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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시 동향, 과도기를 지나가다

전시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많은 전시 정보를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다. 국공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부터, 사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술관만의 색을 담은 전시, 소규모이고 독립적인 갤러리 전시, 포토 스팟을 찾는 사람들을 노린 전시까지.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종류의 전시들이 혼재되어 함께 나타났으며, 서울의 전시 동향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과거에서 현재까지, 바뀌어온 전시 문화.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금만큼 발전하기 이전. 현대화는 진행되고 있었지만 대학 진학률은 그리 높지 않았고, 사정이 안 되어 안타깝게도 형제 중 몇만 대학을 진학하고, 대개는 굶주리지 않기 위해 생계를 위해 일했던 시절쯤으로. 전시 문화 역시 이러한 시대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시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목적이 될 만큼 중요한 것일 수 있지만, 생계가 안정되지 않는 이상 즐기기 어려운 문화임에는 분명했다. 그랬기에 이 시기의 전시들은 대학을 진학할 만큼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이들이 이끌어나갔다. 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소통하고, 그들만이 가진 미적인 시각으로 전시를 논했다. 문화 예술 진흥원에서 주관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서 선정된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전시되는 작품은 한정적이었다. 전시장의 구조도 복잡하지 않았고 하나의 공간에서 하나의 동선으로 열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보수적인 전시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였다. 급속한 국가 경제의 성장으로 미술 문화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전시를 보는 인구가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대학을 진학하여 미술을 배운 엘리트들만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41년에 시작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역시 1981년을 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이후 미술관에서는 현대 미술 전시, 세계 유명 미술가들과 교류하는 국제전 등 넓은 범위의 전시를 다루기 시작하였고, 미술 보급 및 교육도 미술관의 중요한 기능으로 인식하여 전시와 연관된 다양한 교육과 학술행사를 유치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의 전시 동향은 어떨까? ‘전시’라는 키워드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미술관이나 박물관뿐만이 아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타겟을 대상으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리트만이 향유했던 전시 문화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변화로 인해 전시답지 않은 전시가 나오거나, 전시 관람에 피해를 입는 문제가 생겨 오히려 현재의 전시 동향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전부터 보이던 전시와 새롭게 나타난 전시가 대립하면서 빚어낸 문제는 어떤 것들이며,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다르지만 혼재되어 있다.

변화한 전시 동향에 대한 문제들을 살펴보기 이전, 우선 어떤 기관에서 어떤 사람들을 타겟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전시 기관의 특성에 따라 국공립 미술관, 사립 미술관, 복합문화공간의 세 가지 분류로 나눠보았다.

 

_ 국공립 미술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담아내며 미래를 바라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현재 서울에는 5개의 대표적인 국공립 미술관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현대 미술을 이끌어나간다는 책임감을 갖고 그에 맞는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국공립이기에 어느 정도 대중의 시선에 맞는 전시를 기획하는 곳들이다. 다른 기관에 비해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어서인지, 하나의 미술 분야에 치중하기보다는 현대 미술을 주축으로 순수 미술, 건축, 디자인, 사진, 공예 등 많은 분야의 전시가 기획되고 있다. 동시대의 해외나 국내 작가를 소개하는 개인전도 종종 열리곤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매년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열어 국내의 주목할만한 현대 미술 작가들을 발굴하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백남준 기념관’을 따로 두어 운영하고 있고, 서소문 본관에서는 ‘천경자’의 개인전을 상설전시로 찾아볼 수 있다. 동시에 소장품 전시를 열거나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전을 개최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의 근대 미술을 연구할 목적으로 개조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전시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국공립 미술관에서는 [어느 정도 미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미술 전시를 선보이고, 국내외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가들을 소개, 발굴하며, 동시에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_ 사립 미술관, 특별한 전시를 특별한 사람들에게.

삼성미술관 리움

두 번째로 사립 미술관이 있다. 사립 미술관은 좀 더 개인적이고 영리적인 목적으로 운영되지만, 그만큼 하나의 주제나 목표에 집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국공립 미술관보다 더 명성 있는 작품을 소유하거나 질 높은 전시를 선보이기도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 일민미술관, 대림미술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인 만큼, 국내와 해외에서 유명한 작품을 다량 소유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기획을 통해 관람객을 유치하는 타 미술관과는 달리, 소장품 전시에 크게 의존하는 성격을 보인다. 광화문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일민 미술관’은, 일민 김상만 선생을 기리는 ‘일민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지인 광화문에 위치해서인지, 다소 전통적인 전시 방식을 따르는 리움과는 달리 디자인이나 사진과 같은 응용 미술 전시를 보이고 있으며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국내외 작가의 개인전도 종종 보인다. ‘대림미술관’은 전문적인 미술의 분야에 속한 전시가 아닌 대중적인 성격의 전시를 주로 보인다. 전시 작품 하나하나를 돋보이기보다는 전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색감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전시를 보인다. 이런 이유로 주류 미술계만이 아닌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렇듯 사립 미술관은 각각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그 미술관만이 가진 신조와 분위기를 지켜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미술관이 가진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해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매 기획마다 타겟층을 달리 설정하거나 미술계의 흐름에 따라 기획을 변경하기보다는 미술관만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살려 마니아층을 확보하려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_ 복합문화공간, 누구나 언제나 편하게.

문화역서울 284

마지막으로 복합 문화 공간들이 있다. 예술의 전당,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코엑스, 문화역서울 284와 같이 전시뿐만이 아닌 다양한 행사를 열고 유치하는 곳들은 물론, 아트센터나 소규모 갤러리와 같이 지역 기반으로 기회에 따라 전시장, 공연장, 영화관 등으로 변화하며 지역에 기여하는 곳을 모두 포함한다. 언급한 기관들에서 열리는 전시들은 앞선 두 분류에 비해 더 대중적인 성격이 있다. 어린이나 가족 위주의 전시가 더 많이 열리기도 하고 개인전 유치 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알 법한 작가를 위주로 전시를 구성한다. 이와 함께 미술과 관련된 마켓이나 페어를 유치해 자연스러운 관람객 유입을 의도하기도 한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유명한 해외 그래피티 작가 ‘키스 해링’의 전시를, 코엑스에서는 ‘공예트렌드페어’,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와 같은 응용 미술 페어를,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서울역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 수 있는 색다른 테마의 전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언급하지 않은 더 작은 규모의 갤러리와 아트센터들에서 비슷한 특성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정리하자면 복합문화공간에서는 [공간의 위치와 규모에 따라 다수의 사람들의 취향을 충족할 수 있는 전시를 보여주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분류에 따라 전시는 각기 다른 형태와 타겟 대상을 갖고 있지만, 이런 분류와 특성을 잘 모른다면 다 똑같은 ‘전시’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잘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인 현재, 서울의 전시 형태가 혼재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는 포토존을 찾는 사람들을 겨냥한 가벼운 전시를 전시 제목과 포스터를 보고 현대 미술을 다루는 전시라고 생각하여 관람하게 된 상황을 생각해보자. 진지한 현대 미술 전시를 관람하고 싶었던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큰 혼란이 올 것이다. 혼잡한 전시 환경, 많은 관람객 수, 수없이 들려오는 카메라 소리에 관람을 방해받고, 심지어는 서울에서 열리는 전체적인 전시의 질이 떨어졌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예상과 다른 전시장의 분위기에 당황하여 실망을 안고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예전과 다른 전시 형태가 늘어난 후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황이지만, 이제는 이런 상황이 줄어들도록 소매를 걷어붙여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학자 폴 디마지오(Paul DiMaggio)는 전시 관람객을 후원자(patron), 마케팅 대상의 관람객(marketing), 사회적 대중(social)으로 분류하였다. 후원자는 예술에 대한 심정적 동류의식을 갖고 예술가의 창작물을 컬렉터의 위치에서 소비하는 고급문화계층, 마케팅 대상의 관람객은 예술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관람객으로서 미술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사회적 대중은 미술관 방문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이 분류에 따르면, 후원자나 마케팅 대상의 관람객들은 전시의 이름이나 전시 공간의 성격에 따라 선별적으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그들의 성향에 맞는 전시를 선별하고 찾아갈 수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전시들을 비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사회적 대중에서 유입된 일부 관람객들이 관람 매너를 지키지 못하는 행태를 보이는 상황. 둘째, 사회적 대중을 타겟 대상으로 삼은 전시가 늘어나면서 나머지 관람객층을 고려한 전시가 적어진 상황.

 

하지만 사람마다 전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다르다. 전시에 있어서 고급문화와 하급 문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두 문화를 즐기는 부류가 다르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화를 다른 하나로 변화하려는 것은 좋지 못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접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대중에 속한 사람들을 끄는 상업적인 전시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원래 전시 문화를 향유하던 사람들에게, 사회적 대중이 즐기는 전시가 ‘전시답지 못한 전시’라고 여겨질 지도 모른다. 유의해야 할 것은 ‘전시답지 못한 전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기존 전시 문화를 향유하던 계층이 전시와 전시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정의의 폭을 넓히고, 그 안에서 그들이 관람할 전시를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물론 전시 관람에서 물리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 미술관 측에서 하루 관람객 수를 조정하고, 전시 관람 매너나 규칙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본래 존재했던 전시 관람 관행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일부 관람객들이 갑자기 전시 문화에 참여하게 되면서 기존의 관람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문화가 성장한 서울. 그만큼 미술계 역시 달라진 점도 변화해가는 점도 많은 시기이다. 그런 미술의 흐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전시 문화도 다양하게 분화하며 누군가에게는 혼란을, 누군가에게는 색다름을 전해주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과도기가 아닐까. 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며 어느 시기, 어느 양식으로 나눌 수 있듯이, 언젠가는 검색 창에 ‘전시’라는 단어를 쳤을 때 제 자리를 찾은 전시들이 더욱 세분화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기를.

 

 

이민지  leereum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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