홍원 또한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정리되지 않은 재생 목록 어딘가에 아직 남아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비도덕적인 행실로 논란이 된 음악인들의 음악을 소비하는 문제에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에 특정 사회나 특정 상황의 특수성을 인정하게 되면 도덕적 상대주의가 발생한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사회의 가치에 대한 어떠한 도덕적 비판도 불가능하게 하여 허무주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어려운 철학적 개념 이전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범법자의 음악을 마주칠 때 피해자가 느낄 정신적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해 개인의 선택을 넘어 공통된 담론이 필요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인과 그들의 음악을 분리하여 소비할 수 있을까?
음악인들의 사생활이 공장에서 CD를 제작하는 노동자의 사생활과 달리 문제가 되는 것은 음악을 음악인의 연장선으로 보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음악인의 창작물인 음악에 그의 사상과 감정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음악인의 범법 행위를 두고 음악의 소비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붓딸을 수년간 지속적으로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는 천재 감독 우디 앨런. 앨런의 전 부인이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의 작품은 더러운 것이 될까? 우디 앨런이 영화계에 미친 영향력 또한 재평가되어야 할까? 이처럼 작가와 작품의 분리 여부에 대한 문제는 예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오래된 고민이다. 

범법자의 음악을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음악인과 음악을 분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이는 예술은 기술(craft)과 구별되며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마음에 있는 관념 또는 감정이라고 주장한 ‘예술 관념론’에서 파생된 결론이다. 음악은 캔버스에 표현된 그림과 달리 물질적으로 존재하기보다 관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음악이 곧 관념이라고 치환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따라서 음악을 듣는 것은 곧 그 음악인의 관념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되며, 이는 음악인이 범법자인지에 상관없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음악인이 단순히 흥을 돋우기 위해 의성어로만 창작한 음악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음악도 예술가의 관념 또는 감정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 예술 관념론에 따르면 이 음악은 흥을 돋운다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예술이 아닌 기술이 된다. 즉 우리는 범법자의 음악 중 본인의 생각이 담기지 않은 음악만을 소비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음악인의 관념이 적게 반영된 음악은 예술이 아닌 ‘기술’이므로 결국 음악과 음악인을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음악과 음악인을 분리하는 경우 음악에 내재되어 있는 음악인의 관념을 찾는 수고로움은 줄어드는 것 같지만, 해결해야 하는 철학적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앞선 주장이 ‘예술 관념론’이라는 예술의 정의를 근거로 삼았다면, 이 주장은 ‘반의도론’이라는 예술비평을 근거로 한다. 반의도론이란 작품 자체에 구현된 의도들에만 주목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 외의 것은 예술가의 심리 연구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즉 문문의 음악을 듣는다고 가정하면, 문문이 그 당시 곡을 작곡한 의도만을 파악해야 한다. 곡을 작곡한 시기와 범죄를 저지른 시기가 유사하다는 사실은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닌 심리학자가 분석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반의도론에 따르면 범죄를 의도로 창작한 음악은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음악에 범죄와 관련된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음악을 소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의도만으로 음악인을 음악에서 분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질 나쁜 범죄자도 가끔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말을 할 수 있다. 만약 문문의 음악이 질 나쁜 범죄자가 감성에 젖어 가끔 하는 ‘가슴 울리는 따뜻한 말’이라도 음악 자체의 의도만으로 소비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까?

*2016년 7월 ‘문, 문’으로 데뷔한 문문은 같은 해 8월, 범죄 현장에서 범죄 사실이 적발되어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음에도 그 사실을 숨긴 채 활동을 이어갔다.

 

첫 번째 질문을 정리하며
범죄자의 음악을 소비하는 문제에 스스로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을 소비하는 주체별로 음악과 음악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칼럼을 쓰기 전 친구 다섯 명에게 범죄자의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완고하게 소비할 수 없다고 주장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런데’를 시작으로 음악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듣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불면증이 있을 때마다 들었던 노래 없이는 잠이 오지 않을 때 가끔 듣긴 하지.’ 즉 자신의 감정에 따른 예외를 둔 것이다.
음악을 듣는 주체의 감정이 허용하는 범위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음악인이 저지른 범죄의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범죄는 괜찮고, 어떤 범죄는 안 된다는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또 다른 친구는 ‘범죄의 기준이 뭔데? 은지원이나 조용필처럼 음주운전을 해서 면허취소에 그친 경우나 GD처럼 마약을 복용했지만 교도소에 가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는 거야?’라고 반문했다. 이는 개개인의 감정이 허용하는 범죄의 수위가 다 다르며, 그에 따라 음악인의 음악을 소비할지에 대한 결정도 달라진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또한 감정은 음악인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보다 사생활이 비도덕적인 경우 더 강력한 판단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음악인의 인성이나 행실이 논란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음악인의 음악을 소비할지의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렸는데, 범죄와 같이 그 잘잘못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음악인들의 인성 논란이 화두에 오를 때마다 자신의 사상과 감정에 따라 일일이 소비 여부를 판단하던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음악인들에게 일정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면 안 되는 거야?’ 

 

음악인들의 사생활에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이 음악인들에게도 일정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려면 우선 음악인 개인과 관련된 문제를 온전히 그의 사생활로 볼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인들이 사생활에서 보여주는 가부장적인 모습이나 차별주의적인 모습들은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의 공약을 넘어 그들의 가치관을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고, 이에 따라 정치인들에게 높고 일관적인 도덕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담론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하지만 음악을 음악인의 연장선으로 보고, 사람들에게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을 창작한다는 이유로 음악인의 사생활에도 ‘공인’이라는 짐을 얹어줘도 될까?

“공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어느 정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엄밀히 말하자면 공인의 사전적 정의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음악인이 공무원이 아님에도 대부분 음악인을 공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창작물인 음악이 지닌 파급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 음악인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몇억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을 보면 그 파급력은 일반적인 공인의 것보다 더 강력하다. 따라서 음악인에게 공인으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음악인들이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 사과를 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우리의 사생활처럼 그들의 사생활도 보호해야지. 음악만 좋은데 뭘.” 하지만 음악인은 음악성이 뛰어난 음악을 제작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 뒤따라오는 명성에 따라 음악인의 사생활에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며, 오히려 그들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 또한 도덕성이 아닌 음악성이 그 음악인의 가치가 되기 때문에, 뛰어난 음악을 인성 논란이라는 도덕적 문제 때문에 듣지 않는 것은 우선순위가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만약 사회 구성원 간에 합의가 이루어져 음악인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게 되어도, 그 범위를 정하는 방법이 문제가 될 것이다. 자칫하면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소비하고 싶은 음악인의 모습’이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자 아이돌’ ‘기혼 연예인’ ‘미성년 연예인’ 등 각종 프레임에 따라 음악인의 사생활을 무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 통제에는 도덕성과 무관하게 ‘소비하고 싶은 모습’이 주가 되고 있지는 않았을까?

 

두 질문을 정리하며
잠시 머리를 식히려 SNS에 들어가자 이런 동영상이 눈에 띈다. ‘프로듀스 48을 볼 예정이라면 꼭 걸러야 할 인성 논란 아이돌’ 동영상을 잠깐 보니 문화적 차이에 대한 오해가 한국인 시청자의 눈에 ‘인성에 문제가 있다’라는 식으로 낙인이 찍힌 경우도 몇 보였다. 이처럼 어떤 행동이 인성 논란의 범주에 들 수 있는지도 음악인에 따라 너무 다르다. 앞서 언급한 ‘프레임’이 작용한 것일까? 작은 욕설에도 논란이 되는 음악인이 있는 반면, 숱한 논란으로 작은 소동은 오히려 ‘또 저런다!’며 웃음거리가 되는 음악인도 있다. 사실 우리는 애초부터 하나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해결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이 음악을 소비해도 될까?’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일수록, 관성적으로 음악을 소비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을 시작으로 예술인과 예술작품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예술의 범위로 확장되어야 한다. 자신의 확실한 주관을 바탕으로 예술을 소비하는 것이야말로, 주체적이고 건전한 문화생활을 가능하게 하며 예술에 대한 사회 구성원 공통의 담론을 이끌어내는 시작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지연  letsplay57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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