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여성 파워…국내를 넘어 세계를 강타

2020-03-05 19:37:55

지난 수년간 지속된 젠더 평등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요구가 미술계에서도 점차 수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1년 간 여성들의 활약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들의 활약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지 않고 한국 미술계의 주류 현장의 중심이 되었다.

- 여성 작가, 동시대 미술 현장을 대표하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진행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19》의 참여 작가이자 후보자 4명은 모두 여성이었다. 최종적으로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이주요 작가와 후보자로 선정되었던 김아영, 박혜수, 홍영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폭넓은 주제와 매체를 다루며 동시대를 풀어내었다.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창의적 역량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선정하고 후원하기 위해 2012년에 처음 기획되어 현재까지 매년 이어져 왔다. 동시대 미술이 가장 활발하게 오가는 한국 미술의 현주소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2019》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전시의 기조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소개한다는 것이 명확한 만큼, 4인 모두 여성 작가로 선정된 점은 인상적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주된 축이자 비전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 소수자의 목소리, 한국의 이름을 달고 해외로

작년 5월 11일부터 11월 24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약 6개월간 열린 《2019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 58ª)》의 한국관 예술감독과 참여 작가도 모두 여성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로, 1895년에 처음 시작되어 현재까지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현대미술 전시회이다. 전 세계 국가에서 참여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비엔날레인 만큼, 전시는 두 공간에서 열리는데 바로 ‘아르세날레(Arsenale)’와 ‘지아르디니(Giardini)’이다. 아르세날레에서는 비엔날레 총감독이 감독한 기획전이 열리고, 지아르디니에는 개별 국가관이 모여있다. 한국관 역시 지아르디니에 위치했으며, 전시 제목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였다. 김현진 예술감독은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여성과 성 소수자가 이야기하는 근대사를 내세우고자 했으며, 여성 작가가 주체적으로 탐구한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임을 밝혔다.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 이 세 명의 작가들은 여성 작가이자 여성을 소재로 한 작업을 이 전시에서 선보였다. 국제 전시에서 선보인 주제가 역사의 중심이 되지 못했던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 그리고 이를 수행한 사람들이 모두 여성들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열린 전시인 만큼 한국 현대미술을 현 상황을 국내외로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여성, 미술계의 중심지로 자리를 넓혀나가다

남성이 대부분이었던 자리에 여성이 들어섰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이 임명되면서 대부분 남성의 자리였던 관장의 자리에 여성들이 등장했다. 사립미술관이나 작은 갤러리가 아닌 각 도시를 대표하는 미술관에 여성 관장들이 임명된 것은 큰 변화이다. 국내 비엔날레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는 임수미 감독, 제주국제비엔날레에 김인선 감독이 선정되기도 하며 미술계를 변화하고 이끌어나가는 곳에 여성들의 자리가 늘어났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주요 미술상 수상자의 자리에도 여성들이 돋보였다. 호암상 예술상에 이불 작가, 전혁림미술상에 김진 작가, 박수근미술상에 박미화 작가가 수상하는 등 여성 작가들의 성취를 확인할 수 있던 한 해였다.

이ㅇㅇ 기자 idontknowart@naver.com

[칼럼] 여성 활약 돋보인 2019 미술계, 트렌드화 우려

2020-03-10 11:14:23

2019년 한국 미술계에서의 여성들의 활약, 어떻게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미술계가 타 분야에 비해 자유롭고 다양한 목소리가 수용되었다 하더라도, 젠더와 관련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던 한계는 이곳에도 분명히 존재했다. 미술계 성비에 비해 중심적인 곳의 대표 역할을 많은 여성이 도맡지 못했으며, 미술의 주제는 최근까지도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주목할 필요성을 말한다. 이전에는 여성에 대한 조명이 부족했고 기회가 균등하지 못했으며, 이들의 발언권이 확보되지 못했다.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미술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담아내거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왔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목말라 왔던 것들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미술의 주제도 이를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은 이 주제에서 우리가 더 고찰하고 살펴보아야 할 것을 제시하고 놓쳐버린 것이 없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여성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노력이 있었기에 실현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여기에는 분명히 사회적인 이해관계가 숨어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그간 소외되어왔던 여성들이 성취를 이뤄낸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이를 마냥 자연스럽게 변화로 보기에는 찝찝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혹시 ‘여성’이 일시적인 트렌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앞서 살펴본 지난 1년간의 성취는 그들이 쥐어 마땅한 것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이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한 해의 유행 정도로 그칠 것이라는 가정이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이 간다. 긴 시간 끝에 이루어낸 그들의 결실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트렌드로 치부되고 있지는 않은지,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전과 같은 형태로 회귀하지는 않을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여성들이 주류 미술의 대표 자리를 이끌어나가는 등의 변화는 일어났지만, 사실 소위 말하는 기득권층은 미술계에서도 여전히 중년 남성의 수가 압도적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감독을 선출하기도 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작년 11월 비상임위원 후보자 16명을 전원 남성으로 선정하여 논란이 되었다. 16명의 구성도 40대 1명, 50대 10명, 60대 5명으로 연령의 균형도 맞지 않았다. 이에 미술계의 상부를 여전히 기득권 중년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반발과 함께 재심사를 요구하는 입장문도 나오게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사안에 대해 공개모집을 했으나 전체 지원자 성별 구성 중 여성이 17%에 불과했음을 이유로 들었으나, 이는 여전히 후보자 전원이 남성으로 선발된 것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추천위원회에 전적으로 자율성을 준 투명하지 못한 선정 방식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일부는 이는 위촉직 위원의 특정 성별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양성평등기본법 21조에 어긋날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청회와 토론회를 통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새로운 대안을 찾겠다고 공표하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처럼 국가 산하에서 미술계에 영향을 주는 단체에서 여전히 평등이 실현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미술계에서의 여성들의 활약이 한 철 소비되는 트렌드로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여전히 결정권이 기득권층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지금의 현상은 어쩌면 그들 아래에서 유행하는 하나의 주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충실히 작업을 이어나가며 입지를 키워나가는 기획자나 작가들이 결국 궁극적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여성이 미술의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제도적인 면에서 기득권층으로 인해 굳어진 문제를 타파하고 평등을 추구하려면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젠더를 비롯하여 연령, 경력 등 다양한 이유로 한계를 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미미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우리는 이것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주의해야 한다.

여성이 아닌 작가 혹은 기획자, 그 자체로 주목받을 날, 여성을 넘어서 그간 미술계에서 제외되어 왔던 다양한 논의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아닌 계속해서 이어져가는 흐름이기를 바란다.

우ㅇㅇ기자 outsiderof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