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커버스토리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면유년에서 지금까지 전철을 타고

 

쿠궁- 쿠궁- 레일 위의 전철이 내는 소리를 왜 그렇게나 좋아했을까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서울의 지하철은 ‘소리’로 남아있습니다. 열차가 타는 곳에서 막 출발할 때 들려오는 오묘한 소리, 전철이 발을 구를 때 나는 ‘우웅-’ 소리와 출발을 알리는 ‘띵동, 띵동’ 소리는 ‘내가 서울에 있다’라는 느낌을 실감하게 하는 특별한 매개였지요.

 

 

 

 

구불구불한 서울 전철 노선도가 시선을 끌기도 했습니다. 특히 각 노선의 종점은 그 지역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어요. ‘이 열차를 타고 끝까지 가면 과연 무엇이 나올까’라고 말이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는 어렸기에 열차를 타고 각 노선의 종점까지 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런 호기심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나에게 서울은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잠깐 머물 곳이었기에, 그래서 딱히 종점까지 갈 이유가 없었기에 ‘종점’이라는 공간이 더 신비롭게만 느껴졌습니다.

 

종점에 대한 재미있는 경험 중 하나는 어느 한 노선의 종점과 또 다른 종점을 비교해서 상상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일 호선의 종점인 인천역을 보고 반대 종점인 소요산역을 떠올렸습니다. ‘인천이 바닷가니까, 소요산은 완전히 나무로 가득 차 있을 거야’라고 말이지요. 물론 소요산은 당연히 산이기 때문에, 어린 상상이었지만 일리 있는 상상이었습니다. 판타지 영화에 나올법한 바다와 숲과 같이 엄청나게 극단적으로 상상하긴 했지만요. 지금에 와서 자세한 종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인천과 소요산처럼 전철을 탈 때마다 꽤 여러 노선의 종점을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타고 있던 열차가 지하도를 빠져나올 때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도 어린 나에겐 굉장한 볼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지하도에서의 잠깐의 암전은 아무것도 모르는 촌 동네 애송이의 기대감을 부풀렸습니다. 빽빽한 빌딩 숲, 한강 위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교량들, 수 없이 갈라진 차선 등 지방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서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 지금까지도 뚜렷이 떠오르는 기억은 노을 지는 한강의 모습. 하늘 저편으로 반쯤 들어간 해와 노을, 그리고 햇빛을 튕겨내어 노을을 흉내 내던 한강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에 애착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커서도 한강에 비친 노을을 보면서 살고 싶다!’라고 말이지요.

 

 

 

서울 전철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열차를 타면 제일 먼저 쳐다보는 게 눈높이에서 조금 위에 있는 노선도이고, 아직도 열차에서 보이는 서울의 풍경에 감탄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 훨씬 다양해진 노선들과 종점들을 보며 언젠가 가보겠다며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서울에서 생활하며 든 새로운 생각이 있는데, 바로 전철역에 관한 시선입니다. 서울에 올라와 다양한 노선을 경험하며, 노선마다 풍기는 분위기가 전부 제각각인 것이 재밌다고 느낍니다. 간혹 새로운 노선의 열차를 타기 위해 환승을 할 때면 점점 달라지는 전철역의 분위기가 초행길을 설레게 합니다. 특히 노선이 바뀌는 환승역에서는 각 노선이 가진 색깔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퍽 흥미롭습니다.

 

알록달록한 줄들이 엉켜있는 노선도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노선이 뻗어 나가는 방향대로 대충 어떠한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해보곤 합니다. ‘여기에 OO역이 있으니 대충 △△겠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러다 입에 잘 붙거나 특이한 전철역 이름을 찾으면 인터넷에 검색하곤 합니다. 열에 아홉은 평범한 장소지만, 가보고 싶은 장소를 운 좋게 찾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메모장에 남겨놓곤 하지요.

 

전철에 대해서 어린 시절 기억과 달라진 점도 있습니다. 열차를 탈 때 설렘을 주었던 특유의 소리가 이젠 잘 들리지 않습니다. 아마 무뎌진 것이겠지요. 이제 전철은 나에게 서울을 익숙하게 하는 무언가가 되어갑니다. ‘서울’하면 떠올릴 수 있었던 첫 번째가 전철이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열차가 출발할 때 들리는 소리보다는, 사람이 넘치는 전철에서 버티기 위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어수선한 노래에 의지합니다. 그렇게 전철에서 바라보는 서울이 이제는 익숙해져 갑니다.

 

 

 

 

전철이 곧 일상이 되어버린 탓에 가끔은 타는 곳을 착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정신을 놓고 몸이 이끄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계획 없는 여정을 겪게 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밤새 술을 진탕 마시고 아침에 열차를 탔습니다. 그날은 오전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어찌어찌 이 호선까지는 잘 환승 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건대입구역에서 탔어야 할 열차는 상행선이었지만 술에 전 몸을 이끌고 탄 열차는 반대로 가는 하행선이었던 것이었지요. 출발지에서 우리 학교까지는 꽤 걸리므로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눈을 감았고 그대로 반 바퀴를 돌아서야 잠에서 깼습니다. 눈을 떠보니 영등포구청역이었고, 내릴 곳을 지나친 줄 알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더 웃긴 건 다음 역이 문래역이 아니라 당산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한 번 더 놀랐던 사실입니다. 다행히 수업엔 늦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스스로 웃픈 해프닝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전철에 익숙해진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철은 애증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학교 기숙사에 살지만 막 입학했을 때는 외할머니가 계시는 부천에서 학교로 오고 갔습니다. 통학 그 자체는 나름 괜찮았습니다만, 문제가 되었던 건 통학 열차가 일 호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었지요. 반년 동안 일 호선에서 겪은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은 지금도 생각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느 계절이건 간에, 출근 시간에 타는 일 호선 열차는 그것만으로 고통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근근이 중심을 잡는가 싶다가, 열차가 살짝이라도 방향을 틀면 온 힘을 발가락에 주어 악착같이 버티는 시간. 그때의 시간이 왜 그리 느리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통학을 했던 기억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듯합니다. 전철이 나에게 특별한 존재이긴 하지만, 통학을 맛본 이후로 일 호선은 최대한 피해가려고 애씁니다.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는 곳이 아니더라도, 뭔가 일 호선은 늘 쾨쾨한 냄새와 사람들이 늘 꽉 차 있을 것만 같거든요. 이런 일 호선 열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을 가끔 보면 힘내라고 괜히 한 번 더 말해주곤 합니다.

 

우리 학교, 부천 말고도 전철을 타고 갔던 곳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영화제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전철을 타고 갔었던 광화문. 과제나 관람으로 찾아갔었던 이촌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그리고 인천. 친구들을 만난 여러 대학가와 번화가들과 같이, 전철을 다리 삼아 수많은 곳에 가보았습니다. 이렇듯 전철이 우리 곁에 있는 일상이지만, 돌아보면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지요. 지금 내가 느끼는 전철의 이미지는 어릴 적 기억과 멀어졌겠지만, 전철이 나에게 특별하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나 봅니다.

 

 

 

이처럼 전철은 어린 나에게나 지금의 나에게나 특별한 존재입니다. 물론 그 특별함의 의미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말이지요. 전철에 관한 나의 얘기를 많이 늘어놓은 것처럼, 특별한 존재를 가까이 두는 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한 것에 대해 파고든다면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러니까 성격과 취향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나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사실, 그것을 통해서 나를 색칠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철에 있는 많은 것들. 사람, 풍경, 냄새, 소리. 이것들이 깊게 덧칠하기도 합니다. 나는 전철을 타고 스스로 짙어져 가렵니다.

홍기수  rltn0315@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