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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우리는 피해자였는가.


  거리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스타일이 좋은 사람, 외모가 뛰어난 사람, 노숙자, 장애를 가진 사람, 그리고 피곤함에 찌든 사람도 있다. 우리는 무심코 이런 사람들을 쳐다본다. 이리저리 훑으며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누군가 날 쳐다본다. 아주 오랫동안, 혹은 힐끔 힐끔. 이 시선은 간혹 불쾌함과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시선을 비롯해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거리에서 폭력에 노출되곤 한다. 다시 반대로, ‘나도 모르게’ 당하기 때문에 가해 역시 별 죄책감 없이 이루어진다. 

 

‘시선 폭력’은 허상일까

 ‘시선 폭력’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안다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의다. 거리의 노숙자를 빤히 쳐다보는 일부터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훑어보는 일까지, 시선 폭력은 항상 거리에 존재했으나 ‘불쾌감을 주는 행위’ 정도로만 설명되곤 했다. 피해와 가해가 쉽게 이루어지는 만큼 거리 속 폭력, 특히 시선 폭력은 범죄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 행위에 ‘폭력’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허상이라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법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부분이기에 더더욱 언어로써 정의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2주간 설문조사를 통해 50여 명의 학우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어느 것부터가 범죄이고, 무엇이 우릴 불쾌하게 했는지 말이다. 시선 폭력에 대해 학우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보는 것”, “시선적 희롱, 남성(여성)에 의해 여성(남성)의 기호로서 대상화된다고 느껴지는 것”, “피해자가 인지하고, 불쾌감을 느낄 만큼 쳐다보는 것” 등으로 정의하였으며, 응답자의 90% 이상이 ‘불쾌감’이라는 단어를 공통으로 사용했다. 
  혹자는 ‘쳐다보는 것도 죄냐’라는 반문을 던진다. 과연 아닐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시야에 누군가를 담고, 또 누군가의 시야 안에 담긴다. 쳐다보는 행위 자체가 죄는 아니기에 더더욱 우리는 ‘불쾌감을 주는 시선’에 대해서 다시 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불쾌감’을 주는 시선의 기준과 정의는 무엇일까? <시선은 권력이다>(박정자 저)에서 서술한 내용을 인용하자면, “우리가 타자의 시선 앞에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그의 의식 앞에서 내가 대상, 즉 사물이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동등한 인간이 아닌 사물을 바라볼 때처럼 목적성을 띠는 시선은 타인을 ‘대상화’ 시키며, 이는 수치심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거리에서 시선 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78.9%였고, “거리에서 시선 폭력을 가해한 경험이 있다” 에 대한 응답 또한 42.1%인 것을 볼 때, 우리는 대상화 되는 만큼, 타인을 대상화시킨 경험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응답에서 피해, 가해 사실을 수집했을 때에도 “아저씨나 남학생이 노골적으로 내 다리 혹은 다리 사이를 꽤 오랫동안 쳐다봤다”, “길을 가다 장애인들을 유심히 보거나 인종이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여러 번 둔 적이 있다”, “어떤 남자가 너무 잘생겨서 계속 쳐다봤다.”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으며, 사실 모든 경험은 본질적으로 상대방을 ‘대상화’되었기(시켰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대상화는 말 그대로 ‘목적의 시선’이다. 시선 폭력에 대해 정의 내린 적이 없더라도 우리는 어떤 시선이 불쾌감을 줄 수 있고, 어떤 시선에 불쾌감을 느껴왔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즉 ‘신기해서’ 쳐다보는 일이다. 시선을 던지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순 호기심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길거리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어떤 종류의 사람은 꽤 많은 사람에게 그 ‘호기심’의 시선을 받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궁금증이 타인에게는 폭력적으로, 위축될만한 계기로 느껴지지는 않았는지를. 또한 ‘예뻐서’, ‘잘생겨서’ 등 (주관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의 시선 또한 상대방은 불쾌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또한 타인을 대상화시키고 평가하며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시선의 자유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이다. “쳐다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모두가 땅만 보고 걸어야 한다는 극단적 결론에 도달하기를 원치 않지만, 그간 우리가 거리에서 어떤 의도를 갖고 타인을 쳐다봤는지, 타인에게 어떤 의도로 비쳤을지, 그것이 ‘대상화’라는 이름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성은 있다. 
 시선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대상화’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짧은 옷을 입었든, 장애가 있든, 뛰어난 외모를 가졌든 거리를 걸었다는 까닭으로 불편하고 위험해지길 원치 않는다. 안전한 거리의 시작은 자유이며, 거리의 자유를 지키는 데 있어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출발점은 우리의 시선이다. 

 

2. ‘찍히지 마세요’가 아닌, ‘찍지 마세요’

 시선이 닿지 못하는 곳을 보고 싶은 욕구, 나의 시선을 타인과 공유하고픈 욕구, 봤던 것을 다시 보고 싶은 욕구는 손에 쥔 카메라로 옮겨 갔다. 화질이 더 좋아지고 더 작아진 카메라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몰래카메라’(이하 몰카)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였다. 홍문관 화장실에서는 버튼 모양을 가장한 카메라가 발견되었고, Q동 복도에서 누군가가 학우로 추정되는 여성의 신체를 찍은 사건도 발생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거리에서 우리는 더욱 ‘촬영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설문에서 학우들은 몰카를 “상대방 모르게 혹은 강제로 촬영하는 것.”, “범죄예방, 증거물 확보의 사유가 아닌 경우. 성적인 의도 등의 경우” 등으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된 결과물은 모두 ‘몰카’라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거리에서 도촬을 당한 것을 알아차린 경험에 대해 31.8%가 그렇다고 답변했지만, 내가 거리에서 누군가를 도촬한 경험이 없다는 답변 또한 36.4%에 그쳤다. 이 답변이 유의미한 지점은 바로 ‘내가 누군가를 몰래 촬영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우가 60% 이상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촬영 당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경우도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이쯤 되니 지하철역 곳곳에 “몰카 조심하세요”라는 슬로건과 함께 치마를 가리고 계단을 올라갈 것 등의 지침이 쓰인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비판을 제기하기 망설여진다. 따라서 우리는 피해에 대해 분노하기 이전에, 이 범죄에 대해서 꽤 무감각하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한다. 실제 필자가 속한 단체 카톡방에도 이따금 “횡단보도 건너편에 완전 웃긴 사람 있음”, “방금 지나친 사람인데 잘생겼음” 등의 멘트와 함께 모르는 이의 사진이 올라오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함께 웃거나 이를 다시 공유하는 식으로 무감각하게 이 사진들을 소비한다. 실제로 ‘ㅇㅇ역 진상녀’, ‘ㅇㅇ거리 또라이’ 등의 영상이 연일 SNS를 떠돌 때 촬영 당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쉽게 이루어지는 반면, 동의 없이 해당 영상을 촬영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판도 제기되지 않는다. 따라서 의도보다도 촬영에 대해 상대방의 동의가 선행되었는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옷이 예뻐서 따라 사고 싶은 마음에, 친구와 함께 웃고 싶은 마음에 촬영했다는 변명도 있을 수 있지만, 반대로 내가 같은 이유로 찍혔을 때 전혀 불쾌하지 않을지에 대해선 모두 대답하기를 망설일 것이다. 그렇다면 뜻밖에 결론은 간단하게 내려진다. 찍지 않는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의 주변에서 동의 없는 촬영물을 접하면, 함께 웃는 대신 “동의는 구했어? 그럼 왜 찍어?”라고 묻는 것도 중요하다. 찍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무감각하게 소비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순경이 기고하는 형식의 ‘몰카 성범죄 대처법’ 기사마저 ‘노출이 심한 옷을 피한다’, ‘에스컬레이터는 45도 각도로 몸을 비틀어 탄다’등의 예방법이 나열되어있다. 이런저런 변명을 대면서 찍고 찍히다 보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찍힐 위험 때문에, 복장과 행동을 검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아니 벌써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찍지 말라’는 행동지침보다 ‘대처법’이라는 이름의 지침이 더 널리, 더 먼저 붙어 있는 것은 행동 검열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당장 우리부터 화살을 돌려야 한다. 
 몰카 근절을 위한 올바른 대처법은 역시 ‘찍지 않는다’일 것이다. 생산과 소비를 멈추지 않는다면 이런 검열은 어느새 ‘찍히기 싫다면, 길거리에 나가지 마세요’ 와 같이 극단적인 결말에 이를지도 모른다. 따라서 ‘찍히지 말자’는 슬로건은 완벽한 아이러니다. 찍지 말자. 누가 되었든, 어떤 행동을 하든, 무엇이 궁금하든 간에, 동의가 없다면. 

 

Outro.
  거리 위 폭력을 관통하는 사실은 가해가 없으면 피해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모르고’ 저지른 일들에 대해 일일이 책임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괜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하고, 고쳐야 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거리가 행복하고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윤다원  dawon0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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